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7


남권부를 데리고 병마도감을 일일이 돌아보면서 자리를 비우는 동안에 해야 할 일들을 거듭 당부하고난 박원작은 가벼운 마음으로 말에 올랐다.

백마도 마음이 흥그러운지 경쾌하게 내달렸다.

경상골의 집에 들어서니 아들이 아장아장 걷고있었다.

《영준아!―》

말에서 뛰여내린 박원작은 아들을 안아들었다. 부엌에서 나온 해연이 방긋 웃으며 맞아주었다.

《들어오셨나이까.》

《오늘은 일이 있어 일찍 들어왔소. 안에 들어가 얘길 하자구.》

마구간에 말을 매놓은 해연은 아들을 안은 박원작을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이보세요, 아들은 아버지품에서 크면 버릇이 나빠진댔나이다.》

해연에게 아들을 빼앗긴 박원작이 미소를 지었다.

생각해보면 박원작 자기는 녀인복을 타고난것 같았다. 일찍 병들어 세상을 떠난 전처도 남정네를 얼마나 따르고 극진하게 대했던가.

박원작은 해연이와의 인연을 하늘이 맺어준거라고 믿어마지 않았다. 하늘의 연분이 아니고서야 어찌 해연이같은 처녀가 안해로 될수 있었으랴.

박원작이 병마도감사로 전직하여 서경으로 내려온지 두달가량 지난 어느날 저녁의 일이다.

아직 달이 떠오르기 전인데 《이 집이 병마도감사님의 집이나이까?》하며 웬 처녀가 뜨락에 들어서는것이였다. 부엌일을 하던 늙은 하녀가 의문이 가득해서 미인을 맞아들였다.

그날 팔우노의 시험사격이 뜻대로 된 기쁨을 안고 일찍 들어온 박원작은 그 처녀를 기꺼이 만나주었다. 그 처녀가 바로 해연이였다.

《소녀는 흥부동에 사는 랑자입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무오거란란(1018년 10만 거란군의 침입)때 전장에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했소이다. 자나깨나 아버지의 원쑤, 나라의 원쑤를 갚을 마음인데… 오늘 병마도감이 만든 팔우노에서 무섭게 비발치는 불화살들이 멀리에까지 날아가 〈적진〉을 단숨에 불바다로 되게 하는걸 보고 너무 기뻐… 울었소이다. 계집이 아니라 사내로 태여났으면 병마도감에 들어가 그런 병기를 마음껏 만드는건데… 병마도감사님의 집시중을 드는 일이자 병기를 더 많이 만들도록 돕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서 찾아온것이옵니다.》

박원작은 놀라왔다. 세상에 이런 도담한 처녀도 있는가.

《고맙네. 내 그 마음만은 달게 받아들이겠네. 하지만 이 집엔 밥도 해주고 옷도 빨아주는 시비가 있으니… 내 걱정은 말고 돌아가보게.》

해연은 그 말에 귀뿌리까지 새빨개져서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쯤하면 물러갈줄 알았는데 잠시후 해연은 애원에 찬 눈길로 박원작을 쳐다보았다. 그의 떨리는 목소리는 박원작의 심금을 울리였다.

《저도 나라에서 병마도감사님의 시중을 들 시비를 붙여주었다는걸 아나이다. 하지만 소녀는 나라의 원쑤를 열백배로 갚을수 있는 〈신기한 병기〉를 만드느라 애쓰는 어른께 진정을 바치고저 하오이다. 소녀는 이미 어머님의 허락을 받은 몸이옵니다.》

박원작은 눈물을 머금고 애원하는 해연의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려버렸다. 처녀의 말인즉 이 집 주인이 홀몸인줄 다 알고왔다는것이다.

《제발 생각을 돌려주게. 그러다 랑자신세를 망칠수 있어.…》

박원작은 늙은 시비더러 처녀를 바래워주라고 분부하였다.

처녀가 돌아간줄 알았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해연은 제가 안주인인듯 두팔을 걷어붙이고 집일을 도맡아하고있었다.

가라는 말이 죽으라는 말보다 더 서럽다는 생각이 들어 이러구러 여러날을 보냈는데 이번엔 처녀의 어머니가 동네 좌상로인까지 데리고 나타났다.

흥부동마을 좌상로인은 군력을 떨치는 위력한 병기를 만드는 어른을 받들어모시는것은 백성들의 응당한 도리라면서 서경사람들의 진심을 헤아려 처녀를 받아들이는것이 어떠냐고 귀띔하였다.

하여 박원작은 해연에게 장가를 들게 되였다.…

해연은 웃기만 하는 박원작의 손을 다정히 잡아흔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이까?》

그제야 박원작은 입을 열었다.

《이보게, 난말이야. 수질구궁노를 가지고 개경으로 오라는 조정의 령을 받았네. 그래서 인차 집을 떠나야 하거든.》

해연은 가슴을 파고드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전 무슨 큰일이 난줄 알았나이다. 임금님께 새로 만든 병기를 보여드리는거야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겠나이까.》

《내 말뜻은 그게 아닐세.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이번에 올라가면 다시 병기도감으로 돌아오지 못할수도 있네.》

《예― 에?! 그건 무슨…》

눈이 커진 해연을 보며 박원작은 잠시 말을 끊었다.

올정초에 박원작은 옛집을 지키는 어머니를 보려 개경에 올라갔었다. 그때 최충도 만나보았다. 그사이 참지정사(중서문하성의 종2품관)겸 수국사(정사를 기록하는 사관의 실권자)로 된 최충은 못내 반가와하면서 이제는 개경군기감으로 와서 더 판이 크게 병기를 만들 때가 되였다고 말해주었다.

《아마 조정에선 나를 군기감으로 전직시킬수도 있소.》

해연의 얼굴에 인츰 그늘이 졌다. 그러나 그의 얼굴빛은 곧 다시 환해졌다.

《어머니를 모셔오면 늙으신 어머니에게 여러모로 부담이 될가봐 홀로 서경에 왔다고 했는데… 그사이 벌써 8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소이다. 자나깨나 언제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온 식솔이 모여살가 했는데 이젠 됐나보오이다.》

박원작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였다.

《헌데 마음이 편치 않구만.》

《편치 않다는건?…》

《그런 일이 있었소. 아, 아마 발해사람이라는 대씨로인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난 웃으며 개경으로 갈수도 있을거요. 적의 충차를 단박에 박살낼수 있다는 천균노란 병기가 옛적에 있었다는 그 로인의 말을 듣고부터는…》

눈을 깜박이며 주의깊게 말을 듣던 해연이 활짝 웃었다.

《천균노를 만드는게 개경으로 가는거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개경가서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만들수 있지 않소이까.》

박원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도 않네. 난 정든 서경을 떠나선 그런 큰 병기를 만들 자신이 없소. 개경의 군기감은 나에게 생소한 곳일뿐더러 서경의 병마도감은 사람들도 정들고 철덕도 염초장도 다 정들어서 여길 떠나서는 창 하나 변변히 벼려낼것 같지 못하오. 그러니 어찌 서경을 떠나서 천균노같이 큰 병기를 만들 엄두나 낼수 있겠나.》

해연의 두손이 박원작의 거쿨진 손을 포근하게 감쌌다.

《제 고향을 그렇게까지 믿어주시니 정말 고맙소이다.》

《임자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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