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7 회)


제 4 장

12


귀뚜라미가 처량하게 우는 저녁이였다.

심국종은 통닭구이로 배를 실컷 불리고나자 주섬주섬 옷을 차려입기 시작했다.

밖에서 귀밀을 잔뜩 먹은 황부루가 투레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좋아, 아주 좋아.》

심국종이 황부루를 타고 아사나루를 향해 달려가는 제모습을 그려보며 기분좋게 방문으로 다가가는데 기다렸다는듯 방문이 벌컥 열렸다.

벙어리녀인인가 하여 무심히 바라보던 심국종은 너무 놀라 하마트면 엉덩방아를 찧을번 했다.

《누… 누구요?…》

잔뜩 겁에 질린 심국종은 엄한 기상을 풍기며 방에 들어서는 병마부사 리순일에게 위압당하여 턱을 떨었다.

리순일을 따라 두명의 군사를 뒤에 달고 들어서는 사람이 김충지임을 알아보았을 때 심국종의 쥐상판은 회가루를 바른듯 하얗게 질렸다.

《허― 범본 똥개처럼 놀라긴?》

리순일은 심국종을 노려보며 말했다.

《우리 통성을 할가. 난 북계병마부사란 사람일세. 빙빙 에돌것 없이 직판 말하겠네. 약은 참새 밤눈이 어둡다고 자넨 꼬리가 달린줄도 모르고 이 집으로 기여들었어. 덕분에 우린 쥐둥지를 찾아낼수 있은거야.》

리순일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어도 마디마디가 서리발같이 날카로와 심국종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얼굴이 죽은 송장처럼 창백하였던 놈은 잠시 동안이 흐르자 정신을 차리고 빠져나갈 틈이 없나 해서 머리를 쥐여짰다.

독틈에도 용수가 있다고 이 순간을 어떻게 하나 모면하면 살길이 열린다.

심국종은 지금껏 터득한 꾀를 다해 말재간을 부렸다.

《저같은 소인네 집에까지 찾아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소이다. 헌데 듣기에도 거북한 쥐둥지다 하는 말씀은 무슨 뜻이오이까? 우스개소리나 하자고 온것 같지 않은데… 혹시 무슨 심부름을 시킬게 있어 오신것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소인이 백사전페하고 심부름을 해드리겠소이다.》

김충지는 참기름을 바른듯 혀를 슬슬 놀리는 심국종에게 면박을 들이댔다.

《지은 죄가 많을수록 수작이 희떱기마련이야. 넌 지금 성을 빠져나가지 못해 죽을 맛이겠지?》

심국종은 두눈알이 희뜩 뒤집히는듯 하였다. 어찌나도 두방망이질을 하는지 가슴은 터져나갈것 같았다.

김충지가 귀신이 아니고서야 그걸 어찌 알수 있단 말인가.

김충지는 품속에서 종이장을 꺼내보였다.

《여기 쓴 글이 낯익지 않는가? 지금쯤 개경에 있는 아비한테 가닿았어야 할 글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심국종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것 같아 두눈을 꾹 감았다.

김충지는 며칠전 정오에 병마도감을 나서는 심국종을 은밀히 뒤따르던중 놈이 시전거리를 접어들어 비단을 사러온 개경장사군에게 어떤 글을 부탁하는것을 목격했던것이다.

심국종은 쥐상판에 억지웃음을 짓고 대꾸했다.

《자넨 너무하구만. 남의 글월을 중도에서 가로챘으니 크게 후회하게 될거요. 난 판례빈성사어른의 분부를 받고 황주옥백미를 사려고 배를 끌고오라는 글월을 부친께 띄웠소.

황주쌀이 좋다는건 세상이 다 알지요. 그런데 중도에서 글월이 잘못되였으니 일은 망친 대사이고 외국사신을 대접하는 일에 지장을 주게 되였소.》

심국종은 자신만만해서 리순일을 바라보았다.

《병마부사님도 판례빈성사어른이 누구인지 모르지 않겠지요? 이젠 벌은 피할수 없게 되였소이다.》

심국종은 궁지에서도 머리가 뱅글뱅글 돌아 변명투가 아니라 위협조로 대들었다.

리순일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음… 자네 말을 듣고보니 벌은 받아놓았군. 헌데 스즈끼!》

그 말에 심국종은 낯색이 돌변하여 비실비실 뒤걸음을 쳤다.

아, 이게 대관절 어찌된 일인가.

고려에서는 귀신일지라도 알수 없는 왜인의 본색을 저 사람이 다 알다니…

심국종은 벽에 기대서서 이를 쪼았다.

이대로 주저앉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단 말인가. 아직은… 범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쓰러져선 안된다.

심국종은 이를 사려물고 한걸음 나섰다.

《스즈끼란건 무슨 소리요?》

김충지는 쥐상같은 심국종이 적의를 가득 품고 대들자 더 참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이놈아, 뉘앞이라고 개수작이냐? 네놈이 낯짝에 철면을 썼어도 분수가 있지 아직도 실토정을 안할테냐?》

리순일이 손을 들어 김충지를 제지시켰다.

《뛰여야 벼룩이요 꾀를 부려야 하늘소인데… 화를 낼게 있는가.》

김충지는 분을 삭일수 없어 심국종놈을 벽으로 떠밀쳤다.

벽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놈은 엄살을 부렸다.

《이봐, 간특하게 굴지 말고 이거나 읽어보렴.》

리순일은 놈에게 종이 한장을 내밀었다.

심국종은 떨리는 손으로 종이장을 받아들고 글줄에 눈을 박았다.

글을 읽던 심국종의 손에서 맥없이 종이장이 떨어졌다.

심국종은 털썩 주저앉더니 머리를 움켜잡았다.

망둥이 제 새끼 잡아먹듯 어쩜 아비가 그럴수 있단 말인가. 아비가 제손으로 20여년 쌓아올린 공든 탑을 허물어버리다니…

리순일은 머리카락을 쥐여뽑으며 몸부림을 치는 심국종을 보자 안도의 숨이 나갔다.

심국종의 정체를 밝히는데서 개경에 남아있는 북계병마판관이 한몫을 해제꼈다.

리순일은 몇달동안 김충지를 도와 심국종을 료해하면서 그가 한갖 화약의 비방을 뽑아내여 다른 나라에 팔아먹으려고 하는 리자봉을 위해서 뛰여다니는 심부름군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심국종이 왜나라장사군들이 묵군 하는 림영관이라는 객관이 있는 명주고을에서 왔다는 점은 그가 왜나라간자일수 있다는 추측을 내릴수 있게 하였다.

그 추측이 옳겠다고 생각한 리순일은 북계병마판관에게 심국종의 아비를 만나 그 본색을 발가내라는 공문서를 띄웠다.

공문서를 받아본 북계병마판관은 즉시 왜말을 잘하는 사람을 왜장사군으로 변장시켜 심국종의 아비를 찾아가게 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왜장사군들을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나하던 심국종의 애비는 그 계책에 감쪽같이 넘어가고말았다.

하여 그의 정체는 드러나고 병부에 묶이워가 문초를 당하였다. 그는 자기가 섬나라의 간자임을 자백하였고 아들놈의 본명까지 토설했다.

방금 심국종이 떨군 종이장은 애비의 자백서였다.

머리칼을 쥐여뜯으며 몸부림을 치던 심국종놈이 독오른 살모사가 대가리를 쳐들듯 고개를 쳐들었다.

《병마부사님! 소인은 부친이 왜인이라는건 듣느니 처음이오이다. 부친의 말대로 소인의 아버지가 왜인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소인은 고려에서 자랐으니 고려사람이오이다. 그런 제가 어찌 한번도 덕을 입지 못한 섬나라를 위해 렴탐질을 하겠소이까? 소인은 고려에 해되는짓을 한게 없소이다.》

김충지가 격분으로 주먹을 불끈 쥐였다면 리순일은 웃음을 터뜨렸다.

껄껄 웃고난 리순일은 허리춤에서 비수 하나를 뽑아들었다.

《스즈끼! 이걸 보면 네 죄를 알거다.》

리순일이 내보이는 비수를 본 심국종은 바람앞의 초불마냥 부들부들 떨었다.

손잡이에 룡대가리를 부각한 비수를 남권부의 집에 내버려두고 달아뺀것은 심국종의 실책이 아닐수 없었다.

그때는 다급한 정황이여서보다 이제 달아나면 기껏 하루 지나 서경성을 빠져나갈것이니 비수쯤은 대수가 아니였다.

심국종놈은 돌연 쥐상판을 쳐들었다.

《그 칼은 달포전에 잃어버린 소인의 칼이오이다.》

《허― 그놈 정말 가소로운 놈이군.》하던 리순일은 김충지에게 눈짓했다.

《의농안을 뒤져보게.》

심국종의 면상을 후려갈기려던 김충지는 주먹을 떨구고 벽에 기대놓은 3층의 농을 열어제꼈다.

그는 곧 의농안에서 장삼이며 삿갓, 목탁과 함께 복면을 꺼내놓았다.

리순일이 삿갓과 복면을 집어 심국종앞에 내던졌다.

《이 간특한 놈! 네놈이 그 잘난 오그랑수를 써서 남권부는 속여넘겼지만 우린 못속여. 넌 남권부를 꼼짝못하게 하려고 세상에 없는 부하들을 만들어냈다. 넌 쉬는 날 대낮에는 중의 차림으로, 해가 지면 복면을 뒤집어쓰고 길복이라면서 남권부의 집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그 집을 드나드는 조득국의 행처도 알수 있었다. 이건 다 이 김공이 밝혀낸거다.》

그 말에 심국종은 《아이쿠―》소리를 지르며 자기 뺨을 때렸다.

젖내나는 아이라고 얕잡아본 김충지가 제 그림자도 속아넘어갈거라며 부린 변신술을 발가놓다니… 이럴줄 알았으면 밤마다 꼬리를 물고 따라다니는 김충지를 죽여버리는건데…

아, 최충의 수제자를 얕보았다가 대사를 망쳤구나.

이번에는 김충지가 분격해서 소리쳤다.

《넌 사람을 여럿이나 해쳤어. 병마도감에서는 한밤중에 숯고간을 불지르고 너를 알아보았대서 메득이를 이 칼로 찔러죽였다. 지난 밤에는 남권부네 집에 뛰여들어 조득국을 또 이 칼로 찔러죽였다. 그래도 할 말이 있는가?》

놈의 머리가 두어깨짬에 파고들었다.

김충지는 심국종을 손가락질하며 열변을 토했다.

《네놈은 메득이를 안죽였노라고 우기고싶겠지. 허나 넌 스스로 그걸 인정했다. 넌 이 칼로 조득국의 잔등을 찌르고도 안심치 않아 숨통을 찔렀는데 메득이도 그렇게 찔렀다. 과연 솜씨있거든.

넌 노루꼬리만큼 배운 재간을 믿고 우리를 홀시했다. 우린 애초에 천균노를 만들면서 천균노를 만들어내는 일이자 화약의 비방을 지켜내는 일임을 명심하고 너같은 놈들을 주시한거다.

그런데도 너같은 왜놈이 렴탐질을 일삼으니 실로 가소로운 일이다.

네놈은 지금 리자봉공의 옷자락에 매달리려 하는데 그 사람도 사람들을 고의로 살해한 네놈의 살인죄만은 두둔못해.》

김충지의 준절한 목소리에 심국종은 죽은듯 대척없었다.

리순일이 군사들에게 령을 내렸다.

《이놈을 묶어 끌어내가라!》

군사들이 심국종의 량팔을 잡아일으켰다.

죽은듯 했던 심국종은 방안이 떠나갈듯 고아댔다.

《그렇다. 내가 메득이를 죽였다. 왜 그뿐이냐? 천균노도 내가 망쳐놓았다. 고려의 힘이 강해지는것이 배아파서 말이다.》

김충지가 웨쳤다.

《이놈아, 그런것까지 꼭 꼬집어말해야 알겠니? 우린 네놈이 남권부의 이름으로 공문서를 띄운것도, 염초장행수에게 화약의 비방을 알아낼수 없을가 하여 화약이 나쁘다고 트집을 건짓도, 어제밤 조득국을 죽이고 염초의 비방이 적혀있는 물건을 빼앗아가진 짓도 다 알고있다. 그 물건은 지금 네놈의 품에 있을게다.

우린 구태여 그 죄를 따지지 않고서도 네놈의 목에 올가미를 씌울수 있어.》

그제서야 심국종은 한숨을 내뿜으며 군사들에게 끌려나갔다.

그의 몰골은 흡사 고양이에게 물린 생쥐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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