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2


그날 밤, 탁탁 불찌를 튕기며 밤하늘을 사르듯 우줄우줄 솟구치는 우등불주위에 주몽과 오이, 마리, 협보와 몇몇 젊은이들이 빙 둘러앉아있었다.

우등불 한가운데는 오이가 잡아온 메돼지가 너울거리는 불길속에서 칙칙 기름방울을 튕기며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있었다.

《글쎄, 분명 여우귀신이라니까요!

오이형님은 나한테 귀잡히우고 한발로 냉큼냉큼 저 졸본천을 건너뛰기 뭣해서 변명하지만 말이야 바른대루 여우귀신에게 단단히 홀렸소이다.》

성수가 올라 손세까지 써가며 이야기하는것은 다름아닌 협보다.

얼굴이 화독처럼 단 오이는 메돼지를 통채로 꿴 사슬나무를 빙글빙글 돌리며 이따금 사나운 눈찌를 협보를 향해 튕길뿐이였다.

그러는 그들 두사람의 모습을 엇갈라보며 주몽과 마리는 허리를 잡으며 웃다가 눈물까지 찔금 흘리였다.

동안이 지나자 주몽이 빙그레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오이의 말이 맞을수도 있네. 오늘 과루성(구려 5부의 하나인 과루부의 읍)에 나가보니 군영안에서 군사들이 쓸어나오고 성안이 온통 죽가마 끓듯 하더구나. 말갈놈들이 이른새벽에 연타발대인의 딸 소서노의 시비를 붙잡아갔다고 말이다.》

주몽은 과루성안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였다.

흥분한 오이가 말했다.

《형님의 말이 옳다. 말갈놈들이 무슨 귀부인의 시비라 하옵는 소리를 제 이 귀로 똑똑히 들었소이다. 실은 그놈들이 노린건 바로 그 소서노란 귀부인이였다 하더이다.》

주몽이 심중한 낯색을 지었다.

《음… 일이 심상치 않구나.》

《형님들은 별걸 다 걱정하오. 그까짓 말갈놈들이 귀부인을 붙잡아가든 그 시비를 붙잡아가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소이까?》

마리가 장도칼로 잘 익은 메돼지고기를 솜씨있게 베여내며 말했다.

협보가 제꺽 도려낸 고기를 꼬치로 꿰여 그들의 앞으로 내여밀었다.

《챠, 이럴 땐 거 목젖을 따끈하게 하는 시큼털털한 막걸리라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

주몽의 입가에 느슨한 웃음발이 흘렀다.

《마리, 그 막걸리단지를 가져오라구!》

《히야, 막걸리…》

마리가 커다란 술방구리를 안고 나왔다. 과루성에 장보러 갔다가 들고온 막걸리단지였다. 입이 항아리처럼 벌어진 협보가 덥석 그것을 받아들었다.

귀가 달린 토기종지마다에 뿌연 막걸리가 찰찰 흘러넘쳤다.

권커니 작커니 연신 잔들이 오르내리였다. 아직 젊은데다가 술이라면 오금을 못쓰는 마리와 협보인지라 술방구리는 인차 바닥이 났다.

오이는 깊은 생각에 잠겨 술도 얼마 들지 않았다.

《드르렁- 드르렁.》

네활개를 큰 대자로 쭉 내펴고 요란히 코를 골아대는 마리때문에 잠들지 못하던 협보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길, 이거야 어디 잘수가 있나?》

협보는 제가 베고누웠던 목침을 뽑아 마리의 머리를 들고 그의 목침우에 덧놓았다.

《이젠 실컷 코를 골아보라지.》 그러고는 싱긋 웃었다.

과연 요란한 코고는 소리대신 푸- 푸- 황소숨을 몇번 내뿜던 마리는 이내 조용해졌다. 민간에서는 흔히 코고는 사람들의 버릇을 떼느라 우정 목침을 높이 고이군 한다.

새록새록 정신이 밟혀와 몸을 뒤채기던 오이는 협보의 그런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넷중에 제일 나이어린 협보는 쾌활하고 기지있는 영민한 젊은이였다. 협보는 부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자란 노예출신이였다.

그의 부모들이 노예였고 할아버지, 할머니도 대를 물려오는 노예였다고 한다. 그가 젖도 떼기 전에 노예주놈은 일능률이 떨어진다고 어머니에게서 강보에 싸인 아들을 뺏어 다른 노예주에게 팔아먹었다고 한다.

각박한 세상에 무심한 하늘이였건만 사람의 목숨 역시 모질기 그지없었다.

애기적부터 그를 키운 늙은 목동노예의 말에 의하면 척 보기엔 한달이나 겨우 살지말지 하던 어린것이 쉰 말젖과 겨가 섞인 귀밀죽을 먹으면서도 배탈 한번 만나지 않고 무럭무럭 컸다는것이다.

협보는 철이 들면서 눈썰미가 빠르고 손끝재간이 여물어 무엇이나 한번 척 보기만 하면 그대로 만들어냈다.

그의 이런 재간에 눈독을 들인 노예주놈은 아직 뼈도 채 여물지 못한 협보를 쇠부리터에 올려보내 풍구질을 시키게 하였다.

하루는 협보가 풍구질을 하던 여가시간에 청동거울을 만들고 남은 용해물로 자그마한 노리개를 만들어 늙은 노예의 자식에게 쥐여준 일이 있었다.

그런데 섬세한 세공을 거친 그 깜찍한 노리개를 가지고 놀던 아이가 그만에야 쇠부리터를 어정거리던 사팔뜨기감독놈의 눈에 걸려들게 되였다.

사팔눈을 희번뜩거리던 놈은 병아리가 독수리 덮치듯 아이의 손에서 노리개를 앗아내고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요 새앙쥐같은 놈, 이건 어드메서 훔쳤어?》

애처로운 아이의 비명소리에 깜짝 놀라 밖을 내다보던 협보가 쇠물을 받아들던 바가지를 그대로 틀어쥔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홰를 켜단듯 불이 황황 이는 눈빛으로 감독놈앞에 다가간 협보는 쇠물바가지를 그대로 놈의 면상에 들씌웠다.

《어쿠-》 채 식지 않은 쇠물을 고스란히 뒤집어쓴 감독놈은 그대로 나동그라지며 밟히운 털벌레모양 태를 쳐댔다.

이 일로 하여 협보는 죽도록 매를 맞고 쓰러졌다가 종내는 왕실말목장의 노예로 팔리워왔다.

《형님, 어째 아직 자지 않수? 아직도 그 나인생각이우?》

시물시물거리며 협보가 물었다. 오이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다가 나직이 한숨을 내쉬였다.

《주몽형을 받들자고는 하나 지혜도 용력도 부족하니 늘 근심뿐이로구나.》

자책에 잠긴듯 한 어조로 뇌이는 오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협보가 별안간 입을 열었다.

《형님, 거시기 전번에 해주던 그 옛말 계속 좀 들려주.》

《무슨 옛말?》

《아- 거 뭐더라? 수라대감을 했다는 말구종의 이야기 말이우다.》

협보는 자세를 고쳐잡으며 재우쳤다.

《음, 그 이야기 말이지?》

오이는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잠시 기억을 가다듬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란을 피해 쫓겨가던 왕의 일행이 마침내 다달은것은 천고의 험한 벼랑과 가시덩굴만이 무성한 바위투성이골짜기였다누나.

더는 갈 힘이 진해 그 자리에 행장을 풀어놓은 신하들은 조용히 한곳에 모여앉아 저들끼리 의논을 펼쳐놓았단다.

그 의논인즉은 인적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무인지경에서 임금의 수라상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하는것이였지. 다행히 수중에 얼마간의 량식은 남아있어 저들은 좀 배를 곯더라도 임금의 수라만은 그럭저럭 댈수 있어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전란을 피해왔기로 임금의 수라상에 육붙이가 없이 될말이냐고 의논이 모아져 결국 그 일을 수라대감에게 맡기기로 했단다.

가뜩이나 바위투성이인 척박한 골짜기에서 며칠째 사냥을 벌려놓자 가시덤불속에 숨어있던 몇마리 안되던 토끼며 꿩들마저 종적을 감추어버렸지.

임금의 수라상에 더는 고기점을 올려놓을수 없게 되자 겁이 덜컥 난 수라대감은 그밤으로 도망쳐버렸단다.

다음날 큰 소동이 일어났지. 도망친 수라대감대신 임금의 수라상을 총괄해야 할 사람을 뽑아야겠는데 슬슬 눈치만 보며 누가 나서는 사람이 있어야지. 바로 그때 아침 수라상에 궁실말먹이를 하는 말구종이 애기주먹만 한 고기 한점을 들고 나타났더란다.

대신들은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였지.

그때부터 말구종은 매끼마다 고기 한점씩 가져다 수라칸에 바치군 했단다.

이 기특한 소행이 마침내는 왕의 귀에 들어가게 되여 하루는 왕이 그 말구종을 자기앞으로 불렀더란다.

〈여봐라, 조석으로 네가 가져다바치는 그 육붙이의 이름은 무엇인고?〉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름모를 작은 메새로소이다.〉

〈음, 그리한고?… 너의 소행이 참으로 기특하여 과인은 후히 상을 주려하니 소원을 말해보라.〉

〈나라의 지엄한 국부이신 상감님께 미흡한 고기 한점 마련해올린것은 이 나라 백성된자의 응당한 도리거늘 어찌 감히 상을 바라겠나이까? 굳이 소원을 아뢰인다면 상감님께서 이번 환난을 무사히 넘기시여 귀한 옥체를 보존하시옵기를 바랄뿐이오이다.〉

머리를 조아리며 자기의 진정을 아뢰이는 말구종의 대답에 왕은 크게 감심하였단다.

〈참으로 그대의 소행이야말로 뭇신하들이 따라배워야 할 귀감이로다. 과인은 너를 종신수라대감으로 봉하노라.〉

〈황공무지로소이다.〉

이렇게 되여 한갖 말구종에 불과했던 심부름군이 일약 수라대감이라는 어마어마한 감투를 얻어쓰게 되였단다.

그러던 어느 하루 그 수라대감이 행적없이 사라져버리지 않았겠니? 수라상을 다 차릴 때까지도 말구종이 나타나지 않게 되자 그가 임금의 총애를 받는것을 배아파하던 대신들이 법석 떠들고 일어났단다.

왕은 수라대감이 달아났다는 대신들의 말에 너무도 괘씸하여 군사들을 시켜 이른아침 그가 올랐다는 산판을 샅샅이 뒤지게 했단다.

하지만 가시덤불이 뒤엉킨 가파로운 산판을 훑으며 사람을 찾는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단다.

신하들은 생각끝에 산에다 불을 지르기로 했지.

때는 초봄이라 바싹 마를대로 마른 가시덤불은 순식간에 재가 되여버렸단다. 불길이 꺼진 다음 어느 한 덤불밑에서 시체가 되여버린 말구종의 형체가 나타났단다.》

《그럼 정말 도망쳤단 말이유?》

마른침을 삼키며 이야기를 듣던 협보가 더 참아내지 못하고 따져물었다.

《말구종을 찾았다는 신하들의 보고를 받고 왕은 그가 누워있는 곳으로 올라갔단다. 그런데 글쎄 죽은 수라대감의 다리허벅지살이 뼈가 드러나도록 뭉청 베여져있는게 아니겠니.

그는 불에 타죽은것이 아니라 그전에 이미 숨져있었더란다.

아직도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그의 얼굴은 명상에 잠긴듯 했고 한손에는 자그마한 칼이, 다른 손에는 애기주먹만 한 고기점이 쥐여져있었단다.…

그때에야 비로소 왕은 전후의 모든 사연을 깨달았지.

그리고는 말구종에 대한 사소한 의심이나마 가졌던 자신을 못내 후회하였더란다. 란시가 평정되고 다시 왕궁으로 돌아간 왕은 그후 말구종의 사당을 크게 짓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단다.…》

오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협보는 물기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한동안 고콜심지를 바라보다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 말구종도 무던하우. 그러니 충의로운 신하란 바로 그런 이를 두고 하는 소리일라…》

오이는 속생각에 잠겨 저도 모르게 도리머리를 지었다.

아니, 물론 말구종의 소행은 본받아야 할것이지만 어딘가 미흡스럽게 느껴졌다.

충의로운 신하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주몽의 웅지를 받들어 새 나라를 세우자면 신하된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이는 협보의 눈빛에서 마치 그 대답을 찾아내기라도 할듯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협보마저 잠이 들자 오이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서인지 이밤엔 그리 쉽게 잠들것 같지 못했다. 협보의 말대로 낮에 구원해주었던 녀인의 그 아릿다운 얼굴이 떠올라서인가?

우등불가에서 깊은 생각에 잠겼던 주몽의 모습을 본때문인가?

씨륵-씨륵 풀벌레 우는 소리가 돌돌돌 흐르는 졸본천의 물소리와 어우러지며 달밤의 정취를 한껏 돋구어주고있었다. 구름속에서 방금 빠져나온 둥근달이 산채주위를 환히 비치고있었다.

오이는 산채에서 초간히 떨어진 한그루 로송밑에 서있는 시커먼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주몽이였다.

무슨 깊은 상념에 잠겼는지 오이가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듯 하염없는 눈길로 구름속을 헤염치는 둥근달을 바라보고있었다.

금방 엷은 그늘속에서 빠져나온듯싶었던 둥근달을 향해 우중충한 검은구름이 또다시 심술궂게 덮쳐들었다. 깊은 미궁속에 빠진듯 한순간 빛을 잃었던 달은 차츰 검은 연막을 한겹두겹 벗겨내며 령롱한 자기의 자태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주몽-》 오이가 불렀다.

《아, 오인가?》 주몽이 입가에 반가운 미소를 띄웠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하오이까?》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지누만.

단군겨레의 새 나라를 크게 일떠세우리라 웅지는 크게 세웠건만 나래를 펼 대공이 없는것이 한스럽구려.…》

《혹시 과루성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소이까?》

주몽은 조용한 어조로 낮에 겪은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신분을 감추고 종곡을 구할겸 장터와 점포들을 돌아보며 과루성의 동향을 알아보던 주몽은 성안에 나도는 흉흉한 소문에 아연해졌다.

그것은 졸본천기슭에 새로 자리잡은 자기들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부여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음모가 드러나 도망친자들이라느니, 머지않아 부여의 금와왕이 그들을 숨겨준 죄를 구려왕실에 따지기 위해 숱한 군사들을 끌고 구려로 쳐들어올것이라느니, 그들이 지금 과루부땅을 뺏어내기 위해 산채를 꾸리고 젊은것들을 모아 무술조련을 주고있는데 인차 말갈족과 합세하여 과루성으로 쳐들어올 생각을 하고있다는 등의 요언이였다.

엎친데덮친다고 적지 않은 과루부의 귀족들이 그 요언을 진짜로 믿고 수일내로 주몽의 일행을 몰아내기 위한 군사를 출동시키는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제가평의회(중요군사, 정치문제를 토의하는 귀족회의)를 열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심각한 낯색으로 주몽의 이야기를 듣는 오이의 머리속에는 번개치듯한 생각이 떠올랐다.

(분명 부여왕의 작간일것이다. 교활한 놈…)

얼마전 무술을 련마하던 젊은이들이 산채곁에서 어물거리던 부여의 간자 한놈을 붙잡은적이 있었다. 놈은 대소왕자의 명을 받고 주몽과 그 일행의 거처지를 내탐하기 위해 엄호수를 몰래 건너온자였다.

오이는 그자의 토설을 받아내자 즉시 그놈을 처치해버렸다.

간자들이 살아돌아오지 못하자 부여왕은 계책을 바꾸어 구려귀족들의 손을 빌어 주몽이네를 없애버리려고 음흉한 수를 꾸미는것이 분명하였다.

오이는 해이되고 무경각한 자신을 끝없이 타매했다.

내 무슨 실수를 하였단 말인가?

원쑤는 순간도 우리를 해칠 흉심을 버리지 않고있는데 우린 부여땅을 벗어나 졸본천에 산채나 하나 꾸려놓았다고 마음을 풀어놓고있다니…

생각할수록 자책되는바가 컸다.

처음 주몽이네가 길을 떠날 때 목적지로 정한 곳은 단군겨레가 한결같이 숭상하여마지않는 조종의 산 태백산기슭이였다.

단군의 발자취가 깃들어있고 민족의 넋과 신앙심이 깃들어있는 그곳.

동서 5천리, 남북 5천리(당시 고조선의 지경. 세나라시기 고구려의 령토개척으로 그것은 더욱 넓어졌다.) 겨레의 강토 한가운데 우뚝 솟아 줄기줄기 뻗어내려 배달겨레모두를 한품에 안은 민족의 성지.

남으로 조선반도의 높고낮은 산줄기들을 거느려 태백대산줄기를 이루고 북쪽으로 흑산을 아래에 두고 녕고탑지방의 여러 산들의 뿌리가 되여 흑수(흑룡강)에 이르렀으며 서쪽으로 오랄과 료동지방의 여러 산들의 조종이 되였으니 정녕 태백산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조종의 산임이 분명하다.

태백산 한가운데 물이 하도 맑아 천수라 부르는 신비한 물이 가득차있는 커다란 못이 있다고 한다. 그 언젠가 단군이 올라 떠오르는 장쾌한 아침해를 부감하며 천수를 떠마시고 맑은 아침의 나라 조선을 동방일각의 빛나는 등불로 만들 굳은 결심을 다졌다고 하는 오, 태백산, 태백산…

바로 그 태백산마루에 기치를 꽂고 봉화를 지피고 천아성을 울려 겨레의 의기남아들을 불러일으켜 흩어진 겨레의 지경을 통합하고 수백년간 백성들의 아픔으로 되여온 동족상쟁을 끝장내자는것이 주몽의 웅지였고 뜻이였다. 아니, 그것은 한피줄을 이은 우리 단군겨레모두의 소원이였고 념원이였으니 인류려명기에 벌써 첫 고대국가를 세워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꽃펴온 우리 민족이 그토록 갈망해온 하나된 강대국에 대한 꿈이였다. 바로 이런 주몽의 웅지에 반한 그들이였기에 서슴없이 사지동고를 맹약하고 부여땅을 탈출하여 태백산을 향한 남행길에 올랐던것이다.

그런데 그 남행길에서 오이를 비롯한 여러 군사들이 그만 쓰러졌다.

축급병(영양부족과 심한 추위에서 오는 병. 쫄라병)에 걸렸던것이다.

온몸에 열이 오르면서 팔다리가 가드라들고 몸이 노그라졌다.

《주몽, 우리들의 걱정은 말고 어서 태백산으로 가주.》

신열로 하여 충혈진 두눈에 애원을 가득 담고 오이가 간절히 청하였으나 주몽은 그의 이불깃을 꼭꼭 여며주며 말했다.

《친구들을 다 버리고 나 혼자 태백산으로 올라 무엇하겠나? 그런 걱정일랑 말고 직심스레 약을 들라구.》

주몽은 오이의 병구완을 위해 행군을 멈추고 림시 초막을 짓도록 하였다.

그런데 병회복이 예상외로 길어지게 되여 바야흐로 겨울을 눈앞에 두게 되였다. 일찍 강설이 내려 눈이 허리를 친다는 태백의 험지를 아무런 준비도 없이 떠날수도 없고 엄동설한 빙설천야에 한지로숙도 가당치 않은 일이라 후날을 기약하고 눌러앉은 곳이 바로 이 졸본천기슭이였다.

모름지기 그때 자기가 아니였더라면 일행은 부여를 멀리 벗어나 량맥지경인 태백산기슭에 이미 든든히 자리를 잡았을것이고 또한 부여의 대소가 그토록 손쉽게 주몽의 행적을 수탐해내지도 못했을것이다.

오이가 이런 자책에 잠겨있는데 주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생은 사냥때 있은 일을 어떻게 생각하오?

말갈놈들이 정녕 연타발의 딸 소서노를 노리고있다면…》

오이는 의미심장한 어조로 묻는 주몽의 뜻을 제꺽 깨달았다.

《그건 틀림없소이다.

재물에 환장이 된 놈들인지라 반드시 소서노를 해하려 할것이오이다. 하다면 바로 그때 우리가 출전하여…》

주몽이 저으기 흥분하여 입을 열었다.

《옳소! 내 결심도 바로 그러하오.

비록 그 녀인이 우리를 곱지 않게 보는 이 고장 대인의 딸이라 해도 어디까지나 한겨레이거늘 남아장부로 어찌 외면한단 말이요.》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들은 큰것을 얻게 된다.

오이가 보건대도 소서노야말로 그들이 나래를 펼수 있는 대공이 분명하다.

이 고장의 유력자인 소서노의 뒤받침을 받는다면 모든 일이 얼음판에 박밀듯 풀려나갈것이다.

그는 순간 벅차오르는 흥분을 걷잡지 못하였다.

《주몽형, 속히 사람을 보내 소서노의 일거일동을 감시하게 하겠소이다. 그리고 말갈부락에도…》

《과시 오이 자네는…》

《하하하!》

크나큰 웅지를 품은 두사람의 호협한 웃음소리가 밤의 정적을 깨치며 오래도록 산발을 흔들었다.

그에 뒤질세라 산채안에서는 기둥뿌리 뽑아낼듯 마리와 협보의 요란한 코고는 소리가 드르렁드르렁 울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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