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1


새벽이 가까와올무렵 강기슭은 부산스러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사납게 불어오른 들물이 소용돌이치며 강기슭에 뿌리를 박고 서있는 물버드나무의 여린 아지를 사납게 쥐여뜯고 밤새 내린 찬비에 푹 젖은 메새들이 나래를 푸득이며 물기를 털어버리느라 요리조리 나무가지사이로 옮겨앉는다. 삭정이 밟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더니 숲속의 사슴떼가 물웅뎅이들을 조심스레 에돌며 기슭으로 모여들고있었다.

졸본천기슭은 원래 물이 맑고 강에는 산천어를 비롯한 물고기가 많아서 그런지 산속의 새들과 짐승들이 많이 모여드는 좋은 사냥터로 일러오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새벽의 정적을 채 털어버리지도 못했는데 강기슭을 따라 흰 댕기오리처럼 뻗어간 오솔길우에 벌써부터 말발굽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머리에 흰두건을 두르고 수수한 베옷차림의 젊은 기수가 단궁(고조선의 활)을 한손에 들고 오솔길에 불쑥 자태를 드러내보인다.

주몽의 부하 오이였다.

척 보기에 스무살쯤 나보이는 그는 키가 크고 몸매가 균형잡힌 단단한 젊은이였다. 준수하고 혈기왕성해보이는 오이의 갸름한 얼굴에는 첫눈에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게 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영채가 도는 두눈이였는데 진중하면서도 온후한 미소를 담고있어 유연하면서도 너그럽고 강의한 그의 성격이 느껴졌다.

차림새는 비록 허줄해보이나 허리춤에 꽂아넣은 손때가 반들거리는 장검이며 화살이 수북이 꽂힌 전통을 걸멘 그의 름름한 체구에서는 록록치 않은 무사의 체취가 강하게 풍겨나왔다.

그는 오늘 협보와 졸본천기슭으로 사냥을 나온 길이였다.

협보는 강웃쪽으로부터 기슭을 따라 내려오고 그는 강아래쪽에서부터 거슬러올라오며 숲을 훑고있었다.

사냥은 당시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예를 닦기 위한 일종의 수련이였으며 생업을 이어가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여우나 검은돈과 같은 희귀한 짐승가죽들, 곰열, 록용을 비롯한 약재들은 화페의 류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당시의 환경에서 화페와 같은 매개물로 거래되였다.

부여를 탈출하여 졸본천기슭에 산채를 정한 후 주몽의 일행은 사냥을 통하여 소금이며 식량, 의복과 필요한 병장기들을 구해들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부여에서 함께 따라온 십여명의 젊은이들의 뒤를 댄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다.

어제밤 주몽은 의형제들인 오이, 마리, 협보를 불러 자리를 같이하고 소중히 간수해오던 종곡꾸레미를 풀었다.

《다들 이 꾸레미에 깃든 사연을 잘 알테니 긴 이야기를 그만두세.

어머님께서 이 오곡종자를 넣어주신것은 오늘의 일을 미리 내다보신것이 아닌가 생각되누만.…》

도글도글 잘 영근 이삭들이 광솔불에 비쳐져 반짝거린다.

부여를 탈출하기 전날 밤 하직인사를 드리러 온 주몽과 그들 의형제의 손에 들려주던 사연깊은 종곡주머니…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는 오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그 결심이 옳다고 보오! 환웅천왕께서 강림하시여 이 땅의 360여가지의 일을 주관할 때 가장 중시하였던 일도 바로 농사이거늘 농사야말로 천하지대본이 아니겠소.》

오이의 말에 생각에 잠겼던 협보가 입을 열었다.

《형님들의 말은 백번 지당하오. 그러나 종곡도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가진것이라군 병장기뿐이니 무엇으로 밭을 일구겠소이까?》

주몽이 고개를 끄떡이였다.

《그럼 래일 나와 마리는 함께 과루성으로 나가보자구, 종곡값도 알아볼겸. 오이동생은 협보와 나머지 사람들을 데리고 농쟁기를 바꿔올수 있는 산짐승사냥을 해주게.》

《제 소견엔 사람들은 주몽형이 데리고 가는게 좋을것 같소. 우리에겐 아직 이 구려땅이 생소한 곳이라 언제 어느곳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어찌 알겠소이까?》

오이가 진중한 어조로 의견을 내놓았다.

협보가 제꺽 말을 받았다.

《난 오이형님의 의견에 찬성이오다. 그까짓 꿩이나 사슴 몇마리 잡는것때문에 숱한 사람이 와와 밀려다닌다는것자체가 우습소이다. 더우기 주몽형이 우리 사냥솜씨를 못미더워하는게 어쩐지 섭섭하웨다.》

투정기가 다분히 서린 그의 불만에 오이와 주몽은 그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오이는 물론 협보까지 이렇게 완강하게 나오자 주몽은 하는수없이 그들의 의견을 쫓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주몽과 마리는 여러명의 젊은이들과 함께 구려의 과루성을 향해 떠나고 오이와 협보는 졸본천기슭으로 사냥을 나왔다.

벌써 오이의 말안장옆에 매단 끈에는 여러 마리의 꿩이 데룽거리고있었다.

《꺼-꿩!》 인적기에 놀랜 장끼 한마리가 제 죽을줄 모르고 푸드득 날아오른다. 오이는 재빨리 활을 겨누었다.

팽팽하게 늘어났던 시위줄이 피잉! 하고 울자 숲속을 채 벗어나지 못한 꿩이 돌덩이처럼 뚤렁 떨어져내렸다.

오이의 입가에 부지중 미소가 비껴흘렀다. 숲속에서 서로 갈라질 때 승벽심이 여간 아닌 협보가 하던 말이 떠올라서였다.

《형님, 사냥도 시합과 다를바 없는데 맹숭맹숭한 맛에야 어찌 할 재미가 있겠소? 우리 내기를 하기요!》

《무슨 내기?!》

오이는 엉뚱한 수를 곧잘 생각해내는 협보에게 걸려들어 또 무슨 골탕을 먹지나 않을가 하여 웃음을 떠올리며 물었다.

《음… 짐승을 적게 잡은쪽이 많이 잡아준쪽을 업고 이 졸본천을 건네주잔 말이요. 그러되 이긴쪽은 이렇게 진쪽의 두귀를 잡고 진쪽은 한발로 닁큼닁큼 뛰여야 하우다.》

협보는 자기의 두귀쪽을 량쪽으로 한껏 벌려잡고 한다리로 껑충껑충 징검다리를 건네뛰는 흉내를 내였다. 그 모양이 어찌나 우습강스러웠던지 오이는 그만 허리를 잡고 웃었다.

《어떻소?》

《그러다 네 두귀가 노새귀처럼 늘어나면 보기 흉칙해서 어찌 봐준다?》

《되우 걱정하네. 누구 귀가 노새귀가 되는지야 두고봐야지요. 그래 하겠소, 안하겠소?》

과루성으로 떠나간 주몽의 신상을 걱정하며 마음을 못 놓는 그의 마음을 눙쳐주느라 우정 시부렁거리는 협보의 기특한 생각에 오이는 진정 가슴이 뭉클해났다.

《그래, 그래! 네 말대로 하자꾸나!》

넷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협보는 여간 눈치빠르고 영민하지 않았다.

더우기 말을 타고 달리며 갖가지 재주를 귀신같이 부리는 그의 기마술은 실로 놀랄만 한것이였다.

그는 사냥을 다닐 때도 화살 한대 쓰지 않고 곧잘 짐승을 잡았다. 등자에 발을 든든히 붙이고 손이 땅에 닿도록 허리를 깊숙이 숙인 다음 깡충깡충 달아나는 산토끼의 한쪽귀쪽을 슬쩍 붙들어 올리는가 하면 껑충껑충 뛰여오르는 노루나 사슴의 뒤다리를 힘껏 거머쥐고 힘껏 내동댕이치기도 하였다.

후날 고구려사람들은 이런 몸단련을 《마상재》(말우에서 피우는 재주) 라고 부르며 나라적인 무술시합은 물론 경당의 필수과목으로, 민간 명절놀이에 없어서는 안될 종목으로 적극 장려하였다.

시간이 어지간히 흘러 돌돌돌 구슬같은 물이 흘러내리는 졸본천에 이른 오이는 말에서 내려 고삐를 풀어놓아주었다.

한바탕 숲을 달린 말을 그냥 내쳐두고 숲속으로 들어섰다.

딱, 어디선가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이는 아름드리나무옆에 몸을 바싹 붙였다. 와삭와삭, 떨기나무숲을 헤치며 중송아지만 한 메돼지가 물마시러 내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마침이군!)

오이는 메돼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슬슬 뒤를 따랐다.

맞춤한 곳이 나지자 그는 제꺽 단궁에 대우전(깃을 크게 단 화살)을 먹이였다. 그리고는 숨을 딱 멈추고 침착하게 메돼지의 멱통을 겨누어 슬며시 깍지손을 뗐다.

《꽥-》

숲이 떠나갈듯 한 무시무시한 울부짖음소리가 울렸다.

다음순간 방향을 휙 꺾은 메돼지가 덤불이며 떨기나무들을 마구 부러뜨리며 골짜기아래로 내뺐다.

(빗맞았는가? 랑패로군.…)

오이는 아쉬운 기색을 지으면서도 혹시나 하여 메돼지를 쏘아맞혔던 자리로 어정어정 걸어갔다. 피자욱이 눈에 띄였다.

대우전이 보이지 않는것으로 보아 명중한것이 틀림없었다.

오이는 메돼지가 도망쳐간 흔적을 따라 숲을 헤쳐나갔다.

원체 미욱한 짐승인 메돼지는 무엇에 놀라거나 쫓기우게 되면 반드시 곧추 길을 잡아 내빼는 성질을 가지고있다.

과연 한참 숲을 헤쳐 나가보니 아름드리나무밑에 거밋한 형체가 얼씬 눈에 띄였다. 메돼지는 뿌죽이 솟은 길다란 어금이를 나무밑둥에 그대로 들이박은채 죽어버렸다.

멱통에는 대우전이 한자 실히 되게 깊숙이 꽂혀있었다.

힘이 장사인 오이였지만 중송아지만 한 메돼지인지라 여간 무겁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은 가볍고 절로 웃음집이 흔들거렸다.

량쪽귀를 틀어잡힌 거쿨진 체구의 협보가 한발로 껑충껑충 졸본천기슭을 뛰여다닐 모습이 선히 떠올랐던것이다.

즐거운 생각에 잠겨 메돼지를 메고 한참 숲을 헤쳐가던 오이는 문득 길을 잘못 들었음을 깨달았다. 무거운 중압에 눌리워 발끝만 내려다보며 걷다보니 방향을 삭갈린것이 분명하다.

지금쯤이면 졸본천의 물소리가 들려야 할텐데…

다시금 방향을 가늠하느라 두리번거리는데 바람결을 타고 가냘픈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오이는 우뚝 멈춰섰다. 이상한 비명소리는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이상한걸, 내가 혹시 짐승의 울음소리를 헛들었는가?)

깊은 산중에서 사는 늙은 여우들은 여러가지 사람소리를 곧잘 흉내내군 한다. 숨넘어가는듯 한 갓난아이의 울음소리라든가, 설음을 호소하는 녀인의 구슬픈 울음소리, 구원을 청하는듯 한 가냘픈 신음소리…

처음 숲속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이런 홀림에 넘어가 한걸음, 두걸음 오솔길에서 벗어나게 된다.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면서 크게 혹은 작게 울려오는 그 이상한 소리는 귀신의 조화속마냥 사람들을 유혹하여 깊고깊은 산중으로 이끌어간다.

그러다 종당에는 벼랑에서 굴러떨어지거나 기운이 진해 쓰러지고만다.

늙고 병들어 더는 제힘으로 사냥할 능력을 잃은 여우들은 대체로 이런 교활한 방법으로 자기들의 검질긴 잔명을 연명하려 발악하는것이다.

한참동안이나 선자리에서 귀를 기울이던 오이가 발걸음을 떼려 할 때에 공포에 질린 가냘픈 비명소리가 다시금 똑똑히 들려왔다.

《살려주사이다!》

그것은 분명 섬약한 녀인의 애처로운 비명소리였다.

바싹 긴장해진 오이는 메돼지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조심조심 숲을 헤쳐나갔다.

인츰 자그마한 공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순간 뜻밖의 광경에 아연해진 오이는 그 자리에 장승처럼 굳어지고말았다. 털부숭이 괴한 넷이 짐승묶듯 동아줄로 칭칭 비끄러맨 녀인 하나를 풀숲에 눕혀놓고 징그러운 웃음을 너털거린다.

그중 두놈은 말을 타고 히히덕거리고있었다.

신음소리는 바로 그 녀인의 입에서 흘러나오고있었다.

가슴에 시커먼 털이 부르르한 웃몸을 홀랑 드러내놓고 거친 털가죽으로 아래도리만을 대충 가려놓은 놈들은 얼핏 보기에도 사람인지 짐승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말갈놈들이로구나!)

원래 말갈은 고대읍루족의 후손들로서 일명 숙신이라고도 부른다.

인류문명에서 멀리 뒤떨어진 그들은 처음 흑수(흑룡강)지역의 광막한 땅에서 사냥과 채집 등으로 살아가면서 거의 원시공동체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었다.

단군성왕이 평양에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이 그 령토를 점차 태백산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의 넓은 판도로 확장해나가기 시작하자 비로소 문명의 혜택을 입은 말갈족의 조상들은 마른땅에 물침식해들듯 고조선땅으로 서서히 침식해들어오기 시작했다.

거의 원시적이라할만치 미개한 생활밖에 모르고있던 그들에게 있어서 농사와 누에치기, 제철기술 등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것이 아닐수 없었다.

허나 그들은 문명을 받아들인것이 아니라 략탈해갔다.

늘 산발을 타고다니며 엄혹한 자연환경에 숙달된 그들의 성격은 하나같이 조폭하고 사납기 그지없어 쩍하면 무리를 지어 방비가 허술한 고을이나 촌락들을 습격하여 재물을 강탈하고 사람들을 죽이군 하였는데 그 피해가 이만저만 크지 않았다. 어떤 때는 대낮에도 달려들어 고을창고를 털어가고 명문가의 부녀자들까지 붙잡아다 엄청나게 많은 곡물과 비단, 철기들을 요구하기도 하였다. 이미 붕괴기에 이른 노예소유자국가들은 도적개 헌바자 지르듯 날뛰는 이 날도적무리에 강력히 대응하지 못하고 늘 골머리를 앓고있었다.

오이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가볍게 땅을 차며 몸을 홱 솟구쳐 아스라한 소나무의 굵은 가지우에 재빨리 몸을 실었다. 나무우에선 아래의 광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녀인의 곁에서 어물거리던 두놈이 묶어놓았던 동아줄을 풀어놓았다.

《망할 자식들, 소서노 그년을 홀쳐오라고 했지 누가 저따위 시비년을 끌어오랬어?》

말우에 앉은 텁석부리가 미간을 쪼프리고 두눈을 가로 흡뜨며 마뜩지않아 투덜거렸다.

《헤헤, 두령님도 참! 녀자라면 절구통에 치마둘러놓은것만 봐도 침을 흘리는 우리 추장님이시온데 아무렴…》

옆에서 코수염을 쫑긋거리던 주독코가 걸탐스러운 눈길로 녀인의 우아래를 훑어보며 종알거렸다.

《아, 그러문요! 아직 젖비린내가 풍기긴 하지만 요건 또 요것대루 다 제맛이 있지요.》

《두령님이 싫다면 우리가… 헤헤.》

동아줄을 풀어놓은 두놈이 짐승같은 욕구를 정 참지 못하겠는지 두령놈의 눈치를 보며 지신지신 허리춤의 끈을 더듬어잡는다.

《이 자식, 추장님이 뭐 계집맛이나 보자고 소서노년을 끌어오라는줄 알아? 장차 이 과루부를 한손에 거머쥐자면 이곳의 가장 큰 세력가인 연타발의 딸 소서노부터 틀어쥐여야 한단 말이야!》

두령의 호통에 주독코가 헤식은 웃음을 흘렸다.

《헤헤, 그 도고하기로 소문난 년이 호락호락 굽어들것 같소이까?》

《계집이란 다 같고같아. 하루밤만 같이 누워 뒹굴어보지. 깨물면 이 부러질 차돌같다가도 단박에 삶은 호박처럼 흐물흐물해지지 않나? 그년만 휘여잡고나면 과루부땅을 타고앉는건 누운 소 타기나 마찬가질세.》

《과시 지당한 말씀이웨다.

남이 닦은 터에 주추돌 놓으면 대들보차지는 맡아놓은셈이라 아, 이 일만 성사되면 추장님이 어찌 두령님을 모른다 하겠소이까.

헤헤, 하오면 이년은 형님이 먼저 맛보시고… 야, 이 자식들아! 무얼 꾸물거려. 제꺽 벗겨내지 못하고…》

주독코의 독촉에 텁석부리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가만가만, 너무 덤비지들 말아. 그러다 그 아까운 명주옷이 찢어질라.》

옷이란 거친 털가죽 이긴것밖에 모르는 미개한 족속들인지라 비단으로 만든 명주옷 한벌이면 저희들끼리 말 두세필값은 족히 치르고도 남을 정도여서 놈들은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가림없이 속옷까지 홀랑 벗겨가는 좀스런짓도 서슴지 않았다. 녀인앞에 다가선 두놈이 흉물스러운 웃음을 짓고 시커먼 털이 부숭부숭한 성성이손을 갈퀴처럼 내뻗치며 한걸음한걸음 다가섰다.

한껏 공포에 질린 녀인은 《악-》 소리를 치고 그만에야 정신을 잃고말았다. 바로 그 순간을 노려 나무에서 훌쩍 날아내린 오이는 두발로 다가들던 두놈의 턱주가리를 호되게 걷어찼다.

《으악-》

숨넘어가는 비명과 함께 한길이나 껑충 뛰여오른 두놈은 풀숲에 그대로 나동그라졌다.

《웬놈이냐?》

미구하여 보게 될 쾌감으로 하여 기분좋게 코를 벌름거리던 텁석부리의 얼굴이 사납게 이지러졌다. 곁에 있던 주독코가 날쌔게 칼을 뽑아들고 말의 배허벅에 박차를 가했다.

순간 다시금 땅을 박차며 날아오른 오이는 굵은 나무가지를 두손으로 붙잡고 주독코가 미처 손써볼새없이 모두발로 그놈의 가슴팍을 힘껏 차넘겼다.

《으악-》

동가슴에 강한 타격을 받고 풀덤불에 그대로 코를 박은 주독코가 아이구데이구 죽어가는 소리를 치며 아부재기를 쳐댄다.

놈의 말우엔 어느새 오이가 올라타있었다.

일순 텁석부리의 얼굴엔 당황한 빛이 어렸다. 주춤거리던 놈은 짐승비명과도 같은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량손에 쌍검을 비껴들고 돌진해들어왔다.

《이얏-》

텁석부리의 손에 들린 쌍검이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눈부신 해빛을 발산했다. 한순간 오이의 몸이 두동강나는가싶더니 이번에도 역시 텁석부리가 보기 좋게 나동그라졌다.

오이는 말에서 뛰여내려 텁석부리에게로 다가갔다. 버드럭거리며 금시 죽어가는것 같던 텁석부리가 바로 이 순간을 노려 벌떡 몸을 솟구며 검을 내질렀다. 오이는 재빨리 몸을 비틀며 손칼타격으로 텁석부리의 한쪽손을 드세게 타격하였다.

《뎅그랑-》

놈은 그만 왼쪽손에서 칼을 놓쳐버렸다. 여유작작한 동작으로 그 칼을 집어든 오이는 거친 숨을 씩씩 다몰아쉬는 텁석부리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놈이 정 칼에 피를 묻히고싶단 말이지.》

텁석부리의 얼굴에 흉물스러운 웃음발이 피여올랐다.

놈의 눈길이 어느새 오이의 등뒤로 살금살금 다가드는 주독코와 두놈의 부하들을 얼핏 띄여보았던것이다.

《이얏-》

텁석부리가 무작정 칼을 휘둘렀다. 휘익-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방금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있던 오이가 문득 사라져버렸다.

《엉?!》

아연해졌던 텁석부리는 갑자기 아래도리가 시원해짐을 느끼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아래도리를 가리느라 둘러친 가죽옷을 묶은 삼베끈이 뭉청 잘리워 보기에도 흉칙스러운 꼴불견이 돼버렸다. 숫밤송이처럼 시커먼것이 홀랑 드러나자 텁석부리는 얼결에 칼을 놓아버리고 바지괴춤을 움켜잡았다.

《하하하!》

호호탕탕한 웃음소리는 주독코와 두놈의 부하들이 서있는 바로 뒤전에서 울려왔다. 텁석부리의 얼굴이 험상궂게 이지러졌다.

《저놈을 죽여라!》

두령놈의 악청에 몸을 뒤로 돌린 주독코와 다른 두놈이 기세를 올리며 오이를 향해 창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챙강, 챙강 칼날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골짜기를 울렸다.

칼소리는 이내 멎었다. 몇합 겨루지도 못하고 승패가 결정되고만것이다.

주독코와 다른 두놈 역시 텁석부리의 꼴이 되여 흘러내리는 바지괴춤을 부여잡고 울상이 되여 서로 마주보며 서있었다. 공포에 질린 놈들은 괴춤에 모두어붙인 손들을 풀지 못한채 걸음아 날 살려라 뺑소니쳤다.

《하하하, 이젠 그 아래도리건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았지? 하하.》

오이의 통쾌한 웃음소리가 골과 골을 깨치며 울려퍼졌다. 그는 칼들을 거두고나서 인사불성이 된채 누워있는 녀인을 조심조심 흔들었다.

녀인이 쉽게 깨여나지 못하자 오이는 빼앗은 말의 안장옆에 데룽거리는 박통을 떼여가지고 샘을 찾아 골짜기아래로 내려갔다.

맑고 시원한 샘물을 녀인의 입에 조금 부어주자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정신이 좀 드시오이까?》

오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놈들은 이미 도망쳐버렸소이다.》

그 말에 녀인은 생기를 되찾은듯 조용히 물었다.

《저, 거기는 뉘시온지?…》

《지나가던 사람이올시다. 헌데 어쩌다 그런 변을…》

녀인은 문득 인사불성이 된 자기 옷주제를 살피다가 저도 모르게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며 앞가슴에 두손을 모두어잡았다.

그의 헤쳐진 옷섶사이로 박속같이 흰 봉긋한 가슴이 들여다보였다.

오이는 마치 못 볼것을 본것 같아 얼굴이 황황 달아오르며 저도 모르게 눈길을 돌려버렸다. 그리고는 말을 끌어왔다.

《저 말을 탈줄 아시오이까?》

다급히 몸을 수습한 녀인은 잠시 주저하는듯 하다가 살래살래 머리를 저었다.

《그럼 저…》

오이는 말을 갑자르다가 하는수없이 떡판같은 제 뒤잔등을 그에게 돌려댔다.

《그러지 마시와요! 제가 어찌…》

부끄러움에 활딱 달아오른 그는 그만 두서너걸음 주춤 물러선다.

《하오면 랑자는 쫓겨간 말갈놈들이 되돌아올 때까지 이 산속에서 홀로 기다리시려우?》

웃음절반, 롱절반 담긴 오이의 물음에 녀인은 방금전처럼 앞가슴에 두손을 모두어잡으며 저도 모르게 그의 곁에 다가섰다.

오이는 끙- 하니 녀인을 둘쳐업고 일어섰다.

함치르르 윤기도는 검고 실한 머리카락들이 오이의 동가슴을 간지럽히며 흘러내렸다. 손끝에서 느껴지는 부드러운 촉감과 향긋하게 풍겨오는 녀인의 체취에 오이는 저도 모르게 짜릿한 충동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랑자는 어데 사는 뉘시오?》

《…》

고개를 외로 튼 녀인은 부끄러움때문인지 좀체로 말이 없다.

한동안 지나서 가느다란 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살려주어 고맙소이다.》

오이는 싱긋 웃으며 녀인을 추스르고나서 씨엉씨엉 걸음을 놓는다.

인츰 졸본천이 나졌다. 협보가 반색을 하며 마주 달려왔다.

《챠, 이 형님 잡아오라는 짐승은 안 잡고 선녀같은 아씨를 업고계시니 어인 일이오이까?》

오이의 눈앞에 한무데기는 실히 될 사냥한 짐승무리가 안겨왔다.

협보가 씨물씨물 웃는데 아랑곳없이 오이는 업고있던 녀인을 조심히 내려놓았다. 부끄러움으로 하여 딸기빛이 된 녀인은 등에서 내려서자 몸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오이와 협보는 급히 녀인을 부축하여 평퍼짐한 바위우에 앉혔다.

협보는 그냥 벙글거리며 걱정의 빛이 완연한 오이의 소매를 잡아 이끌어 초간히 떨어진 풀숲으로 데려갔다.

《형님, 사유를 좀 말씀해주소이다. 어디서 저런 미인을 업어왔소?》

《쉿- 조용해라! 사실인즉 말갈놈들에게 란을 당할번 한걸 내가…》

《하하! 그런걸 난 형님이 사냥대상을 헛갈려 려염집 랑자를 슬쩍 했는가 했소이다. 벌써 마련을 보셨소?》

《자식!》

오이는 계속 능글능글 이죽거리는 협보의 쩍 벌어진 동가슴에 주먹을 콱 놓았다.

《이크, 형님이 되게 바빴소이다. 하하하.》

협보의 호협한 웃음소리가 숲을 흔들었다.

《싱검둥이같은 녀석!》

오이는 제풀에 퍽 웃음을 흘리며 돌아섰다.

뒤돌아 너럭바위쪽으로 걸어가던 그는 어마지두 놀라며 말뚝처럼 박혀버렸다. 껄껄거리며 뒤따라서던 협보도 《아니?》 하는 놀란 소리를 지르며 두눈을 흡떴다.

너럭바위우에 앉아있던 녀인이 온데간데 종적없이 사라져버린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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