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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48 회)


제 4 장

3


기생들을 찾아 서경거리를 돌아치던 조득국은 화약의 비방을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남권부의 집을 찾아갔다.

해질녘이여서 마침 남권부가 집에 있었다.

음식상에 마주앉은 조득국은 술잔을 들기 전부터 위세를 부리느라 남권부를 향해 두눈을 부릅떴다.

그는 소문을 들어 병마도감의 실정을 알고있었다. 남권부가 어지를 받고 병마도감사로 된지도 퍼그나 시일이 지났으니 이제는 화약의 비방을 알고있을것이다.

조득국의 불량스러운 눈초리에 남권부는 뱀앞에 꿇어엎드린 개구리마냥 꼼짝 못했다.

그는 금시 심술궂은 조득국의 된주먹이 날아들것 같아 숨도 크게 쉬지 못하였다.

일어서면 남권부와 조득국의 키가 어슷비슷하지만 앉은키는 형편없이 차이난다. 앉은키가 조득국이보다 머리 절반은 작은데다 몸집도 그의 절반이 되나마나한 남권부였다.

든든한 수말같은 몸집이며 쌀함박보다 큰 머리, 주먹만한 큰 코로 하여 조득국은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위압을 주었다.

남권부가 조득국의 앞에서 날로 기를 펴지 못해하는것은 단지 이런 우악스러운 생김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가져다주는 행운의 의미를 점차 깨닫게 되기때문이였다.

록봉을 타먹는 벼슬아치들치고 공짜를 먹지 않는 량반이 없지만 말직벼슬이나 하는 주제에 남권부같이 크게 먹는자도 쉽지 않다.

더우기 마씨와 같이 젊은 미인은 조정에서 한다하는 리자연도 거느리지 못했다.

이게 다 뉘덕인가. 조득국의 덕이다.

그런데 그의 덕이 커갈수록 그 덕이 목을 조이는감도 커만진다. 그의 덕이란것이 꼭 큰것을 바라고 먹이는 미끼같아서였다.

도대체 무얼 바라기에 자꾸만 가져다 먹이는걸가.

조득국이 분명 언제인가는 반드시 먹인 값을 받겠다고 된주먹을 비껴들고 달려들것이다.

이제라도 조득국이와 일체 손을 끊어버릴가.

그러나 그의 도움이 없이는 더 큰 벼락부자로 될수 없지 않은가. 어쩐다… 손을 끊자니 재물이 그립고 손을 그냥 잡고있자니 장차 목숨이 위태롭겠고…

에라, 곰같이 생겨먹은 조득국이 곰같이 미욱하니 살살 얼리면서 리득을 보는것이 상책이렷다.

이것도 운수놀음이다.

남권부는 억지로 웃음을 짓다보니 얼굴이 별나게 이그러졌다.

《조공, 웃으시라구요. 웃으며 살면 장수한다는데… 물을 거울로 비추어보는자는 자기의 생김을 알수 있고 사람을 거울로 비추어보는자는 길흉을 알수 있다는데…

난 워낙 덜퉁하고 세심하지 못하다보니 그렇게 하지 못했소그려. 오로지 그대같은 벗을 잘 만난 덕으로 이처럼 일떠섰으니 앞으로도 공에게만 의지해서 살아갈가 하오.》

조득국은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런 대척도 않고 마씨가 부어준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자기의 말을 개짖는 소리만큼도 여기지 않는 조득국을 보자 남권부는 무안스러워 자기도 술을 입에 쏟아부었다.

몇잔 거퍼 술을 들이켰건만 속이 불안해서인지 취기가 오르지 않았다. 대신 살기가 돋치면서 천균노를 망쳐먹은 심국종을 쳐죽이고싶었다.

놋쇠를 가져오려 개경에 갔을 때 만난 리자봉이 뭐라고 했더라. 래일이라도 화약의 비방만 뽑아오면 군기감의 주인자리를 내주겠다고 장담했다.

그보다 앞서 만났던 리자연은 한두해만 더 병기를 만드는 재주를 닦으라고 하였는데 그건 다 화약의 비방을 빼오라는 말을 못해 그랬을것이다.

심국종 그놈만 아니였다면 벌써 천균노는 볕을 보았을것이고 이 남권부는 박원작이한테 화약의 비방을 떳떳하게 넘겨받아가지고 개경행을 했을것이다. 심가놈때문에 그 잘난 병마도감사자리나 차지하고 남의 눈치나 보아야 하니 이게 망조가 아니고 뭔가.

조득국은 슬금슬금 자기 눈치만 엿보는 남권부를 가시눈으로 쏘아보다가 야유조로 말했다.

《병마도감사로 출세했은즉 이젠 병마도감의 일에 환할거야. 화약의 비방까지 알았을테니 나라에서 제일가는 병기쟁이로 되였는데 큰소릴 치며 잘살아야지.》

남권부는 소태씹은 상이 되여 아부재기를 쳤다.

《화약의 비방? 흥, 개떡같은 소리 마오. 난 하루에도 골백번 지긋지긋한 병마도감사자리를 내던져버리고 여길 뜨고싶은 생각뿐이요.》

조득국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건 무슨 소린가?》

《말도 마오. 복이 화가 되였는지 보는 놈들마다 나에게 눈화살을 쏘는데… 오히려 소감시절이 그립기만 하오.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최충이 날 눈에 든 가시처럼 미워하는데 내가 어떻게 병마도감의 주인노릇을 바로할수 있으며 화약의 비방을 걷어쥘수 있는가 말이요?》

조득국은 그 말에 리해가 갔다.

깊은 학식과 뛰여난 재주를 가진 인재가 앉아야 하는 병마도감사의 자리를 무능하고 무식한 남권부따위가 차지했으니 어찌 사람들이 그를 곱게 보겠는가. 사람들의 말밥에 오르내리는 남권부처지에 그가 내리는 분부가 무슨 힘이 있어 박원작이 목숨처럼 여기는 화약의 비방을 벌써 손에 넣을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명색이 병마도감의 주인이니 긴 날을 두고 애쓰면 화약의 비방을 손에 넣게 될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는수밖에 없지.

조득국은 빈입을 다시며 허리춤을 매만졌다. 불룩한 염낭이 감촉되였다. 밤톨만한 금덩이 몇개와 짐새의 깃털이 들어있는 염낭이였다.

고려에는 짐새가 없다. 짐새는 사시절 더운 여름만 있다는 남쪽나라에서 독뱀을 먹고 사는 새라고 한다. 독뱀을 잡아먹는탓에 짐새의 깃털에는 뱀독이 몰려든다.

뱀독이 몰린 짐새깃털을 물이나 술에 휘저어서 사람에게 마시게 하면 그 어떤 장사일지라도 단숨에 숨이 끊어지고야만다.

이번에 요긴하게 쓰려고 가져온건데 아직은 염낭안에 그냥 두어야 할가부다.

조득국은 술잔을 밀어놓으며 독을 울리는듯한 웅글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천균노를 못쓰게 한 놈이 누구라구?》

남권부는 덮어놓고 대꾸하기에 급급했다.

《내 생각엔 심국종이라고 련장에 있는 놈인데 그자식이 못된짓을 한것 같소. 숯고간도 그놈패거리가 불을 질렀을거요.》

《그놈이 왜 그런대?》

《사실 심가 그놈은 리자연의 동생 리자봉이 내려보낸 작자요. 리자봉은 개경군기감에다 염초장을 내오려고 하는 형을 돕고저 그놈에게 화약을 만드는 비방을 뽑아오라고 했을거요.

그런데 그자식이 한수 더 떠서 천균노를 만드는것을 달가와하지 않는 상전에게 잘 보이려고 못된짓을 했을거요.》

조득국의 곰상판이 당장 누구를 잡아먹을듯 험악해졌다.

그의 낯판을 본 남권부는 소름이 쫙 끼쳐 목을 움츠렸다.

남권부는 고개를 떨구고 조득국이 어이하여 천균노에 관심이 큰지 의심이 부쩍 들어 생각을 파고들었다.

놋쇠까지 구해다주면서 천균노를 빨리 만들도록 도와주는 조득국의 속심은 무엇일가.

아무리 생각을 파고들었지만 음험한 조득국의 속통을 헤쳐볼길 없었다.

《남공! 공은 어이하여 이 조득국이 천균노가 잘되기를 바라고있는지 알고싶을테지?》

남권부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둔하다고 여긴 조득국이한테 남의 속을 꿰뚫어보는 재간이 있다니… 남권부에게는 조득국이 지옥의 사자처럼 보였다.

조득국은 하루빨리 천균노가 볕을 보기 바라는 제 진속을 남에게 털어놓을수 없었다. 그가 천균노를 만드는 박원작을 돕도록 남권부를 떠미는것은 큰 속심이 있어서였다. 천균노가 성공하면 남권부는 박원작이한테서 화약의 비방을 넘겨받게 될것이다.

바로 그때를 기다려 남권부의 손에 들어온 화약의 비방은 물론 천균노를 만드는 비방도 앗아가지고 녀진으로 달아날것이다.

조득국은 이런 진속을 숨기고 천연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난 천균노가 잘되길 바라는 내 마음을 숨기지 않네. 내가 진상품까지 떼먹고 삼문파직은 되였지만 고려는 나를 품어주고 키워준 고국이란 말일세.

내 지금껏 열백가지로 고려를 위해 잘한것은 없지만 나라를 지켜내는 일만은 돕고싶네.

집이 불타버리면 쥐들도 한지에 나앉게 된다고 고려가 있기에 나도 살아가는게 아니겠나.》

남권부는 조득국의 말이 그럴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잃은 사람은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는데 그래서 조득국이 한가닥 애국의 마음이 남아있어 천균노가 잘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다.

《조공! 사람속은 소금 서말을 같이 먹어봐야 안다고 했네만… 난 오늘에야 공의 충의로운 뜻을 안것 같네. 공이 나라를 지키는 일이 잘되길 바라고있는데 어찌 천균노가 일어서지 못하리오. 념려마오. 박원작이 그러는데 천균노가 살아날수 있는 비방을 찾아냈다누만.》

남권부의 말은 헛소리가 아니였다.

오늘오전 남권부는 그동안 부어낸 뢰등석포를 북계군에 넘겨주는 일로 해서 박원작을 만났었다.

요즘 내내 흐려있던 박원작의 얼굴이 환해져있는것을 본 남권부는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인차 그 의문은 풀렸다.

박원작은 천균노가 돌탄을 멀리로 날려보내지 못한것은 화약탓이라고, 이제는 그 까닭을 알아냈으니 조만간에 끝을 보게 될거라고 자신있게 말했다.…

《그게 참말이란 말이지. 그럼 됐구만. 이제야 술맛이 나겠어.》

조득국은 와락와락 웃동을 벗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목함지에 담긴 삶은 개에 손을 뻗쳤다.

손을 쭉 뻗친 조득국의 털부숭이가슴이며 다리통같이 굵은 팔에서 울끈불끈한 근육덩이들이 힘차게 오르내렸다.

그앞에서 남권부는 황소앞의 애마냥 작아보였다.

《자, 받게.》

조득국은 쑥 뽑아낸 개다리를 남권부에게 내밀었다.

남권부는 자기가 집주인이라는 생각에서 사양않고 개다리를 받아들었다. 받고보니 살이 적게 붙은 앞다리였다.

조득국은 살이 뭉실뭉실한 뒤다리를 뽑아들고 잠간사이에 고기를 후무려쳤다.

《술도 드시면서 고기를 잡수시와요.》

《어, 그러지.》

조득국은 마씨가 내민 술사발을 받아 랭수마시듯 꿀꺽꿀꺽 마셔댔다.

청주쯤은 동이채로 마셔야 간에 기별이 간다고 하는 그였다.

남권부는 조득국의 몰골이 역겨워 두손으로 술사발을 집어들고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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