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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59 회)


제 5 장 사랑의 힘


10


정의성의 발걸음은 집이 아니라 호수가로 향해졌다.

집에 들어가도 잠들것 같지 못했다.

달빛밝은 이밤 쌓이고쌓인 괴로운 마음을 호수가에 터놓고싶었다. 그의 마음을 달래이듯 상쾌한 가을바람이 그의 옷자락에 매달려 어리광치듯 가벼웁게 날려주었다.

어느덧 호수가방뚝에 올라선 그는 드넓은 호수를 둘러보았다. 기쁘고 즐거워도, 힘들고 괴로와도 고향집처럼 찾게 되는 호수가였다.

굴지의 오리고기생산기지를 탄생시킨 대자연호수, 주체가금업의 새 력사가 아로새겨진 호수가의 달밤이 그 어느때보다 유정하게 안겨왔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물오리의 울음소리… 달빛어린 호수가를 너도 보고 나도 보자 몸체를 번쩍이며 경쟁하듯 뛰여오르는 물고기들…

방뚝아래켠에 낚시줄을 드리우고 앉은 낚시군의 모습이 보였다. 이따금 머리우로 번쩍거리는 그 무엇이 팔매선을 그리기도 한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문득 지난해 여름 공장창립절에 있었던 일들이 사진처럼 안겨왔다.

그날 공장에서는 소학교운동장에서 체육오락경기를 조직하였다.

두개의 종금직장과 가공직장, 알깨우기직장은 지배인의 팀으로서 1조였고 청년직장을 비롯한 생산직장들은 당비서의 팀인 2조였다. 3조는 배합먹이직장을 모체로 운수직장과 기술준비소, 편의봉사부문으로 무어진 기사장의 팀이였다.

체육오락경기는 처음부터 치렬하였다.

공장직맹위원장이 나서서 경기시작을 선포할 때에는 지배인도 당비서도 그리고 기사장도 주석단에 앉아서 자기들의 팀을 미더웁게 바라보고있었다.

그러나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지배인이 먼저 웃옷을 벗어던지고 운동장에 뛰여들었다. 젊은 시절 대학축구팀 주장으로 활약하였던 그는 나이가 많아도 축구라면 팔다리가 근질거려 앉아있지 못했다.

축구경기가 시작되자 지배인은 아예 운동복차림으로 꼴문대앞에 뒤짐지고 척 나섰다. 아직 문지기쯤은 자신있다는 자세였다.

꼴문대앞에 서있는 지배인을 본 1조종업원들은 사기충천하여 둥둥둥 북소리를 크게 울리였다.

운동장은 응원자들의 함성과 북소리, 노래소리로 들썩하였다.

김춘근당비서도 자기 팀이 수세에 몰린듯 하자 안절부절하더니 사람들속에 묻혀 뛰여다녔다. 청년직장과 생산직장의 몸매 날씬한 관리공처녀들은 꽃수건을 흔들고 손벽을 치며 멋지게 팀의 선수들을 응원하였다.

그러나 1조와 2조가 아무리 날고뛰여도 3조와는 아예 상대가 못되는것 같았다. 축구에서는 비록 지배인의 팀에 졌지만 배구와 롱구는 물론 윷놀이와 장기를 비롯한 오락경기에서는 압도적인 우승을 기록했기때문이다.

송영숙은 팀의 상징인 푸른색운동모자를 척 쓰고 응원자들앞에 서서 흥취를 돋구는 멋진 률동으로 선수들의 응원을 지휘하였다. 그리고 공안고달리기종목에 선수로 참가하여 주로를 따라 힘껏 달리기도 하였다.

그날 정의성은 머리도 쉬울겸 한켠에 앉아 구경만 하고있었다.

대학시절에는 곧잘 운동장에 뛰여들어 날파람있는 동작으로 인기를 독점했던 그였으나 지금은 별로 의욕이 없었다. 그런데 배구경기에 참가할 선수들이 입장할무렵 송영숙이 그에게로 달려왔다.

《정동문 왜 그러구있어요? 동무야 배구를 잘하지 않나요. 빨리 나와요! 어서요!》

그는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기사장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배합먹이직장장이 다가서서 덮치듯 그의 옷을 와락와락 잡아벗기였다.

《빨리! 빨리! 자, 다리를 들라니까. 제길…》

배합먹이직장장은 바지가랭이를 잡아당기며 제켠에서 툴툴거렸다.

정의성은 그때 또 누가 자기에게 푸른색운동복을 입혔던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가 운동복을 입고 일어섰을 때 송영숙은 《한번 본때를 보이세요.》하며 주먹까지 흔들어보였다.

송영숙의 얼굴과 온몸은 생의 활력과 열정으로 충만되여있었다.

정의성에게는 자기의 젊은 시절을 추억해주며 경기장으로 이끄는 그가 무척 고마왔다. 닭공장에서 휴식날이나 명절날마다 진행되군 하던 로동자들과 소조원들의 배구경기에서 정의성이 언제나 기둥선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송영숙이뿐이였다.

그것을 오늘까지 잊지 않고있는 송영숙에 대한 고마움을 안고 경기에 나선 그는 멋진 타격솜씨와 맵짠 내려까기로 팀의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다.

배구는 물론 바줄당기기에서도 3조를 당할 팀이 없었다.

하여 그날 경기에서 3조는 당당히 1등의 시상대에 올라섰다.

체육오락경기가 끝나자 사람들은 배합먹이마대를 다루는 배합먹이직장의 힘장사들한텐 두손을 들었다고 머리를 저었다. 어떤 사람들은 3조에 기술준비소가 속해있기때문에 전략전술적으로, 기술적으로 이겼다고 말하면서 즐겁게 웃었다.

깊은 인상을 남겨준것은 그날 저녁이였다.

공장에서는 휴식날의 피로도 풀겸 직장별로 호수가에서 저녁식사를 조직하였다.

여름날 저녁의 호수가는 참으로 좋았다. 삼복의 무더운 날씨에도 호수가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푸른 하늘, 푸른 숲, 푸른 호수…

메고치의 솔숲에 때아닌 함박눈이 내린듯 수백마리의 백로들이 하얗게 내려앉아 호수가의 아름다움을 더해주고있었다. 물우에서 쌍쌍이 헤염치는 물오리들에게 자기들의 낚시솜씨를 자랑하듯 길다란 부리로 물고기 한마리를 쪼아물고 유유히 솔숲으로 날아가는 백로들도 보였다.

끼륵끼륵 백로들의 울음소리도 유정하게 들려오는 호수가…

종업원들은 호수가 곳곳에 좋은 위치를 골라잡고앉아 오락회도 하고 특식도 준비하면서 저녁시간을 즐기였다.

어디서나 녀인들의 칼도마소리도 정다웁게 들려왔다.

젊은 축들은 호수에 뛰여들어 수영도 하고 물장구를 치며 웃고 떠들었다.

어떤 직장에서는 가족들까지 데리고나와 저녁시간을 즐기는지 깔깔깔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들려왔다.

호수 한가운데로 쪽배를 몰고나가 거기에서 기타를 타면서 노래를 부르는 청년들은 어느 직장 젊은이들인지…

온 호수가 그대로 웃음바다, 노래바다였다.

기술준비소에서는 배양액을 끓이던 큰 가마를 손달구지에 싣고 호수가로 나왔다. 유상훈박사가 발기한대로 어죽을 끓이려는것이였다.

호수의 조개와 물고기는 특별히 맛있고 영양가높은 보약이라면서 박사는 불고기대신 어죽을 끓이자는 안을 내놓았던것이다.

삼복철에 땀을 뻘뻘 흘리며 더운 어죽을 먹는 맛도 별맛일것이다.

식사당번인 서정옥의 요구대로 기술준비소의 젊은이들은 방뚝아래 안침진 곳에 큰 가마를 걸어놓았다. 그리고 호수건너편 골방고치쪽에까지 헤염쳐가서 조개를 한구럭씩 건져왔다. 몇사람은 반두와 낚시로 물고기를 잡았다.

정의성도 아이들의 심정이 되여 물속에서 헤염치며 조개를 건져왔다.

호수에는 물고기뿐아니라 손바닥보다 더 큰 조개도 많았다.

정옥은 봄순이와 분석공처녀를 데리고 젊은이들이 잡아온 물고기며 조개를 받아 부지런히 손질하였다.

어느덧 호수가에 노을이 피여났다.

노을비낀 호수가는 더없이 아름다왔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생의 희열과 앞날에 대한 꿈을 안겨주며 자기의 붉은색으로 누리를 채색해주는 노을은 또 얼마나 좋은가…

정옥이네가 씻은 쌀과 조개며 물고기를 큰 가마에 안치자 유상훈박사는 점화례식이라도 거행하듯 길다란 종이말이에 불을 달아 손수 아궁이에 지피였다.

잠시후 벌렁벌렁 어죽끓는 소리가 기분좋게 들려왔다. 구수한 어죽냄새가 위벽을 자극하면서 입안에 핑그르- 군침이 돌게 했다.

사람들은 가마주위에 빙 둘러앉았다.

배합먹이직장사람들과 자리를 같이하였던 송영숙이 서정옥이와 리봄순의 손에 끌려 기술준비소사람들에게로 왔다.

그는 유상훈박사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윽고 정옥은 봄순이와 함께 어죽을 퍼담았다. 사람들은 김이 오르는 죽그릇들을 즐겁게 받아들었다.

젊은이들은 잊지 않고 호수가물속에 잠그었던 맥주병들을 꺼내왔다.

맥주병마개들이 축포마냥 팡팡 소리를 내며 머리우로 튀여올랐다.

송영숙의 손에도 부그그 거품이 오르는 맥주고뿌가 쥐여졌다.

《무엇을 위해 들겠습니까?》

유상훈박사가 맥주고뿌를 들고 곁에 앉은 기사장에게 물었다. 좌석의 의미를 보다 뜻깊게 하려는 생각에서였다.

송영숙은 밝게 웃었다.

《우리 공장의 번영을 위해 들어야지요. 우리의 힘과 열정으로 더 훌륭하구 아름답게 번영해갈 공장의 래일을 위해 들자요. 어때요?》

모두가 그의 말에 호응했다.

드디여 첨가제생산실의 젊은이가 큰소리로 선창을 뗐다.

《공장의 번영을 위하여 축배!》

《축배!》

모두가 더욱더 아름다울 호수가의 래일을 축복하며 축배를 들었다.…

정의성의 귀전에서는 지금도 송영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우리의 힘과 열정으로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번영해갈 공장의 래일을 위하여…》

문득 《우리 함께 공동연구를 하는게 어때요?… 우리 두사람의 힘과 지혜를 합친다면 하나의 크고 훌륭한 열매를 딸게 아니나요?》하고 묻던 처녀시절 송영숙의 목소리도 떠올랐다. 열정적이면서도 순진한 마음이 어려있는 새별같은 그 눈동자와 함께…

다음순간 채찍과도 같은 목소리가 귀전을 때렸다.

《동문 아직두 네것과 내것을 놓고 타산하는가요?…》

차수정의 목소리였다. 찌르는듯 한 그의 눈빛도 상기되였다.

또다시 엄습해오는 아픔, 아픔…

정의성은 머리를 떨구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수정의 말이 백번천번 지당하다는것을 인정하였다.

(그렇다! 영숙동문 어제도 오늘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충실했다. 조국에 대한 불보다 뜨거운 그 사랑으로 지금껏 우리를 위해 모든걸 다 바쳤다.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가며 이 땅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런데 나는…)

정의성은 호흡이 절박한듯 반쯤 벌려진 입으로 공기를 들이켰다.

(수정동무의 말대로 나는 지금껏 오로지 나의 발전과 명예만을 위해 살아왔다. 사랑도 생활도 연구사업까지도 철저히 《나의것》을 기준으로 타산하였고 또 그 타산에 모든걸 복종시켜왔다.…)

정의성의 입가에서는 흐느낌과 흡사한 한숨소리가 새여나왔다. 그는 뼈아픈 자책에 겨워 오래도록 호수가를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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