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3 장

2


마씨를 홀로 안방에 두고나온 남권부는 외헌에 들어가 배를 깔고 엎드렸다. 마음이 울적하거나 마씨가 알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길 때면 외헌에 들어가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그였다.

그는 그전부터 계집이란 살을 맞대고 살수는 있어도 마음은 통할수 없는 속물이라고 여겨왔다. 벽에는 남의 귀가 붙어있고 문에는 또 남의 눈이 걸려있다는 심국종의 말을 전해들은 다음부터 그런 생각은 더욱 굳어졌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보면 계집들이란 하나같이 사내의 등을 쳐먹자고 하는 요물이라고 할수 있다. 전처 백씨때문에 얼마나 속을 태웠던가.

쩍하면 재물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밥통이라느니, 장작감의 벼슬도 벼슬이냐느니 하며 생트집을 거는 백씨에게 주먹질까지 했지만 종당에는 매번 그 계집앞에 한수 꺾이여 잘못했노라 빌지 않으면 안되였다.

대신은 아닐지라도 참상관(6품부터 종3품)으로서 어사대(후에 사헌부)의 시어사란 관직을 쥐고 관리들의 뒤를 캐는 가시애비의 권세가 두려워서였다.

부부란 하늘을 나는 새 한쌍과 같아서 마음이 달라지면 서로 다른 길로 갈라져가는것 같다.

어느 하루도 제 애비를 믿고 행악을 부리지 않는 날이 별로 없던 백씨는 남권부가 북계병마도감으로 전직되였다고 하자 자기는 개경을 떠날수 없으니 가겠으면 혼자 가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때 남권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렇지 않아도 서경까지 따라내려가서 행악질을 일삼으면 어쩌나 했는데 잘됐다, 눈에 차지도 않는 계집이 도리여 제편에서 갈라지자고 하니 이게 오죽이나 좋은가!

이런 경우를 가리켜 질동이 깨뜨리고 놋동이 얻는다고 할것이다. 야차같이 드살세고 독한 계집이 썩은 과일꼭지마냥 제절로 떨어지니 복이 든셈이였다. 그 이듬해 백씨는 갑자기 배앓이를 하다가 급사하고말았다.

하여 남권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홀로 개경을 떠나왔고 기쁜 마음으로 마씨와 인연을 맺은것이였다.

허나 지내보니 마씨는 또 그 계집대로 안팎이 달랐다. 살아볼수록 남이 먹다 남긴 죽사발을 받아들고 핥아먹는듯 께름했다.

마씨가 기생퇴물이라거나 조득국이 소개해준 계집이여서만이 아니였다.

딴재주라면 몰라라 국자감까지 나온 유식자가 계집의 속통 하나 들여다보지 못하겠는가.

고운 계집은 인물값을 한다고 했다. 백씨와 반대로 바가지를 긁기는커녕 매사에 비위를 맞추느라 아양을 떨어대는 마씨는 먹을수록 냠냠해하는 암고양이를 보는듯 했다.

도대체 그가 사내에게서 무엇을 바라기에 교태를 부리며 찰찰 감기는것일가, 재물때문인것 같기도 하고 그게 아닌것 같기도 했다.

아직은 무엇때문에 그러는지 꼭 찍어말할수 없지만 륙감으로는 어느때건 한번은 사내를 배반하고 달아나버릴 매정한 계집으로만 여겨졌다.

그게 옳다면 마씨에게 속을 주다가 한생을 쫄딱 망쳐버릴수 있었다.

그래서 은근히 마씨를 경계하고 조심하는 남권부였다.

안팎이 다른 계집에게 진속을 터놓아선 안된다. 오늘은 별나게 그런 생각이 더 자꾸 나서 지금 외헌방에 나와 홀로 엎어져버린 남권부였다. 하긴 오늘따라 마음이 더 울적해진것은 마씨때문만이 아니였다. 보다는 쥐상판같은 심국종때문이였다.

벼락맞아 뒈질 그놈이 남의 앞길을 망쳐놓을줄 어이 알았으랴. 그놈이 아니였다면 지금쯤 박원작한테서 화약의 비방을 전수받고있을것이다.

박원작의 속마음은 천균노를 만들어내면 개경군기감에도 염초장을 내오겠다는것인데…

그것도 그럴것이 그 일을 다른 사람도 아닌 이 남권부에게 일임할것을 이미 의논한터가 아닌가. 그런데 쥐상판같은 간사한 그놈이 천균노를 못쓰게 작간을 부렸으니 일조에 그게 다 나무아미타불로 되고만것이다.

눈으로 똑똑히 보지는 못했어도 쥐상판 그놈이 천벌을 받을 못된짓을 한건 불보듯 뻔하다. 그놈을 내놓고 그런 엄청난짓을 할 놈이 어데 있는가. 천균노는 리자연이 바라지 않는것이라며 놋쇠를 받아오지 말라고 충동질을 한 그놈이 그래 거푸집을 빚는 일을 공손히 돕기만 할수 있겠는가.

박원작이 학식은 깊지만 사람을 가려보는 눈은 청맹과니 한가지다. 어쩜 그리도 가짜와 진짜를 갈라보지 못하는지…

대개 지나친 열성을 부리는 사람들은 두가지로 갈라볼수 있는데 하나는 상관의 안중에 들어 출세를 해보자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심보를 가진 놈이 제 본색을 감추자는것이다.

심국종 그놈이 자기의 더러운 본색을 숨겨보려고 그렇게도 열성을 내며 일하는것인데 그런줄도 모르고 박원작은 그놈을 진국으로 믿고있으니 이거야말로 삶은 소대가리가 웃다 꾸레미터질노릇이다. 하긴 일밖에 모르는 외곬배기 박원작이 그럴수밖에 없지. 병마도감에 눈이 바로 배긴 똑똑한 사람이 있어서 심국종 그놈을 잡아치우면 좋으련만… 그건 꿈에서나 바랄 일이고 코코에 앞길을 막아나서는 그놈을 그냥 내버려둘수야 없지 않는가. 그놈을 이 손으로 잡다가는 쥐잡느라 쌀독을 깨는 격이 되겠고…

며칠전 남권부는 서경류수부의 관원들에게 심국종을 처리하도록 부탁을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남잡이가 제잡이된다고 한갖 술친구에 불과한 그들에게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일을 맡길수 없어서였다.

어떻게 해야 쏘는 어금이같은 그놈을 없애치울수 있을가?

이리뒤치락 저리뒤치락대며 끙끙 앓던 남권부는 한순간 《그렇지!》하고 소리치며 벌떡 일어나앉았다.

지금에야 조득국이 생각나다니! 천균노를 꼭 만들도록 해야 한다며 놋쇠까지 구해준 그가 못된짓을 한 심국종을 알면 그냥 두지 않을것이다. 옳거니, 래일당장 조득국이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남권부가 이런 생각으로 흥분해있는 바로 그때 뒤창의 창호지가 뚫어지고 뒤따라 그 구멍으로 무엇인가 날아들어와 방바닥에 떨어졌다.

얼결에 그것을 집어든 남권부는 와들짝 놀랐다.

(이밤중에 누구일가?!…)

남권부는 자리를 차고일어나 뒤창으로 조심히 다가갔다. 뚫어진 창호지구멍으로 달빛에 드러난 밖이 내다보였다.

복면을 쓴 놈이 뒤를 힐끔 돌아다보더니 담장으로 달려간다.

놈은 나는듯이 담장을 타고넘어 사라져버렸다.

남권부는 무섬증이 나 부들부들 떨렸다.

필경 복면 쓴 저놈은 심국종놈이 보낸 끄나불이다. 저놈말고도 심국종놈한테는 중놈이 또 있다.

아, 그러니 그놈들이 이 집의 일거일동을 밤낮으로 살피고있겠구나. 자칫하다가는 도리여 그놈들에게 해를 당하겠으니 이거야말로 범의 굴속에 갇혀있는 그런 신세가 아니고 뭔가!

남권부는 한동안 속으로 넉두리질을 하다가 마음이 진정되자 손에 쥔것을 들여다보았다. 봉서였다.

《무슨 개수작질을 썼을가?》

봉서를 뜯고 글을 꺼내보니 첫줄에 《남의 잔등에 칼을 박으려 하는자는 제 목이 먼저 떨어지는 법이다.》라는 무시무시한 글이 씌여져있었다.

남권부는 시퍼렇게 날이 선 비수가 자기 목에 와닿는듯한 끔찍한 환각에 털썩 그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움츠리며 떨리는 가슴을 부둥켜안았다. 뛰는 놈우에 나는 놈 있다더니 심국종 그놈이 보통이 아니구나. 그놈이 벌써 내 목을 조이고있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한동안 공포로 몸을 떨던 남권부는 용기를 내여 그다음 글줄을 더듬었다.

《의로운자는 두 상전을 섬기지 않는다. 최충과 한패당인 박원작을 따르면 부귀영화는커녕 목숨마저도 보존못하리라. 딴꿈을 꾸다가 두 화살을 맞지 말고 한길을 감이 좋을것이다.》

어느 놈이 이 글을 써보냈을가. 글줄을 다시 뜯어보니 틀림없는 심국종의 필체였다.

남권부는 비로소 자기 몸값이 심국종에 미치지 못하며 그놈이 리자봉의 이름으로 도리여 자기를 부리려 한다는것을 깨달았다.

이거야말로 덫에 치운 신세가 아니고 뭔가!

남권부는 이를 사려물었다.

아니, 아직은 덫에 치웠다고는 말할수 없다.

어떻게 하나 수를 써야 한다.

그놈의 꽁무니나 따라다니다가는 분명 조득국의 주먹다짐을 받을수도 있겠으니 이런 때는 어떤 수를 써야 할가?…

에라,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 편이 낫다고 형세를 보아가며 심국종의 비위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 몰래 화약의 비방을 뽑아내여 리자봉이한테 직접 가져가는 수다. 그래, 그 편이 제일 남즉하다.…

남권부는 이불속으로 기여들어가 눈을 꾹 감아버렸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