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12


오늘도 박원작은 이른새벽에 밥을 먹고 만월궁앞에 있는 서적소(금속활자와 서적보관사업을 맡아보는 중앙관청)를 찾아갔다. 겨울치고 날씨가 푸근하여서 아침일찍부터 책을 펼쳐보기 좋았다.

박원작이 며칠째 고금의 서적들이 비치되여있는 서적소를 찾는것은 천균노에 대한 자세한 글을 보고싶어서였다.

구면이 된 서적소의 관원이 군말없이 박원작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서적소에 들어선 박원작은 관원에게 다른 나라 고서들을 볼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어제까지는 고구려와 신라, 백제때부터 전해오는 서적들을 샅샅이 뒤져보았다. 하지만 천균노에 대한 글은 찾아보지 못하였다.

고구려에 천균노가 있었다면 그때 서적들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어야 할것이다. 하긴 대부분의 고구려서적들이 당나라군의 침입으로 불타버리고 극히 적은 서적들만 남아있으니 그럴수도 있는 일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웃나라 서적들을 뒤져볼 생각으로 일찌기 집문을 나선 박원작이다. 혹시 거기에 천균노에 대한 글이 실려있을지 어이 알랴.

수천권이 넘을 다른 나라의 서적들이 넓은 방의 책장들에 들어있었다.

박원작은 우선 표제들부터 훑어나갔다.

《순상주역》, 《경방주역》, 《정강성주역》, 《황제침경》, 《공손라문선》, 《수경》, 《우보진기》, 《반고집》, 《양웅집》, 《왕희지소학편》, 《고금악록》, 《범장편》, 《수조자》, 《호비자》, 《사마상여집》… 같은 유교교리와 의술, 지리, 음악, 시문 같은 책들은 그냥 스쳐보내고 《사승후한서》같은 사기책들과 《병서집요》같은 병서들, 지어는 전 24권으로 된 《제갈량집》까지 뒤져보았다. 그러나 천균노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수 없었다.

박원작은 기가 막혀 한숨을 내뿜었다. 그래도 력대 서적들이 배치되여있는 서적소를 찾아가면 천균노에 대한 표상쯤은 얼마든지 얻을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주저없이 그것을 만들겠다는 표문을 임금에게 올렸는데 호미난방격이 되였으니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박원작이 실망감에 사로잡혀 산더미같이 골라놓은 책들을 멍하니 지켜보고만 섰는데 관원이 들어와 밖에서 누가 찾는다고 아뢰였다.

누구일가? 서적소까지 따라와 찾는 사람이…

뜨아한 기분으로 밖에 나선 박원작은 놀랐다. 평복차림의 최충이 마당에 서있는것이였다.

《사부(스승을 존경하여 부르는 말)님!―》

박원작은 늘 입에 오른 말투로 최충을 사부라 소리쳐부르며 허둥지둥 다가갔다.

허리를 깊이 숙여 읍을 차리는 박원작을 정겹게 바라보며 최충이 말했다.

《자네네 집에 사람을 띄웠더니 여기에 있을거라고 하더군. 오늘은 날도 따스하니 머리쉼을 할겸 장안구경이나 할가?》

《고맙소이다.》

《그럼 됐네. 어참, 이 정신 보지. 알고 지내라구.》

최충은 뒤에 선 사람을 앞으로 내세웠다. 보통키에 다부지고 얼굴에 별로 두드러져보이는데가 없는 젊은 사내였다.

《몇해전 국자감을 우수생으로 마친 내 제자일세.》

젊은이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차렸다.

《김충지라고 하오이다. 어려서부터 호연(최충의 자)사부님의 문하에서 글을 깨쳤소이다.》

박원작은 벙긋 웃으며 김충지의 손을 잡았다.

《아, 그러니 우린 동문생(한스승에게서 같이 배운 제자)이로구만. 이렇게 알게 되여 반갑소.》

《자, 그럼 떠나볼가.》

최충이 앞서고 그뒤를 두 제자가 따랐다.

어데로 가자는것일가.

박원작은 의문이 가득해서 최충이 가는대로 걸음을 옮기였다. 최충은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하였다.

중서문하성이며 상서6부가 자리잡은 관청앞을 지나 남산(자남산)을 가까이하니 큰길 좌우로 끝간데없이 긴 행랑이 펼쳐졌다. 행랑앞으로는 가지각색의 채붕을 쳤는데 거기서 온갖 물건들과 음식들을 파는 사람들이 길손들을 끄느라 열을 올리고있었다.

최충이 어느 한 음식점을 가리켰다.

《마침 점심참이니 저기서 뜨끈한 추어탕을 먹고갑세.》

박원작은 스승을 만류하고싶었으나 사람들이 지켜보는것 같아 참고말았다.

아무리 평복차림으로 잠행을 한다 해도 한 나라의 재상인데 백성들이 드나드는 보통 음식점에 모실수 있는가.

그러거나 말거나 최충은 성큼성큼 걸음을 내짚었다.

《내가 마음 쓰는것이니 자네들은 아무말 말게.》

최충을 따라 음식점에 들어서니 밥을 사먹으려던 사람들이 검은색공복을 입은 박원작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박원작은 난처해서 최충을 바라보았다. 아무말말고 앉으라는 최충의 눈길을 거역할수 없어 그는 사람들이 내준 자리에 엉거주춤 앉았다. 그곁에 최충과 김충지가 비좁게 자리를 잡았다.

음식점주인이 황급히 박원작에게 달려와 허리를 굽석였다.

《저… 나리님. 추어탕외에 무슨 음식을 더 드시겠소이까?》

박원작은 더욱 난처해졌다. 음식점에 별로 나다니지 않아 추어탕집에서 어떤 음식을 덧내는지 알수 없으니 무엇을 내라고 청할수 있단 말인가.

최충이 무안해하는 박원작을 대신하여 입을 열었다.

《우리 주인님은 닭고기볶음을 좋아하오. 그러니 추어탕 세명분에 닭고기볶음 세접시, 청주 한되를 내오시오.》

인차 큰상에 음식이 차려졌다.

최충이 박원작에게 먼저 수저를 들라는 눈짓을 했다.

(에라, 할수 없지.…)

박원작은 송구스러운대로 숟갈을 먼저 집어들었다.

점심을 치르고나서니 음식점주인이 문밖에까지 따라나와 박원작에게 또 들리라고 인사를 하였다.

길에 나서자 박원작이 불평을 터뜨렸다.

《원, 사부님두. 옹색해서 혼났소이다. 이런 법이 어데 있소이까?》

《그게 바로 사람사는 재미일세. 이담에 자네도 제자들을 두면 그런 재미를 알게 돼.》

한담을 하며 최충을 따라가니 뜻밖에도 룡수산아래에 있는 광통보재선사(후에 연복사)로 들어서는것이였다.

박원작이 의아해하자 최충은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머리쉼은 이런데서 해야 하는걸세.》

개경장안에 숱한 절당들이 있건만 별로 드나든적이 없는 박원작은 광통보재선사에 들어서자 그 현란함에 어리둥절하였다.

《신통지문》이란 현판이 붙은 중문안에 이르니 그 웅장하고 화려하기가 만월궁에 비길만 하였다.

절간안에는 왕궁처럼 3지9정도 있었고 아찔하게 높이 솟은 5층루각도 보였다.

200척(60m)의 높이를 자랑하는 5층목탑을 법당앞에서 보았을 때 박원작은 《야!―》하고 경탄이 저절로 나갔다.

보건대 최충은 이 절을 한두번만 드나들지 않은것 같았다.

그는 별로 한눈을 팔지 않고 제자들을 《라한보전》이란 글이 씌여진 금당안으로 이끌었다. 금단청한 라한보전은 정말 으리으리하였다.

금신선이라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는데 그것들이 어찌나 크고 요란한지 목을 뒤로 젖히고 쳐다보아야 했다.

박원작은 스승이 하는대로 두손을 합장하고 부처앞에 공손히 섰다.

최충이 속삭이듯 말했다.

《석가불의 근량이 한 수천근은 실히 되겠군.》

김충지가 응수했다.

《예, 그쯤 되겠소이다.,》

《좋아, 그럼 나가봅세.》

금당을 나선 최충은 하늘을 찌를듯 아스라하게 높이 솟아있는 목탑아래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김충지에게 눈길을 주며 물었다.

《우리 나라에서 크다고 할수 있는 불상들이 어데 있더라?》

김충지가 제꺽 대답했다.

《경주에 있는 분황사약사불상이오이다. 신라 경덕왕 14년(755년)에 본피부의 장공인 강고내미가 주관해서 만든것인데 무려 30만 6 700근(약 184t)의 놋쇠가 들었다고 하오이다.》

박원작은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방금 본 불상들도 엄청나게 커서 경탄을 했는데 그보다도 수십수백배나 큰것도 있다니 그 말을 어떻게 곧이 듣겠는가.

김충지는 외워둔 말인듯 거침없이 이어나갔다.

《그보다 더 큰 불상도 있소이다. 분황사의 약사불상을 만든 거의 같은 시기에 왜섬으로 건너간 백제의 장공인들은 교또에 동대사절간을 세우고 73만근(약 440t)이나 되는 대불을 부어냈소이다.》

박원작은 놀랍기만 하여 또다시 눈을 크게 떴다.

김충지를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최충이 거듭 물었다.

《좋아, 그럼 우리 나라에서 크다고 할수 있는 종들은 어데 있는가?》

김충지의 대답은 거침없었다.

《예, 제일 큰 종으로는 신라 경덕왕 13년(754년)때 장공인 리상댁의 하전(종)이 주관해서 경주의 황룡사에다 만들어놓은 종이오이다.

1장 3촌(약 4m)의 높이를 가진 황룡사종의 무게는 49만 7천근(약 300t)을 넘는다고 하오이다. (황룡사종은 13세기 고려에 침입한 몽골군에 의해 파괴되여 없어졌다.) 버금가는 종으로는 신라 혜공왕 7년(771년)에 박한미, 대나미 같은 장공인들이 경주벙독사에 부어놓은 종이오이다. 에밀레종이라고도 하는 봉덕사종은 백치(3. 3m)의 높이에 12만근(72t)의 놋쇠가 들었다고 하오이다.》

《잘 알겠소.》하더니 최충은 다시 물었다.

《자네 조부께서 십왕사종을 만드는 일에 관여했다지?》

그 물음에 김충지는 얼굴색이 어두워지더니 풀이 죽어 대꾸했다.

《그때 소생의 조부뿐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역적 김치양(?―1009년 반란을 꾀하다가 처단됨.)의 속심을 알수 없었지요. 그러다보니 그놈이 반역하리라는것도 모르고 시키는대로 십왕사절간에 종을 부어 바쳤소이다. 이제는 깨여버려 없어졌지만 그 종을 만드는데 10만근의 놋쇠가 들었고… 개경장안에서는 제일 큰 종이였다고 하오이다.》

최충이 웃으며 말했다.

《이 사람 김공! 내가 십왕사종에 대해서 물은건 다른게 아니고 자네가 그런 큰 종을 만들수 없겠는가 해서일세.》

《원, 선생님두. 소생의 집안이 대대로 쇠를 녹이는 일을 해왔는데 아무렴 그만한 종을 부어내지 못하겠소이까.》

《아주 좋아!》

최충은 젊은 제자의 어깨를 두드리고나서 박원작에게로 눈길을 옮겼다.

《박공, 나도 천균노에 대해서 좀 알아보았네. 십여년전에 그러니까 강감찬장군께서 돌아가시기 이태전이였어. 그때 장군께서 여담삼아 말씀하시기를 자기에게 고구려실록 비슷한 책이 하나 있다고 하더군. 그 생각이 나서 며칠전 장군의 옛집을 찾아갔댔어. 장군의 아드님인 강행경공이 그 책을 찾아주기에 펼쳐보니 마침 천균노에 대한 글이 있더군.》

박원작은 껑충 뛰고싶은 심정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천균노에 대한 글을 얻어냈다는것은 료원한 사막에서 샘을 찾아낸것만큼이나 큰 경사가 아닐수 없었다.

《고구려 영양왕(31대 임금) 24년(613년) 2월조에 이런 글이 씌여있었네. 〈임신년(612년)에 300만대군으로 우리 나라에 쳐들어왔던 수나라군사들이 몰살되고 구사일생으로 도망쳐간 수양제가 또다시 고구려를 치려고 하자 그의 신하들이 다음과 같이 여쭈었다고 한다. 고구려에는 천균노라고 하는 대포까지 있어 만대의 병거(기마전차)를 들이밀어도 대적할수 없소이다.〉, 이게 다야.》

천균노의 생긴 모양뿐아니라 그 위력까지 죄다 알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박원작은 그만 망연자실하여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마치도 입에 넣었던 떡을 졸지에 남에게 빼앗긴듯한 심정이였다.

최충이 껄껄 웃었다.

《이보게 박공! 그쯤한 일에 락심하다니. 자네가 언제 입에 넣어준 떡만 먹었나? 무에서 유를 만들어낸 자네가 아니나.

고구려에 천균노가 있었다는것만으로도 자넨 시작을 뗐다고 할수 있어.

그럼 어떻게 해야 천균노를 만들어낼수 있겠는가? 그전에 어찌하여 고구려의 선조들이 분명 3만근짜리 화포를 만들어놓고 그걸 천균노라고 불렀는지 그 뜻을 알아야 할거네. 선조들은 3만근이나 되는 위력한 화포가 고구려에 있다는걸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지 않았을거네.

그래서 남들이 들어도 그저 큰 쇠뇌라는 느낌을 주려 일부러 쇠뇌라는 말을 덧붙여 천균노라고 했을거네.

이것만 보아도 선조들의 예지와 선견지명을 알수 있거든.》

박원작은 그제야 비로소 《천균노》라는 이름자체에 품었던 의문이 풀렸다.

스승의 말이 옳았다.

《내 생각에는 옛적의 천균노가 어떻게 생겼는가 하는 그걸 알려고 할게 아니라 새롭게 만든다는 자세에 서야 한다고 보네. 자네 부친이 한것처럼 말일세. 자네 부친이 밝혀낸것처럼 고구려때에는 오늘과 같은 화약이 아닌 염초만을 썼거든.

세상에 없는걸 만들어내겠다는 자세에 서면 반드시 좋은 궁냥이 떠오를걸세.》

그 말에 박원작은 천균노를 꼭 만들어낼수 있다는 자신만만한 배심이 그득히 차오름을 느꼈다.,

《박공! 자네에게 김공을 붙여주겠어.》

박원작도 놀랐지만 충지는 더욱 놀라와하였다.

그럼 박원작이를 도와 병기를 만들게 하려고 놋쇠를 녹여 불상이며 종을 만들었던 조상들의 업적을 새기도록 한것이란 말인가.

며칠전 최충은 집에서 과거시험공부에 몰두하고있는 김충지를 불러내여 선조들이 놋을 녹여 어떤 불상이며 종을 만들었는지 그걸 알아보게 하였다.

대대로 장야서의 말직벼슬을 하면서 쇠를 녹여온 집안에서 태여난 김충지에게는 남다른 꿈이 있었으니 그것은 과거에 급제하여 장야서나 군기감의 벼슬을 받아가지고 나라의 쇠를 녹이는 일을 주관하는것이였다.

다른 나라들보다 더 강한 쇠를 뽑아내여 병쟁기며 농쟁기를 더 좋게 만들어내겠다는것이 바로 김충지의 소원이였다.

최충은 김충지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김공! 오늘날 자네가 설자리는 남들이 우릴 넘보지 못하도록 위압할수 있는 천균노같이 위력한 병쟁기를 만드는 곳일세. 이외 뭘 더 말하겠나.》

김충지는 고개를 숙이며 《말씀의 뜻을 잘 알겠소이다.》라고 목메여 말했다.

《그렇게 리해해주니 고마우이.》

박원작은 비로소 스승이 왜서 자기를 절당으로 이끌었는지 그 마음을 알수 있었다.

스승은 바로 천균노를 만들자면 수만근의 쇠를 단번에 녹여내여 큰 물건을 부어내는 재간을 가진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한다는것을 깨우치려 한것이였다.

(사부님, 고맙소이다!)

박원작은 김충지의 팔을 잡으며 힘주어 말했다.

《김공! 우리 함께 서경으로 가기요.》

《박공!…》

최충은 두 제자를 량켠에 끼고 정겹게 말했다.

《설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푹 쉬고 가도록 하게.》

《사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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