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4


어느새 해는 서산너머로 떨어져버려 사위는 어둠속에 묻혔다. 병마도감에서 제일 붐비는 곳인 련장에서도 장공인들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김충지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련장뜨락을 거닐고있었다.

며칠전 그는 박원작의 일행으로 따라와 병마도감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병마도감을 손바닥처럼 살펴볼수 있는 서기산골안의 중턱에 있는 집을 한채 세내였다. 삼간초가집인데 지은지 얼마 안되여 탐탁해보이는 집이였다.

거처지에 려장을 풀어놓은 김충지는 다음날부터 병마도감에 나와 일하면서 의심스러운 사람들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동녘하늘에 떠오른 반달이 련장뜨락을 거니는 김충지의 모습을 비쳐주었다.

서른전의 김충지는 보통키에 다부진 몸매인데 별로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얼굴에서 그래도 인상에 남다른것이 있다면 코날이 곧아 칼칼해보이는 그것이였다.

그는 낮에 철덕앞에서 팥죽같은 땀을 흘리며 일하느라 피로했지만 좀처럼 떠나지 않는 근심걱정으로 해서 거처지로 돌아갈수 없었다.

과연 스승이 맡겨준 일을 제대로 감당해낼런지…

놋쇠를 녹여 집채만한 물건을 만들라는것은 두려울게 없지만 사람들속에 숨어서 못된짓을 하려는 나쁜 놈들을 붙잡아내는 일만은 자신이 없었다. 숨은 적을 들추어내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통 배운것이 없으니 말이다.

아니, 그건 짧은 생각이다.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큰일을 맡아하겠다는 마음만 굳세다면 무슨 일인들 감당치 못하겠는가.

타국이 박아넣은 간자(간첩)들이란게 실은 자기 동족을 등진 추물이여서 오래 배겨내지 못할것이다. 그런 놈들은 반드시 추악한 몰골에 붙어있는 꼬리를 드러내기마련이니 눈만 밝히면 얼마든지 잡아낼수 있다.

그럼 어떻게 이 일을 펼쳐나갈것인가?

선차로는 박원작과 가까이 사귀는 사람들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필경 적의 눈과 귀는 바로 그들속에 숨어있을것이다.

최충은 대개 수재로 취급되는 인재들은 한가지 일에 몰두하는 정신으로 하여 주위에 대한 감각이 무디고 다른 일에는 무관심하다고 말하였다.

옳은 말이다.

박원작은 오로지 《신기한 병기》에만 정신이 쏠려있을터이니 자기를 가까이하려는 사람들의 진속을 꿰뚫어보려 하지 않을것이다.

그 사람들중에서 누가 딴마음을 품고있을가?

김충지는 련장칸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장공인들과 친숙하게 어울리면서 그 한생각으로 박원작과 가까운 사람들을 예리하게 살피였다.

대뜸 그의 시야에 든 사람은 련장행수 근달이였다. 박원작이 서경에서 제일먼저 사귄 사람이 근달행수라니 그 사람부터 의심해야 함은 자명한 리치다.

대대로 병마도감에서 일해온다는 근달은 철덕앞에서 잔뼈를 굳히였고 하여 쇠를 다루는 일에서는 막힘이 없었다. 아버지와 함께 서희장군에게 보검을 벼려준 그가 딴마음을 가질수 있을가.

박원작과 가까운 사람은 또한 근달의 아들이자 염초장행수인 돌석이였다. 그러니 그를 의심해야 한다.

박원작은 무엇이 그렇게도 믿음직스러워 아버지와 아들에게 병마도감의 노란자위라고 할수 있는 련장과 염초장의 행수직을 맡겨주었을가. 서경본토배기여서인가?

만일 그들부자가 딴마음을 가졌다면 벌써 열두번이고 화약의 비방은 적에게 새여나갔을것이다. 적에게 그 비방이 새여나갔다면 이거야말로 소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아니, 아직은 그렇게 단정할수 없다. 근달이 부자를 나쁜 사람이라 보기에는 지나친데가 있다.

보다 의심이 드는 사람은 병마도감의 소감벼슬을 하는 남권부였다. 리자연과 국자감의 동배라는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여 최충의 문하인 박원작을 가까이하게 되였고 여기 서경까지 따라왔을가.

친구의 친구는 내 친구라는 말은 스승의 적수이자 나의 적수라는 말에 비길수 있을것이다. 리자연과 절친한 남권부는 그가 꺼려하는 최충을 좋아할리 없다. 결국 남권부는 최충이 총애하는 박원작을 좋아할 까닭이 없다.

바로 여기에 무슨 흑심이 있을것이다. 장공인들이 하는 말이 남권부는 겉다르고 속다른 사람이라는것이다. 박원작이 조정의 부름을 받고 개경으로 올라가자 그는 병마도감의 주인으로 행세하면서 (물론 박원작의 위임을 받긴 했지만) 화약의 비방을 내놓으라고 돌석이를 강박하였고 그뿐아니라 놋쇠를 내주지 않아 철덕을 숨지게 하였으며 또 료미마저 제때에 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박원작이 다시 병마도감사로 내려온다는 소문이 나서야 그는 부랴부랴 철덕에 불을 지피게 하였고 료미도 내주었다니 과연 의심이 가는자였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남권부는 앞뒤가 판판 다른 사람이 옳다.

스승은 리자연과 선이 있는 사람들을 놓치지 말고 그뒤를 헤쳐보라고 하였다.

신의가 있는 사람은 의심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다. 남권부에게 신의가 있다고 말할수 있는가.

그에게 신의가 있다면 박원작의 부탁대로 그동안 병마도감의 일을 말썽없이 해나가야 했다. 확실히 남권부에게는 신의가 엿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그를 의심해야 함은 정한 리치다. 남권부 그사람을 과녁으로 정해놓고 그와 손을 잡은자들을 따져보는것이 좋을듯 하다.

남권부! 어디 한번 맞서보자!

마음의 탕개를 바싹 조여서인지 김충지는 늦저녁이지만 배고픈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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