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3 장


2


《메돼지다!》 누군가 다급히 웨쳤다.

사냥열에 들떴던 두로가 머리를 돌렸을 때는 이미 몸을 피할 겨를이 없었다. 엄청나게 큰 메돼지가 좁고 길죽한 주둥이에 송곳이를 드러낸채 곧추 자기한테 질주해오고있었다.

눈앞이 아찔했다.

그러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머리를 치자 온몸의 피가 와락 끓어올랐다. 그는 활을 버리고 재빨리 허리에 찬 단검을 빼여들었다.

미욱한 놈은 자기앞을 막아선 상대를 단숨에 받아넘기려고 덮쳐들었다.

순간 두로는 육중한 몸을 날렵하게 피하며 젖먹은 힘까지 다 내여 뒤다리를 걷어찼다. 중심을 잃은 메돼지는 후닥닥 몸을 솟구치면서 락엽무지속에 나딩굴었다.

순간을 놓칠세라 두로는 비호같이 몸을 날려 메돼지를 타고앉았다.

그다음엔 단검으로 힘껏 목을 찔렀다.

한번, 두번, 세번… 두로의 억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고 버둥질하던 메돼지는 마침내 사지가 빳빳해져 너부러졌다.

너무도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였다.

자신이 살아남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두로는 불시에 온몸의 기운이 빠져나가는듯 한 허탈이 들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메돼지에 놀라 사방 뿔뿔이 달아났던 군사들이 우- 몰려왔다.

《굉장하구나!》

《이보라구, 성안사람들이 이걸 보면 눈이 뒤집어질거야.》

《몇해전에도 큰 놈을 하나 잡았다고 떠들썩하기는 했지만 이보다는 퍽 작은 놈이였소.》

《어때? 눈짐작에도 이삼백근은 문제없을것 같은데.》

죽은 메돼지를 둘러싼 군사들은 이렇게 큰 놈을 잡은것이 놀랍고 희한해서 떠들어댔다.

귀얄수염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어데 상하진 않았소이까?》

《아무일도 없네.》

두로는 등골을 적시며 축축히 흘러내린 땀을 씻으며 목덜미에 피가 랑자한 메돼지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성주님의 용력은 참말 대단하옵니다.》

두로는 빙그레 웃을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게 자기의 담력과 용맹을 군사들에게 보여준것으로 마음이 흐뭇하였다.

그는 귀얄수염에게 눈길을 돌렸다.

《오늘사냥은 이만하자구.》

《사냥을 그만두라!》

젊은 비장이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이윽고 산을 내린 군사들은 행길에 들어섰다.

긴 장대에 네발이 묶인 메돼지를 꿰여 어깨에 멘 네명의 장사들이 앞서고 그뒤를 두로와 군사들이 따르는데 사냥이 예상외로 잘된것으로 하여 일행은 흥성거렸다.

성문에 들어서자 파수군들은 메돼지를 보고 벌려진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두로는 관가에 들어가 몸을 씻고 의관을 바로한 다음 귀얄수염을 데리고 남문다락에 올랐다.

봄날의 하루가 기울고있었다.

간단없이 불어오는 봄바람은 다락우에도 꽃향기를 실어왔다.

문득 성안 저자거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서는 왜들 저러느냐?》

귀얄수염이 제꺽 대답했다.

《녹살님이 잡은 메돼지를 대문앞에 내다놓으라고 제가 말했소이다.

다라나성이 생겨서 처음 보는 희한한 일이 아니오니까. 녹살님이 직접 잡았다는것을 알려주어 백성들이 다들 보게 하라고 일렀사옵니다.》

《뭘 그쯤한걸 가지고…》

말은 비록 그렇게 했으나 두로는 마음이 흡족하였다.

자기 비위를 맞춰주는 귀얄수염을 업어라도 주고싶은 심정에 휩싸이자 전번날 고사터에서 있었던 일이 미안스럽기까지 하였다.

모사는 재인이요, 성사는 재천이라(일을 꾸미기는 사람에 달렸고 성사여부는 하늘에 달렸다는 뜻) 거무나산에서 주몽이네를 해치려던 계획이 실패한 뒤로 자기가 귀얄수염을 너무 하대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쳤다.

(그래도 이 자식이 그중 쓸모가 있어.)

이즈음 항간에는 주몽이 벌써부터 대인이 다 된것처럼 대노예소유자들의 땅을 빼앗고 노예들을 해방시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이 나돌고있었다.

어떤 곳에서는 벌써 주몽의 사촉을 받은 노예들이 자기들의 주인을 땅구뎅이에 생매장해치우고 저들끼리 땅과 재물을 나누어가졌다는 그럴듯 한 풍문도 돌고있었다.

두로는 그 소문이 필경 귀얄수염의 머리속에서 나온것이라고 짐작했으나 모른척 하고있었다.

《이 사람, 저 메돼지의 각을 떠 사냥나갔던 군사들과 저기 모인 백성들에게 한근씩 나눠주라구.》

저도 모르게 인심이 커진 두로는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러다가 아무래도 몫이 다 못 돌아가겠다는 생각에 귀얄수염을 건너다보았다. 두로의 속생각을 알아맞춘듯 귀얄수염이 히죽 웃더니 한마디했다.

《저 후당뒤 돼지우리에서 큰걸로 한두놈 더 잡도록 하겠소이다.》

아무튼 이자는 양대가리 걸어놓고 버젓하게 말고기 팔 놈이다.

두로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면서 버릇처럼 고개를 끄덕이였다.

《저어… 녹살님은 아십니까? 오이가 어제 부여의 도성인 예성으로 떠났다 하오이다.》

《예성으로?》

두로는 골살을 찌프렸다.

《호위무사도 없이 혼자몸으로 갔소이다.》

《무엇때문에?》

《글쎄요. 그것까지는 미처…》

《귀얄수염, 임자 뱅뱅도는 머리에서 그렇게도 생각이 안 떠오르는가? 그놈이 예성이 범아가리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지경을 넘어간것은 무언가 큰것을 노리고있기때문일게야.…》

《소인도 생각은 하고있으나 믿을만한자를 물색하기가 어려운데다 주몽의 패가 워낙 단단히 뭉쳐있어 간자를 들이밀기가 여의치 않소이다.》

귀얄수염이 두서없이 변명을 늘어놓자 두로는 눈섭을 찡그리며 더이상 나무라지 않았다. 그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주몽의 패거리라면 부여의 대소왕자가 절치부심하는터에 예성에 나타나는것 자체가 섶지고 불속에 뛰여드는 격이라는것을 모를 오이가 아니였다.

혹시 예성에 두고왔다는 주몽의 어머니와 처를 데려오려는게 아닐가? 이때 두로의 머리에는 한가지 그럴듯한 계교가 떠올랐다.

두로는 한결 밝아진 표정으로 귀얄수염에게 고개를 돌렸다.

《일전에 자네가 내게 이런 소리를 해주었지? 남의 손으로 불속에서 다 익은 밤을 굴러내온다던가…》

귀얄수염은 상전의 의도가 무엇인가 그제야 깨달은듯 얼굴에 간교한 웃음을 떠올렸다.

《그러니… 다락에 올라갔을 때 밑에서 사다리를 치우라 그 말씀이군요. 녹살님의 뜻을 잘 알겠으니 념려놓으시오이다.》

두로는 성급한 제 부하를 못마땅한듯 흘겨보며 손을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게 수월히 생각할 일이 아니야.

자네가 장담했지만 말갈추장놈과 철석같이 약속했던 일이 결국 어떻게 되였나?

오이, 그놈을 제낀다면 주몽은 죽지부러진 새 신세가 될것일세. 하지만 어설프게 계책을 세워서는 어림도 없어.

함정을 파려면 아예 빠져나올수 없게 깊이 파야 하는 법이야.》

《제아무리 총명하고 의사 과인한자라 하더라도 녹살님의 그 계책엔 빠져나가지 못할것이오이다.》

두로는 가슴속흥분을 지그시 누르며 귀얄수염에게 얼굴을 돌렸다.

《자네 부하들중에 오이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

《더러 있소이다.》

《믿을만 한가?》

《후하게 상을 내린다하면 제 어미라도 잡아바칠 놈들입니다.》

《그럼 그런 놈들로 셋만 고르게.》

두로는 다시 귀얄수염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런 일은 나보다 자네가 더 능하지.

…그자들을 준비시켜 오늘 당장 예성으로 떠나보내게.》

귀얄수염이 서둘러 다락을 내려가자 두로의 입가엔 살기띤 웃음이 비껴돌았다.

수많은 고초와 불행을 겪으면서 간신히 얻은 이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는 잔인해지지 않을수 없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안된다.

(오이, 이젠 네놈도 명을 다 살았다. 그리고 다음번엔…)

두로는 버릇처럼 굳어진 잔인성이 도마뱀마냥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것을 느끼며 으드득 이를 갈았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