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3 장

4


김충지는 한낮이 다 되여오건만 거처지로 돌아갈념을 않고 련장뜨락을 거닐고있었다. 오늘은 병마도감이 쉬는 날이다. 숯을 마련못하여 박원작은 쉬라는 분부를 내렸다. 그래서 련장이 조용한것이였다.

허지만 김충지는 남들처럼 쉴수 없었다.

언제면 숯이 풀리겠는지…

류수부를 찾아갔던 남권부가 하는 말은 황보영류수가 병석에서도 숯을 빨리 해결해주라고 관원들을 강동현으로 내려보냈다고 한다.

작은 철덕 하나를 가지고있을 때는 다달이 서경류수부에서 보내주는 숯이면 넉근했는데 지금은 숯이 엄청나게 요구되니 야단은 야단이다.

강동현에는 산이 많고 나무가 울창하여 숯구이막들이 번성한데라 류수부가 직접 나섰다면 인차 숯이 해결될것이다.

어제 남권부는 놋쇠를 빨리 받아가라는 조정의 령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갔다.

이로써 온 병마도감이 조정에서 천균노가 나오기를 얼마나 바라고있는지 더 잘 알게 되였다.

허나 아직도 장공인들의 분위기가 밝지 못하다.

박원작이 직접 나서서 일바람을 불어넣어 일시 련장에 화기가 돌았댔는데 그 가위에 눌리워 숨을 죽였던 싸늘한 바람이 다시 병마도감을 휩쓰는듯 하다.

그게 다 쉬쉬하며 돌아가는 나쁜 소문때문이다. 어떤 놈이 자꾸 그런 소문을 만들어 내돌리는것이 분명하다.

병마도감안에 천균노를 해치려는 못된 무리가 박혀있다는 소문으로 해서 장공인들이 서로 곁을 주지 않고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면 멀리하려고 하니 골치거리다.

김충지는 장공인들이 새로 병마도감에 들어온 사람들속에 천균노를 해치려 하는 나쁜 놈이 배겨있다는 허튼소문을 믿고 자기를 경계하고 멀리하려 한다는 기미를 시시각각 느끼고있었다. 버선목이라고 뒤집어보일수 없듯이 청백함을 증명해보일수 없으니 참으로 난처하게는 되였다.

필경 주위에서 못된 소문을 내돌리는자가 있겠는데 그놈이 누구일가?

김충지는 이 한생각으로 어제밤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였다. 밤새껏 병마도감안의 매 사람들을 짚어가며 흑막속의 그놈이 누구겠는가 따져보았지만 별로 의심되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미타하게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리자연과 가까운 남권부였다.

허나 의심뿐이지 그동안 그의 뒤를 조심히 캐보았지만 건드려볼만한 실마리 하나 걷어쥐지 못하였다. 도리여 그를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생각뿐이다.

그가 천균노를 해칠 나쁜 마음을 가지였다면 어째서 제힘으로 놋쇠를 구해왔겠는가. 그가 한 행동을 보아서는 도무지 그럴수가 없는데… 하여간 그는 두고보아야 할 인물임이 틀림없다.

심국종이도 간과할수 없는 인물이다. 병마도감에 새로 들어온 사람들속에 나쁜 놈이 배겨있다는 소문을 믿어서보다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있은 후 천균노의 주조가 실패하게 되였으니 어쨌든 그도 의심해야 할 대상이다.

허나 그도 뒤를 캐볼수록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대답만 나온다. 그가 나쁜 마음을 가졌다면 하루이틀도 아니고 날마나 련장의 앞장에서 일할수 있는가. 철덕을 쌓을 때에도 그래 거푸집을 빚고 천균노를 부어낼적에도 그래 남들이 다 손맥을 놓았을 때에도 남먼저 련장의 일을 찾아서 한 그가 아닌가. 나쁜 놈이라면 날마다 그런 고된 일을 찾아하지 못할것이다.

결국 심국종은 제쳐놓아야 한다는것이다.

아, 스승은 나쁜 놈을 잡아내야만 천균노를 뜻대로 만들어낼수 있다고 가르쳤는데 아무런 방책도 찾지 못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구나.

스승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 했을가?

김충지가 가슴이 답답하여 한숨을 쉬고있는데 등뒤에서 《자네 쉬지 않고 나왔나?》하는 목소리가 울렸다.

돌아서보니 뜻밖에 팔짱을 낀 심국종이 서있다.

심국종이 반말투로 입을 뗐다.

《객지에선 한고향내기는 다 친구라는데… 울적한 마음을 누를길 없어 자넬 찾아왔네. 허― 우린 다같이 길을 잘못 찾아든것 같애.》

《?!…》

《자네도 소문을 들었겠지. 뭐 타지에서 새로 들어온 사람들이 천균노를 해쳤다구? 내 참 더러워서.》

김충지는 아픈 마음을 헤집어놓는 심국종이 불쾌했으나 그런 내색은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서경사람들의 인심이 그렇게까지 각박한줄은 몰랐네. 내 집일을 하듯 몸을 아끼지 않고 힘껏 일했건만 나중에 차례진건 멸시와 랭대뿐이니…》

심국종의 탄식소리에 김충지도 심사가 뒤틀려 화가 났다.

나쁜 놈이 허튼수작을 꾸며내여 돌린대도 그렇지 어쩜 서경사람들이 그 말을 곧이 듣고 인정없이 그럴수 있을가.

한숨을 길게 내뿜고난 심국종은 김충지의 손을 잡으며 간청하듯 말했다.

《친구! 우리 함께 개경으로 돌아가지 않겠나. 개경내기인 자네가 가겠다면 나도 보통문근처에 산 집을 도루 팔고 자넬 따라가겠네.》

김충지는 갑자기 개경으로 돌아가자는 심국종을 뜨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가다니요?》

《자네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난 사실 남권부 그 량반이 하는 달콤한 말에 넘어가 여길 찾아왔네. 뭐 록봉이 많은 행수자리를 주겠다나? 속았지, 속았어. 한마을에 살던 사람이 어쩜 그런 빈말을 할수 있담.

이보게, 여기 더 남아있다가는 어떤 험턱을 뒤집어쓸지 모르니 우리 함께 떠납세.》

김충지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눈길을 허둥거렸다.

그럴수록 심국종은 더욱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뭇사람이 하는 험담은 무쇠도 녹이고 덧쌓이는 악담엔 굳은 뼈도 삭는다고 하였네. 망설이다 후회말고 어서 결심을 내리게.》

《저…》하던 김충지는 혀를 깨물었다.

자칫하다가는 상대의 수에 넘어가 본색을 드러낼수가 있다. 이런 때는 어리석은척 해야 상대의 본심을 엿볼수 있다.

《로형!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객지로 품팔이를 나섰수? 그래 집 떠나면 호강을 할줄 알았수?》

심국종은 울상이 돼서 혀를 찼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 천균노를 해쳤다는 소문은 그래 우릴 념두에 둔 소리가 아닌가. 그래, 그런 억울한 루명을 쓰고 사람들의 따돌림을 당하면서도 그냥 참자는건가?》

《참지 않으면 별수 있수? 참는자에게 복이 온다는데…》

김충지의 퉁명스런 소리에 심국종은 풀이 죽은 소리로 대척했다.

《내 혼자서라도 개경으로 가고싶지만 그렇게 하면 다들 나에게 루명을 뒤집어씌울거란 말이요. 친구따라 강남도 간다는데… 자네가 남아있겠다면 나도 남아있겠네. 하지만 병마도감사더러 시비는 갈라달라구 들이대야 하네.》

김충지는 손바닥을 뒤집듯 금시 달라지는 그의 마음을 대중할수 없어 대답을 피했다.

심국종은 대답을 받아낼 심산인지 한 말을 또 되풀이했다.

《병마도감사에게 우리들의 청백함을 알리고 험담을 돌린 놈을 잡아달라구 해야 해. 그래야 우리가 수모를 면할게 아닌가.》

김충지는 상대의 진속을 타진해볼 심산으로 불쑥 들이댔다.

《로형보기엔 누가 나쁜 놈인것 같수?》

심국종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김충지, 감히 네가 나를 중떠봐? 이젠 죄다 알만 하다. 네가 최충의 수제자라는데 그것만 가지고도 네가 그의 눈과 귀인줄은 삼척동자도 알렷다. 네가 바로 최충이 쳐놓은 그물인줄 내 모를줄 알구. 흥, 몇마디안팎에 얼굴에 제 마음을 그려내는걸 보면 이런 일엔 젖비린내나는 애숭이야. 그래가지고 누굴 잡아보겠다구. 어림도 없다. 네가 하나를 하면 난 둘셋을 헤아려본다.

심국종은 고양이가 잡은 쥐를 가지고 노는듯한 환각이 들었다.

그는 자기가 고양이라고 여겼다.

《이보라구, 거야 뻔하지 않나. 난말이야, 우리 나라가 강해지는걸 제일 싫어하는 놈이 그런 말을 꾸며냈다고 생각하네. 바로 녀진놈들이지. 더 정확하게는 남몰래 잠입한 녀진놈들이 한것인줄 아네.》

처음엔 무심해듣던 김충지는 귀맛이 돌았다. 듣고보니 심국종의 말이 옳은듯 했다.

녀진을 거란에 비길수는 없지만 그들이 예나지금이나 고려에 해를 적지 않게 끼치고있는것은 사실이 아닌가. 그네들이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거란이 우세해보일적에는 거란편에 가붙어서 우리 나라의 변방을 얼마나 소란케 했던가.

거란이 여러차례나 전란을 일으켰던 고려의 적국으로서 화친을 하자는 그들의 요청에 따라 비록 국교는 맺었지만 고려사람치고 거란란에 너도나도 큰 상처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어찌 그들의 눈과 귀가 되여줄수 있단 말인가.

허나 녀진은 사정이 다르다. 압록강밖에서 거란이 약해진 틈을 타서 급속히 세력을 넓힌 녀진세력들이 고려의 병기에 눈독을 들이지 않을수 없고 동족의 나라로 찾아오는 발해유민들속에 기여들어온 녀진의 간자들이 여기에도 박혀있지 않다고는 단언할수 없다.

김충지의 내심의 변화를 엿본 심국종의 입가에 야릇한 웃음이 비꼈다.

《친구! 나와 손을 잡고 우리 나라를 위하여 녀진것들이 박아넣은 나쁜 놈들을 잡아내보지 않겠나?》

김충지는 정신을 도사렸다.

방금 개경으로 돌아가자고 졸라대던 사람이 즉시 말머리를 돌려 나쁜 놈을 잡아내자는건 도대체 무슨 마음에서일가?

김충지는 슬쩍 딴전을 피웠다.

《로형! 난 그런 일엔 흥미가 없소. 하겠으면 로형이나 혼자 하우다. 난 돈이나 벌어가지고 집으로 가면 그만이요.》

심국종은 유감이라는듯 입을 쩝쩝 다셔댔다.

《자넨 그럼 제살궁리만 하라구. 난 한번 나서볼테요. 빠른 토끼도 사냥개를 만나면 잡히고 남의 속심도 뒤를 밝히는 사람의 눈에는 걸린다는데 두고보라구. 내 꼭 그놈들을 잡아내지 않나. 그때 우리 마주앉아 한잔 나눕세.》

김충지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갈피를 잡을수 없었다.

심국종은 획 찬바람을 일으키며 돌아섰다.

김충지는 련장밖으로 사라지는 심국종을 바라보며 그가 만만치 않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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