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2


백상익이 병원에 찾아온것은 안해가 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째 되는 날이였다.

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공장, 기업소들에 출장을 나갔다가 돌아온 그였다. 집에 도착한 그는 가시어머니에게서 안해가 병원에 입원하였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입원이라니요? 무슨 병이랍니까?》

백상익은 다우쳐 물었다. 그리고는 자기에게 왜 알리지 않았는가고 다소 불만스럽게 말했다.

사위의 말에 문춘실은 《아에미가 절대루 알리지 말라구 해서…》하고 얼버무렸다.

사실 문춘실이 병원에 입원한 소식을 남편에게 알리자고 했을 때 송영숙은 머리를 저으며 만류했었다.

《알리지 말아요. 무슨 죽을 병에 걸렸다구 소란을 피우겠나요? 며칠후엔 돌아올거예요.…》

하면서도 송영숙은 매일매일 남편을 기다렸다. 혹시 출장길이 늦어지면 어쩌나 근심도 하면서 남편을 기다렸다.

오후해빛이 따스하게 비쳐드는 입원실에서 실험일지들을 펴놓고 읽어보던 그는 침대에 기대여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가.…

잠결에 그는 누군가 자기의 손을 잡고있다는것을 느끼였다.

(누굴가? 무척 따스한 이 손은…)

살며시 눈을 떠보니 남편이 자기의 손을 잡고 마주앉아있었다.

송영숙의 얼굴은 확 밝아졌다.

《당신이군요. 언제 오셨어요?》

그는 하루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남편을 맞이한듯 반갑게 웃으며 물었다. 그의 눈가엔 따뜻한 사랑과 정이 흘러넘치였다.

안해의 얼굴을 쳐다보며 백상익도 싱긋이 웃었다.

《방금전에 왔소. 그래 몸은 좀 어떻소?》

그는 근심어린 눈길로 안해의 얼굴과 머리며 온몸을 살펴보았다.

그제야 송영숙은 자기가 지금 병원에 입원한 몸이라는걸 상기했다.

그리고 자기의 얼굴이 예전과 다르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 우울해졌다.

사랑하는 남편앞에 언제나 젊은 모습으로 살고싶었고 남편의 자랑이 되고 기쁨이 되게 언제나 아름다와지고싶었던 그였다. 그런데…

《경아 아버지! 내가 지금 미워졌지요?》

송영숙은 남편의 손을 두손으로 모아잡으며 조용히 물었다.

《?》

안해의 뜻밖의 물음에 백상익은 의아해졌다. 그러나 인츰 싱긋이 웃었다. 그는 안해의 갸륵한 마음을 다 들여다본듯 머리를 저었다.

《무슨 소릴… 어제나 오늘이나 당신은 여전하오.》

남편의 말에 송영숙은 응석기어린 눈길로 흘겨보았다.

《거짓말! 솔-직히 대답해주세요. 지금은 보기 싫어졌지요. 예?》

그는 애써 웃으며 다시 물었다.

안해의 맑고 그윽한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백상익은 크게 머리를 저었다. 그리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요! 나에겐 당신이 세상에서 제일 곱소. 요즈음엔 더 고와졌소. 정말이요.》

남편의 대답을 들은 송영숙의 눈가에 맑은것이 차랑차랑 고여올랐다.

이윽고 두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원, 이런!…》

백상익은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여 안해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그러나 계속 흘러내리는 맑은 눈물…

송영숙은 사랑하는 남편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행복과 기쁨에 겨워 그냥 흐느꼈던것이다.

안해를 바라보며 백상익은 마음속으로 말하였다.

(사랑없인 하루도 못 사는 녀자! 사랑을 위해선 자기 한몸을 아낌없이 다 바치는 녀자!…

그 사랑이 무언지 나는 아오. 그건 바로 조국에 대한 큰 사랑이지.…

당신은 한생토록 그 사랑을 간직하고 살거요. 불보다 뜨거운 사랑, 보석같이 아름다운 그 사랑을…)

해빛은 두사람을 위하여 더욱더 따스한 빛을 뿌려주었다.

송영숙의 건강은 하루가 다르게 회복되여갔다. 의사들은 그가 원래 건강하였기때문에 남달리 회복이 빠르다고 말했다.

그는 입원한지 한달만에 퇴원하였다.

며칠전부터는 머리카락도 다시 나오기 시작하였다. 지금껏 서정옥이 만들어준 모자를 쓰고있던 송영숙은 장병식지배인이 출장길에서 가지고온 멋진 가발을 썼다.

두석달후면 그 가발도 벗게 될거라고 담당의사가 말했다.

송영숙이 퇴원하는 날 김춘근당비서가 백상익과 함께 승용차를 타고 병원에 찾아왔다.

그들은 환자를 위해 정성을 다해준 의사선생님들에게 진정에 넘치는 인사를 드리고 병원을 떠났다.

병원에서 퇴원한 다음날로 송영숙은 공장에 출근하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거의 완쾌된 기사장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송영숙은 며칠동안 출장갔다가 돌아온 심정으로 언제나 바삐 현장과 현장을 오가면서 생산지휘도 하고 기술지도도 하였다.

리윤옥은 남편의 부탁대로 매일 송영숙을 찾아와 건강상태를 알아보고는 아직도 병원에 입원한 몸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당부하였다.

송영숙은 그의 당부를 감사하게 받았다.

그러나 그의 일과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다. 송영숙의 자전거는 언제나 제비처럼 현장과 현장을 누비며 날아가고날아왔다.

현장에서는 기쁜 소식들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송영숙이를 제일 기쁘게 해준것은 먹성인자 베타인을 다량적으로 합성할수 있게 기술공정들이 그쯘하게 꾸려진것이였다.

지배인 장병식과 당비서 김춘근은 송영숙이 실험실로 사용하던 운수직장창고를 앞뒤로 더 넓히고 설비들과 배풍시설을 잘 갖추어주었다.

송영숙이 밝혀낸 기술공정표대로 이제는 어떠한 피해도 받지 않고 공장첨가제에 필요한 먹성인자를 다량적으로 합성할수 있었다. 알깨우기직장에서도 시험적으로 설치하였던 종자알소독용오존발생기를 십여개의 알깨우기실들에 모두 설치해놓았다.

유상훈박사의 연구사업에서도 성과가 컸다. 박사가 진행하고있는 새 품종의 종자오리육종사업이 마감단계에 이르렀기때문이다.

유상훈박사는 며칠전부터 호수건너편 종금1직장으로 아예 침식을 옮기고 거기에서 연구에 전심전력하고있었다.

송영숙은 공장에 출근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날 알깨우기직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새끼오리들을 호동들에 입사시키는 날이다.

그는 종일토록 알깨우기직장과 생산직장들을 오가면서 새끼오리입사정형을 료해하고 걸린 문제들을 풀어주었다.

저녁무렵 생산1직장의 새끼오리호동까지 다 돌아보고 현장을 나서던 그는 땀을 식힐겸 직장에서 멀지 않은 호수가로 나갔다.

방뚝우에 올라서니 푸른 물결 아름다운 호수가는 따스한 바람결로 그의 온몸을 어루쓸며 예나 다름없이 반겨주었다.

메고치의 솔숲에 하얗게 내려앉았던 백로들도 한마리두마리 깃을 펴고 날아올라 끼륵끼륵 자기들의 언어로 노래를 불렀다.

송영숙의 가슴은 터질듯 뿌듯해왔다.

그는 천천히 호수가기슭으로 내려갔다. 가을날의 높고 푸른 하늘이 비껴서인지 호수의 물은 더 맑고 정갈해보였다.

그는 기슭녘에 놓인 널직한 바위우에 상큼 뛰여올랐다. 그리고는 몸을 접고앉아 맑은 물속에 손을 잠그었다. 상쾌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져갔다.

그는 거울같이 알른한 물우에 자기의 모습을 비쳐보았다.

이윽고 그는 가발을 벗었다.

처음에는 자기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의사들앞에서도 수건을 벗기 저어하던 그였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앞에서도 부끄럽지 않았다. 이제는 머리카락도 많이 자랐다. 예전처럼 총이 굵고 숱이 많은 검은 머리카락이다.

(앞으로는 더 멋지게 머리단장을 할테야.…)

송영숙은 리윤옥이 배워준대로 머리안마를 몇번 하고나서 가발을 다시 썼다. 잔잔한 물결우에 다시금 자기 모습을 비쳐보았다. 눈확이 패이고 기름해졌던 얼굴도 본래대로 동그스름해지고 생기가 돌았다.

자기의 아름다움을 의식한 송영숙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

그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한동안 물장난을 하였다. 저도 몰래 동심에 잠겨들며 어릴적에 부르던 노래가 생각났다. 그는 조용조용 노래를 불러보았다.

바로 그때 송영숙은 자기가 있는 곳으로 정의성이 오고있는줄 모르고 그냥 노래를 부르며 물장난에 심취되여있었다.

유상훈박사를 만나려고 종금1직장에 건너갔다가 발동선을 타고 돌아온 정의성이였다.

그는 시험호동으로 질러가려고 생산직장아래켠 방뚝길에 들어섰다.

새로 교잡한 새 품종오리들의 생육상태를 진지하게 관찰하던 박사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년로한 몸이지만 생의 목표를 높이 세우고 꾸준히 내달리는 박사였다.

그의 모습을 그려보며 자기도 연구에 더욱더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걸음을 옮기던 정의성은 뜻밖에도 물가에 앉아있는 송영숙을 띄여보았다.

(영숙동무가?)

정의성은 주춤 굳어졌다.

주위세계를 감감 잊고 앉아 꿈꾸는듯 한 눈길로 노래를 부르는 그는 순진한 녀학생같았다.

느닷없이 심장의 박동이 빨라졌다. 그를 피해 돌아갈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병원에도 가보지 못했는데 인사말이라도 하는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래! 늦었지만 감사의 말이라도 해야 한다.)

그는 큰숨을 들이쉬며 송영숙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기사장동무!》

정의성은 나지막한 소리로 불렀다.

물속에 손을 잠그고 즐거운 명상에 잠겨있던 송영숙은 그의 부름을 듣고 돌아보았다.

정의성은 약간 눈길을 떨구며 몇발자국 더 다가섰다.

《오래간만이군요. 병원에 찾아가보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래 몸은 좀 어떻습니까?》

그는 앞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올리며 물었다.

송영숙은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다싶이 이렇게 다 완쾌됐어요. 정옥동무랑 관심해준 덕이지요. 모두 고마웠어요.… 참! 시험호동일은 잘되겠지요? 오늘은 꼭 나가보려구 했는데…》

그는 여느때없이 활달한 어조로 말했다.

그 모습앞에서 정의성은 마음의 안정을 되찾았다.

《고맙소. 기사장동무! 난 동무가 첨가제연구를 그렇게 사심없이 도와줄줄은 정말 몰랐소. 동문 몇년동안 심혈을 바쳐 연구한 모든걸 나에게 고스란히 넘겨주었더구만. 동무의 실험일지들을 보고 난 며칠밤을 뜬눈으로 새웠소. 지금껏 동무의 마음을 다는 몰랐던 나자신을 꾸짖으면서 말이요.

그리구… 동무의 가슴속에 간직된 사랑의 힘이 얼마나 열렬하구 아름다운가를 깊이 깨달았소.》

그의 진정어린 말에 송영숙은 빙긋이 웃으며 드넓은 호수를 바라보았다.

《그래요. 사랑의 힘이였어요. 우리 공장과 내 나라의 부강번영을 바라는 공민으로서의 사랑이였지요. 그 사랑의 힘이 첨가제연구를 힘껏 돕게 했던거예요.》

《…》

송영숙은 정의성의 상기된 얼굴을 쳐다보았다.

《정동무! 난 진정으로 동무의 행복과 성공을 바라요.

동문 공장첨가제에 대한 론문을 나의 이름으로 발표하겠다고 했다던데 그럴 필요는 없어요. 난 절대루 그걸 바라지 않아요.

첨가제연구의 주인은 어디까지나 동무니까요. 난 동무가 기어이 공장첨가제를 완성하리라 믿어요. 그럼 전…》

송영숙은 량해를 구하듯 약간 머리를 숙여보이였다. 그리고는 돌아서서 자전거를 세워둔 곳으로 다가갔다.

《영숙동무!》

정의성은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순간 송영숙의 어깨는 흠칫하며 굳어졌다.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그리고는 담담한 어조로 꾸짖듯 말했다.

《다시 부르세요. 난… 기사장이예요.》

이윽고 그는 자전거를 타고 방뚝길을 달렸다.

정의성은 제비처럼 날아가는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았다.


그 이듬해 8월 오리공장창립 60돐을 맞으며 정의성은 《광명성제염소 소금밭이끼에 의한 가금먹이종합첨가제연구》라는 제목으로 박사론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공장에서는 수입첨가제대신 완전히 국산화된 우리 식의 새로운 첨가제로 오리고기생산계획을 넘쳐수행하였다.

기쁜 일은 그뿐이 아니였다.

유상훈박사는 생산성이 높은 새 품종의 우량종오리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던것이다.

그리고 차수정은 떡돌같은 아들을 품에 안은 행복한 어머니가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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