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8


북계병마도감사 박원작은 서경을 떠난지 여러날만에 500리길을 말을 몰아 개경에 들어섰다.

그의 뒤를 수질구궁노가 실린 마차를 호송하는 여러명의 마군들이 따르고있었다. 경군의 교위(군관)가 통솔하는 그들은 서경병마도감에서 만든 수질구궁노를 가져오라는 임금의 어지를 받은 군사들이였다.

박원작은 그들이 서경에 당도한 그 이튿날 수질구궁노를 마차에 싣고 상경의 길에 올랐던것이다.

개경서문인 오정문에 들어서자 교위가 물었다.

《병마도감사님,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이까?》

박원작은 말을 멈춰세우고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미 해는 서녘으로 기울어 좀 있으면 땅거미가 깃들것이다. 임금은 어지에서 북계병마도감사는 군사들과 함께 수질구궁노를 가져오라고만 하였지 언제까지 어느 관청으로 당도하라는 분부는 없었다.

그러니 집에 가있으면서 다음번 어명을 기다리라는 뜻일것이다.

박원작은 교위를 돌아보며 일렀다.

《그대들은 군영으로 가게. 나도 집으로 가겠소.》

《알겠소이다.》

박원작은 사직골로 말을 몰았다.

집마당에 이른 박원작은 선뜻 어머니를 소리쳐부를 용단이 나지 않았다.

한것은 찌글사한 집의 한적한 정상이 가슴을 허벼서였다. 할아버지때 낡은 재목으로 지은 집은 그동안 손을 대지 못하여 퍼그나 기울어져있었다.

관리의 집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초라한 이 집에서 어머니가 가난하게 살고계시는것이다.

그래 이 정상이 록봉이 적은 나의 낮은 벼슬탓때문만인가? 별로 쓰고 남을게 없는 적은 록봉이나마 고향집에 지극한 관심을 돌렸더라면 어머니가 이렇게 가난하게 살지는 않을것이다.…

기울어가는 집에서 선참 달려나와 맞아준 사람은 딸 죽화였다. 문을 열고 나오던 열두살난 죽화는 초라한 집을 가슴아프게 바라보며 마당에 들어서는 박원작을 알아보고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아버지!―》

죽화가 목메여부르며 품에 안기는데 찌그러진 부엌문이 열리며 어머니 한씨가 나섰다.

《아범아―》

박원작은 말이 나가지 않았다. 올해 정초에 찾아왔을 때보다 더 늙어서 백발에 주름투성이의 얼굴인 어머니를 보느라니 가슴이 미여지게 아파왔다.

《어머님! 어쩜 그리도 늙으셨소이까?》

박원작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꺼칠꺼칠한 한씨의 손이 박원작의 손에 닿자 따뜻한 정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오는 백발을 뉘라서 피할테냐. 이게 사람사는 리치거니 너무 마음을 쓰지 말아.

그래 영준이도 영준 어멈도 다 잘 있겠지?》

《예, 다 잘 있소이다.》

박원작을 따라와 사립문밖에서 서성대던 군사들이 짐을 안고 들어섰다. 박원작은 그제서야 군사들이 짐때문에 군영에 돌아가지 못했다는것을 알아보았다.

교위가 몸가짐을 바로하며 박원작에게 말했다.

《수질구궁노는 저희들이 병부로 가져가겠소이다.》

군사들이 돌아가자 박원작은 그들이 토방우에 올려놓은 짐을 안고 방으로 들어갔다.

박원작은 짐을 헤치고 눈같이 하얀 치마저고리를 꺼내들었다.

《어머님, 이건 며느리가 어머님것으로 지은 옷이오이다.》

치마저고리를 받아든 한씨는 혀부터 끌끌 찼다.

《원, 바느질솜씨가 참 예쁘기도 하구나. 어쩜 손부리가 이렇게 여무질가.…》

박원작은 이어 노랑저고리와 다홍치마를 꺼내 죽화의 품에 안겨주었다.

《이건 네 어미가 너에게 주는거다.》

죽화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가 방울지어 떨어졌다.

《아버지!…》

눈물을 흘리는 죽화를 바라보는 박원작의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전처에게서 자식은 죽화 하나뿐이다. 일찌기 어미를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 딸에게 아버지로서 자욱에 남을만한 깊은 정을 기울여주지 못했는데 해연이 그걸 메꾸어주는것이였다.

《아범아! 이 말만은 후에 하려고 하였는데 오늘 아무래도 해야겠다.》

한씨는 웃방에 올라가 채롱을 안아왔다. 채롱안에는 오승포(당시 화페대용으로 쓰던 베천)가 한가득 차있었다.

의아해하는 박원작을 바라보며 한씨는 옷고름으로 눈굽을 찍어냈다.

《이건 그동안 영준 어미가 용돈으로 쓰라고 틈틈이 인편으로 부쳐온건데 난 죽화의 혼례식에 쓰려고 이걸 고이 간직했드랬다.》

박원작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8년전 가을 해연을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어머니는 첫눈에 마음이 비단결같아보인다고 하며 흡족해하였었다.

정말이지 한씨의 기대에 벗어나지 않은 해연이였다.

《아범아, 언제면 온 식솔이 함께 모여살수 있겠느냐?》

《불원간 모여살것 같소이다.》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지 죽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말씀 참말이나이까?》

《허― 네가 곧이 들리지 않는 모양이구나.

어머님, 모름지기 이번에 조정에서 저를 군기감으로 전직시킬것 같소이다.》

한씨는 아들의 그 말에 눈굽을 찍으며 웃음을 지었다.

《고생끝에 락이라더니…》

이튿날 아침, 박원작은 웃방의 앉은뱅이책상우에 늘 놓여있던 꽃병이 없음을 알아차리고 딸에게 물었다. 죽화는 대답대신 눈물을 앞세웠다.

한참만에야 입을 열어 죽화가 하는 말을 듣느라니 분노가 치밀었다. 잡으라는 쥐는 안잡고 씨암닭만 문다고 라졸들이 하는 짓을 보면 전탕 사람들에게 해되는짓뿐이였다. 무지스러운 그것들이 나중에는 관리네 집에까지 뛰여들어 못된짓을 하다니!

올봄에 라졸들은 여기 사직골마을에도 나타나 집집을 샅샅이 뒤지며 돌아쳤다. 나라에서 금주령이 내렸으니 밀주장사군을 잡아낸다는것이였다.

해연이 보내준 돈을 하나도 축내지 않고 어떻게 하나 제손으로 살아가려 애를 써온 한씨는 부자집대사에 쓸 술을 맡아나서게 되였다.

바로 그때 라졸들이 집에 들이닥쳤던것이다. 한씨는 사색이 되였다. 관리네 집이라고 했다가는 아들의 얼굴에 흑칠을 할것 같아서 그렇게는 못하고 술독을 발로 차며 무작정 관가로 잡아끄는 라졸들에게 무릎을 꿇어 제발제발하며 용서를 빌었다.

큰 도적이나 잡은듯 기광을 부리던 라졸들은 책상우의 꽃병을 띠여보고 덮치듯 집어들었다. 한씨가 그것만은 안된다며 오승포를 대신 내주었으나 라졸들은 그것마저도 몽땅 걷어가지고 물러가버렸다.

박원작은 억이 막혀 주먹을 틀어쥐였다.

죽화에게 물려주어야 할 꽃병을 잃었으니 전처에게 죄를 짓게 되였다.

그 꽃병은 박원작이 전처에게 사준 귀물이였다.

안해는 가난한 선비집 딸이다보니 시집올 때 변변한 물건 하나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런 안해를 보다못해 어느날 박원작은 그를 데리고 시전에 나갔다. 안해더러 아무거든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잡으라고 했더니 그는 자기전에서 꽃병을 집었다. 아름다운 비색바탕에 포도무늬상감이 령롱한 빛을 뿌리는 꽃병이였다.

꽃병을 사든 안해는 몹시 기뻐하였다.

그 다음날에야 박원작은 왜서 안해가 하많은 물건가운데서 꽃병을 골라들었는지 그 마음을 알수 있었다. 안해는 향기로운 꽃을 꽃병에 넣어서는 박원작이 글을 읽는 책상우에 놓아주었다. 그 꽃병에는 남정네의 글공부를 돕고저 마음을 쓰는 안해의 정이 담겨져있었다.

10년전 안해가 독감에 걸려 갑자기 잘못되였을적에 박원작은 그 꽃병을 관속에 넣어주려고 하였다. 그때 한씨가 그 꽃병은 며느리의 손때가 묻어있는 유일한 재산이니 죽화에게 물려주는것이 좋을듯 하다고 해서 그냥 책상우에 놓아두었던것이다.

《에익, 괘씸한 놈들!…》

기분이 잡친 박원작은 아침밥을 드는둥마는둥 몇술 뜨고는 밖으로 나섰다.

얼마쯤 걷느라니 잡친 기분은 서서히 가셔지고 번화한 거리로 눈길이 끌렸다.

개경에 올라올적마다 새롭게 느껴지는것이 있다면 그것은 해마다 일신되는 도읍의 정경이였다.

이제는 고인이 된 강감찬장군이 온 나라 백성들을 휘동하여 쌓은 개경성과 거리들은 볼수록 그 위엄이 돋보이였다.

바둑판모양으로 동서남북 대통로들이 씨원하게 뻗어나갔고 그를 축으로 해서 동부, 서부, 북부, 남부 그리고 중부, 이렇게 5개의 부로 크게 나눈 도회구역을 또다시 35개의 방으로 가르고 그안에 동리들을 앉혔는데 그것이 모두 합해 344개이다. 동리마다 추녀높은 기와집들이 즐비하여 인구도 수십만인데 그 거리로 외국의 사절들이 끊임없이 찾아들었다. 하여 그네들을 받아들이는 호화로운 객관들을 여기저기서 찾아볼수 있었다.

어찌 장안만 변모되고있으랴. 개경성의 서문인 오정문으로부터 례성강의 벽란나루에까지의 40리, 동쪽 숭례문에서 림진강의 장단나루까지 40리의 길가에도 갖가지 물건이며 음식들을 파는 각, 점들이 추녀에 추녀를 잇대여서 회랑인듯 펼쳐졌다.

황도의 체모를 능히 갖추고있는 개경이였다. 날로 번화해지는 개경의 거리들을 볼수록 더욱 분발해야겠다는 자각이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너무도 집안일을 등한시했다는 자책도 더해졌다. 선공후사라고 공적인 일을 먼저 하고 사사로운 일을 나중에 하는게 관리된자의 도리라 했는데 집안일을 돌보지조차 하지 않는 사람은 뭐라고 해야 할가. 부모와 어린 자식에게 고생만을 시키고있으니 이게 과연 사람의 도리라고 할수 있는가.

또다시 마음이 쓸쓸해졌다. 마음이 쓸쓸해서인지 서경을 떠나올 때부터 가슴 한구석에 납덩이처럼 매달려있었던것이 다시금 그를 괴롭혔다. 정녕 천균노를 모르는척 해야 옳은가. 모르는척 하기에는 너무도 크게 나라의 리익과 관련되는 천균노였다.

아버지가 살아계시여 천균노란 병기를 알았더라면 어떻게 하였을가. 필경 아버지는 적군의 그 어떤 충차도 단숨에 짓뭉개버릴수 있다는 천균노를 외면하지 않았을것이다.

허나 아직은 천균노가 어떻게 생긴 병기인지조차 아는 재간이 없다. 생긴 모양조차 알수 없는 병기에 마음을 두었다가는 집안의 복을 잃어버릴수도 있다.

한시급히 온 식솔이 모여살자는것은 집안사람들의 한결같은 소원이다. 이젠 어머니도 늙었다. 한생 의로운 길을 가는 아버지와 아들의 뒤바라지로 고생속에 살아온 늙은 어머니를 이제 더 고생시킴은 죄되는짓이 아닐수 없다.

그렇다고 한집안의 복을 위하여 천균노를 단념하는것이 과연 옳은 처사일가. 언제부터 이 박원작이란 사내가 제 집부터 생각하게 되였던가. 아버지는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

한집안의 복을 생각하기 전에 국익을 먼저 귀중시하는 사람이 되라 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것이 마땅한 자식된 도리라 할수 있을것이다.

아니, 뭐가 뭔지 통 모르겠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스승이 그립다더니 박원작은 최충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스승을 찾아가 흉금을 터놓고 가르치심을 받아야 함이 바로 이런 때일듯 하였다.

박원작의 발길은 부산동으로 향해졌다. 스승은 북부의 부산동어구에서 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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