제 27 회


제 3 장


4


대소는 요즘 심기가 무척 불편하여 침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였다.

두로가 보낸 밀서를 받아들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득의양양해하던 그때의 모습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우리에 갇힌 맹수마냥 오락가락하군 하였다.

《아직 잡아들이지 못하였느냐?》

《황공하오이다.》

금부의 관헌이 머리를 조아리며 기여들어가는듯 한 목소리로 아뢰였다.

《도성으로 들어오는 백리아근의 길들에서 기찰을 강화하고 도성수비를 엄정히 하였으나 오이로 짐작되는 수상한자는 전혀 찾아볼수 없었소이다. 혹시 구려의것들이 우리를 놀린것이나 아니온지…》

십분 그럴수 있는 일이였다.

그러나 대소에게는 어쩐지 오이가 불쑥 예성에 나타날것만 같은 예감이 떠나지 않았다.

(예감이란 신령님이 주신거다. 필경 그놈은 이 예성안에 들어와있을수 있다. 어떻게 하면 그자를 잡아낼수 있을가?)

생각을 굴리며 천천히 오락가락하는 대소의 속궁냥을 알수 없어 여러 대신들은 머리를 숙이고 눈치만 살폈다.

《여러 제신들은 듣거라.

오늘부터 도성수비군과 궁성숙위군은 예성안팎의 객주집들을 샅샅이 훑어야겠다. 그리고 궁성호위별감은 주몽의 어미와 계집년이 있는 별궁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여 사소한 일도 생기지 않게 하라.》

대소왕자의 이 엄명에 대신들은 한편으로 의아해하면서도 머리를 조아려 대답했다.

《령대로 시행하겠나이다.》

신하들이 물러가버리자 홀로 서있던 대소는 다시금 방안을 오락가락거닐며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고기를 낚으려면 미끼를 달게 하고 토끼를 잡으려면 올코를 가만히 하라 했은즉 오이 네 비록 지혜많고 의사 과인하다 해도 이번엔 결코 빠져나가지 못하리로다.…》

한편 귀족마님의 마부노예형색으로 가장한 오이는 려송을 부담마에 태우고 예성에서 가장 크고 번창한 객주집으로 이끌어갔다.

그가 예견한대로 예성의 수비는 여느때없이 삼엄하였다.

오던 도중에 려송과 오이는 벌써 몇차례나 아슬아슬한 고비를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부여의 군사들은 얼굴에 때자욱이 람루하고 거친 털가죽으로 아래도리나 겨우 가린채 지체높은 귀부인의 부담마를 끌고있는 노예가 오이라고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하였다.

《이봐, 오늘 밤은 이 객사에서 하루밤 묵을테니 말을 깨끗이 씻고 마초를 먹여.》

오래동안 소서노의 시비를 해온탓으로 려송의 연기는 그야말로 흠잡을데 없었다.

《알겠소이다.》

오이는 어리무던하고 성실한 노복의 자세로 공손히 응수하며 허리를 깊숙이 숙이였다.

려송이 목조로 된 2층 객사우로 올라가버리자 오이는 마구간에 부담마를 끌어갔다.

객주집의 노예인듯 한 애녀석 하나가 목통에 물을 담아가지고 마구간으로 들어왔다.

《저쪽구석에 말을 매지 마시와요.》

《그건 왜?》

《저기에 매인 수말이 얼마나 성깔사나운지 몰라요.

전번에도 한 마부가 그옆에 말을 매려다가 맞아죽었어요.》

갈비가 앙상히 드러나고 눈확이 푹 꺼져들어간 애녀석이 코를 훌쩍거리며 하는 말이였다.

《그-래. 정말 고맙다.》

오이는 아직 엄마품에 안겨 재롱이나 부리고있어야 할 나이밖에 안되는 어린것이 때이르게 노예로 끌려와 고역에 시달리는것이 가슴아파 주머니를 뒤져 일화전(당시 고조선과 부여 등지에서 리용되던 화페 단위)한잎을 손에 쥐여주었다. 애녀석의 눈이 놀라움과 의혹으로 하여 순간 휘둥그래졌다. 그러는 아이에게 싱긋 눈웃음을 보낸 오이는 목통의 물로 부담마를 씻기 시작했다.

《내가 씻어드릴게요.》

《일없다. 주인이 찾기 전에 어서 가봐라.》

오이가 거듭 재촉을 해서야 어린 노예는 눈물이 글썽하여 꾸벅 절을 하고 마구간밖으로 사라졌다.

말을 다 씻고난 오이가 마구간 한켠에 쌓아둔 건초무지에서 건초를 한아름 안아다 말에게 주고났을 때였다.

객주집앞마당으로 창을 쥔 수십명의 군사들이 우르르 쓸어들었다.

《주인이 누군가? 빨리 나왔!》

감때사납게 생긴 수장 한놈이 눈을 희번뜩거리며 들어서자바람으로 비린청을 돋구어댔다.

거세한 수돼지모양 턱주가리에 군턱이 늘어붙은 객주집주인이 이건 또 웬놈이냐 하듯 거들거들 마주나오다가 순식간에 낯색이 변하였다.

《아, 이거 수장어른이 우리 객사에 오래간만에…》

이미 안면이 있는 놈팽이인지라 비굴한 웃음을 지으며 추근추근 다가붙는 주인놈에게 수장놈은 대번에 눈을 부라렸다.

《태자님의 엄명이 내렸네. 이 객사에 수상한 놈들이 기여든게 없는가?》

《아무렴 저희 객사에…》

《그렇단 말이지. 애들아, 뒤져봐라!》

수장놈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왁살스럽게 생긴 군사들이 객사의 문짝들을 걷어차며 객손들을 끌어내기 시작했다.

객사안은 순식간에 아우성으로 소란해졌다.

뜻밖에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오이는 얼른 마구간문짝뒤에 몸을 붙이고 바깥의 동정을 살폈다.

한동안 부산을 피우던 놈들이 젊은 사내라고 짐작되는 사람들을 모조리 마당복판으로 끌어내였다. 창대를 꼬나쥔 몇명의 군졸들이 마구간과 잇달린 허줄한 초막으로 털썩털썩 걸음을 놓는다.

그 초막에는 대체로 돈이 없거나 신분이 낮아 객주집에서 류숙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들어있었다.

노예로 위장한 오이 역시 이제 그 초막에 들어야 했다.

필경 놈들은 초막안의 사람들을 다 끌어낸 후에 이 마구간안에도 들이닥칠것이다.

오이는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그럴듯한 수가 떠오르자 빙긋이 웃음을 지었다.

마구간 한켠구석에 안장을 얹어본지 오래된 사나운 수말 한필이 거칠게 투레질을 하며 자기에게 다가오는 오이를 노려보고있었다.

오이는 먼저 마구간의 말고삐들을 모조리 풀어놓은 다음 맨마지막으로 수말의 말고삐를 풀어주었다. 그리고는 손에 쥔 기다란 채찍으로 말의 덜퍽진 등허리를 호되게 후려갈겼다.

가뜩이나 기갈을 부리지 못해 몸달아하던 수말이 호용- 울부짖으며 훌쩍 몸을 솟구었다.

그 서슬에 앞에 가로질러놓았던 가름대가 순식간에 부서져나갔다.

성이 독같이 오른 수말은 겁에 질려 한쪽건으로 몰려있는 말떼속으로 곧추 뛰여들었다. 놀란 말들이 거의 한길씩이나 껑충껑충 올리뛰며 마구간입구쪽으로 내빼려고 달려갔다.

마구간안에서 겁에 질린 말들이 사태처럼 쏟아져나오자 마당앞에 몰켜있던 사람들속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

《무슨 일인가? 서라, 섯!》

살구멍을 찾아 참새떼마냥 흩어지는 군사들을 영문모르는 퀭해진 눈길로 바라보던 수장놈이 돼지멱따는듯 한 고함을 질러댔다.

그러다가 흩어져가는 사람들 틈으로 얼핏 나타난 말떼를 발견하자 겁에 질려 뒤걸음쳤다.

말들을 다몰아 마구간에서 뛰쳐나온 수말이 다시금 호용- 울부짖고 나서 아우성치며 혼잡을 이룬 사람들의 머리우를 훌쩍 날아넘어 곧추 수장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당황망조한 놈은 자기가 마당의 유일한 입구인 중대문을 가로막고있다는것조차 느끼지 못한채 그냥 뒤걸음질치다가 그만에야 벌렁 나자빠졌다.

《으-악!》

이미 성이 돋을대로 돋은 수말은 중대문을 가로막은 수장놈을 단숨에 짓밟아버릴듯 코김을 힝-하니 내불며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군사들과 객주집사람들은 금시 눈앞에 펼쳐지게 될 처참한 광경에 오싹 소름이 끼치는듯 저도 모르게 눈들을 감았다.

바로 그때였다.

어느 틈에 사람들속을 헤가르고 나선 오이가 번개같이 몸을 날려 안장도 없는 말의 잔등에 새털처럼 가볍게 내려앉았다.

깜짝 놀란 말이 갑자기 방향을 홱 꺾으며 다시 마당가운데로 되돌아섰다.

그리고는 등에 올라탄 불청객을 떨어뜨리려고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십여년세월 왕실말목장에서 말방목으로 단련된 오이를 떨어뜨린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오이는 자신만만한 태도로 자세를 낮추고 두무릎사이에 힘을 주면서 고삐를 단단히 감아쥐였다.

마당 한가운데 모여선 사람들이 손에 땀을 쥐고 그 광경을 놀라웁게 지켜보고있었다.

려송이 역시 속이 한줌만 하여 말과 사람이 한데 붙어 벌리는 사생결단의 싸움을 바라보고있었다.

오이를 떨구어버리려고 한동안 길길이 날뛰던 수말은 마침내 기진맥진한듯 입에 거품을 내물더니 고개를 힘들게 주억거리며 몇고패 마당을 빙글빙글 돌았다. 그러나 오이가 고삐를 약간 늦추는 순간 수말은 최후의 힘을 모아 단말마적으로 몸을 솟구었다가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악-》

여러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비명이 터져나왔다.

려송이 허둥지둥 달려갔을 때는 벌써 사람들이 모아붙어 말밑에 쓰러진 오이를 끌어내고있을 때였다.

땀과 흙먼지와 피로 범벅이 된 오이의 모습은 얼굴을 알아볼수 없을정도로 처참하였다.

《이게 뉘댁 노예요?》

차림새가 허줄한 중로배기 하나가 정신잃은 오이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대보고나서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비키소이다.》

려송은 사람들속을 헤치고 들어갔다.

녀인은 뭇시선들이 지켜보고있는가운데 침착하게 오이의 맥을 가늠해보며 그의 인증을 식지손가락으로 세괃게 누르기 시작했다.

차츰 오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더니 두눈귀가 바르르 떨리였다.

《빨리 방으로 데려다 눕혀라.》

려송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소이다.》

객주집의 젊은 노예들이 오이를 맞들어 초막으로 옮겨가려 하였다.

《어딜 데려가려 하느냐?》

눈꼬리를 가늘게 치뜬 려송의 날카로운 노성에 노예들이 기가 질려 주춤 멈추어섰다.

《내 방으로 데려다 눕히고 어서 의원을 불러와라.》

《저…》

객주집주인이 머밋머밋하며 한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객사엔 노예들을 들여놓지 못하게 되여있소이다.》

고조선이나 구려와 마찬가지로 부여땅에서도 노예들은 사람취급을 받지 못하게 되여있다. 객주집주인의 얼굴에는 비록 오이의 의기는 장하나 어디까지나 노예인것만큼 나라법은 어쩔수 없다는 식의 애매몽롱한 표정이 비껴흘렀다.

순간에 의분이 북받쳐오른 려송은 자신을 주책하지 못하고 군턱이 유들유들한 객주집주인의 뺨을 맵짜게 후려갈겼다.

《이 자식, 지금 네 목이 누구때문에 그 몸뚱아리에 붙어있는줄 알기나 해? 당장 옮겨가지 않으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다.》

녀자가 독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는 법이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보매 방종하기 이를데없는 귀족댁아씨가 나라법마저 안중에 두지 않고 저리도 도고할적에야 나는 새도 내리 떨굴만 한 권세가문임이 틀림없으렷다.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얼얼한 뺨을 어루쓸며 이렇게 속생각을 굴리고난 주인놈은 언제 그랬냐싶게 비굴하다고 할만치 굽석거리며 종지기 녀석들을 다우쳐댔다.

《제발 용서하시오이다. 소인이 그만… 뭘 보고들 있어. 냉큼 마나님분부대로 시행하지 않고…》

노예들이 목을 움츠리며 오이를 들것에 담아 날라가려 할 때였다.

《가만!》

등뒤에서 수장놈의 호령소리가 들려왔다.

한쪽 볼따귀에 흉물스러운 칼자리가 난 놈은 칼집을 절거덕거리며 투벅투벅 걸음을 내짚었다.

오이를 에워쌌던 군사들과 사람들이 뱀을 보고 소스라치듯 한켠으로 물러서며 길을 틔워주었다.

려송은 낯빛이 하얗게 질리여 저도 모르게 품속에 감추어놓은 좁은 놋단검을 더듬어 쥐였다.

수장은 들것으로부터 몇걸음 못미처 멈춰서더니 한손을 천천히 칼집이 있는 옆구리쪽으로 가져갔다.

시각을 다투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였다.

바로 그때 머리를 번쩍 쳐든 오이가 금시 불꽃이 튕겨나올듯 한 눈빛으로 려송을 마주 바라보았다.

(려송이, 도대체 어쩌자는거요.)

그 눈빛은 마치 이렇게 속삭이는것 같았다.

(위험하오이다.)

려송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그 시각 칼집옆에 있는 염낭에 천천히 손을 쑤셔넣은 수장이 은냥 하나를 끄집어내여 오이의 가슴우에 놓아주었다.

《이건 나를 구원해준 값이다.》

뒤로 돌아서서 몇발자국 걸어가던 수장이 군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돌아들 가자!》

수장의 뒤를 따라 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오이를 방에 눕혀놓고 하인들은 의원을 찾으러 내보낸 후 려송은 참고참았던 자기의 울분을 끝내 터뜨리고야말았다.

《어째서 그랬나이까? 어째서…》

오이가 우정 말을 쓰러뜨렸다는것을 알고있는 려송의 목소리는 저으기 떨렸다.

《할수 없었소.》

《그리하다가 정말 몸이라도 상한다면…》

눈물이 가랑가랑 맺혀 말을 잇지 못하는 려송을 이윽히 바라보던 오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려송, 이 한몸 죽는것은 무어 애달플것이 있겠소. 허나 나라와 겨레의 삶은 영원한것이요. 이 몸을 바쳐 주몽을 돕고 하나된 겨레의 나라를 세울수만 있다면 난 더없이 행복하오.》

《…》

려송은 조용히 오이의 곁에서 물러났다.

(나라와 겨레…) 그는 입속말로 조용히 되뇌였다.

객주집주인이 의원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섰다.

오이의 병을 진찰하고난 의원이 첩약 몇개를 처방으로 떼여놓고 돌아간 후 려송은 장을 보러가는척하며 객주집밖으로 나왔다.

얼마간 걸음을 옮기던 려송은 뒤돌아서서 오이가 누워있는 객주집창문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내가 무엇인가 잘못 생각한것은 아닐가? 저런 훌륭한 사나이를… 배반한다는건 큰 죄악이다.

하지만, 하지만 오빠를 구원하자면 다른 수가 없지 않는가?)

려송은 두가닥 오솔길에서 길을 종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나그네처럼 불안한 심정에 휩싸여 한동안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었다. 그의 손에는 다섯살때 헤여진 오빠가 만들어준 소뿔구슬목걸이가 쥐여져있었다.

십여년이라는 긴 세월 오직 오빠와의 상봉만을 애타게 그리며 살아온 려송이였다.

헌데 정작 그 상봉의 순간을 눈앞에 둔 지금 이 시각 어째서인지 마음은 불안하고 괴로왔다.

려송은 자꾸만 약해지는 마음을 가다듬고 부여의 궁성으로, 대소태자에게로 걸음을 재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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