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양각도를 마주한 외성의 고리문근처에는 고래등같이 큰 기와집이 있었다. 북계병마도감에서 병마도감사 다음가는 소감벼슬을 하는 남권부가 사는 집이였다.

일찌감치 저녁상을 물린 남권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애젊은 안해와 비단이불을 쓰고 자리에 들었다. 안해 마씨는 조금 뒤치락거리는것 같더니 어느새 쌔근쌔근 잠들어버렸다. 하지만 남권부는 앙앙불락하는 마음이 그냥 치밀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그는 눈이 말똥해서 저 혼자 속으로 병마도감사를 욕질했다.

박원작이 어쩜 그럴수 있단 말인가. 이 남권부가 병마도감의 두번째 주인으로서 개경에 놋쇠를 가지러 갔으면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수질구궁노의 위력사격을 하는게 옳지 제 혼자 그 큰일을 수염 뻑 쓸고 해치워야 옳단 말인가.

이건 박원작이 이 남권부를 하찮게 본다는것이다. 그가 언제부터 나를 그렇게 대하기 시작했단 말인가.

이번일이 처음이긴 해도 그건 이제 시작에 불과한것이라고 생각됐다. 어제 개경에서 돌아와 소문을 들으니 며칠전에 박원작이 이 남권부도 모르게 수질구궁노를 성공했다면서 그것을 많이 만들어 군진에 보내주겠다는 표문을 임금께 올렸다고 한다.

그 표문을 받아보게 되면 임금은 분명 박원작이만을 크게 알아주고 내세워줄것이다.

그래 이게 공정한 처사란 말인가. 이러나저러나간에 8년세월 함께 손잡고 일했으면 가장 큰 자랑거리를 두사람의 이름으로 임금에게 알리는게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제 임금은 박원작이에게만 큰 상도 내리고 높은 벼슬도 하사할것이요 적어도 개경군기감의 주인자리쯤은 맡겨줄게 뻔하다. 그러면 《신기한 병기》에 도통한 박원작은 곧 군기감의 판사로 출세하여 공명과 부귀를 떨칠것이다.

박원작이 선손을 써서 군기감으로 올라가면 이 남권부만 홀로 남아 개밥의 도토리신세로 종신 타향살이를 면치 못할것이다. 아니, 그것으로 끝나면 오죽이나 좋겠는가. 보나마나 조정에서는 선심이나 쓰듯 병마도감사의 자리에 이 남권부를 눌러앉힐것이고 그렇게 되면 여불없이 나의 무식이 드러나 조만간에 파직은 갈데가 없을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애초에 박원작을 쫓아 서경행을 하지도 않는것인데…

남권부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혀 시름깊은 한숨을 내뿜었다.

권세도 당당하고 만금재물도 가진 큰 벼슬아치가 되라는 뜻에서 권부라는 이름을 지어준 그의 아비는 조정에 술과 감주를 빚어 바치는 량온서란관청에서 말직벼슬을 지냈다. 원래 욕심이 사나운 그는 몰래 나라의 술을 팔아먹다가 덜미를 잡혀 벼슬살이 몇해만에 파직되였고 그것이 울화병으로 번져져 죽고말았다. 남권부는 국자감도 나오고 맨 말석의 성적으로나마 과거에 급제하였지만 아비의 좋지 못한 행실때문에서인지 조정에서는 그에게 나라의 잡다한 토목공사를 주관하는 관청인 장작감에서 그것도 마지막벼슬자리나 내주었다. 먹을알이 별로 없이 날마다 토목공사에 부대껴야 하는 벼슬에서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그에게 몸살이 날 지경으로 지겨운 나날이였다.

바로 그때 상사봉어벼슬에서 북계병마도감사로 전직된 박원작이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쳐주었다. 박원작은 그가 국자감을 다닐 때 같은 학과는 아니지만 같은해에 입학하여 글을 배운 동배였다.

때로는 별치 않은 일이 한생에 잊지 못할 인연을 맺어주기도 하는것 같다. 국자학과에 적을 둔 남권부로서는 박원작과 동배라고는 하지만 학과가 다르다보니 겨우 풋낯이나 아는 정도였다.

어느날 남권부는 말을 타고 달리다가 굴러떨어져 발목을 상한 일이 있었다. 때마침 길을 가던 박원작이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하고 제멋대로 날뛰는 말을 나꿔채여 남권부를 태운 다음 그의 집으로 데려다주었다.

이것이 곧 인연이 되여 남권부는 박원작과 남다른 친교를 맺게 되였다.

후날 그때의 정을 잊지 않고 함께 서경으로 가서 병기를 만들어보자고 박원작이 청했을 때 남권부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왔다. 남권부는 이어 박원작의 주선으로 장작감에서 나와 서경행을 하여 병마도감사 다음가는 벼슬인 병마소감이 되였고 주로 병기를 만드는데 소용되는 놋쇠를 개경에서 받아오고 또 병마도감에서 만든 병기들을 여러 군진들에 나누어주는 일을 맡아하였다. 그 일은 장작감의 일자리에 비하면 먹을알도 있고 땅짚고 헤염치기만치나 헐한 일이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재물을 모아들였던가. 박원작의 그늘밑에서 개경시절때는 도저히 바랄수 없었던 횡재를 해왔는데 그가 이제 개경으로 가버린다면 돈벼락줄도 조만간에 끝장나고말것이다.

보나마나 박원작이 군기감으로 출세해올라가면 이곳의 염초장도 옮겨가려고 할것이다. 그러면 더는 화약을 빼내서 팔아먹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것은 분명 내 신세에 비낀 망조가 아니라 할수 없다.

남권부는 생각할수록 밸이 뒤틀려 그만 비단이불을 걷어차고 일어나앉았다.

운수가 기울어져가고있는데 속수무책할수 있는가.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가. 제일 좋은 상책으로는 조정의 세도가한테 매여달리는것인데…

이사람 저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지꿎게 생각을 톺던 남권부는 어느결에 무릎을 쳤다.

이번에 중추원의 지원사(종2품관)로 출세한 리자연이 불쑥 생각키웠던것이다.

임금에게 올리는 상주문을 받아들이고 어명을 하달하며 군사에 관한 일을 맡은 중추원에서 종2품의 지원사를 하는 리자연이라면 당당한 권신이라고 할수 있다.

국자감시절 국자학과에서 함께 학문을 닦은 리자연에게 낮추붙어 손을 내밀면 자기의 소청을 들어줄것 같았다. 물론 그가 높은 벼슬에 오르자 남권부를 쓴외보듯 한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한테는 남권부보다 더 가까운 학우가 없었다.

사실 남권부는 지난날 리자연을 학우로서가 아니라 상전으로 여기고 섬기였다.

관청의 술을 탕진하다 파직된 아비가 울화병으로 죽어버리자 가난에 시달리게 된 남권부는 어떻게 해서라도 벼슬아치가 되여 부귀영화를 누려야 한다는 야심으로 이를 갈았다. 집에 들면 몰락한 집안이 가져다준 생활고가 여기저기에 서려있고 밖을 나서면 잘사는 량반집자식들의 깔보는 눈초리가 그의 야심에 부채질을 하였다.

어떻게 해야 남을 디디고 올라서서 큰소리치며 잘살아볼수 있을가? 지금 당장은 굴욕스럽다 해도 세도줄을 쥐는것이 땅수일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세도줄을 어떻게 타야 할가?

기다렸다는듯 그런 기회가 찾아들었다. 그때가 남권부의 나이 열여섯살이 나던 겨울일것이다.

수창궁곁에 있는 마을복판에는 대궐같이 큰 추녀높은 기와집이 있었다. 그 집에서 상서우복야(상서성의 종2품관)라는 높은 벼슬을 가진 고관이 살고있었다.

어느날 그집 맏아들인 리자연이 연띄우기를 하였다. 한동네에 산다지만 하바닥 량반집쯤은 왼눈으로도 안보는 리자연이여서 남권부는 그와 통성조차 할수 없었다.

저만 사람이라 우쭐대던 리자연이 날리던 연은 볼꼴사납게 매에 쫓기는 까투리처럼 갑자기 곤두박질을 치더니 동네앞의 느티나무가지에 걸리고말았다.

어떻게 하면 동네에서 제일 큰 벼슬아치집과 가까와질수 있을가 하는 생각으로 리자연의 주위에서 맴돌던 남권부는 그것을 보는 순간 속으로 환성을 올렸다.

때는 바로 이때로다!

리자연이 울상이 되여 어쩔줄 몰라할적에 남권부는 이를 악물고 아찔하게 솟은 나무꼭대기에 기여올라가 연을 풀어내렸다.

《넌 이제부터 내 친구다!》하고 리자연은 어깨가 으쓱해서 연을 받아들며 나무를 오르내리느라 땀에 젖은 남권부의 가슴을 주먹으로 툭 쳤다.

그날부터 남권부는 두살이나 아래인 리자연을 친구가 아니라 형이라 부르며 그의 비위를 맞출수만 있다면 얼굴뜨거운짓도 가리지 않았다.

그에 감동된 리자연은 후날 국자감에 들면서 자기 아버지에게 부탁하여 남권부를 국자학과에 받아주도록 하였다.

그날 남권부는 남을 섬기는 일이 비굴하긴 해도 그 대가가 결코 눅거리가 아님을 간파하였다.

남권부는 더욱 열성을 부려 리자연에게 아첨을 하였다. 하루 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리자연의 견마도 잡아주었고 지어는 그가 말에서 내려 땅에 앉을 때 펼 돗자리까지 지고다녔다.

그 신세를 잊지 않고 리자연은 과거장에 나갈 때도 남권부를 데리고갔다. 그의 힘을 얻어 남권부는 맨 꼴찌의 성적이긴 해도 과거에 급제할수 있었다. 리자연이 아비의 친지들에게 긴히 부탁하여 남권부를 급제시켜주었던것이다.

관직의 차이는 친구사이를 멀어지게 한다더니 그 말이 그른것 같지 않았다. 과거에 급제한 후 조정벼슬아치들을 떼고 붙이는 리부에서도 노란자위라고 할수 있는 랑중자리를 차지한 리자연은 권세없는 장작감에서 자질구레한 토목공사에 불려다니는 남권부를 왼눈으로도 보려 하지 않았다. 남권부가 몇번씩이나 먹을알이 있는 관청으로 돌려달라는 청을 가지고 리자연을 찾아갔지만 그때마다 문전거절을 당하군 하였다.

여지껏 그만큼 덕을 보았으면 됐지 무슨 렴치로 벼슬길에까지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가 하는 심산인것 같았다.

에라, 이것도 하늘이 정해준 운수렷다. 그래도 지금의 신세가 가물철 웅뎅이의 올챙이신세보다는 나으니 그런대로 살아보자 하고 어깨를 움츠리고 장작감에서 시키는 하찮은 일을 따라다니는데 뜻밖에도 박원작이 찾아와 서경길을 청했던것이다.

그를 따라 서경에 자리잡고 한창 살만해졌는데 무슨 감투끈인지 리자연의 동생 리자봉이 만나기를 청해왔다.

아마도 그게 이태전 놋쇠를 받으려 개경에 가있을 때일것이다. 군기감의 객관에 여러날째 머물러있는데 외국사신들을 접대하여 주연을 베푸는 일을 맡은 례빈성에서 소경벼슬을 하는 리자봉이 그를 찾아왔다.

리자봉은 그사이 급사중(중서문하성의 종4품관)으로 승진한 형이 국사로 몹시 바빠 틈을 낼수 없어 자기를 대신 보냈노라면서 리자연의 부탁을 전해주었다.

리자연의 부탁이란 자기는 아직 군사와 관련된 일을 직접 주관할수 없어 그러는데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도읍을 지키는 경군에 우선적으로 팔우노며 뢰등석포 같은 《신기한 병기》들과 화약을 더 많이 보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것이였다. 한때는 남권부 자기를 헌신짝버리듯 했던 리자연이 무슨 바람이 불어 그런 부탁을 하는지는 알수 없어도 그 분부를 거스를수 없었다.

그래서 박원작에게 전했더니 그는 대뜸 옳은 말이라며 받아들였다. 하여 서경병마도감에서는 경군에 《신기한 병기》들을 더 많이 보내주게 되였다.

지난해 남권부가 개경에 갔을적에 례빈성의 주인인 판사로 출세한 리자봉이 조용히 그를 불러 형이 한상 내는것이라면서 객관의 뒤골방에다 요란한 음식상을 차려주었다.

술이 거나해진 리자봉은 이제 곧 형이 조정3재로 높이 출세할것 같은데 그러면 국자감의 학우들을 잊지 않고 돌봐줄거라는 귀맛 좋은 소리를 했다.

헤여지기에 앞서 그는 은전이 든 묵직한 돈궤를 안겨주더니 화약의 비방을 꼭 배우라고, 그래야 개경의 군기감으로 승급해와서 잘살아볼게 아니냐고 하였다.

이번 개경길에서 만났을 때에도 리자봉은 침을 놓듯 또 그런 말을 꺼냈었다.

그런데 화약의 비방을 배운다는게 조련한 일이 아니였다. 복잡하고 까다로와서라기보다 박원작이 그 비방이 새여나가지 못하게 엄중단속하기때문이였다. 어찌나 엄중단속하는지 염초장의 장공인들이 다 행수 돌석이녀석처럼 화약소리라면 말도 붙이지 못하게 했다.

허나 이제는 화약의 비방을 알아낸다한들 행차후 나발격이다.

제길, 박원작이 그자는 임금의 은총을 독차지하여 군기감으로 출세해가겠으면 가라지,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고 리자연에게 도와달라는 청이 담긴 글월을 써보내면 그가 박원작이 부럽지 않게 개경의 세도있는 관청으로 승급시켜줄것이다.

어디 누가 더 잘되는가 두고보자.

마음의 안정을 찾은 남권부는 쌕쌕 코를 고는 마씨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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