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9


두로의 터밭이라고도 할수 있는 서늪말에 산채의 지반을 닦을데 대한 주몽의 령을 받고 이곳으로 오기는 하였으나 발붙일 틈을 찾지 못하던 마리는 순장터에서 노예들을 구원한것으로 하여 손쉽게 백성들의 신망을 얻을수가 있었다.

서늪말은 두로의 령지나 다름이 없었고 그것은 노예감독관 위무의 관할하에 있었다.

마리는 첫날부터 가난한 하호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일손을 돕기도 하고 바쁜 사정을 풀어주기도 하면서 그들과 친숙해지려고 애썼다.

서늪말의 좌상로인은 능한 의술을 겸한 의원이였는데 순장터에서의 일을 목격한 후 그에 대해 남다른 호감을 품었다.

하루는 좌상로인이 마리와 세상사를 론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소담한 머리태를 따늘인 복스럽게 생긴 처녀가 찾아왔다.

《의원님, 무고하시나이까?》

다소곳이 머리숙여 절을 올리는 처녀를 본 좌상로인이 반갑게 그를 맞아주었다.

《할아버지는 좀 어떠냐?》

처녀는 바가지에 담아온 피좁쌀을 내려놓으며 수심에 잠긴 어조로 대답하였다.

《그저 그만해요.》

《허, 세상일두 참!… 그런 놈들에겐 왜 벼락도 내리지 않는지.… 그 쌀은 도로 가져가거라. 아무렴 너의 집에서 내가 약값을 받겠느냐?》

로인의 수수께끼같은 소리에 마리는 어쩐지 마음이 무거워지는듯 싶었다. 벼락을 맞을 놈이라는건 대체 어떤 놈일가? 이런 의심때문이였는지 처녀를 다시 보니 분명 북받쳐오르는 오열을 억누르고있는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가 처녀가 약첩을 가지고 자리를 뜨자 좌상로인은 한숨을 내쉬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고을에 세가지 자랑이 있는데 그 하나는 서늪이고 그다음은 샘물의 쩡한 맛이구 그다음은 녀인네들의 인물이 잘난것인데… 그 인물때문에 저 주려의 할아버지가 울화병에 걸렸네.》

《?!…》

마리는 호기심어린 눈으로 의원을 지켜보았다.

로인은 가슴아픈 추억을 더듬는듯 잠시 침묵하다가 저으기 갈린듯 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여러해전 일인데… 하루는 글쎄 불시에 마을로 기여든 말갈놈들이 우리 부락을 들이치구 위무감독관을 잡아가지 않았겠나.

그날 주려의 아버지는 마을사람들을 여라문명 데리고 산으로 들어가는 놈들의 길목을 지켰네. 생쥐 볼가심할게 없이 살아도 의협심이 강한 그 사람은 워낙 힘이 장사고 또 칼도 잘 썼던지라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일처럼 나서군 했지.

날이 어슬해질무렵 략탈나갔던 말갈놈들이 빼앗은 물건이랑 잡아온 인질들이랑 끌고 주려 아버지와 마을사람들이 매복하고있던 골짜기로 들어섰다네. 주려 아비가 큰소리로 호통을 뽑으며 달려나가 눈결에 서너놈을 베여넘기니 놈들은 깜짝놀라 사방으로 흩어졌지.

그때 와 하고 달려나간 마을사람들은 위무를 구원해가지고 마을쪽으로 냅다 말을 몰았네.

주려 아버지는 뒤쫓아오는 말갈놈들을 혼자서 쳐물리쳤네.

서너대의 독화살까지 맞으면서 말일세. 결국 그 상처때문에 주려 아버지는 그만 세상을 떠나고말았네.

그 이듬해에 주려의 어머니마저 병으로 숨을 거두었네. 그래서 주려 할아버지는 손녀 하나를 지팽이로 삼아 남의 땅을 부치며 겨우 살아왔지. 그런데 이제와서 그 위무란 놈이 손녀를 빼앗으려 달려드니…》

《아니, 저를 살려준 은인의 딸을 왜 빼앗으려든단 말이오니까?》

마리가 벌컥 화를 내였다.

《주려 아비와 주려 에미의 장례를 위무감독관이 비용을 내서 치르었는데 이제와서 그 빚값을 물라는걸세.》

좌상로인은 생각하기도 답답한듯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듣자하니 엊그제에도 당장 빚을 갚지 못하면 종으로 끌어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고 하데. 종은 무슨 종이야? 그놈이 주려를 탐내는걸 온 마을이 다 아는데…》

(위무, 이놈… 은혜를 원쑤로 갚는다더니.)

마리는 뭐라고 말할수 없는 증오감이 가슴을 꽉 채우는것을 느꼈다.

순장터에서 노예들을 짐승 다루듯 하며 악청을 질러대던 감독관 위무의 흉물스러운 상통이 떠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자기를 구원하여준 공도 다 잊어버리고 불쌍한 늙은이한테서 손녀를 빼앗으려들다니? 그러면 늙은이의 조석은 어떻게 하고 빨래는 누가 한단 말인가. 더군다나 나이깨나 먹은것이 수욕을 참지 못해 딸벌도 안되는 어린 처녀를 짓밟으려들다니?

마리는 살진 군턱을 실룩거리던 위무를 그려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세상이 아무리 모질다한들 그런 놈을 어떻게 그냥 내버려둔단 말인가. 의리도 인정도 모르는 그런 짐승같은 놈을…

의원로인은 마리가 괴로워하는것을 보자 민망한 생각이 들어 조용히 말했다.

《내가 괜한 말을 꺼내가지구… 어쩌겠나, 세상일이 모두 그런걸.》

더 말해야 가슴답답한 일이라는듯 한숨을 길게 내쉬던 로인은 아무말 없이 움쭉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마리를 놀랍게 바라보았다.

《자네 거 무슨 일을 치려는게 아닌가?》

《로인님, 인차 돌아오겠소이다.》

마리는 불안해하는 로인을 어물쩍해 넘기고 의원집을 나섰다.

가라말을 풀어내여 안장을 얹은 마리는 등자에 박차를 가했다.

마을을 벗어나자 서늪말이 바라보였다.

해질녘인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성수가 나서 풀베기를 하고있었다.

마리는 풀을 베는 사람들중에서 힘꼴이나 쓰게 생긴 대여섯명의 젊은이들을 불러냈다.

그리고는 머리수건을 쓴 젊은이에게 말하였다.

《자네 곧 이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위무를 데려오게. 내가 집에서 기다릴테니!》

《그래도 두로의 등을 믿고 날뛰는 놈인데 소인의 말에 응할갑쇼?》

《수를 써보라구.》

검은 수건을 쓴 젊은이는 영민하게 생긴 두눈을 반짝이다가 알만하다는듯 히쭉 웃으며 대답하였다.

《그럼 다녀오겠소이다.》

젊은이들은 마을쪽으로 냅다 말을 몰았다.

그때 위무는 제집사랑의 마루방에서 두로와 마주앉아 술을 마시고있었다. 관(머리쓰개)이요, 겉옷이요 하는것을 모조리 벗어던지고 애첩까지 끌어내여 두로옆에 앉혀놓은 위무는 상전의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두로는 서늪말의 경작지도 돌아보고 농사작황도 확인할겸 겸사해서 오늘 위무를 찾아왔다. 그런데 짜릿한 술맛의 쾌감과 곱게 생긴 위무의 애첩까지 끼고앉자 몽롱한 기분에 둥둥 떠 련거퍼 잔을 들이켰다.

위무는 하인을 소리쳐 부르더니 술을 더 가져오라고 분부하였다.

《그만 됐소.》

두로는 기분이 좋아 코를 벌름거리면서도 사양하는체 하였다.

《임잔 만날 이렇게 술을 마시나?》

여느때같으면 짐승 다루듯 이놈, 저놈 상말을 해가며 욕설을 퍼붓군 하던 두로가 기분이 좋아져 임자라 부르며 위무를 건너다보았다.

불과 대여섯명의 노예와 열마지기의 땅밖에 가지고있지 못했던 위무가 노예감독관의 자리를 따내고 서늪말의 령지관리인이라고도 할수 있는 삼로(촌장)의 자리에 올라앉을수 있은것은 다 두로의 덕분이였다.

하여 위무는 두로보다 열살이상이나 우인 40대의 장년이였지만 동생벌도 안되는 두로를 신주모시듯 했다.

술이 거나하여진 위무는 취기어린 눈을 끔벅이며 말하였다.

《요즘 이 서늪말의 형국이 말이 아니오이다. 순장사건이후 백성놈들과 노예들이 머리를 빳빳이 쳐들고 부락의 삼로따위는 우습게 알지요. 참, 그때 도망쳤던 노예놈이 지금 졸본산채의 군사가 되였다 하더이다.》

《뭣이?!》

《그뿐인줄 아슈? 순장터에서 화단을 불러일으켰던 그 마리란 우직한 놈이 바로 여기에 와있지요. 순한 양처럼 고분고분하던 놈들이 갑자기 눈을 올롱하니 뜨고 대여드는것도 실은 까닭이 있소이다.》

《그으래…》

두로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듯 술잔을 들어 쭈욱 들이키고는 안주를 집어 쩝쩝 씹었다.

(식충같은 녀석, 꼭 게걸만난 돼지같군.)

위무는 속으로 화가 치밀어오르는것을 겨우 참고있었다.

기실 그는 마리가 고을에 나타나자 커다란 불안을 느끼고있었다.

어떤 날 밤에는 불에 타죽은 순장노예들이 지옥에서 다시 살아나 자기의 멱을 무섭게 누르는 꿈을 꾸고는 놀라서 깨여나 식은땀을 흘리군 하였다.

위무가 이렇게 공포감을 느끼게 된것은 우연한것이 아니였다.

그는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하여 주몽의 산채가 어떻게 꾸려지고 나날이 강해지고있는가를 알고있었다.

그런데도 두로는 군사를 움직이는것은 막다른 골목에서 할 일이라며 아닌보살하고만 있다.

독뱀의 깜깜구녕같은 저놈의 속을 영 알 재간이 있나?

위무는 은근히 속을 태웠다.

숱한 군사를 가진 두로가 결단을 여적 못 내리다니…

노예들을 없애고 땅을 소작주어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점점 사람들의 마음속에 뿌리를 박고있었다.

한때 반신반의하거나 도리질하던 중소노예주들조차 이제와서는 점점 그들과 엇서길 꺼려하고 오히려 그 무슨 《새로운 정사》에 한몫 끼울 깜찍한 궁냥들을 하고있는것이다.

마리가 보낸 젊은이들이 위무네 대문가에 나타난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들은 막아서는 파수군들을 막무가내로 밀쳐버리며 마치 제집뜨락처럼 거침없이 들어왔다. 위무는 어지간히 놀랐으나 그런 내색을 하지 않고 뜨락을 굽어보며 호통쳤다.

《이건 뭐냐? 무슨 일이냐?》

검은 수건을 쓴 젊은이가 공손히 허리굽히며 아뢰였다.

《황송하오나 마리무사님이 마침 좋은 술이 생겼다면서 어르신네를 모셔오라고 하길래 달려왔소이다.》

《좋은 술이?!》

위무는 두로를 얼핏 건너다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언가 께름직한 생각이 들었다.

두로는 작은 눈을 끔쩍해보이며 귀속말로 말했다.

《하늘이 준 기회일세. 한번 가서 대접도 받고 동정도 엿보고 오게.》

위무는 마지못해 의관을 바로하고 비장 둘을 대동하고 나섰지만 어쩐지 마음이 불안했다. 말의 걸음이 고르롭지 못한듯 그는 자주 안장우에서 몸을 뒤척거리며 자리를 고쳐앉군 하였다.

술기운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정신이 말짱해졌다.

어느덧 그들은 의원네 집대문안으로 들어섰다.

마루에 앉아 기다리던 마리는 위무를 보자 대뜸 호통을 뽑았다.

《저놈을 땅바닥에 꿇어앉혀라!》

젊은이들은 와 달려들어 등자에서 채 발도 뽑지 못한 위무를 잡아 땅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창졸간에 당한 일이라 어쩔줄 몰라하던 위무는 땅을 차고 일어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놈들, 이 무슨 란동이냐?》

《꿇어앉으라면 앉을게지 무슨 잔말이야!》

젊은이들은 팔을 내저으며 버둥거리는 위무를 잡아 땅바닥에 무릎꿇림시켰다. 머리에 썼던 관은 벗겨져 데구루루 저만치 굴러가고 저고리앞섶도 헤쳐져 위풍당당하던 차림새가 꼴불견이 되고말았다.

위무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하였다. 아직은 무슨 영문인지는 알수 없지만 마리의 기상은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따라왔던 두명의 비장은 벌써 어디로 줄행랑을 놓았는지 보이지조차 않는다. 위무는 와들와들 몸을 떨며 가까스로 말을 꺼냈다.

《이 사람아, 이 무슨 괄세인가, 응?》

마리는 대답도 없이 저고리를 벗어던졌다.

그리고는 눈을 부릅뜬채 위무에게 다가가 뒤덜미를 잡아 일궈세웠다.

《뭐 그리 놀랄건 없소. 삼로어른과 씨름이나 한판 겨뤄보자고 불렀소.》

《씨름을 겨뤄?》 위무의 눈이 떼꾼해졌다.

《자네가 씨름을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큰소린가, 응?

사람이 무례해도 푼수가 있지. 어찌 이럴수가…》

위무는 말을 채 맺지 못했다.

마리가 피둥피둥 살이 오른 위무를 들어올려 뜨락의 한구석으로 멨다꽂았던것이다. 서늪말 젊은이들은 흐하!- 하고 통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마리는 위무의 덜미를 잡아 다시 일궈세웠다.

《이놈아, 다시 말해봐라. 무엄하다구? 내가 너의 집 노예인줄 아느냐?》

《아, 아니올시다.》 위무는 단박에 주눅이 들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고 공연히 입부리를 잘못 놀렸다가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뉘 알랴?

《그럼 네놈의 씨름솜씨를 좀 보자꾸나. 듣자니 풋내기는 아니라면서!》 위무의 얼굴은 시커멓게 질렸다.

자기의 상전인 두로가 과루성앞에서 오이에게 혼쌀나던 때의 일이 생각났다. 산채의 젊은이들 누구나 씨름은 물론 무술에서도 당할자가 없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더우기 마리는 성미가 과격할뿐아니라 힘이 장사여서 황소도 둘러메친다는 정도이니 불피코 뼈도 추리지 못할것이다.

마리가 손에 침을 뱉아 썩썩 비비며 노려보는 품이 제 말을 따르지 않으면 당장 골통이라도 박살을 낼듯 한 기상이라 하는수없이 위무는 주춤주춤 마리한테로 다가섰다.

그러나 수도 한번 써보지 못하고 또다시 뜨락에 나딩굴었다.

마리가 두팔뚝에 우쩍 힘을 주어 살찐 돼지같은 위무를 허궁에 들어올렸다가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발밑에 내던졌던것이다.

빙 둘러선 마을사람들이 그 모양이 너무도 깨고소하여 환성을 올렸다.

위무는 비명도 치지 못하고 쓰러진채 한동안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아마 머리든, 어깨팍이든 어딘가 단단히 얻어맞은 꼴이였다.

얼마쯤 지나서야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난 그는 얼빠진듯 한 눈으로 주위사람들을 둘러보며 면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머리칼이 헝클어지고 버선 한짝은 벗겨져 맨발인데다 휑하니 찢어진 가랭이사이로 보이지 말아야 할 흉칙한것이 데룽거렸다.

마리는 그제야 속이 후련하여 손을 툭툭 털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저놈을 섬돌앞에 꿇어앉혀라!》

젊은이들이 어구어구 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위무를 끌어다가 섬돌앞에 꿇어앉히자 마리는 위엄기풍기는 목소리로 따져물었다.

《네 죄를 아는고?》

위무는 속이 켕기였으나 뻗대여보는수밖에 없었다.

《죄라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니까.》

《이 죽일놈 봐라.

자기를 살려준 은인의 딸을 노리개로 끌어다가 수욕을 채우려들어? 하늘이 무섭지 않더냐?》

속이 덜컥해난 위무는 억울한듯 한 표정을 지으며 아닌보살을 떨었다.

《원, 그럴리 있소이까? 실은 소인이 의지가지할데 없는 불쌍한것을 차마 보기 딱하여 슬하에 거두어 보살피려 하였사온데… 어떤 개자식이 그런 험구를?》

《이놈이 아직 정신이 덜 들었군.》 마리는 두번째로 령을 내렸다.

《저놈을 엎어놓고 매를 쳐라!》

《알겠소이다.》

젊은이들은 신이 나서 일시에 대답하였다.

그들은 발버둥치는 위무를 잡아 엎어놓고 바지를 벗긴 다음 번갈아가며 말채찍을 후렸다.

《아이쿠- 우!》

채찍이 엉덩짝과 종아리에 휘감기며 뱀의 모양을 새기기 시작하자 너무도 급해맞은 위무는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울음을 터뜨리며 데굴데굴 땅바닥을 굴었다.

《아이구, 제발… 제발 나를 좀…》

마리는 손을 들어 턱을 슬슬 긁으며 히죽이 웃었다.

《이젠 네 죄를 알겠느냐?》

《네, 네… 그저 죽을 죄를 지었소이다.》

《이놈아, 남의 눈에 눈물을 내면 제 눈엔 피물이 나는 법이다.》

《살려만 주면 다시는 그런짓을 하지 않겠소이다.》

《그런즉 사람질을 하겠단 말이지!》

마리는 쓰거운 웃음을 띠우며 말하였다.

《난 마구간에서 자라며 사람이 되였다. 너도 마구간에 가서 말똥내와 오줌내를 실컷 맡아봐라. 그럼 사람이 될게다!》

그리고는 검은 수건을 쓴 젊은이에게 말하였다.

《저 어른한테 오라를 지워 마구간에 가두고 파수를 세우라구.》

마을총각들은 아래도리에 속곳밖에 걸치지 못한 위무를 마구간으로 질질 끌고가 그속에 처넣었다.

하루가 지나서야 이 소식을 알게 된 연타발은 여느때없이 엄하고 과묵해졌다. 두로의 권세를 턱대고 전횡을 부린 위무로서는 그런 봉변을 당한대도 백번 응당하다고 할일이지만 어쨌든 그는 과루부 말단행정의 벼슬아치이고 다라나성의 노예감독관이다.

비천하기 그지없는 천민들앞에서 마리가 제멋대로 위무를 망신시켜 귀족의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가뜩이나 주몽이네를 싸고돈다고 눈을 흘기는 귀족들이 무슨 일을 칠는지 어이 알랴?

이번 일을 계기로 말갈놈들을 소탕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는것은 물론 자칫하면 내부분쟁으로 넘어갈 우려가 있었다.

연타발은 주몽을 직접 불러 일을 의논하였다.

《위무는 그 세력이 크지 못해 감히 자네들에게 대들지 못한다 해도 두로는 아마 가만있지 않을것일세. 마리는 대체 뒤감당을 어찌 하려고 그런 엄청난 일을 벌렸단 말인가?》

주몽은 연타발을 똑바로 쳐다보며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무 심려하지 마시오이다.

위무같은 무도한자들은 한번 호된 징벌을 받아야 마땅한자들이옵니다. 백성을 멀리 하면 나라가 망하는 법이라 그런자들이 제멋대로 날치게 강건너 불보듯 하였다가는 과루부백성들의 민심을 잃을수 있소이다.

대인께선 말갈과의 싸움을 앞두고 두로의 군사에 크게 기대를 거시는것 같사온데 저희들은 생각을 달리 하옵니다.

말갈족을 쳐부실 힘은 바로 백성들의 무궁무진한 힘에 있소이다.

겨레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안겨준 말갈놈들에 대한 백성들의 원성과 적개심은 이미 하늘에 닿았소이다. 바로 이럴 때 기치를 높이 들고 백성들의 힘을 옳게 불러일으킨다면 그까짓 좀도적무리가 무슨 대수겠소이까?》

연타발은 주몽의 타협없는 태도에 기가 질려 연방 헛기침을 깇었다.

《난 자네들을 생각해서 하는 소리일세. 두로와 정면으로 부딪쳤다가는 마리가 화를 당하지 않을가.…》

주몽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렇지 않아도 두로녹살은 우리를 온곱지 않게 보아온지 오랜데 이번 기회에 버릇을 단단히 가르쳐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것도 좋을것 같소이다. 사내들의 싸움은 말릴것이 아니라 북을 쳐대라는 말이 있지 않소이까?

저에게도 다 생각이 있소이다.

소신도 이번 일에는 간참하지 않으려 하오니 대인께서도 두로의 일을 못 본척 하여주시오이다.》

연타발은 주몽의 의지가 확고한것을 보고 더는 그를 만류할 의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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