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1 회)


제 4 장

6


꿍―꾸르릉―

그 소리는 뢰등석포의 포소리도 천균노의 포성도 아니였다. 먼 하늘에서 들려오는 천둥소리였다.

날밝기 전부터 일어나 병마도감의 마당을 거닐던 박원작은 불안한 눈길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복기운이 떠도는 하늘에서 곧 장마가 시작됨을 예고하는듯 하였다.

제발 경주에 간 군사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큰비가 내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반묘를 가지려 군사들이 떠난지도 어느덧 열흘이 흘렀다.

왕복 수천리길에 짐마차를 끌고오자면 빨라도 열흘은 더 기다려야 할것이다. 비가 쏟아지면 그들의 걸음이 지체될것이니 어떻게 마음이 편할수 있겠는가.

박원작은 배가 뜨끔거려 손을 배로 가져갔다.

요즘 배가 점점 더 아파나는것이 불길한 징조같다.

그가 처음 배를 아파한적은 지난해 가을이였다.

처음엔 입맛을 잃고 몸이 나른해지기에 피로한탓인줄로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인차 명치부위가 불어나는듯 괴롭고 살살 아프더니 그 아픔이 온배로 퍼져나갔다.

허지만 배아픔은 때때로일뿐이여서 그런대로 견딜만 하였다. 그래서 배아픔을 혼자 묵새기고 일손을 놓지 않았다.

정초부터는 배아픔뿐아니라 메스껍고 헛구역질이 나면서 가끔 눈앞이 캄캄해지군 하였다.

뒤늦게 병이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린 해연이 《서경명의》를 청해왔다.

병을 보고난 《서경명의》가 흔히 있는 위완통이라기에 안심하고 그가 지어준 약을 받아먹었더니 곧 배아픔이 한결 덜해졌댔는데 이제 와서 다시 그 모양이니 이상한 일이였다.

아무리 의술이 없기로서니 위완통의 병증세 하나 알아낼수 없으랴 하는 생각이 들어 며칠전에 수서원에서 의서들을 가져다 보았다.

의서를 보니 앓고있는 병이 심상치 않았다. 의서에는 식전이나 식후에 배를 아파하는 위완통은 약을 바로 쓰면 몇달안에 고칠수 있다고 씌여있었다.

박원작은 의서에서 자기가 앓는 병증세와 별로 차이없는 병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것은 적취라는 병이였다.

고구려때의 이름난 의서 《로사방》에서 취한 글이라고 씌여있는데 적취에는 병증세만 세세히 설명하였지 경험이나 침구방, 약방 같은 병을 다스리는 처방은 전혀 없었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처방을 류실했을가.

허나 다른 의서에도 적취를 고치는 처방만은 없었다.

그렇다면 적취병은 알고죽는 병이란 말인가.

아, 그래서 병을 고치는데 귀신이라는 《서경명의》가 일부러 위완통이라고 했을것이다. 그라면 위완통으로 오진할수가 없다.

《서경명의》는 그 병을 잘 알면서도 병자를 안심시키려고 일부러 그랬을것이다.

이젠 명백하다. 아직 큰일도 치르지 못했는데 하늘은 무슨 억하심정으로 이 몸에 병이 들게 하였단 말인가.

적취병에 걸리면 배안의 혹이 주먹만 하게 커지면서 돌처럼 굳어지는데 그로 하여 병자는 마지막까지 심한 고통을 겪는다고 하였다.

정녕 뜻을 이루지 못하고 쓰러져야 한단 말인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서야 어찌 눈을 감을수 있으며 지하에서 부친을 만나뵈올수 있으랴.

죽음을 알면 반드시 용기가 나는 법이라고 하였다. 과시 그 말이 옳다. 이미 수명은 하늘의 운수로 정해져있으니 기운이 더 진해지기 전에 열스무배로 하루를 쪼개가며 분발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다듬어서인지 배아픔이 한결 기세를 숙이는것 같았다. 그래서 여전히 집에 들어가지 않고 별관에서 침식을 하고있는것이다.

다행히도 별관에서 끼식시중을 드는 녀인의 음식솜씨가 괜찮아 밥을 몇술씩은 놓지 않는다.

스적스적 옮기던 박원작의 걸음은 늘 마주하고있어도 싫지 않는 오얏나무들앞에서 멈춰섰다.

박원작이 가지가 휘여지게 오얏이 주렁주렁한 오얏나무를 눈더듬질하는데 방금 병마도감에 들어선 남권부가 그를 띠여보고 소리쳤다.

《박공!―》

그는 부리나케 걸어오며 물었다.

《몸은 좀 어떤가?》

박원작은 동정이 어려있는듯한 남권부의 눈길을 마주보며 대꾸했다.

《언제 보나 선참 나오누만.》

남권부도 박원작을 마주보며 웃었다.

《박공! 내가 무슨 보약을 가져온줄 아나? 세상 약해빠진 병다리도 장사로 만들어주는 만병통치약을 구해왔단 말이요. 자 받게. 백년묵은 산삼일세.》

남권부는 손에 든 자개박이함을 내밀었다.

《내 이걸 손에 넣느라고 품깨나 들였네. 백년묵은 산삼을 쓰면 위완통이 아니라 그 하내비가 되는 병도 뚝 떨어진다네.》

박원작은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병마도감사, 알아보지도 않고 망탕 돈을 쓰면 되나. 내 병엔 산삼이 맞지 않으니 돌려주라구.》

남권부는 펄쩍 놀라더니 성을 내며 말했다.

《난 이미전에 병마도감사는 내가 아니라 여전히 박공임을 절감했네. 다들 그대를 보고 변함없이 병마도감사라고 부르는데… 다시는 내게 병마도감사란 말 말게. 그리고 친구가 주는 약을 거절하는건 덕행이 아니라 악행일세.》

박원작은 마지못해 남권부가 들려주는 자개박이함을 받아들었다.

《이보라구, 남공! 자네 그렇게 돈을 망탕 쓰다가 안사람한테 내쫓기지 않나 두고보게.》

《핫핫하―》

웃음을 터치는 남권부를 보며 박원작은 눈물을 머금었다. 일시 잘못이 없는이 없고 허물을 두지 않은이 없다고 남권부가 어지를 받고 망탕처신을 한건 본의가 아닐것이다. 진심으로 그때의 잘못을 뉘우치려 애쓰는 남권부인데 이전처럼 친구로 대하지 못할건 뭐겠는가.

이런 사람들에게 의지해야 뜻을 성취할수 있을것이다.

《박공, 지원사가 보내준 쌀과 천필은 어떻게 하자나?》

박원작은 쓰거운 웃음을 지었다.

병주고 약준다더니 어제오후 리자연이 보낸다는 여러대의 마차들이 쌀과 천을 가득 싣고 병마도감에 당도했다.

《그거야 남공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그럼 좋네. 난 그걸 장공인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겠소.》

박원작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남권부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남공, 내 한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무슨 부탁인데 다짐부터 두려 하나?》

《어려운 부탁이여서…》

《귀젖 떨어지겠군. 어서 말하게!》

《좋아. 자네한테 덧짐을 또 지워야 할가부네. 다른게아니라 자네 이제부터 화약을 만드는 일을 배워야겠네.》

그 말에 남권부는 어지럼증이 난듯 비칠거렸다.

《남공! 왜 그러나? 어디 아픈가?》

남권부는 급히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아니네. 아침술을 마셨더니… 이자 뭘 배우라고 했던가?》

《힘들더라도 화약을 만드는 일을 배우라는거네.》

남권부는 혀가 굳어지는듯 하였다. 소원을 이렇게도 불쑥 성취할수 있단 말이지. 사람이 살다가 이런 때도 다 있군… 이런걸 가리켜 벼락횡재라고 해야 할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에 능먹은 남권부는 딴전을 부렸다.

《박공! 내가 어떻게 박씨가문의 비방을 배울수 있단 말인가. 안될 말일세.》

박원작은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면서 마음을 몰라주는 남권부가 야속하였다.

박원작은 자기 병은 골수에 든 병이여서 화약의 비방을 넘겨주련다는 말을 도루 삼키였다.

그 말을 들으면 남권부가 오죽 섭섭해하겠는가. 지금의 병상태를 보아서는 오래 살기 틀렸는데 이 몸이 쓰러지기 전에 대를 물려줄 적임자를 택해야 한다.

그 적임자로는 바로 자기를 반성하고 어려울 때 발벗고나서서 도와주는 남권부라고 해야 할것이다.

《하여간 반묘가 당도하면 함께 화약을 만들기요.》

《박공!…》

남권부는 너무 심기가 끓어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