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2 장


7


불을 다루고 메질을 해야 하는 대장간은 언제봐야 무더웠다.

연방 풀무질을 해대는 시뻘건 화독에서는 숯불이 이글이글 피여오르고 모루우에 놓인 단쇠에서는 불찌가 탁탁 튀여오른다.

대장간주인은 쉰살쯤 되여보이는 구레나룻로인이였다.

그는 민첩한 동작으로 화로에서 벌겋게 달아오른 쇠를 꺼내놓고는 작은 망치로 두드리며 《때려라!》하고 연방 선소리를 먹인다.

《탕!-》

오이는 메를 머리우로 높이 추켜들었다가 힘껏 단쇠를 내려조겼다.

어찌도 메를 세차게 먹이는지 딛고선 땅이 통채로 움씰거렸다.

《좋지! 다시 한번-》

《탕!-》

그러거나말거나 네기둥을 세우고 새초이영을 올린 대장간지붕에서는 참새떼들이 오구구 모여앉아 신나게 재깔거렸다. 매일같이 들어오는 메질소리에 습관되여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양이였다.

모루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몸집이 체소한 총각이 쭈그리고앉아 금방 벼려낸 칼을 숫돌에 썩썩 갈고있었다.

그의 등뒤에 말뚝을 세우고 서로 겹쳐매놓은 두개의 장대사이에는 오늘 반나절사이에 벼린 창과 칼들이 주런이 꽂혀있었다.

대장간주인은 날쌔게 모루우에 놓인 쇠붙이를 집게로 뒤집어놓았다.

《이 사람, 오이!》

《왜 그러시우?》

《자네들이 말갈놈들과 싸우러 갈 땐 날 꼭 데려가달라구.

나도 한땐 마을아근에서 장사소릴 듣던 사람이라네. 그렇다니까.》

《헹, 뒤산에 범이 왜 다 없어졌는가 했더니.…》

몸집이 체소한 풍구쟁이총각이 코방귀를 힝 내불고나서 손채양을 하더니 뒤산 바라보는 시늉을 하며 변죽을 놓았다.

그 모양이 어찌나 신통했던지 야장간에 모였던 젊은 축들이 입을 싸쥐고 키득거렸다.

《에끼, 녀석. 늙은 말이 길을 안다 했다.

코밑에서 아직 젖비린내가 나는게 그래두 뭘 달았다구 흰소릴세그려. 뚝심만 믿고 우둘렁대는 너같은 풋병아리들은 전장에 나갔다가 가랭이에 오줌자리나 그리다 코떨구고 들어오기가 십상이야. 그렇다니까!》

대장쟁이는 총각의 코를 비틀어 잡아당기며 보기좋게 통메주를 먹였다.

대장간이 떠나갈듯 웃음이 터졌다.

《내가 자네들을 도와 창과 칼을 벼려주는걸 생각해서라두 떨궈두지 말라구. 그건 인정이 아닐세. 그렇다니까.》

한참 웃고난 대장쟁이가 로에서 벌겋게 잘 익은 괴를 모루우에 올려놓으며 다짐을 두듯 말했다.

오이는 빙그레 웃으며 또다시 힘차게 함마를 내둘렀다.

뜨거운 열기를 받아 불깃불깃 달아오른 그의 얼굴에서는 땀이 철철 흐르고 저고리잔등은 물로 적신듯 질퍽하였다.

힘차게 메를 들어올릴 때마다 살곬을 파며 근육이 툭툭 불거져올랐다.

잠간사이에 창날의 형태가 잡혔다.

대장간주인은 메질을 멈추게 하고 집게로 창날을 집어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만족한듯 고개를 끄덕이며 구유에 던졌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단김이 물씬물씬 피여올랐다.

대장간주인은 화로속의 쇠붙이를 뒤집어놓으며 또 말을 꺼냈다.

《임자도 이젠 솜씨가 퍽 늘었군.

내 어릴적에 우리 부친이 이 잘난 재간을 물려주며 하는 말이 벼림질만 잘 배워두면 흉년에도 굶어죽지 않는다는게야.

하지만 오이 이 사람! 애당초 자네들은 이런 일에 손을 붙이지 말게. 큰일을 할 사람이 작은 일에 몸을 잠그면 저도 모르게 소인이 되고말지. 그렇다니까.》

《알만하오이다.》

칼을 갈던 풍구총각이 대장간주인을 돌아보며 또다시 지부렁거린다.

《아저씬 이런 상일에 재미를 붙이다보니 손에 장알이 박히도록 평생 벼림질이나 하며 사는군요. 그렇다니까.》

총각이 어찌나 비슷하게 대장쟁이의 말투를 흉내내였던지 또다시 웃음판이 터졌다. 대장쟁이는 허허 웃었다.

《이녀석, 미꾸라지가 깨꾸막질한다고 룡이 될가. 사람이란 제 분수를 알고 살아야 하는거야. 그리구 벼림질이 어째서? 농사일두, 나라를 지키는 일두 내 손에 달렸는데… 나한텐 이 일이 좋아. 그렇다니까.》

오이는 실팍한 가슴을 머리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며 무랍없이 웃는 대장간주인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그의 말에 더없는 친근감을 느꼈던것이다.

어지럽고 다난한 세월이지만 백성들은 거짓과 위선을 모르고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가고있다.

대장쟁이말에는 자기가 하는 로동에 대한 은근한 자긍심과 희열이 풍기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참된 사람들은 자기로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인것이다.

이때 대장간으로 물동이를 인 처녀가 들어왔다.

일하던 사람들은 일시에 손을 멈추고 처녀한테 시선을 모으는데 대장간주인이 눈웃음을 지으며 반색하였다.

《어이구, 달래가 또 왔구나!》

그때에야 오이는 통나무걸상우에 물동이를 내려놓고 돌아서는 처녀를 보았다.

열일곱살이나 되였을가. 처녀는 마을의 보통처녀들처럼 통이 좁은 붉은색갈의 바지에 등황색의 저고리를 받쳐입고 허리를 검은 끈으로 동이였는데 방그레 웃음이 비낀 얼굴이 수집은듯 홍조가 어려있었다.

붉은색띠로 묶어놓은 함함한 머리가 잔등에 길게 드리운것이 퍼그나 탐스러웠다.

《시원한 샘물이오이다. 한숨 돌리구 하시와요.》

처녀는 반짝이는 눈으로 오이와 여러사람들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그러자꾸나. 참, 협보 그 젊은인 어디 있느냐?》

대장간주인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처녀는 바가지에 샘물을 담으며 나직이 대답하였다.

《아이참, 그걸 제가 어찌 아오리까?》

갑자기 처녀의 얼굴이 희딱 붉어졌다.

《허허, 거 모를일이다. 늘 이맘때면 협보 그 사람이 달려와 물을 마시군 하더니. … 그렇다니까.》

대장간주인도, 풀무질하던 총각도 바가지에 넘칠듯이 샘물을 마셨다.

오이도 처녀가 정히 떠주는 샘물을 마셨다.

가슴이 쩡 열리고 금시 땀이 잦아드는듯 하였다.

오이는 처녀의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발깃하게 홍조가 오른 처녀의 순박한 얼굴은 윤기도는 까만 머리태와 조화롭게 어울리며 청신함과 부드러움을 자아냈다.

느닷없이 언제보나 느물느물 우스개소리를 곧잘하는 협보의 얼굴이 떠올랐다.

(협보, 이 엉큼한 자식. 뒤에서 몰래 호박씨를 까고있으면서도 아닌보살을 해.)

오이가 웃음발을 피워올리며 이런 생각에 잠겨있는데 어디선가 《형님!》하고 부르는 협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마-》

깜짝 놀란 처녀는 들고있던 물바가지를 그만 떨어뜨리고말았다.

《허허, 놀라긴 왜 놀라오? 내가 뭐 범인가?》

영문을 모르는 협보는 싱글싱글 웃으며 떨어진 바가지를 들고 다가왔다.

《글쎄, 그렇다니까.》

대장간주인이 한마디 께끼였다.

그통에 웃음이 터졌다.

《무슨 일인가?》

《좌상로인이 부르시오.》

《알겠네. 》

그러지 않아도 몸이 추선 후로 좌상로인을 한번 만나보리라 별러오던 참이였다.

《어서 가자구.》

오이는 벗어놓았던 옷들을 주섬주섬 거두어입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내 물 좀 마시고 인츰 따라가지요.》

오이는 싱긋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나서 제먼저 좌상로인의 집으로 향했다.

좌상로인은 어둠이 내리는 뜨락에 들어서는 젊은이가 오이인것을 알아보자 너무도 반가와 버선발로 마주 달려나왔다.

《로인님, 그동안 많은 페를 끼치고도 이제야 찾아뵙는 저를 용서하시오이다.》

오이는 한쪽무릎을 꿇고앉으며 정중히 인사말을 하였다. 좌상로인은 그를 일쿼세우며 자책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그런 소릴 하나. 이 주책없는 늙은일 용서하라구.》

마을의 정사를 주관한다고도 할수 있는 좌상로인의 집은 예상외로 소박하고 정갈하였다.

사실 좌상로인은 며칠밤을 두고 궁싯거리다 마침내 오이를 만날 결심을 내렸다. 기근으로 피죽 한끼도 번지기 어려웠던 모둔곡의 위기를 타개하고 자기의 생명까지 내대면서 숱한 인명들을 구원하였으니 좌상인 자기로서는 졸본산채의 젊은이들에게 귀잡고 절이라도 올리는것이 사람의 도리로 보나 좌상의 체면으로 마땅한 일일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마음은 이다지도 무겁기만 한가?

모둔곡에 바쳐진 그의 땀과 정성은 그토록 강렬하고 무서운것이였다.

그는 자기의 심혼을 다 바쳐 꾸려놓은 모둔곡이 또다시 전란에 빠져드는것을 원치 않았다.

또한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이들이 방장한 혈기에 못이겨 초야의 혼으로 묻혀버리는것도 바라지 않았다.

흐르는 내도 곬을 따를진대 무릇 패업이란 세상을 경륜할만 한 영걸이 있어야 하는 법이다.

《도탄에 빠진 겨레를 생각하는 그대의 뜻은 가히 장하다 할만하네만 그러자면 단군성왕과 같은 비범한 인걸이 있어야 하네.

나도 한때 혈기왕성했던 그 시절 겨레의 나라를 구원코저 용약 싸움에 나선 일이 있었네. 서쪽의 연나라가 십여만의 침략군을 이끌고 쳐들어왔을 때 변방수비군의 수장이였던 나는 해모수님의 수하에서 대릉하격전을 치르었네. 그 전투에서 목숨을 건지고 돌아온 사람은 나 한사람뿐이지.

그때 만일 부여왕의 배신행위와 조선국의 화의론만 아니였어도 결과는 달리 될수도 있었지. 아- 해모수님만 살아있었어도…》

좌상로인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길게 탄식했다.

《좌상어른, 너무 상심하지 마소이다. 우리들이 행수로 모시는 주몽이란분이 바로 해모수대왕의 적자로소이다.》

정좌를 하고앉아 격정에 넘쳐 말하는 오이의 말에 좌상로인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해모수의 자제라구?…》

《주몽은 우리에게 겨레의 넋과 념원을 새겨주었소이다.

저희들은 졸본천의 언덕에서 그분의 충의로운 신하로 되여 단군겨레의 새 나라를 일떠세울것을 맹약하였소이다.…

우린 장차 겨레의 성지 태백산으로 나가 기치를 꽂고 천아성을 울려 천하의 영웅남아들을 불러일으키려 하오이다. 모둔곡이 기근에 허덕인다는 소식을 듣고 졸본산채의 식량을 다 털어보내준것도 실은 주몽의 용단이로소이다. 》

오이는 저도 모르게 북받쳐오르는 흥분을 안고 주몽이 품은 크나큰 웅지를 펼쳐보였다.

이야기를 듣는 로인의 눈가에는 이름할수 없는 환희가 물결쳤다.

하늘에 계시는 단군신령이시여, 이 기특한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시나이까?

단군님의 넋은 살아있나이다. 배달겨레의 얼은 굳건히 대를 물려가나이다. 좌상로인은 저도 모르게 무릎을 치며 격양된 심정을 터치였다.

《옳거니, 부하들을 보니 과시 성인의 인품과 덕을 지닌 해모수대왕의 자손이 분명하이.

그분이야말로 단군겨레가 한맘으로 받들어야 할 구세주라 아니할수 없네. 이 기쁜 날 이 늙은이가 춤이라도 한바탕 추고싶구만.》

눈물이 글썽해진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했다.


굽이치는 강물은 흘러흐르니

거룩한 님의 덕 잊지 못하네


한동안 기쁨에 겨워, 격정에 넘쳐 어깨춤을 추던 로인이 갑자기 오이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이 사람아, 이 늙은것도… 제발 그분의 신하로 받아달라구.》

로인의 두볼을 타고내리는 굵은 눈물방울이 옷섶을 타고 바닥에 뚤렁뚤렁 떨어져내렸다.

《좌상로인님.…》

오이는 불시에 코마루가 쩡해옴을 느끼며 좌상로인을 일으켜세웠다.

(아- 주몽, 그대의 높은 덕망과 하해같은 도량이 이 나라 모든 겨레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구려.)

민심은 곧 천심이다.

협보와 오이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모둔곡에서는 짧은 기간동안에 숱한 병장기들을 만들어냈으며 많은 젊은이들이 말갈족을 족쳐버리는 선봉에 세워줄것을 자청해나섰다.

며칠후, 모둔곡의 선봉부대는 오이의 인솔하에 기세도 드높이 졸본산채를 향하여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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