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3


깊은 밤이였다.

무거운 회색구름이 낮게 드리운 컴컴한 숲속에 자리잡은 말갈족부락은 쥐죽은듯 한 정적에 휩싸여있었다.

략탈해온 물건들을 나누느라 서로 칼을 빼들고 늑대처럼 다투던 목소리들도 차츰 잦아들고 부어라마셔라 온밤 끝이 날상싶지 않던 주정군들의 술추렴도 판이 났는지 드르렁드르렁 코고는 소리만이 촌락의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유일하게 등롱을 내여건 덩지 큰 두령의 막사밖에서는 창대를 베고 누운 말갈군사 하나가 코베가도 모를 정도로 깊은 잠에 곯아떨어져있었다.

문득 말우리곁에서 투레질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도적고양이처럼 울바자곁에 바싹 붙었던 검은 그림자가 소리도 없이 불쑥 튀여나왔다. 한동안 동정을 살피듯 파고세운 말뚝처럼 꼼짝 않던 그림자는 파수군의 곁을 살짝 지나 빨리우듯 군막안으로 사라졌다.

희미한 등불아래 채 비우지 못한 술잔과 고기뼈다귀들이 되는대로 나딩굴고 침상우엔 우람한 체구의 사내 하나가 이불도 덮지 못한채 만취되여 코를 디링디링 골고있었다.

오늘 아침 졸본천기슭에서 오이에게 단단히 졸경을 치르었던 바로 그 텁석부리두령이였다.

당시 말갈족은 여러 부족으로 나뉘여 넓은 지역에 퍼져 살았는데 대체로 수십개의 촌락들이 모여 한개의 부족을 이루었다.

부족의 우두머리는 추장이고 매 촌락들은 두령들이 통솔하였다.

텁석부리는 그중 어느 한 큰 촌락의 두령노릇을 하고있었다.

복면을 한 검은 그림자는 곯아떨어진 텁석부리의 숫밤송이같은 머리칼을 사정없이 움켜쥐더니 목부위에 시퍼런 비수를 들이대였다.

동공이 풀린 눈을 게슴츠레 뜨던 럽석부리가 한순간 아연해지더니 사지를 덜덜 떨었다.

《텁석부리, 오늘일은 어떻게 된거냐?》

부러 굵게 지어내는듯 한 사나이의 위혁적인 목소리였다.

《저… 약속대로 새벽에 소서노 그년의 집후문을 지켰사온데 부하녀석들이 글쎄 한발 먼저 물길러 나온 시비년을 잘못 덮쳤다는게 아니겠소이까? 그래서…》

텁석부리는 떠듬거리는 목소리로 그날 아침 숲속에서 있은 일을 대충 이야기했다.

《그 다음일은?》

《그 다음일은 시키는대로 다 제바루 했소이다.

과루성안으로 들어가 시비년을 잡아간것이 졸본천기슭의 주몽네 패거리라고 소문도 돌리고… 헌데 그 시비년을 놓쳐버렸으니 혹 탄로나지나 않았는지…》

《그건 걱정말아. 시비는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예! 예…》

텁석부리는 습관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려다가 목옆에 바싹 들이댄 비수의 선뜩한감에 놀라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래일 아침 일찍 거무나산 추장에게로 달려가 소서노가 우태의 묘지가 있는 오룡산으로 행차를 할 예정이라고 알려주어라!》

우태란 소서노의 죽은 남편이름이다.

텁석부리는 울대뼈를 실룩이며 가슴만 화들화들 떨뿐 마비가 왔는지 입을 열지 못했다.

《알겠어?》

《아… 알겠소이다.》

《이번에는 실수가 있어서는 안된다.

다라나의 녹살(구려의 관직명, 큰 성의 성주를 이름.)두로가 군사들을 끌고 수비병으로 따라갈수도 있으니 될수록이면 많은 군사들을 끌고가야 한다.

그리고 이번 일에 또 그 산채놈들이 끼여들수도 있다. 그땐 어떻게 하지?》

《저… 그놈들의 무예가 보통이 아니로소이다.》

텁석부리는 아침에 대적했던 오이한테 아래도리를 벗기우고 혼쭐이 나서 도망치던 광경을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좋다, 그건 내가 알아 조처할테니 넌 추장이 소서노를 놓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알겠지!》

《명심하겠소이다.》

《그럼 좋다, 난 돌아가보겠다.》

복면한 검은 그림자는 입바람을 훅 불어 등불을 꺼버리고 바람처럼 막사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제길, 부여것들은 다 저 모양인가? 말똥같은 자식들…》

텁석부리는 이렇게 투덜거리며 채 마시지 못한 술대접을 입으로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 창호지를 찢으며 시커먼것이 씽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텁석부리는 술대접을 훌렁 떨어뜨리고 놀란 까투리처럼 황급히 탁자밑으로 머리를 구겨박았다.

《아… 아니올시다. 제 어찌 감히… 용서해주사이다.》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쥔채 변명절반, 애원절반 중얼거리던 놈은 쥐죽은듯 한 정적이 이상하여 다시금 머리를 쳐들었다.

사위는 조용했다.

엉금엉금 탁자밑에서 기여나온 텁석부리는 용기를 내여 창호지를 뚫고 날아온 시커먼 물건에 조심히 손을 내뻗쳤다.

《엉, 이게 금가락이 아닌가?》

순간 텁석부리의 입이 헤 벌어졌다.

(그 자식들이 일을 시켜먹을줄 안단 말이야!

아무렴, 황금만 준다면야 무슨 일인들 마다할텐가.)

황금에 침뱉는 놈 있으랴. 텁석부리는 기분이 좋아져 다시금 술대접에 찰랑찰랑 넘치게 술을 부어 정신없이 마시기 시작했다.

원래 이 텁석부리로 말하면 부여와 구려사이를 오가며 말을 훔쳐내여 팔아가는 말도적무리의 두목노릇을 하던자였다.

예로부터 북방은 말이 유명한 곳이다.

오죽하면 북방의 말은 얻기도 쉽고 잃기도 쉽다는 격언까지 나왔을터인가.

부여에서 훔친 말은 구려에, 구려에서 훔친 말은 부여에 넘겨다 팔면서 재물 그러모으는데 재미를 느낀 텁석부리는 어벌이 크게도 부여왕실의 말목장에까지 손을 뻗쳤다.

어느날 부여왕실의 말목장에서 말을 훔쳐가지고 도망치던 도적무리들은 부여군사들의 맹추격을 받게 되였다.

놈들은 얼마 못 가서 덜미를 붙잡히고말았다.

옥에 갇히운 텁석부리는 날이 새면 이마에 불도장을 찍은 후 쇠고랑을 차고 영영 노예살이를 하게 된다는 생각에 막 미칠것만 같았다.

다른 놈들은 밤새 엉엉 울어대며 자기 신세를 한탄하였으나 텁석부리만은 이를 악물고 발목을 묶은 쇠사슬을 돌바닥에 밀고 또 밀었다.

쇠사슬이 밀리울 때마다 피묻은 살점도 함께 묻어나갔다.

상처에선 피가 뚝뚝 떨어져내렸다. 하지만 상처의 모진 아픔도 살아야 한다는 그의 욕망만큼 강렬하지는 못하였다.

살고싶었다. 그것도 노예가 되여 마소처럼 고통스럽게가 아니라 무제한한 권세와 재부를 가지고 부귀영화를 누리고싶었다.

이튿날 아침 텁석부리는 이글거리는 숯불화로와 불도장을 가지고 들어온 형리를 쳐갈기고 탈옥하였다. 그러나 멀리 뛰지 못하고 뒤따라온 기마군사들에게 곧 붙잡혀버렸다.

무서운 형벌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반주검이 되도록 얻어맞은 그가 끌려간 곳은 중죄인들만을 취조하는 의금부(역적모의, 반역죄를 취급하는 국가형벌기구)안의 무시무시한 취조장이였다. 형리 하나가 정신을 차리게 하느라 쓰러져있는 텁석부리의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머리를 들라.》

위엄기어린 목소리가 울렸다. 옥관자를 두르고 풍채가 준수한 젊은 사람이 매우 흥미있어하는 눈길로 그를 내려다보고있었다.

《어째서 기를 쓰고 도망치려 했느냐?》

비록 텁석부리는 세상물정에 어두운 일개 도적무리의 괴수라 할지라도 앞에 서있는 사람이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모를리 없었다.

《살고싶었소이다. 아니… 살려주사이다.》

때로는 비굴성이 상대방의 만족을 자아내는 경우가 있다.

때국이 뚝뚝 흐르는 텁석부리의 상통이며 비굴한 추태를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이윽토록 바라보던 젊은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

《나는 이 나라의 태자 대소이다.》

《태, 태자마마…》

텁석부리는 이런 곳에서 부여국의 태자를 만난것이 너무도 놀라와 저도 모르게 눈을 흡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운명에 그 어떤 한가닥 밝은 해살이 비쳐드는듯 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네놈의 그 담통이 내 마음에 드노라! 살고싶다고 했지?》

《살… 살려만 주신다면 태자마마를 위해 부탕도하(끓는 물속과 불속도 가리지 않고 뛰여든다는 뜻.)라도 주저하지 않겠소이다.》

텁석부리는 머리를 조아렸다.

대소는 눈물을 락수쏟듯 하며 게정을 떠는 텁석부리의 진가를 가늠이나 하듯 눈귀를 모았다가 한결 누그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좋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우리 일을 좀 해주어야 하겠다. 이 일만 잘하면 그까짓 말도적에 대겠느냐? 일생 부귀영화를 누릴수도 있으렷다.

넌 이제 곧 구려땅에 들어가…》

위엄기를 내뿜던 대소의 얼굴에 이상야릇한 미소가 피여올랐다.…

이렇게 되여 텁석부리는 하루아침에 부여국의 간자로 전락되였다.

그가 받은 임무란 일정한 기간 구려땅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부여국에서 도망한 주몽이네를 감시하다가 호랑이호패를 가진 간자의 지령을 받아 거사를 치르는것이였다. 텁석부리는 대소가 안겨준 금은붙이를 가지고 구려땅으로 넘어와 재물을 뿌려 거무나산 말갈추장의 눈에 들었고 손쉽게 촌락의 우두머리로 선출될수 있었다.

바로 그러한 때 호랑이호패를 지닌 검은 복면의 사나이가 나타난것이다.

검은 복면의 사나이가 처음 지령을 준것은 이 졸본천지역의 유력자인 소서노를 은밀히 랍치하여 졸본산채곁의 수림속으로 끌어오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매일 아침 소서노가 집후문으로 나와 산책을 하니 그때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오라고 구체적인 계략까지 꾸며주었다.

그런데 첫새벽에 문을 열고 나선것은 뜻밖에도 그의 시비인 려송이였다. 소서노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놈들은 무작정 그를 덮쳐가지고 졸본 산채가 있는 수림속에 들어갔다가 그런 봉변을 당하였던것이다.

(복면한 저자는 도대체 어떤 놈일가? 과루성의 일은 물론 소서노의 일거일동까지도 손금보듯 알고있는걸 보면 분명 그 가까이에서 맴도는 놈일텐데…)

알딸딸한 정신속에서도 텁석부리는 풀수 없는 의문을 안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그만에야 탁자우에 코를 박고 잠들고말았다.

그날 새벽, 우태의 묘가 있는 오룡산에 산불이 일었다.

연타발의 선산이라고도 할수 있는 오룡산을 관리하던 종지기노예가 이 소식을 가지고 이른새벽 과루성을 향해 말을 때려몰았다.…


두로는 삼십여명의 군사들을 이끌고 이른아침 연타발의 딸 소서노의 집으로 찾아왔다.

연타발이라고 하면 과루부의 대인으로서 실제상 소왕국의 왕과 다를바없는 존재였다. 넓은 땅과 막강한 재력, 수많은 노예들을 가지고있는것으로 하여 그 무엇도 부러운것이 없는 연타발이였지만 불행하게도 그에게는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하여 그는 외동딸 소서노를 누구보다 끔찍이 사랑하였다.

그러나 딸의 운명은 불행하기 그지없었다.

소서노는 시집가자마자 청상과부가 된 녀인이였다.

잘나고 부유한 귀족의 딸인 그의 랑군은 고모나땅의 많은 재물과 노예들을 가진 귀족 우태였다. 허나 명이 짧은탓이였는지 아니면 연분이 없었던탓인지 우태는 얼마 락을 누려보지 못하고 비명횡사하였다.

그 덕분에 소서노는 시집올 때 가지고온 땅과 노예들, 우태의 재산과 땅, 수많은 노예들을 상속받아 대인인 연타발에 결코 짝지지 않는 막강한 재력의 주인으로 되였다.

다라나의 녹살인 두로는 일찌기 연타발을 받들어 부여와의 분쟁에서 공을 세운적 있는 충실한 신하의 아들이였다.

연타발은 어려서 량부모를 다 잃은 두로를 불쌍히 여겨 집안에서 거두어 소서노와 더불어 함께 키우도록 하였다.

이러한 연고로 두로와 소서노는 친동기처럼 함께 자랐다. 그러나 소서노는 왜서인지 총명은 하나 허세부리기 좋아할뿐아니라 심술궂고 야심이 남달리 강한 두로가 싫었다.

《누님, 소문을 들으셨소? 누이의 시비 려송을 잡아간자들이 졸본천의 그 젊은 패거리라 하더이다.》

두로는 군사들을 이끌고 들어서자바람에 큰소리로 떠들었다.

비록 두로가 몇살 우이긴 하였으나 주종관계가 명백했던 까닭으로 그는 소서노를 항상 누님이라고 불렀다.

《졸본천의 무사들이라구요?》

《그래서 내 군사들을 끌고왔소.》

《오라버니, 소문이란 다 믿을게 못되오이다. 더우기 이건 인명과 관련되는 일이오니…》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날가?

그놈들을 들이쳐서 시비를 찾아올터이니 두고 보오.》

두로는 허세를 부렸다.

《전 오늘 그런 일을 의논할 짬이 없소이다. 선산에 불이 일어 주인의 묘가 탔다 하오니 가보아야 하겠소이다.》

《우태의 묘가?》

두로는 깜짝 놀라는척 하였으나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거야말로 좋은 징조가 아닌가?)

두로는 당시 세습귀족들이 그러하듯 미신에 푹 빠진 사람이였다.

그는 항상 용한 점쟁이들을 불러다가 푸닥거리를 벌려놓기를 좋아하였다.

두로는 과루부의 대인이 되기를 소원하였다. 그 꿈을 이룰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연타발의 사위로 되는것이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서노는 우태한테 시집가버렸다.

소서노의 잔치가 성대히 벌어지던 그날 밤.

두로는 혼자 쓰거운 고배의 술을 마시며 자기가 아니라 우태를 선택한 연타발이나 소서노를 이를 갈며 저주하였다.

그의 이런 속마음을 남먼저 들여다본것이 바로 두로의 집을 제집 나들듯 하는 서늪말의 사니(무당)였다.

어느날 밤 자정이 기울무렵 삼태성사이로 별찌 하나가 팔매질한 돌처럼 긴 꼬리를 남기며 남쪽하늘을 향해 떨어져내렸다.

사니는 그것이 둘도 없는 길한 조짐이라고 하였다.

당시로서는 별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앞날의 일을 예언하는것을 점성술이라고 하였다.

두로의 귀가 벌쭉해졌다.

과연 얼마 안 있어 우태가 부여와의 소소한 분쟁에 나섰다가 화살에 맞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버렸다.

헌데 오늘은 또 죽은 우태의 묘가 불에 타버린것이다.

하늘에는 사람이 알길 없는 풍운이 있다 하더니 이것이야말로 묘한 일치가 아닌가?

두로는 당장에 서늪말 사니를 불러들이리라 생각했다.

하면서도 우태의 묘가 정확히 불타버렸는지 제 눈으로 확인해보고싶었다.

《그럼 나도 동행할가 하오. 시비를 잡아간 놈들이 실은 누이를 노렸다 하니 방비가 있어야 할줄로 아오.》

이렇게 되여 두로는 소서노일행을 호위하여 오룡산으로 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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