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1 장

14


술이 거나해진 박원작은 해질무렵에 집으로 돌아왔다. 10년어간에 술을 많이 마셔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였다.

주량이 청주 두사발이면 족한데 오늘은 허리띠를 풀고 마음껏 마셨다.

아마 댓사발은 잘 마셨을것이다. 최충의 생일날이여서인지 술이 마구 당겼다.

집뜨락에 들어서니 죽화가 달려나와 웃방으로 이끌었다. 방이 훈훈했다.

《아버님, 편히 쉬시와요.》

죽화가 펴준 포단우에 누웠으나 잠이 찾아들지 않았다.

어느덧 11월도 지나버리고 대설을 가까이했다. 그러니 서경을 떠나온지 벌써 수십일이 되였다.

날이 갈수록 커만지는 근심은 어떻게 해야 천균노를 만들어낼수 있을가 하는 그것이였다.

오늘 잠시나마 그 근심을 잊고 웃기도 하고 춤도 추었다.

얼마나 즐거운 날이였던가. 최충의 생일을 축하하여 그의 집이 좁다하게 숱한 제자들이 모여들었으니 어찌 흥성거리지 않을수 있겠는가.

이 개경장안에 나의 스승처럼 제자를 많이 둔 사람은 없을것이다.

몸은 비록 국자감에 두지 않았어도 언제나 후진을 길러내는 스승된 마음으로 지나가던 길에 책을 읽는 젊은이만 보아도 아는것이 힘이라고 조언을 주고서야 갈 길을 가는 그였다.

남들이 부러워하도록 국력을 기르려면 인재가 많아야 하는데 그 인재는 하늘이 내여주는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나라 젊은이들을 가르쳐 키워야 한다는것이 스승의 지론이였다. 스승의 꿈은 온 나라에 책읽는 소리가 울려넘치게 하는것이였다.

해주의 평범한 선비집에서 태여난 최충은 어려서부터 공부하기를 좋아하여 학식과 문장이 훌륭했다.

21살에 과거에서 장원으로 급제한 그날부터 스승은 더 깊은 학식을 다지면서 후진을 기르는 일에 힘써왔다. 그동안 두차례나 지공거(책임시험관)로서 과거를 주관하여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그들이 지금 조정에서 한몫씩 맡아한다.

오늘 스승은 제자들이 부어올리는 술잔을 받으며 당부하기를 벼슬길에 올랐다고 해서 자만하지 말고 손에서 늘 책을 놓지 말라고, 그래야 나라앞에 의로운 일을 더 많이 찾아할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앞으로 자기는 벼슬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게 되면 집뒤로 학당을 크게 짓고 숨질 때까지 후진을 기르겠다는 속생각도 터놓았다.

스승의 집이 있는 부산동의 입구는 경치가 좋은데다가 터도 어지간히 있어 얼마든지 학당을 앉힐만 했다.

깍지낀 두손으로 턱을 고이고 엎드린 박원작은 마치 길을 가며 눈여겨보듯 부산동의 일대를 그려보았다.

만월궁의 동쪽곁에 고려의 10대사찰로 손꼽히는 큰 절간인 왕륜사가 있다.

왕륜사의 옆에 송악산의 깊은 골안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이 나진다. 그 개울을 타고 동쪽으로 가느라면 수림과 괴암들이 아름답게 펼쳐진 광문동의 입구로 들어서게 된다.

이곳에 날마다 풍류객들이 찾아와 춤과 노래로 즐긴다고 하니 과연 명소라고 할만 했다.

개울을 따라 좀더 가면 한여름철에도 이가 시린 랭천이 솟구치는 박우물이 나진다.

거기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면 박우물을 병풍처럼 두르며 록음우거진 소나무숲이 멋드러지게 어우러진 깊은 골짜기를 올려다볼수 있다.

바로 그곳이 송악산명소중의 하나인 부산동어구이다.

최충은 그후 벼슬살이를 그만둔 인생말년에 자기의 뜻대로 부산동어구에 학당을 일으켰다. 락성, 대중, 성명, 경업, 조도, 솔성, 진덕, 대화, 대빙 등 9개의 서재로 나누어진 학당을 짓고 후진들을 키웠는데 세상은 그들을 가리켜 《시중 최공의 학도》라고 불렀다.

과거를 보려는 젊은이들은 의례히 먼저 최충의 학도로 들어가 공부하였는데 해마다 여름철이면 9재학당도 모자라 귀법사의 승방까지 빌려가지고 글을 가르치지 않으면 안되였다.

최충의 소행을 본받아 그후에 정배걸, 로단, 김상빈, 김의진 같은 여러 선비들도 곳곳에 사학을 일으켰다.

하여 마을마다 책읽는 소리가 넘쳐나게 되였으니 최충은 마침내 자기의 꿈을 실현할수 있게 된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10년후의 일이였다.

박원작은 스승에게 술을 부어올리던 장면을 생각하니 감회를 금할수 없었다.

오늘 최충은 박원작이 부어올린 술만은 쉽게 들지 못했다. 한동안 술잔을 부여잡고 정찬 눈길로 박원작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인재를 많이 길러내는게 내 소원이다보니 나라의 방방곡곡에 학당들을 세우고싶으이. 허지만 국력이 약하면 그게 다 구름우에 루각을 짓겠다는것처럼 허황한것일세. 천균노와 같은 위력한 병기들로 군사들을 장비시키고 철벽같은 장성을 쌓아 나라의 안전을 굳건히 담보할 때 비로소 온 나라에 진정한 학풍을 세울수가 있네. 난 자네를 믿네.》…

어느새 눈물이 글썽해진 박원작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앉았다.

스승의 고무와 지지가 있는데 내 어찌 천균노를 만들어내지 못하랴.

《웃방에서 자느냐?》

부드럽게 울리는 한씨의 목소리에 박원작은 미닫이문을 열었다.

《어머님.》

《글쎄 어쩐지 자는것 같지 않다 했더니…》

박원작은 아래방으로 내려가 한씨앞에 앉았다.

《어머님, 어데 몸이 편찮으시오이까?》

《아니, 그런게 아니고… 내 한마디 하라느냐?》

《원 어머님도,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시오이다.》

귀밑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질하고난 한씨는 나직하나 엄한 어조로 말했다.

《내 아녀자로서 나라일에 간참하는것 같지만 언제 서경으로 가려 하느냐?》

박원작은 무심하게 대답했다.

《조정에서 설을 쇠고 내려가라 했소이다.》

《?!…》

한씨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어렸을적에 들은 소리인데… 고구려때 어떤 장수는 부친의 병이 위중하였지만 집에 들리지 않고 싸움이 벌어진 변방으로 나갔다고 하더라. 지금 거란란이 끝난지 스무해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나라는 평온하지 못하구나. 들려오는 소문엔 변방에 오랑캐들이 무시로 출몰하여 마을들을 불지르고 사람들을 죽인다는데… 병기를 만들어내는 직분을 맡은 아범이 어찌 한가하게 집에서 맴돌수 있단 말이냐. 난 내 자식이 제 어미와 함께 설이나 쇠자고 중한 일을 미루는것을 원치 않는다.》

선잠에서 깨여난 죽화가 한씨의 팔에 매달렸다.

《할머니, 난 아버지와 함께 설을 쇠고싶어요. 조정에서도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아버지를 생각하여 설을 쇠고 가라하지 않았나요.》

죽화의 애원소리에 박원작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굴러떨어졌다.

한씨의 질책소리가 준절하게 울렸다.

《죽화야, 그럼 못쓰느니라. 아버지는 네 아버지이기 전에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사다. 병기를 만들라는 임금의 령을 받은 신하가 어찌 사사로운 일에 발목을 잡힐수 있단 말이냐.》

박원작은 눈물을 거두고 죽화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얘야, 할머님말씀이 옳다. 이 아비는 천균노라는 화포를 시급히 만들어내라는 임금의 어지를 받은 몸이다. 어지를 받은 신하가 우에서 설을 쇠고 가랜다고 어찌 그렇게 할수 있겠느냐.

어머님! 제 생각이 짧았소이다.》

한씨가 죽화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죽화야, 우리 나라일을 먼저 생각하자꾸나.》

《알았사와요, 할머니.》

《그래야지.》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