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4 장

10


남권부는 어디까지가 진짜이고 어디까지가 놀음인지 가늠할수 없었다. 마씨를 끼고앉아 조득국이와 술추렴을 하다가 술기운에 정신이 흐리마리해지고 의식이 몽롱해져서 자리에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앉은 다음부터는 똑똑히 생각났다.

지금은 배속이 편안치 않고 머리가 뗑하면서 속이 메슥메슥하다.

이런 때는 밖에 나가 먹은걸 속시원히 토해버리면 좋으련만 손발이 꽁꽁 묶여있으니 그렇게도 할수 없다. 질기기가 쇠줄같은 머리칼 타락줄에 칭칭 얽매여 멱 찔리울 돼지마냥 웃목에 나뒹구는 이 신세를 어쩌면 구할수 있단 말인가.

남권부는 겁에 잔뜩 질려 아래목을 쳐다보았다.

곰상판 조득국이와 련꽃같이 아름다운 마씨가 아래목에 차려놓은 음식상을 차지하고 남권부를 조소하며 손벽을 쳐댔다.

내가 왜 이꼴이 되였을가.

남권부는 끙끙대며 생각을 더듬었다.

닷새전날은 남권부의 한생에서 가장 기쁜 날이라고 할수 있었다. 개경으로 출세해가 부귀영화를 누릴수 있는 담보로서 화약의 비방을 고스란히 전수받았을뿐아니라 천균노의 성공도 이루었으니 말이다.

《병》이라고 잠시 이름을 달아놓았던 염초 7할에 버드나무 숯 2할, 반묘 1할을 섞은 화약의 위력이 으뜸이였다.

그 화약이 바로 수백근짜리 돌탄을 거의 천보나 날리였다.

그날로 온 병마도감은 환희와 기쁨에 휩싸였고 그 다음날에는 천균노를 또 한문 부어냈다.

병마도감에서는 즉시 천균노가 뜻대로 되였다는 표문을 임금께 올리고 최충에게도 알리였다.

박원작은 너무 과로한탓에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그래서 남권부는 오늘 오전 사람들을 시켜 별관방에 누워있던 박원작을 경상골의 제집으로 데려다주게 하였다. 그리고 그 즉시 힘꼴이나 쓸만한 장공인들을 수십명 선발해서 염초장과 천균노에 삼엄한 파수를 세워놓았다.

해질녘에 집에 돌아오니 방금전에 왔다면서 조득국이 마루에서 일어나 반기는것이였다.

조득국이와 인사말을 나누고 방에 들어서니 벌써 요란한 술상이 차려져있었다.

술상을 마주하기바쁘게 조득국은 닭알만한 금덩이를 그것도 세개씩이나 걸랑에서 꺼내보이며 뢰등석포 몇대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금덩이에 혹해서 남권부는 래일이라도 뽑아줄수 있노라 호언했다.

하긴 호언이라고 할것도 없었다. 이제는 박원작이 쓰러져버렸으니 무엇이든 꺼릴게 없다.

남권부는 날아다니는 돈같은 조득국의 금덩이를 받아내려 요 며칠째 있은 일들을 늘어놓으며 이제는 자기가 고려에서 제일가는 병기재주를 가진 재사라고 내놓고 자랑했다.

자랑을 늘어놓다보니 주량이 독같은 조득국이와 맞잔을 하여 술몇사발에 취해 쓰러졌다.

얼마나 잤는지…

남권부는 마씨가 흔드는 바람에 눈이 개개 풀려가지고 억지로 정신을 차리고보니 몸이 꽁꽁 묶어져있었다.

《이놈아, 이게 무슨짓이냐? 빨리 풀지 못할가?》

남권부가 게거품을 물고 소리치니 그 꼴이 가관이라며 마씨는 깔깔 웃어댔고 조득국은 발가락으로 그의 입을 밀어치며 히물히물 댔다.

남권부는 미칠것 같았다.

《조가 이놈! 네놈이 날 어떻게 알고 이 지랄이야.》

그랬더니 조득국은 버선을 벗고는 고린내나는 묵직한 엄지발가락을 남권부의 입에 물렸다.

남권부는 기겁하여 아우성을 쳤다.

그 꼴이 재미있다며 손벽을 치여대던 마씨는 조득국의 품에 안겨 얌통을 부렸다.

저년이 내 계집이 맞긴 맞는가.

남권부는 억이 막혀 눈만 꺼벅였다.

한참 조득국의 품에 안겨 노죽을 부리던 마씨가 두눈을 치뜬 남권부에게 술사발을 들이댔다.

《이봐, 지금껏 같이 산 정을 생각해서 주는 술이니 받아먹어.》

억지로 술을 입에 쏟아붓는 바람에 남권부는 숨이 막혀 꺽꺽 대며 술을 받아마시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래서 또 술에 취해 쓰러졌다.

이번에는 마씨가 흔들어서가 아니고 저절로 깨여났다.

깨여나보니 두년놈이 아래목에 벌거숭이가 되여 맞붙어있었다.

아니, 어쩜 저럴수 있는가. 남의 사내를 한방에 묶어놓고 남의 계집을 끌어안은 저 조득국이야말로 사람이 아니고 짐승이다.

그런데 조득국이 짐승도 낯을 붉힐 추악한짓을 꺼리낌없이 해대는것은 무슨 까닭일가.

마씨 저년이 더 나쁜 계집이다. 언제이건 자기 사내를 저버리고 달아날것 같다 했더니 아니나다를가…

이제 손목을 풀고 일어나면 마씨 저년을 당장 쫓아버리고말테다.

《조가 이놈아! 넌 대체 어떤 놈팽이기에 갑자기 본색을 달리하느냐?》

옷을 걸친 조득국이 빈정댔다.

《미욱한 놈같으니. 이제야 그걸 알고싶냐? 넌 진작 그것부터 알았어야 했어. 마씨는 사실 고려사람이 아니야. 남몰래 잠입한 녀진사람이지.

마씨는 너를 알기 전에 나와 정분이 났던 녀인이야. 그런걸 큰것을 위해 속이 쏘지만 마씨를 너한테 줬어. 왜 너한테 주었는가 하면 그건 자네가 나한테 소용돼서였네.

나도 문명한 고려에서 글을 배워 이런 리치쯤은 아네. 〈대업을 이루려면 작은 일, 작은 리득을 돌보지 말라.〉

난 바로 그 리치를 뼈에 새기고 마씨마저 내주었던거야. 흐흐흐. 이제 머지않아 난 녀진의 추장자리에 오르게 될거다. 난 원래 만인을 다스릴 용력을 타고났으니까.》

남권부는 조득국의 수작이 하도 엄청나서 믿지 않았지만 그가 뜻밖의 보통 악한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제는 오로지 조득국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였다.

조득국은 모로 쓰러져있는 남권부의 상투를 쥐고 일으켜앉혔다.

《남공! 나에겐 아직 자네가 소용돼. 그런데 자넨 지금 죽어가고있네. 지옥문턱을 들어섰거든.》

남권부는 조득국이 횡설수설한다고 생각했다.

서글픈 표정을 한 마씨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물었다.

《아까 녹두지짐을 먹던 생각 나겠지?》

생각났다.

오늘 마씨는 별스레 녹두지짐이 장수를 도모하는 좋은 음식이라느니 신기를 돋구고 독을 푸는 약이나 같다느니 하며 자꾸 권했다.

감칠맛이 그닥 없어 녹두지짐을 좋아하지 않던 남권부는 마씨의 달콤한 말에 넘어가 손바닥만한걸 네개나 집어먹었다.

남권부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씨는 또 물었다.

《단고기장도 한대접 먹었지?》

《먹었다. 그래 그게 어쨌다는거냐?》

마씨는 웃방에 들어가더니 책을 한권 들고나왔다. 의서였다.

책을 벌컥벌컥 뒤지던 마씨는 어느 한 대목에서 소리내여 읽었다.

《녹두지짐과 단고기장을 함께 먹으면 목숨을 잃게 된다. 나쁜 독을 풀던 녹두의 기운이 그것을 방해하는 단고기에 의해 오장을 해치는 무서운 독으로 변하기때문이다. 이런 경우를 가리켜 복이 화가 된다고 한다. 그러니 두 음식을 함께 많이 먹으면 백가지 의술로도 구할수 없게 된다.》

글을 읽고난 마씨는 눈을 할기죽거리며 남권부에게 책을 내보였다.

《믿어지지 않으면 제 눈으로 보라구.》

마씨가 가리키는 글줄을 더듬던 남권부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내쉬였다.

의서의 글줄이 틀리지 않았다.

오늘따라 마씨가 녹두지짐을 차려놓고 자꾸만 권하는게 별나다 했는데 이 의서를 보고 죽일 잡도리를 한게로구나.

그런데 이년이 나를 왜 죽이려고 하는걸가.

남권부는 불쑥 배아픔을 느끼였다. 아까부터 배가 불어나는듯 괴롭다 했더니 먹은 음식이 독을 쓰는 모양이였다.

남권부는 눈물을 머금고 마씨에게 빌붙었다.

《이보게, 나와 함께 산 정을 생각해서 날 좀 살려달라구. 난 죽고싶진 않단 말이야.》

마씨는 남권부를 야멸차게 쏘아보며 빈정댔다.

《이미 지옥문턱을 넘었는데 어떻게 살린다구 그러나? 그렇다면 하나 묻겠어. 내가 무엇때문에 독이 되는 음식을 먹인것 같아?》

남권부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알게 뭐요. 난 죽을 죄를 진게 없어.》

마씨는 아이를 다루듯 남권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튕기였다.

《건 네가 화약의 비방을 알고있기때문이야. 너무 많은걸 알거나 알지 말아야 할걸 알면 죽음을 재촉한다는걸 몰라?》

남권부는 고운 눈에 살기가 가득한 마씨의 말이 리해되지 않았다.

화약의 비방이 마씨나 조득국이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독한짓을 꾸밀수 있단 말인가.

남권부를 개다루듯 하는게 재미있어 말없이 지켜보던 조득국이 이를 사려물었다.

《이놈아, 넌 아직도 보은이란 말을 모르겠니? 이 고대광실의 집과 재물, 고운 계집이 그래 공짜란 말이냐? 그건 다 네놈이 고와서 준게 아니라 네가 보은하길 바라서 준거야. 나한테 화약을 만드는 비방이 소용돼. 그걸 가져가야 녀진인들을 다스리는 추장도 될수 있고 또 녀진을 넘보는 거란도 누를수 있단 말이다. 그래서 난 네가 박원작이한테서 화약의 비방을 넘겨받을수 있는 명분을 세우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천균노를 만들수 있게 놋쇠까지 대준거야. 이젠 알겠지? 그것만 순순히 내놓으면 널 살려주는건 말할것도 없고 금덩이도 다 주겠다. 그래 어쩔테냐?》

남권부는 머리를 푹 떨구었다.

그러니 길러 잡아먹는 돼지신세가 되였구나. 공짜는 반드시 목에 걸린다는걸 모르는바 아니였지만 재물에 눈이 어두웠으니 이 꼴이 되였구나.

남권부는 심한 후회로 몸부림을 쳤다.

《아, 가련하고 불쌍한 내 신세야!》

조득국은 눈물을 흘리는 남권부를 보자 아이를 달래듯 그의 등을 두드렸다.

《이봐 남공! 내 지금껏 자네한테 신의없이 군게 있었던가? 한번도 없었지. 자, 이걸 보게나.》

조득국은 염낭에서 짐새의 깃털을 꺼내들었다.

《이보라구. 이건 그 어떤 독일지라도 〈해독〉시킬수 있는 황금새깃털일세. 저 남쪽나라에 금을 먹고 사는 황금새란게 있는데 그 새의 깃털을 뽑아 술에 담가먹으면 독으로 당장 죽어가는 사람까지도 살릴수 있어. 독중에서도 제일 센 비상을 먹은 독도 맹물처럼 만드는 이 〈구명약〉을 먹고싶지 않아?》

조득국은 새빨간 거짓말을 늘어놓으며 두개의 잔에 술을 붓고나서 짐새깃털로 술을 휘저었다.

《자네 죽은 재상이 산 개만 못하단 말 알지? 자네가 화약의 비방을 지켜 죽는다고 합세. 그래 그게 무슨 소용이 있나? 살아야 부귀도 출세도 할수 있어. 죽어야 알아줄 사람도 없지. 암.》

남권부는 고개를 들수 없었다.

조득국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약의 비방을 빼앗긴다면 나라앞에 목을 바쳐야 한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엔 동족을 위해 죽음을 택하는게 떳떳할것이다.

뒤간을 쳐내는 종을 대하듯 오만상을 찌프리고 남권부를 구박하던 마씨도 해죽거리며 간살을 부렸다.

《이봐요. 아까는 내가 너무했어요. 노여운 마음을 푸시고 내 말좀 들으세요. 거기서 남몰래 감추어둔 보물이 지금 내 수중에 있어요. 어디 보겠어요?》

마씨는 웃방에 들어가서 자개박이함을 들고 나왔다. 그것을 본 남권부는 억이 막혀 볼편을 푸들푸들 떨었다.

남권부는 지금껏 조득국이한테서 받은 보물을 남몰래 외헌방의 든든한 장농속에다 감추어두었었다.

금, 은, 야광주를 넣은 저 보물함을 통채로 빼앗겼으니 살아난대도 빈 손가락이나 빨게 되였다.

심국종이 그만큼 벽에도 귀가 있고 문에도 눈이 있다고 일러주었건만 저 앙큼한 계집을 내버려두었으니 염통을 빼앗길수밖에…

남권부는 비로소 입덕에 화를 입게 되였음을 절감했다.

소한테 한 말은 안나도 계집한테 한 말은 난다고 기생질을 하던 계집을 제 살처럼 여기고 혀를 놀렸으니 이 꼴을 당했다.

조득국이 병마도감의 일에 그리도 환한것은 다 마씨 저년한테 할 말 안할 말 가리지 않은 이놈의 탓이였구나.

《이봐요. 후회는 언제나 늦어오는 법이예요. 화약의 비방만 내놓으면 이 보물함을 고스란히 돌려주겠어요. 그리고 오늘일을 영영 덮어두겠어요.》

남권부의 귀가 번쩍 띄였다.

그렇지, 죽을수가 닥치면 살수가 나진다더니 오늘일을 덮어두면 무사할게 아닌가.

남권부는 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물었다.

《그 말을 믿어도 되겠지?》

조득국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남권부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내 말도 안믿겠나? 남아일언 중천금이랬어. 나 조득국은 하늘신앞에서 다짐하겠네. 오늘일을 눈에 흙이 들어와도 발설하지 않겠다는것을!

자, 이걸 받게.》

조득국은 남권부의 무릎우에 자개박이함을 올려놓고도 부족한지 금덩이 세개를 마저 올려놔주었다.

남권부는 무릎을 내려누르는 보물의 무게를 느끼자 재물욕으로 하여 가슴이 터져나갈것 같았다.

재물이 없으면 적막강산이고 재물이 있으면 금수강산이라 이 보물만 가지면 무엇을 부러워하랴.

《좋네. 그럼 이 손을 풀어주게.》

《아아, 남공! 덤비지 말게. 장사거래는 물건을 맞대놓고 흥정을 해야 공평하거든. 흥정을 한 다음 손을 풀어도 늦지 않아. 자, 보물은 자네것이 되였으니 화약의 비방을 내놓게.》

남권부는 조득국의 강짜에 기가 죽었다.

칼자루 쥔 놈한테 이길수 없다는데…

《이보게, 마씨! 외헌방에 들어가면 장농우에 헌 갓신이 있을거네. 그걸 가져오게.》

마씨는 치마바람을 일으키며 나는듯이 방문을 열고 나갔다. 그는 인차 갓신을 들고 들어왔다.

《갓신속에서 깔개를 꺼내라구. 그밑에 글이 씌여진 종이가 있네.》

조득국이 덮치듯 갓신을 움켜잡고 갓신깔개를 끄집어냈다. 정말 그밑에 착착 접은 종이가 있었다.

조득국은 초불가까이로 다가가서 종이에 씌여진 글을 읽더니 미친 놈처럼 웃어댔다.

한참 웃고난 조득국은 종이를 착착 접어 품안에 집어넣었다.

《일이 참 멋드러지는구나. 염초의 비방과 함께 천균노를 만드는 방법까지 씌여있으니 말이야.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언약대로 해줄가?》

조득국은 남권부의 손을 풀어주고나서 짐새의 깃털로 휘저은 술잔을 량손에 집어들었다.

《자, 이 술은 〈구명주〉이자 리별주일세. 이제 헤여지면 우린 영리별이 될수도 있네. 난 헤여지기에 앞서 마씨와 남공이 함께 산걸 뜻해서 이 고별주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네. 자, 받으라구.》

손목이 아파 주무르던 남권부는 살아난 기쁨에 술잔을 덥석 받아들었다.

짐새깃털이 어떤 무서운 독인줄 알지 못하는 마씨도 해죽거리며 술잔을 받아들었다.

남권부가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면 마씨는 교태를 부리며 쫄금쫄금 마시였다.

두사람이 술잔을 비우자 조득국은 누런 이발을 드러내고 히죽 웃었다.

《오늘로서 그대들 두사람의 부부지정은 끝나고말았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호들갑을 떨던 마씨와 보물함을 안아든 남권부는 배를 그러쥐였다.

두사람은 온배가 끊어져나가는듯한 격심한 아픔과 목을 조이는 심한 숨가쁨으로 하여 두눈을 부릅뜨고 마주보더니 조득국을 쏘아보았다.

조득국은 히물대며 자기 술잔에 술을 부었다.

조득국은 털썩 쓰러지는 남권부에게서 얼굴이 시꺼멓게 죽어가는 마씨한테 눈길을 돌리며 조롱했다.

《이년아, 계집이란 한사내만을 섬겨야 하는거야. 이 사내, 저 사내의 품을 파고든 계집만큼 재앙거리는 없어. 내가 남가한테 너를 내줄 때 벌써 넌 죽을 명부에 올라있은거야.》

비명소리 한번 제대로 질러보지 못하고 마씨도 너부러졌다.

조득국은 술잔을 집어 두 주검우에 기울였다.

《잘들 가라구. 이제 골병 든 박원작이도 끝장이 날것이니… 화약의 비방은 내가 독차지하겠구나. 그럼 떠나볼가.》

조득국이 죽어너부러진 남권부의 품에서 보물함을 앗아드는 순간 뒤방문이 열리더니 비수가 날아들었다.

비수는 조득국의 잔등에 깊숙이 박혔다.

《헉―》

조득국은 맥없이 꼬꾸라졌다. 그러자 열려진 뒤방문으로 복면쓴 사람이 뛰여들었다. 키작은 사내였다.

복면을 쓴 얼굴에서 반들거리는 두눈알이 팽이돌듯 하였다. 그자는 조득국의 등에서 비수를 뽑아 또다시 그의 숨통을 면바로 찔렀다.

꾸르륵―

조득국의 숨넘어가는 소리였다.

복면쓴자가 씨벌였다.

《이 소대가리같은 녀진놈아, 무지한 야인놈인 주제에 남먼저 화약의 비방을 훔쳐가겠다구? 흥! 기는 놈우에 뛰는 놈 있고 뛰는 놈 우에 나는 놈 있다고 난 네놈이 앞장을 치기 기다렸던거야. 이런걸 가리켜 어부지리라고 한단다.》

그자는 조득국의 허리에 찬 염낭을 뒤져 갓신깔개를 끄집어냈다.

그찰나 대문을 다급하게 두드려대는 소란스런 소리가 울렸다.

복면쓴자는 와들짝 놀라 헤덤벼치더니 뒤방문을 차고 뒤뜨락으로 뛰쳐나갔다.

인차 육중한 대문이 나떨어지고 두사람이 성난 맹호마냥 뛰쳐들었다. 김충지와 리순일이였다.

처참한 주검들이 나딩구는 방안에 뛰여든 그들은 발을 굴렀다.

김충지는 너무 분해 벽을 치며 부르짖었다.

《한발 늦었구나. 심국종이 그 새끼때문에…》

김충지는 오늘도 심국종의 꼬리를 놓지 않고 끈덕지게 따라다녔다.

병마도감에서 일을 마친 심국종은 저녁녘에 거처지로 돌아왔는데 무슨 긴요한 일이 있는지 밥을 먹자마자 밖을 나섰다.

그놈이 어찌도 잰내비마냥 날랜지 이골목 저골목으로 달아나는걸 목에서 겨불내가 나도록 뒤쫓아다녔다. 그러다 자정무렵 경상골마을에서 놓쳐버렸다.

졸지에 그놈을 놓치고보니 눈앞이 아찔했다. 분명 심국종 그놈이 무슨 일을 칠 잡도리인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할수없이 리순일병마부사를 찾아갔다.

그렇지 않아도 심국종때문에 마음을 놓지 못하고있던 리순일은 그가 찾아온 사연을 듣자마자 남권부의 집으로 말을 달리였다.

그러나 일은 벌써 망친 뒤였다.

리순일은 샅샅이 주검들을 살펴보더니 조득국의 멱에 박혀있는 비수를 뽑아들었다.

《이보게, 곰같은 이놈을 모르겠나?》

김충지는 험악하게 이그러진 조득국을 가리키는 리순일에게 머리를 저어보였다.

《이놈이 바로 조득국이란 놈일세. 귀화한 녀진사람인데 동상이몽을 하더니 개죽음을 당했어.》

리순일은 김충지에게 비수를 내보였다.

《이 칼이 낯익지 않은가?》

손잡이에 룡대가리가 돋을새김된 비수였다.

그것을 한동안 들여다보던 김충지는 무릎을 쳤다.

심국종이 오얏을 베여먹던 칼이 틀림없었다.

《심가놈의 칼이 맞소이다. 아, 그렇지!》

김충지는 비로소 복면쓴 놈이자 중노릇하는 놈이며 그게 다름아닌 심국종 한놈이라는것을 깨달았다.

《교활한 놈! 내 손아귀에서 못빠진다. 병마부사님! 그물을 거둘 때가 된것 같소이다.》

《암, 그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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