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7


그것은 처절한 싸움이라기보다 피비린 살륙전이라고 해야 더 정확할것이였다. 오룡산싸움에서 패한 뒤 화김에 텁석부리의 촌락으로 죄를 따지러 달려왔던 거무나산 추장은 20여명밖에 안되는 호위군사들과 함께 뜻밖의 변을 당하였다. 텁석부리의 막사를 십여리 앞둔 골짜기에서 추장의 일행은 어디선가 휙휙 날아드는 올가미에 꼼짝 못하고 말안장에서 굴러떨어졌다.

요행 올가미에서 벗어난자들도 뒤따라 덮쳐드는 백여명의 기마병들에게 산채로 붙들리고말았다.

제아무리 날고뛰는 말갈족 추장이라도 함정에 들고보면 그물에 걸린 새요, 덫에 치운 범의 신세였다.

《텁석부리, 이 찢어죽일 놈아!

구밀복검이라고 달콤한 입을 가진 네놈의 그 배속에 칼이 들어있는줄 내 왜 미처 몰랐단 말인가?

아, 이 눈먼 놈이 죽어싸지.》

온몸에 결박을 당한채 텁석부리의 발치에 끌려온 거무나산 추장은 묶이운 몸을 무섭게 뒤틀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댔다.

《이 미련한 놈아,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다더냐?》

막사안의 의자에 비스듬히 몸을 기대인 텁석부리는 흡족한 기색을 짓고 발아래 말갈추장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은 살길이 있다.

거무나산의 네 족속들에게 오늘부터 추장의 자리를 나한테 넘긴다고 말해. 그래 어때? 해볼만 한 흥정이지…》

《잰내비새끼같은 이 털보녀석아, 네놈이 그 주제에 추장이 되겠다고… 에, 퉤! 더럽다.》

벌겋게 충혈진 두눈을 뜨부럭거리던 말갈추장은 건가래를 톺아 텁석부리의 상판을 향해 힘껏 내뱉았다.

너덜거리는 옷소매로 상판에 발린 가래침을 닦고난 텁석부리의 흉물스러운 상판이 잔인한 웃음으로 이지러졌다. 놈은 천천히 탁우에 놓인 말갈추장의 부월(족장 또는 추장의 권력을 밝히는 상징적인 작은 도끼)을 추켜들었다.

한순간 말갈추장의 얼굴은 공포로 하여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였다.

《이얏!》

텁석부리가 날린 부월은 휘파람소리를 내며 날아가 말갈추장의 멱에 정확히 들어가박혔다.

추장은 몇번 버드럭거리다가 사지를 쭉 내뻗으며 게거품을 물었다.

텁석부리의 심복부하인 주독코가 가까이 다가가 시체를 확인하고나서 추장의 몸에서 부월을 뽑아 자기의 옷자락으로 피를 닦아냈다.

주독코는 부월을 공손하게 두손으로 받쳐들고 텁석부리앞에 다가와 털썩 무릎을 꿇고앉아 큰 목청으로 웨쳐댔다.

《새 추장 만세! 만세! 만세!》

주독코에게 뒤질세라 나머지놈들도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잠시후 막사안에서는 추장이 된 텁석부리의 첫 령이 터져나왔다.

《이제 곧 거무나산으로 달려가 추장의 일족들과 그 수하심복들을 한놈도 남기지 말고 죽여버려야겠다. 한놈이라도 남겨 후날에라도 우환이 되지 않게 모조리 죽여치워라. 알겠느냐?》

《명심하겠소이다.》

새날이 푸름푸름 밝아올무렵 거무나산의 말갈촌락에서는 그야말로 피비린 살륙전이 벌어졌다.

추장의 떨거지라 짐작되는 집들에 달려든 군사들은 어른, 아이 할것없이 닥치는대로 검과 창을 휘둘러댔다.

찢기는듯 한 녀인들의 비명소리, 자지러진 아이들의 울음소리, 와당탕 퉁탕 문이며 집세간살이를 들부시는 소리로 한동안 부산하기 그지없던 부락에서 드디여 검붉은 화염이 타래쳐오르고 녀인네들의 곡성이 터져나왔다.

이런 방법으로 수십개 촌락을 하나하나 기습하여 추장의 잔여세력을 구축한 텁석부리는 거무나산 추장으로 정식 취임하였다.

그의 야망은 과루부가 아니라 구려땅을 통채로 타고앉아 말갈족의 나라를 세우는것이였다.

한편 검은 복면의 밀지를 가진 간자가 부여의 궁성으로 다급히 말을 몰아 달려갔다. 밀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모든 일이 뜻대로 되였소이다. 텁석부리가 새 말갈족 추장으로 올라앉았나이다. 졸본산채엔 신이 직접 들어갈가 하나이다.… 처음약조를 지켜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졸본산채는 여느때없이 흥성거렸다.

소서노가 사례차로 보낸 많은 물건들이 졸본천의 젊은 무사들을 기쁘게 하였던것이다. 미츨한 재목들과 식량, 의복과 마소를 비롯하여 토공일에 능한 노예들만도 십여명이나 되였다.

산채를 다시 일떠세우는데 필요한 자금으로 쓰일 금은붙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중에서 오이를 기쁘게 한것은 주몽을 위하여 특별히 마련한듯 싶은 갑옷과 장검이였다.

예로부터 내인들이 갑옷과 장검을 마련하는것은 전장으로 떠나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서이다. 슬기롭고 용맹하였던 우리 민족은 남아대장부라면 마땅히 조국방위를 위하여 목숨바치는것을 가장 큰 영예로 간직하여왔다.

처녀들은 비록 가난한 집 딸자식일망정 시집을 갈 때엔 례장속에 좋은 장검과 함께 제 손으로 지은 갑옷을 꼭 지참시키는것이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풍습이였다.

그렇다면 주몽에게 보내는 이 갑옷과 장검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것일가?

오이는 기쁜 마음으로 그것을 들고 주몽에게로 갔다.

《주몽형, 드디여 대공이 열렸소이다. 소서노마님이 이것을 가져왔소이다.》

환한 얼굴을 하고 오이가 받쳐올리는 명주보자기를 펼치던 주몽의 손길이 문득 굳어져버렸다.

해볕에 어룽지는 얇은 철편쪼각들을 겹놓고 수를 놓듯 촘촘히 누벼 든든하게 만든 갑옷에서는 살뜰한 녀인의 다심한 정성이 그대로 풍겨나오는듯 싶었다. 칼집에 청룡을 새겨놓은 장검 역시 제철기술이 뛰여난 당시 고조선 료동지방의 련철로 만든 값진것이였다.

《음, 우리를 생각하는 그 녀인의 정성이 정말 갸륵하기 그지없구만. 하지만 성의라고 하여 어찌 다 받아들일수 있겠나? 비록 례의에는 어긋나나 이건 후날 돌려보내도록 하게.》

조용히 울리는 주몽의 말에 오이는 그가 지금 부여땅에 두고온 어머니 류화와 부인 례씨를 생각하고있음을 알아차렸다.

시시각각 조여드는 대소태자와 금와왕의 마수에서 벗어나기 위해 따뜻한 작별의 정조차 나누지 못하고 궁성을 탈출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주몽에게 있어서 타향의 한 녀인의 남다른 정성이 불러오는 정회가 어떠하였으리라는것을 오이는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오이가 뒤돌아 몇발자국 걸어가는데 난데없는 말의 투레질소리가 들려왔다.

수림속 공지로 과루부의 군사들이 줄레줄레 나타났다.

《게, 누가 없는고-》

말탄 군사들의 앞장에 서서 호기를 뽑아대는자는 두로의 밑에서 책사노릇을 하는 귀얄수염이였다.

《여기가 부여에서 도망쳐온 젊은이들이 세웠다는 그 졸본산채인가?》

코김을 힝힝 불며 돌아가는 성칼스러운 공골말우에 올라앉은 두로는 한걸음 뒤전에 물러서 음흉한 웃음을 짓고 책사의 노는 모양을 지켜보고있었다.

그의 뒤로는 위세를 뽐내듯 기치창검을 추켜든 수십명의 기마군졸들이 주런이 늘어져 서있었다.

한창 신이 나서 나무를 베여넘기던 산채의 젊은이들은 도대체 무슨 영문인가 하여 허리를 폈다.

《이놈들, 어째 묻는 말에 대답도 제대로 하질 못하는고-

모두 경칩전 개구리라도 되였느냐?》

금시 잡아먹을듯 한 인상이 되여 떡떡거리는 귀얄수염의 모습은 주인의 발치를 감돌며 컹컹 짖어대는 삽살개 한가지였다.

《남의 집에 들어와 큰소리치는 작자는 도대체 웬놈이뇨!》

건너편 숲에서 나무를 찍어넘기던 마리가 손에 그냥 도끼를 든채 걸어나오며 맞받아 소리쳤다.

《고현놈, 무엇이 어쩌고 어째?-》

가는 방망이 오는 홍두깨라더니 부하들의 앞에서 보기 좋게 메주를 먹은 귀얄수염의 얼굴이 금시 험악해지더니 어느새 옆구리에 찬 칼자루를 더듬어잡으며 곁의 군사들에게 슬며시 눈짓을 보내였다.

기마군사들이 일제히 당파창(창의 한가지. 끝이 세갈래로 째지고 길이가 일곱자 여섯치)을 꼬나들고 달려들듯 한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마리는 몸을 휙 날려 두로의 앞에 서있는 어른의 허리굵기만 한 나무의 중간에 도끼를 깊숙이 박아넣었다.

《쿵-》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밑둥이 툭 부러져나간 나무가 두로와 그의 기마군사들의 앞에 넘어졌다.

겁에 질린 말들이 비명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였다.

시퍼런 불길이 뿜어져나오는듯 싶은 부리부리한 눈길, 청동으로 주조한것처럼 울뚝불뚝 솟아오른 단단한 근육이며 금시 목을 향해 날아들것만 같은 시퍼런 도끼…

마리는 한번 덤벼들테면 덤벼들어봐라 하는 배짱으로 두다리를 떡 내뻗치고 두로와 그의 군사들을 노려보며 서있었다.

거방진 몸에서는 왕성한 정력과 완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여차직하면 무슨 일이든 칠듯 한 험상궂은 눈길과 시꺼먼 눈섭으로 하여 서리발같은 위엄기를 내풍기고있었다. 마리의 뒤로 도끼를 틀어쥔 산채의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연히 자는 범 코쑤셔놓은 격이 되고말았다.

기가 질린 군사들이 비실비실 뒤로 물러섰다.

이미 오룡산싸움에서 마리의 용맹함을 잘 알고있는 두로 역시 절반쯤 뽑아들었던 칼을 도로 넣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그냥 뽑을수도 없어 즘자렸다.

바로 그때 오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게 다라나의 성주님이 아니시오? 경사엔 조상도 온다더니… 방금전 소서노마님이 많은 례물을 보내주어 기쁘던 차에 성주께서 이렇게 왕림하셨으니 우리 산채에 경사에 경사가 겹쳤소이다. 그런데 마리, 자넨 귀한 손님도 몰라보고 이 무슨 인사불성인가?》

숲속에서 걸어나오던 오이가 짐짓 마리를 꾸짖었다.

그쯤 버릇을 가르쳤으면 이젠 그만하라는 뜻이였다.

마리는 그제야 들었던 도끼를 슬며시 내리우고 씩씩 단숨을 내불다가 뒤돌아 스적스적 걸어갔다.

마리가 숲으로 들어가버리자 두로는 옹색해졌던 체면을 세우느라 헛기침을 두어번 톺았다.

산채가 불에 타버렸다는 소식을 듣자 오룡산싸움에서 당한 수치를 두고 앙앙불락하던 두로는 내심으로 여간만 기쁘지 않았다.

자기들의 보금자리를 졸지에 잃고 어쩔줄 몰라하는 그들을 잘 구슬려 자기 수하에 거두어들인다면 두로야말로 이 구려땅에서 누구보다 강한 군사력을 가지게 될것이다.

닭 한마리를 부르자고 해도 손에 쌀 한줌은 들어야 하는 각박한 세월에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제까짓것들이 겨울을 눈앞에 둔 지금 다시 산채를 짓는다는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였다.

아무렴, 곰이라고 온 겨우내 발바닥 핥을텐가?

두로는 자기 손에 든 적지 않은 재부이면 주몽과 그의 부하들을 수하에 두기가 별로 어렵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의 생각이 스스로도 그럴상싶어져 두로는 지체없이 몇명의 기마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달려왔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서노가 산채를 일떠세우라고 숱한 재목과 재물들을 보내줄줄이야…

두로 자기에 대해서는 그리도 랭담하고 지어 경멸에 가까운 눈빛으로 대하는 소서노가 졸본의 젊은이들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되여 그리도 극성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다.

(괘씸한 년, 어디 두고 보자.) 두로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한편 오이는 경계심을 가지고 두로의 얼굴을 살폈다.

오룡산싸움때도 느낀바였지만 허세와 야심만이 가득찬 이런자들은 례외없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떤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법이다.

아닐세라 두로는 자기의 본심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거 참, 일이 공교롭게 되였소그려. 난 사실 그네들이 여기서 떠나라는 연타발대인의 령을 전하러 이렇게 왔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아무렴 대인께서 자기의 딸을 구원해준 우리를 나가라고야 하셨겠소?》 오이는 진정으로 놀랐다.

두로의 입가에 야릇한 웃음발이 스쳐지나갔다.

《믿어지지 않거든 직접 찾아가 물어보소그려.

수일내로 이곳을 뜨지 못할 땐 하는수없이 우리 군사들이 개입한다는걸 미리 선통하는바이요.

내가 과루부의 병권을 틀어쥐고있다는것을 잊지 않기 바라오.》

두로는 방금전과 달리 범잡은 포수처럼 득의양양한 기세로 떠나갔다.

(이제야 제까짓것들이 별수 있나?)

회심의 미소를 짓는 두로의 눈앞에 문득 방금전 무서운 기상으로 펄펄 날뛰던 마리의 모습이 떠올랐다.

무지한 도깨비 부작을 모른다고 분별을 잃고 날뛰는 그들이 무슨 일을 치지 않는다고 어찌 장담할수 있으랴?

하다면 그를 구실로 주몽이네것들을 이 과루부땅에서 완전히 쫓아버려야 한다.

두로는 이를 사려물었다.

《말머리를 돌려라! 연타발대인어른께 급히 들려야겠다.》

다라나성으로 향하던 기마대렬이 과루부의 도성인 과루성으로 천천히 방향을 돌리였다.

두로의 일행이 산협길로 사라져버리자 오이는 방금전 그가 내뱉은 말이 결코 장난이나 위협이 아님을 깨달았다.

아침에는 소서노의 례물이 오고 낮에는 그의 아버지인 연타발의 추방령이 내리고…

사람에게는 조석으로 화복이 있다 하지만 너무도 뜻밖에 부닥친 일이다보니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통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까짓거 너 죽고 나 죽고 한번 붙어볼판이지요. 그깟놈들 문제없수다.》 마리가 성급한 어조로 말했다.

《마리, 넌 언제 봐야 성급한게 탈이야. 그래 쥐를 잡겠다고 독을 깨뜨릴텐가? 두로의 군사들을 족쳐놓으면 온 과루부땅이 다 우리의 적이 될텐데 그럼 또다시 뜨내기신세를 면치 못하네.》

《형님도 참… 그렇다고 두로에게 빌붙을수야 없지 않소?

무릎을 으면 앉기는 쉬워도 일어나기는 힘든 법이요.》

《어쨌든 이 일은 주몽형과 의논을 해봐야 하겠다.》

오이에게서 사연의 전말을 다 듣고난 주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연한 어조로 말하였다.

《이 일을 말썽없이 처리할 사람은 한사람밖에 없소.

어서 소서노를 만나봐야 하겠소.》

오이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역시 그렇게 생각하오이다.》

잠시후 주몽과 오이, 마리를 태운 세필의 말이 고모나로 향해 질풍같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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