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0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1


송영숙은 군인민병원에 입원하여 종합검진을 받았다.

검진결과 지나친 중독증상과 과로로 하여 일시적인 탈모현상이 생겼을뿐 다른 장기들이 손상되거나 질병이 생긴것은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며칠 더 시간을 보냈다면 돌이킬수 없는 위험을 산생시켰을것이라고 하였다.

의사협의회에서는 인체에 퍼진 중독증상을 제거하기 위한 해독치료와 함께 충분한 휴식과 영양섭취를 요구하였다. 다행이였다.

검진결과가 공장에 전해지자 종업원들은 모두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송영숙이 군인민병원에 입원하여 사흘째되는 날 김춘근은 지배인과 함께 아침일찍 군인민병원에 찾아갔다.

수건을 쓰고 앉아있는 기사장의 수척해진 얼굴을 본 당비서는 가슴한복판이 쿡 쑤시는듯 한 아픔을 느끼였다. 그는 저려드는 아픔을 애써 감추며 적어도 두달동안은 입원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송영숙은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두달이 뭡니까? 이젠 실험이 다 끝났기때문에 일없습니다.》

그의 대답에 김춘근당비서는 벌컥 성을 내였다.

《그럼 지금처럼 계속 수건을 쓰구 다니겠습니까? 예?》

뭉틀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엔 괴로움을 참는 신음소리가 담겨져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병문안을 왔다.

차수정은 이틀이 멀다하게 찾아왔다. 남편과 함께 오기도 하고 군출판물보급소에 들렸다가도 오고 문춘실을 휘동하여 경아와 은아까지 모두 데리고 찾아오기도 하였다.

찾아와서는 간호원도 무색할 정도로 약은 제 시간에 먹었는가, 체온은 어떤가, 무엇이 먹고싶은가고 시시콜콜 물었다. 그리고는 옷을 갈아입어라, 빨래감을 내놔라 하며 송영숙을 한바탕 달구다가 돌아갔다.

진철이와 봄순이도 함께 찾아왔다.

새각시답게 얌전한 봄순은 기사장의 두손을 꼭잡고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는 하얀색, 연보라색들꽃묶음을 꽃병에 꽂아넣으며 빨리 병을 털고 일어나라고 한마디 하였다.

방인화도 리윤옥이와 함께 몇번이고 찾아왔다.

그들은 송영숙이 좋아하는 풋절이김치를 맛있게 담그어가지고 왔다.

임광일과 최금천, 서정관도 함께 왔고 생산2직장장 윤흥식도 안해와 함께 두번씩이나 왔다갔다.

농업대학에 초빙강의 나갔던 유상훈박사도 돌아가는 길에 병원에 들렸다.

《기사장동무! 난 요즈음 기사장동무앞에 나를 비춰봅니다. 그리구 기사장동무처럼 살지 못한 나를 채찍질하군 합니다.》

박사는 의미깊은 눈길로 송영숙을 바라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송영숙은 활딱 얼굴을 붉혔다.

《그만하십시오, 소장동지! 제가 무슨 큰일을 했다고… 앞으로도 저의 일을 많이 도와주십시오.》

기사장의 소박한 말은 박사를 더욱 감동시켰다.

박사는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기사장동무! 우리 정기사동문 첨가제를 훌륭히 완성할겁니다. 난 그 동무를 믿습니다.》

확신이 담겨진 그의 말에 송영숙은 얼굴에 미소를 그렸다.

《그럼 됩니다. 나도 그걸 믿어요.》

직장장들과 함께 자재과장도 저녁시간을 내여 군인민병원에 찾아왔다.

《기사장동지! 난 이거 죄송스러워서 견딜수 없습니다. 나때문에 기사장동지가 이렇게…》

자재과장은 기와집지붕같은 입술을 우무리며 옹색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했다.

송영숙은 악의없이 그를 흘겨보았다.

《왜요? 난 항상 과장동무를 고맙게 생각하는데요. 그리구 이제부터는 더 수고해야 합니다. 페설물을 계속 실어와야 하니까요.》

그의 말에 자재과장은 펄쩍 뛰였다. 두번다시 기사장을 이 지경으로 만들면 온 공장이 자기를 용서하지 않는다면서 두손을 내저었다.

송영숙은 그에게 이제부터는 기술공정대로 안전하게 먹성인자를 생산할수 있다고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그랬어도 자재과장은 잘 믿어지지 않는지 머리를 기웃기웃하였다.

서정옥은 사람들이 기사장의 병문안을 가는것을 보고 은근히 초조감과 불안같은것을 느꼈다.

(기사장동지가 우릴 얼마나 욕할가? 은혜도 도리도 모른다고 얼마나 원망할가?… 이틀후엔 꼭…)

그는 휴식날만 기다렸다.

《여보!》

휴식전날 서정옥은 밤늦게 퇴근해 들어온 남편을 조용히 불렀다.

《래일은 휴식날인데 같이 병원에 가보자요.》

《?!》

《우리야 남들보다 먼저 병원에 갔어야 하는데… 내가 잘 준비할테니 래일은 꼭 시간을 내보세요. 그렇게 하지요? 예?》

서정옥의 눈빛은 간절하였다.

정의성은 얼핏 안해를 쳐다보았다. 그는 곧 돌아앉아 잡지를 펼쳐들며 잘라 말했다.

《당신 혼자 가보오. 난 시간이 없소.》

그의 말은 무척 매정하게 들렸다.

정옥은 억이 콱 막혔다. 그의 눈가엔 원망이 담겨졌다.

《여보! 당신은 원래 그렇게도 무정한 사람이나요? 예?》

그는 설분을 터뜨렸다.

《당신은 그래 기사장이 누구때문에 병원에 입원했는지 모른단 말이예요? 어쩌문… 어쩌문 당신은…》

정옥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어깨를 떨었다.

그는 온몸으로 남편의 무정함을 타매하는것 같았다.

(너무해요! 너무해요!…)

다음순간 정옥의 귀전에 남편의 성난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만하지 못하겠소?》

그 목소리는 순간에 집안공기를 짱!- 얼구었다.

웬간해서 큰소리를 치지 않는 정의성이지만 더이상 괴로움을 견딜수 없었다.

할수만 있다면 높은 령마루에 치달아올라 목이 터져라 《아! 아!》 소리를 치면 괴로움에 졸아든 가슴이 활 열릴것만 같았다.

이윽고 그는 심호흡을 하며 안해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나두 지금 병원에 가고싶소. 늦게나마 그에게 치료를 잘 받으라고 말이라도 하고싶소. 난 지금껏 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난 하루도 연구를 중단해선 안되오. 영숙동문 지금도 그걸 바라구있소. 난 첨가제를 하루빨리 완성해서 기사장의 이름으로 박사론문을 내려구 생각하고있단 말이요. 그러니…》

정의성의 목소리에는 깊은 자책과 함께 새로운 결심이 스며있었다.

남편의 말에 정옥은 머리를 끄덕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의 마음이 그렇다면 나 혼자 가겠어요. 난 기사장동지에게 사죄해야 해요. 하지만 기사장이 나를 용서할가요? 난 기사장의 마음을 너무도 아프게 해주었으니까요.…》

다음날 아침 정옥은 혼자서 군인민병원으로 갔다.

그가 조심히 호실문을 열고 입원실에 들어서니 수건을 눌러쓴 기사장은 침대에 앉아 책을 읽고있었다.

문열리는 소리에 눈길을 든 그의 얼굴엔 반가운 웃음이 확 피여났다.

《이게 누구예요? 정옥동무까지 왔군요. 바쁠텐데… 어서 들어와요. 자! 어서요.》

송영숙은 그의 손을 이끌어 자기의 침대에 앉혀주었다.

기사장의 다정한 눈길앞에서 정옥은 대번에 눈물을 쏟았다.

《기사장동지!…》

외마디부름과 함께 눈굽을 적시는 그를 보며 송영숙은 빙긋이 웃었다.

정옥은 물기어린 눈으로 송영숙을 바라보았다.

《난, 난 너무도 몰랐어요. 기사장동지의 그 마음을 너무도 모르고… 날 욕많이 해주세요. 실컷 때려준대도 좋아요.…》

송영숙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빙그레 웃음지었다.

《그만해요. 난 다 알아요. 그리구 정옥동무를 탓하지 않아요. 조금두 탓한적이 없어요.》

그는 정옥의 동그란 어깨를 살뜰히 쓰다듬어주었다.

《요즘도 정기사동문 여전하겠지요?》

송영숙의 다정한 물음에 정옥은 아이처럼 머리만 끄덕였다.

《어련하겠지만 남편을 잘 도우세요. 훌륭한 남편의 뒤에는 그보다 더 훌륭한 안해가 있는 법이예요.

그리구 우리 함께 남편을 잘 도와서 첨가제를 꼭 성공시키게 하자요.》

진정어린 그의 말에 정옥은 또다시 왈칵 울음을 터쳤다.

(이렇게도 깨끗하고 정직한 마음을 가진 기사장을 오해하다니… 내가 나쁜년이였어. 남편의 연구를 돕느라 그 곱던 얼굴이 축가고 탐스럽던 머리가 다 빠졌는데 난 오히려 그를 오해하고 노엽히기까지 했으니 …)

정옥은 자기의 잘못을 다 털어놓고 사죄하고싶었다. 그러나 목이 꽉 메여와 송영숙의 손을 꼭 잡기만 하였다.

더 말해 무엇하랴! 련민의 정 어린 따뜻한 그 손길이 천만마디 말을 다 대신하는데야…

그날 집으로 돌아온 정옥은 옷장속에서 까만색나이론천을 꺼내였다.

낮이나 밤이나 수건을 쓰고 불편해하는 기사장에게 모자를 만들어주리라 생각했던것이다. 원래 알뜰한데다가 눈썰미가 있어서 웬간한 아들애의 옷은 제손으로 만들어 입히군 하던 정옥이다. 그러나 모자를 만들어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는 한동안 고심하였다.

어느덧 기사장의 머리모양을 그려보며 모자형태를 마름한 그는 재봉기앞에 다가앉았다.

이때 출입문소리가 들려왔다.

정옥은 남편이 들어오는가 하여 얼른 일어나서 전실로 나갔다. 남편이 아니라 방송화였다.

《부식물감이 좀 생겨서 가져왔어. 헌데 오늘이야 휴식날인데 좀 놀러 다니지 않구 뭘하나?》

그는 가볍게 나무람하였다.

《자! 이건 감자하구 풋고추인데 얼마 되지 않아.》

방송화는 들고온 구럭지를 내밀었다.

정옥은 그가 가져온 감자와 풋고추를 고맙게 받아들었다. 무엇이든 생기면 꼭꼭 잊지 않고 가져다주는 방송화여서 간혹 불쾌한 일이 있었다고 해도 쉽게 용서가 되군 하던 그였다.

정옥은 방안에 들어온 방송화앞에 사과그릇을 내놓았다. 향기롭고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본 방송화는 사양않고 한알을 집어들었다. 과일칼로 돌기돌기 사과껍질을 깎던 그는 문득 손을 멈추고 눈길을 들었다.

《누이! 들었어? 기사장이 병원에 입원했다는거 말이야.》

그의 물음에 정옥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잠시나마 잊고있던 기사장의 모습이 또다시 가슴아프게 되새겨졌다.

그러나 방송화는 입을 비죽거리며 또다시 험담바구니를 헤쳐놓았다.

《죄루 돌았지. 남의 일 잘되는걸 그렇게두 배아파하더니… 우리 승호 아버지한테구 일철이 아버지한테구 오죽 못되게 놀았나? 응?》

그는 잘코사니하는 얼굴로 다시 사과껍질을 깎았다.

다음순간 그는 흑- 하고 흐느끼는 소리에 눈길을 쳐들었다.

정옥이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앉아 어깨를 떨고있었다.

《갑자기 왜 그래, 응?》

시누이의 갑작스런 행동에 방송화는 작은 눈을 치떴다.

정옥은 인츰 손을 내리우고 방송화에게로 돌아앉았다.

《형님! 형님은 어쩌문 그리두 악하구 모질어요. 예? 형님은 그래 기사장이 왜서 병원에 입원했는지 정말 모르나요?》

《?!》

《모르면 내가 알려주지요.

기사장동진 바로 우리 일철이 아버지를 돕다가 그렇게 됐어요. 머리카락이 한오리 두오리 다 빠지도록 도왔단 말이예요.…

그래 오빠나 형님이 한번이나 우리 일철이 아버지를 도와준적 있나요? 오히려 찬물을 끼얹으면서 왼새끼만 꼬았지요?

그런데 죄루 돌았다구요? 그한테 무슨 죄가 있게요? 죄라면 기사장을 죽도록 모욕한 우리한테 있어요. 우리한테 있구말구요.

정말이지 형님이나 나는 기사장의 발뒤꿈치에두 못 가는 버러지예요. 버러지구말구요. 그런데두 형님은 기사장을 혈뜯기만 했지요?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모아서 그냥그냥 헐뜯었지요?…》

정옥의 입에서는 울음섞인 말마디들이 총알처럼 튀여나왔다.

그 총알들은 높은 명중률로 방송화의 가슴에 사정없이 들이박혔다.

시누이한테서 난생처음 항변을 당해본 방송화는 당황하고 무안해서 쩔쩔매였다.

하지만 정옥은 꺽꺽 흐느끼며 그냥 내쏘았다.

《형님! 다시는 우리 집에 오지 말아요. 나두 오빠네 집에 가지 않을테니까요. 절대루 안가요! 좋은 사람들이 많구많은데 뭣때문에 오빠네 집에 가겠나요? 안가요! 죽인대두 안갈테니 형님두 그런 못된 말을 하려거든 우리 집에 오지 말아요.》

이윽고 정옥은 자책과 설음에 겨워 또다시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어깨를 떨었다.

그 울음소리에 쫓기듯 방송화는 뒤걸음질로 나가버렸지만 서정옥은 그냥 흐느꼈다.

다음날 저녁 서정옥은 또다시 병원에 찾아갔다.

송영숙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정옥의 수고를 헤아리며 가볍게 책망했다.

《날이 저물어가는데 왜 또 왔어요? 집에도 할일이 많겠는데…》

하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당과류와 과일을 내놓았다.

정옥은 몹시 송구스러워했다.

그는 한동안 주춤거리다가 가방안에서 모자를 꺼내였다. 까만색나이론천에 까만 레스로 모양곱게 장식하여 만든 모자였다.

《이건 내가 만든건데… 수건대신 이걸 쓰면…》

그 모자를 받은 송영숙은 이리저리 돌려보며 활짝 웃었다.

《이게 정말 정옥동무가 만든거나요? 손재간이 보통 아니군요. 멋있어요. 정말 잘 만들었군요. 헌데 어떻게 이런 궁리를 다했을가? 하여튼 이걸 쓰면 수건은 벗어두 되겠군요.》

송영숙은 기뻐하며 수건매듭을 풀었다.

정옥은 일어나서 그에게 모자를 정히 씌워주었다.

송영숙은 얼른 거울을 가져다가 들여다보았다. 하더니 만족한듯 밝게 웃었다.

《좋군요. 이제는 공장에 나가도 될것 같아요. 그렇지요?》

그는 모자를 쓴 머리를 매만지며 어떤가고 물었다.

정옥의 눈가에는 또다시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언니!》

그는 나지막한 소리로 한마디 하였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기사장동지! 나한텐 언니가 없어요. 그러니 이제부터 기사장동지를 언니라고 부르겠어요. 그리구 친언니처럼 따르겠어요. 일없지요?…)

정옥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그 말을 다 들은듯 송영숙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요, 정옥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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