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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57 회)


제 5 장 사랑의 힘


8


장병식지배인은 요즈음 기사장이 달라졌다는것을 느꼈다.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늘 앉던 자리가 아니라 뒤켠에 앉군 하는 기사장이였다.

몸은 눈에 띄게 수척했고 걸음걸이도 힘겨워하는것이 알리였다.

얼마전까지도 싱싱한 젊음으로 녀성의 전성기를 자랑하던 그였다. 건강미 넘치는 얼굴이며 열정적인 몸가짐과 걸음걸이마다에서 생의 활력이 발산되던 그 모습이 지금은 간곳없이 사라져버렸다.

더우기 오늘 아침에는 수건까지 눌러쓰고 주눅이 들어보이는 눈길로 앉아있었다.

(초가을날씨에 수건은 왜 쓰는걸가?…)

아침모임때에는 썼던 수건도 벗는것이 초보적인 례의와 도덕이라는것을 기사장이 모를리 없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기사장은 한겨울에도 수건을 목도리처럼 감고 다니군 했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미심쩍은 생각만 앞섰다.

아침모임을 끝내고 마당으로 나온 장병식지배인은 동력부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설비부기사장을 띄여보았다.

《부기사장동무!》

지배인은 걸걸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동력부원과 헤여져 청사안으로 들어가려던 최금천이 성큼성큼 큰걸음으로 다가왔다.

장병식은 포도나무넝쿨아래 그늘진 곳에 앉으며 옆자리를 가리켰다.

《요즘 기사장동무한테서 무슨 별다른걸 느끼지 못했소?》

그는 의자에 큰 체구를 내려놓는 최금천에게 직방 물었다.

《별다른거라니요?》

최금천은 농립모를 쓴 머리를 기웃거렸다.

장병식지배인은 큼직한 주먹으로 두무릎을 꾹 짚고 앉아서 최금천을 건너다보았다.

《내가 잘못봤는지 모르겠는데 요즘 기사장동무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것 같더구만. 그렇게 뵈지 않습데?》

그의 물음에 최금천은 그제야 머리를 끄덕끄덕했다.

《나두 기사장이 훌렁한 작업복을 입은걸 보구 몸이 무척 약해졌다구 생각했는데… 오늘은 수건까지 썼더군요.》

최금천은 녀자들이 아이를 키울 땐 모두 힘들어하구 쇠약해진다고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생각에 잠겼던 그는 뭔가 짚이는데가 있어 머리를 들었다.

《기사장동무가 오늘 미용을 한것 같습니다. 우리 집사람두 미용을 하구선 늘 수건을 쓰더군요.》

《미용?》

장병식은 귀설게 들리는 그 말을 듣고 눈섭을 찌프렸다.

최금천은 머리를 끄덕이며 크고 두툼한 손을 머리우에 올리고 굽실굽실 물결모양을 형상해보였다.

그만에야 지배인은 씨물 웃음지었다. 말을 듣고보니 그럴듯 싶었다.

가정생활을 통채로 친정어머니에게 떠맡기고 휴식날도 없이 뛰여다니는 기사장이여서 미용실에 찾아갈 시간을 내기도 헐치 않을것이다.

(하지만 몹시 축간것만은 사실인데…)

장병식지배인은 무거운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였다.

그날 낮시간에 차수정이 지배인을 찾아왔다.

장병식은 수정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공장의 생산과 기술에 이바지하기 위해 도서보급사업을 책임성있게 잘하면서도 남편의 연구를 도와 남모르는 수고를 바친 그였다.

장병식지배인은 그에게 가정생활과 보급사업에서 제기되는 일이 없는가를 알아본 다음 무슨 일때문에 왔는가고 물었다.

수정은 말없이 들고온 작은 약병을 내보였다.

장병식은 하얀색가루가 담겨진 약병과 수정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

《지배인동지!》

차수정은 가쁜듯 심호흡을 하며 저으기 흥분된 어조로 말하였다.

《이게 원지 압니까?… 오리의 먹성을 높여주는 베타인이라는겁니다. 공장첨가제에 넣을 먹이유인제 말입니다.》

《먹이유인제? 헌데… 이걸 어디서 가져왔소?》

지배인은 흥미있는 눈길로 수정과 약병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이건 영숙동무가, 송영숙기사장이… 화학공장 페설물속에서 얻어낸겁니다.》

《우리 기사장동무가?》

수정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는 기사장이 이것을 연구하기 위해 운수직장창고에 실험실을 꾸리고 거기에서 독성이 센 화학공장 페설물과 씨름하면서 먹성인자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 연구로 온몸이 쇠약해지다못해 머리카락이 거의다 빠졌다고 말할 때에는 목소리까지 떨리였다.

장병식지배인은 눈을 흡떴다.

《머리칼이 다 빠졌다구? 그래서 요즈음 수건을 쓰구 다녔소?》

그는 어지간히 큰소리로 물었다.

수정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며 대답대신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윽고 그는 물기어린 목소리로 송영숙이 닭공장에서부터 광명성제염소 소금밭이끼에 의한 새로운 첨가제연구를 해왔으며 자기가 연구해온 모든것을 정의성에게 고스란히 넘겨주고 그의 연구를 도왔다고 말하였다.

크나큰 충격에 지배인의 얼굴은 고동색으로 변하였다.

눈앞에는 지난해 실험실을 꾸리겠다면서 제켠에서 운수직장창고를 택하던 기사장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장난삼아…》하고 말하며 빙긋이 웃던 얼굴도 떠올랐다.

(그래서였구나! 남들의 눈을 피해가며 그곳에서 연구를 하려고…)

지배인의 가슴은 와짝 저려들기 시작하였다.

그는 수정에게 기사장이 지금 어디 있는가고 물었다.

《진료소장이 빨리 군인민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기에 방금전에 친정어머니랑 함께 떠났습니다. 그러면서 지배인동지에게 말씀드려달라고 부탁하더군요. 그는 지금 자기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기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나더러…》

수정은 의사앞에서도 수건을 벗어보이기 저어하던 송영숙의 모습을 아픈 마음으로 그려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장병식은 어깨숨을 내쉬였다.

《그럴테지. 기사장도 녀성이니까.》

이윽고 그는 끙 자리에서 일어났다.

《보급원동무! 나와 함께 실험실에 가보기요. 난 아직 한번도 거기에 가보지 못했소.》

지배인의 목소리는 깊은 자책에 잠겨있었다.

이윽고 장병식과 차수정은 사무청사를 나서 운수직장으로 향했다.

지배인은 말없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그는 기사장이 실험실을 꾸리겠다고 했을 때 그의 말대로 《장난삼아…》 무엇인가 해보려니 하면서 무관심했었다.

(인체에 해를 주는 위험한 실험과 연구를 혼자서 하느라고 그렇게 말했구나.…)

자책의 마음은 실험실에 들어섰을 때 더욱더 커졌다.

대소한의 추운 날씨에도 선풍기를 틀어놓고 손발을 얼구면서 실험을 하다가 드문히 정전이 되면 교반기의 날개를 손으로 돌려가면서 연구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수정의 말에 그는 머리만 끄덕이였다.

그는 페설물이 담겨진 유리용기며 두대의 선풍기를 몇번이고 만져보았다.

(당비서동무가 가져다준 선풍기라고 했지.…)

그는 차수정이 내보이는 실험일지들도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

《이게 닭공장에서부터 가지고있던 실험일지겠소?》

그의 물음에 수정은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장병식지배인은 시약에 얼룩지고 보풀이 진 두툼한 실험일지들을 한권두권 펼쳐보았다. 맨 앞장에 진하게 돋구어 쓴 실험년도와 날자도 생각깊은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얼마후 장병식지배인은 혼자서 사무실로 돌아왔다.

방에 들어온 그는 오래도록 깊은 자책에 잠겨들었다.

장병식의 눈길은 베타인이 들어있는 약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오늘 우리 당에서는 모든 공장, 기업소들에서 생산과 건설을 주체화, 국산화할것을 요구하고있다.

현시기 국산화를 위한 투쟁은 곧 사회주의조국수호전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준엄한 싸움에서 우리 일군들이 앞채를 메고 맨 앞장에 설것을 요구하고있다. 그런데 나는…)

장병식은 지금껏 자기야말로 공장의 기업관리와 생산활동을 위해 온몸을 초불처럼 태워왔으며 기술자, 기능공들의 사업을 누구보다 잘 받들어주었다고 자부해왔었다.

그러나 오늘 공장의 생산과 기술을 위해 자기의 소중한 모든것을 깡그리 바친 송영숙기사장의 헌신적인 태도에 자기자신을 비추어보며 소스라치듯 놀랐다.

문득 2년전, 방역대의 혈청주사로 인한 시험호동의 무리페사때 일이 떠올랐다. 그때 송영숙은 사고의 원인을 해명하기 위해 얼굴이 까매서 뛰여다녔다.

(하지만 나는 그때에도 모든걸 강건너 불보듯 하였지. 부검결과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나타나면 당장에 첨가제연구를 중지시키려고 생각했었고… 하면서도 기사장이 생산문제보다 과학기술적문제에 더 관심한다고 은근히 불만까지 품었지.…

그리고 공장첨가제가 제아무리 좋다 해도 수입첨가제만이야 하겠는가고 생각하면서 수입에 의존하지 않으면 당장 현행생산을 할수 없다는 관점을 완전히 털어버리지 못하고있었다.…)

장병식지배인의 가슴은 자책으로 저려들었다.

(사회주의경제강국건설을 위한 총공격전이 벌어지고있는 오늘 우리 일군들이 제일 경계해야 할것은 사대주의병, 수입병이다.

그런데 나야말로 수입의존심이 누구보다 강한 사람이 아니였던가.…)

장병식지배인은 정의성을 비롯한 공장의 기술자들이 공장첨가제를 완성하기 위해 애쓰는것을 보면서 지지하고 응원이나 하였을뿐이지 녀성기사장처럼 어깨를 들이밀지는 않았었다.

장병식지배인은 자기자신에게 아픈 매를 안겼다.

(지금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은 우리 공화국을 고립압살시키고 자립경제의 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온갖 비렬한 책동을 다하고있다. 놈들은 우리 인민들의 생활에 필요한 물자로부터 주요공장설비와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분야에서 거래를 제한하고 금지시키는 한편 저들의 잉여상품, 질낮은 제품을 들이밀기 위해 교활한 술책을 다 쓰고있는것이다.

그러니 수입병에 걸린 사람이야말로 민족적자존심도 없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배만 불리워주는 사람이고 또한 적들의 반공화국압살정책에 편승하는 사람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장병식지배인의 마음은 자책으로 점점 더 무거워졌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창문가로 다가가 운수직장쪽을 바라보았다.

수건을 눌러쓴 기사장의 모습을 그려보던 그는 또다시 자책에 겨워 어깨숨을 내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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