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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54 회)


제 5 장 사랑의 힘


5


리병우는 끝내 미생물발효법으로 오리털단백질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오래전에 알카리분해법에 의한 털단백질먹이를 얻어냈지만 미생물먹이가 세계적인 추세로 되고있는 현실에 맞게 연구방향을 바꾸고 고심어린 노력을 바쳐온 그였다.

《…십여차례에 걸쳐 비교실험도 해보았는데 오리증체률을 10~12프로로 높이면서도 콩깨묵을 30프로 대용할수 있었습니다. 그리구 종금에게도 먹이면서 생태조사를 해보니 알낳이률도 훨씬 높았습니다.…》

수정이 남편을 대신해서 사람들에게 설명하였다.

리병우와 가정을 합친 후 도서보급을 마치고는 거의 종금직장에 나와 살다싶이 하는 그였다.

송영숙은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축하해요! 축하해요!》

그는 멋적은듯 웃음을 짓고 서있는 리병우와 차수정을 번갈아보면서 그들의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기사장사업을 시작한이래 오늘처럼 기쁜 날이 있었던것 같지 않았다.

털단백질먹이를 내려다보는 송영숙의 눈앞은 뿌잇하게 흐려지기까지 했다. 이것을 위해 바쳐온 수의사의 고심어린 수고와 사연많은 나날들이 한순간에 떠올랐다. 이제는 옛말처럼 된 그 날과 날들이…

《난 믿었어요. 그리구 다 알아요. 두 가금전문가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사랑의 열매라는걸 말이예요.》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남편곁에 서서 웃음을 짓고있는 수정에게로 다가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마워! 우리 공장을 위해 정말 큰일을 했구나.》

그의 말에 종금직장장도 벙실거렸다.

《옳습니다. 보급원동무가 아니면 절대 성공할수 없었지요.》

진심이 담겨진 그 말에 리병우도 차수정도 다같이 얼굴을 붉혔다. 그 붉어진 얼굴들에는 자기들의 재결합과 성공을 위해 마음기울인 송영숙과 모든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져있었다.

얼마후 송영숙은 보급실로 가는 수정과 나란히 종금직장을 나섰다.

그들은 서로서로 가정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정에겐 자랑거리가 많았다.

진철에게 시집을 간 봄순이도 임광일직장장이 사업하는 종금직장에서 관리공으로 일하면서 짬짬이 친정집에 찾아온다고 했다.

수의사도 요즈음엔 기분이 좋은지 이따금 코노래를 부른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송영숙은 깜짝 놀랐다.

《정말?》

《정말이야. 웃는 신경이 영 마비된 사람인가 했는데 그렇지 않아.》

수정의 말에 송영숙은 호호 큰소리로 웃었다.

자기들의 가정생활에 대하여 즐겁게 말하던 수정은 약간 걸음을 늦추며 송영숙을 쳐다보았다.

《영숙아! 나 임신했어.》

속삭이듯 말하는 그를 보며 송영숙은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게 정말이니? 거짓말 아니지? 응?》

그는 수정의 손을 잡으며 흔들기까지 했다.

수정은 쑥스럽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의 입가에 발그스레한 꽃잎이 곱게 피여났다.

《축하해! 갓 마흔에 첫 버선이라더니… 남편도 기뻐하겠지?》

남편말이 나오자 수정의 입귀는 다시 실그러졌다.

《그이야 좋아하든 말든… 하지만 난 아일 낳구싶어. 그건 완전히 내것이니까.》

그의 말에 송영숙은 수정의 어깨를 가볍게 밀쳐버렸다.

《독설쟁이! 넌 그저…》

문득 장난기어린 심술이 살아나 부러 엄포를 놓듯 말했다.

《난 네가 두번다시 수의사를 괴롭히면 그땐 용서치 않겠어. 출판물보급원두 못하게 하구 공장에서 내쫓아버리구 또…》

다음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갑자르자 수정이 제꺽 말꼬리를 이었다.

《공장마을에서두 추방하구?》

《그래! 물론 추방해야지. 그다음엔…》

《그다음엔 또 어쩔테냐? 때려주겠니, 응?》

차수정이 먼저 까르르 웃음보를 터뜨렸다. 요즈음 웃음이 많아지고 생기에 넘쳐있는 수정이다. 항상 보기싫게 실그러뜨리군 하던 입가에도 예전대로 고운 꽃잎이 피여나군 했다. 행복한 생활이 가져다준 웃음꽃이였다.

그들은 커다란 느티나무그늘아래 나란히 앉아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다시 꿈많고 웃음많은 녀학생시절로 돌아간듯 싶었다.

얼마후 수정이 웃음을 거두고 심각해진 눈빛으로 물었다.

《영숙아! 너 어디 아프지 않니? 요즘 완전히 딴사람이 됐어. 환하던 얼굴이 살이 빠져 조막만 해지구 지난해까지 팽팽하던 옷들은 남의것을 빌려입은것처럼 헐렁해졌어.》

수정의 눈길은 송영숙의 몸에서 떨어질줄 몰랐다.

송영숙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호호 웃었다.

《넌 꼭 해부학자같구나. 찌르는것 같은 눈으로 투시하면서… 하지만 걱정마. 걸구처럼 밥두 잘 먹구 잠두 잘 자니까. 그저 바쁘구 또 여름을 타서 그러는거야.》

송영숙은 수정을 안심시키듯 다시금 빙긋이 웃었다.

수정은 미심쩍은 마음으로 머리를 기웃하더니 다시 말했다.

《참! 너 요즈음엔 시험호동에 가보지 않는다지?》

《?!》

《정옥이가 섭섭해하더구나. 네가 요즘 달라졌다는거야. 공장에 처음 왔을 때와는 달리 지금은 몇달째 한번두 찾아오지 않는다면서…》

《요즘 너무 바빠서 그래.》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일군들의 얼굴에서 자기에 대한 평가를 읽으려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수정의 가벼운 충고에 송영숙은 심중한 얼굴로 머리를 끄덕였다.

이때 보급원을 부르며 달려오는 기술준비소 분석공처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가봐!》

송영숙이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럼 또 만나자.》

수정은 다정한 웃음을 지어보이고는 분석공처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행복으로 충만된 그의 마음에 날개가 돋친듯 수정의 발걸음은 경쾌하였다.

송영숙은 그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수정이도 오래지 않아 엄마가 되겠구나.… 어머니가 된다는건 녀성으로서 제일 큰 행복이지.… 오늘은 정말 기쁨도 크고 생각도 많아지는 날이구나.… 사랑과 행복, 행복과 사랑…)

그는 홀로 빙긋이 웃었다.

잠시후 그는 시험호동에 들려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수정의 말대로 몇달째 그곳에 가보지 않았으니 정옥이랑 모두들 서운해할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의성이 지금 큰단백풀시험포전건설에 동원되고있어서 그동안 거기에서 어떻게 일하고있는지도 궁금하였다.

시험포전건설이 끝나면 망간토운반도 조직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서던 그는 어지럼증때문에 다시 주저앉았다.

(내가 왜 이럴가? 이러다가 정말 쓰러지지 않을가?…)

수정이만이 아니라 요즈음엔 만나는 사람마다 그저 몰라보게 수척해졌다는것이 인사였다.

어머니도 남편도 벌써 몇번이고 병원에 가보라고 했었다. 그때마다 송영숙은 시간을 내보겠노라고 대답하군 했다.

사실 그는 자기의 몸이 허약해지는 원인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해를 넘기며 진행되는 실험으로 그의 육체는 나날이 더 쇠약해졌던것이다. 이따금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이러다가 혹시…)

다음순간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지난 겨울에는 추위때문에 가끔 배풍상태에 무관심했는데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의 경험에 기초하여 실험과 연구를 치밀하게 조직하면 더이상 다른 일이 없을거라고 자기자신을 위안했다.

어느덧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천천히 시험호동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험호동은 여느때없이 조용하였다. 둘러보니 새로 온 관리공처녀는 놀이장 한켠에 앉아 수채를 가셔내고있었다.

놀이장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송영숙은 가느다란 흐느낌소리와 함께 서정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들려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목소리는 문을 닫은 먹이조리실안에서 울리고있었다.

(무슨 일이 생겼나?…)

정의성은 오늘도 시험포전에 나가있을텐데 누구와 설분을 토하고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뇌리를 쳤다.

그는 조심히 먹이조리실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오빠! 그게 거짓말이 아니지요? 기사장동지가 오빠를 창고작업반으로 내보내고 우리 일철이 아버지도 시험포전에 내보냈다는거 말이예요.…》

《?!》

송영숙은 힘껏 귀뺨을 맞은것처럼 흠칫 몸을 떨었다. 하면서도 온몸이 긴장해지는것을 느끼였다. 정옥이와 마주앉은 사람은 서정관이 분명했다.

송영숙은 며칠전에 행정처벌을 받은 서정관이 누이동생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알고싶었다.

《됐다. 그만하라는데… 누가 처벌 주었든 내가 잘못한거야 사실이 아니냐? 그런데 뭘 자꾸…》

서정관이 무척 리해성있게 말했으나 정옥은 어거지 센 아이처럼 도리질을 해댔다.

《아니예요! 아니예요! 그게 문제가 아니예요. 이건 앙갚음이예요. 형님이 말하지 않았나요? 기사장동진 지금 우리 일철이 아버지와 오빠한테 앙갚음을 하구있다구요.》

《?!》

송영숙은 또다시 흠칫 몸을 떨었다.

(앙갚음이라니? 도대체 무슨 앙갚음이란 말인가?…)

그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의혹에 찬 물음에 대답하듯 정옥은 말을 이었다.

《오빠도 말하지 않았나요? 기사장이 전국보여주기에 나서게 된 우리 일철이 아버지의 뒤다리를 잡았다구요. 그뿐이나요? 일철이 아버지가 하는 첨가제연구까지 가로채구있지요? 실험실까지 따로 꾸려놓구요.

하면서도 망간토운반은 뒤전에 미루고 남편을 또 시험포전건설에 내보냈으니 세상에 이렇게 분한 일이 어디에 있나요? 예? 그러고도 모자라서 오늘은 오빠까지…》

서정옥은 하나하나 실례를 들어가며 말했다.

오해나 억측에도 나름의 론리가 있었다.

송영숙은 그만 눈을 꼭 감았다. 너무도 억울하고 분해서 심장이 와짝 저려들었다. (오해란 이렇게 무서운것이구나.…)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온몸이 부르르- 떨리기까지 했다.

정옥의 오해는 결국 오빠를 배합먹이직장으로 내보낸것을 계기로 폭발한것이다.

안에서는 서정옥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그냥 울리고있었다.

《난 기사장동지를 꼭 만나겠어요. 만나서 다 말하겠어요. 오늘 저녁에라도 찾아갈테야요.…》

송영숙의 가슴에서 울컥 분기가 치밀어올랐다. 그는 문앞으로 다가가 문기척소리를 크게 낸 다음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열었다.

조리실에 들어서는 기사장을 본 서정관의 얼굴은 금시 새하얗게 되였다. 엉거주춤 일어선 그는 눈건사를 어떻게 하였으면 좋을지 몰라 허둥거렸다.

당장이라도 기사장을 찾아갈듯 하던 정옥이도 땅속에서 불쑥 솟구친듯 눈앞에 서있는 송영숙을 보고 우뜰 놀라더니 창문쪽으로 반쯤 돌아섰다.

송영숙은 여유작작한 자세로 구석쪽에 놓인 의자를 끌어당겨 정옥을 향해 앉았다.

《정옥동무! 수고스럽게 찾아다닐 필요는 없게 됐군요, 이렇게 내 발로 찾아왔으니까요. 그러니 어서 내앞에서 다 말해봐요. 어서요.》

그는 침착한 눈길로 정옥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동무가 어쩌면 나를 그렇게 오해할수 있어요? 난 조금도 동무를 나쁘게 생각지 않는데 동문 어쩌면 그렇게도 나를…)

서정옥이와 직접 마주서고보니 문밖에서와는 달리 그에 대한 친근감이 살아났고 마음도 한결 평온해지였다. 그리고 오해속에서 몸부림치고있는 그가 측은해졌다.

서정관이 없다면 친동생처럼 껴안아주면서 눈물도 씻어주고 오해를 풀도록 따뜻이 위로해주고싶었다. 하지만 구차하게 자기 변명은 하고싶지 않았다. 오해를 푸는 열쇠는 말이 아니라 시간과 생활이 해독제가 아니던가.

정옥이도 송영숙을 보자 제나름의 설음이 북받쳤는지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 동실한 어깨를 떨었다. 방안엔 그의 흐느낌소리만 들렸다.

그럴수록 서정관은 더욱더 따분하여 쩔쩔매였다.

《더 할말이 없다면 난 돌아가겠어요.》

잠시후 송영숙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또박또박 말했다.

《나에 대한 평가는 정옥동무한테 다 맡기겠어요.

하지만 이것만은 명심하세요. 나쁜 생각은 품고있는 사람에게 더 해롭다는걸 말이예요.》

송영숙은 들어올 때처럼 천천히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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