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2 장

9


아침에 최충이 궁성앞에 자리잡고있는 중서문하성에 나가니 정문앞에서 리속(아전)이 절을 하며 아뢰였다.

《서경의 병마도감에서 왔다고 하는 이 사람이 참지정사어른을 꼭 뵙겠다고 조르오이다.》

최충은 그제서야 리속의 곁에 꿇어엎드려있는 사람을 띠여보았다.

그가 바로 며칠전 능산이와 함께 서경군기감에 온 번기였다.

번기는 머리우로 두손을 쳐들어 박원작이 전하는 글월을 내밀었다.

글월을 받아보니 장공인들이 화장(불막대기)이라고 하는 《신기한 병기》를 새로 만들어냈다는것과 드디여 천균노를 만들어낼수 있는 궁냥이 섰기에 인차 두개의 큰 철덕을 쌓겠다는 글이 씌여져있었다.

번기를 바래우고난 최충은 북계병마판관을 불러 군기감에 나가 서경에서 온 장공인들을 잘 돌봐주게 하라는 분부를 내렸다.

며칠전 최충은 임금에게 불려가서 북계군을 통솔하는 판북계병마사의 중책을 지니였다.

자기 방에 들어선 최충은 곧 붓을 집어들었다.

놋쇠를 시급히 마련하여 박원작에게 보내주자는 표문을 쓰고싶어서였다.

천균노를 부어내는데서 걸린것은 놋쇠였다.

뢰등석포를 만드는데만도 얼마나 많은 놋쇠가 들었던가.

북계군이 진을 치고있는 성을 꼽아보면 그 수가 적지 않다. 룡감성, 함종성, 안북성과 같이 왕건태조대왕때 쌓은 성이 모두 28개이고 3대 정종대왕시절에 또 덕창진성이며 철옹성 등 5개의 성을 일떠세웠다. 그후 광종대왕시절에 또 15개의 성을 축성했다. 근래에 와서 새로 쌓은 성이 또 10여개이니 북계의 성은 도합 60여개에 달한다. 한개 성에 적어도 뢰등석포를 20여문 주는것으로 보면 무려 1 200여문이나 된다.

뢰등석포 한문을 붓는데 놋쇠 100여근이 든다. 그러니 북계의 성들만 해도 12만근의 놋쇠가 있어야 뢰등석포를 제대로 갖춰놓을수 있다.

어찌 북계에만 군진이 있으랴. 동계에도 수십개의 성이 있고 전국의 성을 다 합치면 막대한 놋쇠가 요구된다.

이러한 때 한문에만도 무려 3만근의 막대한 놋쇠가 드는 천균노를 만들어야 하니 급선무는 바로 놋쇠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임금에게 북계병마도감의 실정을 알리는 표문을 쓴 최충은 즉시 궁성에 사람을 보내 그것을 전하였다.

좀 있어 조정3재(종2품이상의 고관)들은 오후에 입궐하라는 어지가 떨어졌다.

오후에 만월궁의 회경전에서는 어전모임이 있었다.

강헌대왕이 북계병마도감에서 천균노를 만들 차비를 인차 끝내게 된다는데 어떻게 하면 놋쇠를 시급히 대줄수 있겠는가고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리자연이 선코를 떼울세라 선참으로 아뢰였다.

《페하! 지금 군기감이 가지고있는 놋쇠로는 기껏해서 뢰등석포를 백여문가량밖에 부어낼수 없소이다. 그러니 동소(동광산)들에 분부하면 명년가을까지 한 3만근의 놋쇠를 마련할수 있소이다.》

명년 가을까지라는 말에 최충은 부아가 났다.

리자연이 오래전에 맺힌 사사감정을 가지고 대를 이어 국사에 훼방을 놓을줄 몰랐다.

20여년전 최충은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여 간관벼슬인 습유(정언, 6품관)로 천거되였다. 임금에게 정사의 우렬을 론하는 직분을 맡은 최충은 탐오한 벼슬아치들의 죄행을 묶어 임금에게 간한적이 있었다.

그때 리자연의 아비 리한의 죄행도 최충의 입을 통하여 임금에게 알려졌다.

리한은 정2품의 상서우복이라는 권세를 쥐고 백성들의 밭을 수십마지기나 빼앗았을뿐아니라 문서를 꾸며 가난한 사람들을 제 집 노비로 끌어갔다.

불의한짓을 보고 참지 못하는 강직한 최충의 눈에 걸려든 리한은 어전회의에서 된욕을 보게 되였다. 임금은 리한의 잘못을 꾸짖고 밭과 노비를 당장 본래대로 되돌려주라는 어명을 내렸다.

그 일을 가지고 리한은 늙어죽을 때까지 최충을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겼다. 그가 죽으니 아들 리자연이 아비 못지 않게 최충을 미워했다.

아마 리자연은 최충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천균노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면 두팔걷고 돕지는 않아도 뒤다리는 잡아당기지 않았을것이다.

나를 미워하는자는 나의 미움도 받게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최충은 리자연과 개인감정을 품고 싸우고싶지는 않았다. 아량과 바른 언행에는 속이 꼬부라진 사람도 종당에는 감동된다는데…

그렇다고 리자연이 저 하고싶은대로 하여 국사를 그르치는것은 내버려둘수 없었다.

《페하! 천균노를 부어내는 일은 잠시도 지체해서는 안될줄로 아오이다. 나라에 동소가 여러개나 있는데 놋쇠 3만근이 무슨 대수겠소이까.

걸린것은 아직도 일부 재신들속에 천균노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서있지 못한것이오이다. 고을원이 정사를 잘못하면 한개 고을이 녹아나지만 재신들이 국사를 그르치면 나라가 위태해질수 있소이다.》

강헌대왕이 룡상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끄떡였다.

《최공의 말이 지당하오. 시중은 공부와 병부에 령을 내려 한달안에 3만근의 놋쇠를 서경에 보내주도록 하오.》

《알겠소이다.》…

어전모임을 마치고 중서문하성으로 돌아온 서눌시중은 곧 공부와 병부의 상서들을 불러 경상도의 창원동소와 전라도의 룡담동소에 내려가 놋쇠를 가져오라는 분부를 내렸다.

하여 최충은 기분좋게 집으로 돌아갈수 있었다.

집에 돌아온 최충은 방에 들어서자 늘 그러했듯이 초불을 켜고 벽에 그려붙인 《3우도》를 쳐다보았다.

붉은 꽃송이들이 소담하게 핀 홍매화를 중심으로 그 좌우에 세찬 바람에 부대끼며 가지들이 찢어진듯 휘여진 소나무와 참대를 힘있는 필치로 그린 명화였다.

소나무와 참대, 매화를 그린 《3우도》를 고려사람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의 념원을 《3우도》에 담았기때문이다. 불의에 굽히지 않는 고려사람들의 억센 기상과 의지를 소나무에서 찾아본다면 굳은 절개는 참대에서 그리고 고결한 마음과 아름다움은 이른봄 제일먼저 깨끗하게 피는 매화에서 비쳐보았으니 그래서 《3우도》를 명화라 하는것이리라.

이윽고 《3우도》에서 눈길을 뗀 최충은 방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선참으로 안겨오는것은 두 벽을 가리운 책이 가득한 책장이였고 그다음 방바닥에 깐 송도의 명물 왕골돗자리였다.

기이한 꽃을 수놓은 왕골돗자리에 나앉은 최충은 품안에서 종이장을 꺼내들었다. 아침에 받은 북계병마도감사 박원작이 보낸 글월이였다.

최충의 마음은 감개무량하였다. 이 방에서 글을 배운 제자들속에 명화 《3우도》에 심어진 뜻대로 의롭게 사는 제자들이 적지 않다.

박원작이 누구보다 그러하다고 말할수 있다.

박원작에게 그런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서경길을 택하였겠는가.

한시도 《3우도》를 잊지 않는 그이기에 오로지 제 한몸을 나라 위해 바치는것이리라.

제자들이 그렇게 사는데 그들을 키운 스승이란 사람은 더욱 분발해야 할것이다.

그러자면 장성공사를 잘해야 한다. 어떻게 해야 백성들에게 부담이 적게 가면서도 장성공사를 빨리 마무리할수 있을가?

판북계병마사의 직분이면 장성공사를 마음대로 내밀수 있다. 판북계병마사는 수만명의 북계군을 통솔할뿐더러 북계의 군사와 관련한 공사에 백성들을 동원시킬수 있는 권한도 부여되여있다.

예로부터 정사하는 사람은 씨뿌리고 김매고 가을걷이하는 일을 제일 첫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하였다.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밥을 하늘로 삼는다는데 나라를 먹여살리는 천하지대본, 농사에 지장을 주면서까지 성을 쌓으려 해서는 안된다. 농사에 지장을 주지 않고 성을 쌓아야 할것이다.

빠른 시일안에 장성공사와 관련하여 여기에서 해야 할 일들을 말끔히 처리하고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래, 설을 쇠고는 인츰 북계에 내려가야겠어.…

최충은 일어나 책장으로 다가갔다. 그는 책장에서 북계지도를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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