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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8일

평양시간


(제 53 회)


제 5 장 사랑의 힘


4


《콩이 모두 변질되다니?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이예요?》

생산과장의 전화를 받은 송영숙은 깜짝 놀라 하마트면 송수화기를 떨굴번 하였다.

《한달전에 생산부기사장이 아무 일 없다고 했는데… 난 모르겠어요. 그럼 한달내에 그 숱한게 변질되였다는거예요?》

1톤 500키로그람이나 되는 배합먹이용 콩이 모두 변질되였다는 생산과장의 전화는 너무도 충격적이여서 송영숙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그는 송수화기를 내려놓은 다음 자리를 차고 일어섰다.

(통 모르겠어, 무슨 영문인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기 전엔 믿을수 없어. 믿지 못하겠어.…)

그는 덧옷을 입고 사무실을 나섰다.

한달전 행정참모부회의에서는 긴장한 배합먹이를 극력 절약하는것과 함께 보관을 잘하여 조금이라도 허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대책적문제를 토의했었다.

지난해보다 장마가 일찍 시작되는 조건에 맞게 배합먹이의 보관과 관리를 잘할데 대한 문제를 토의하면서 이 과업을 생산부기사장에게 주었던것이다.

서정관은 이 과업을 아주 책임적으로 수행하였다.

담당부원과 함께 과업을 받은 즉시 보관정형을 구체적으로 료해하고 이상이 없다고 착실히 전화보고까지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두키로도 아닌 그 많은 콩이 모두 변질되다니 송영숙은 도무지 믿을수 없었다.

(원료보관창고의 조명상태가 나빠서 잘못 보고 서뿔리 말했을수도 있다. 그래! 십분 그럴수 있어.…)

송영숙은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하면서 바삐 마당으로 나왔다.

몸을 솟구어 자전거에 오르려던 그는 갑자기 눈앞이 아찔하여 한손으로 눈을 가리우며 한동안 가만히 서있었다. 심한 어지럼증으로 까딱 움직일수가 없었다.

(요즘 피곤이 몰려서 그러는게야.…)

송영숙은 이마살을 찌프리며 자기를 위안하였다. 잠시후 자전거를 끌고 사무청사를 나서던 그는 마음이 조급해나서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배합먹이직장에 도착하니 마당에 나와있던 생산과장이 그에게 다가왔다.

《다시 잘 봤어요?》

송영숙은 자전거에서 내리며 다우쳐물었다.

과장은 쩝소리가 나게 쓴입을 다시였다.

《부기사장동문 어디 있어요?》

방금전에도 옆에 있었는지 과장은 이쪽저쪽을 둘러보았다.

송영숙은 급히 원료창고로 걸음을 옮겼다. 창고안에는 배합먹이직장장과 창고반장, 부원들이 모여있었다.

송영숙은 그들앞에 헤쳐놓은 마대는 거들떠보지 않고 창고안쪽으로 들어가 말없이 마대 하나를 끌어당겼다. 철썩 소리를 내며 발치에 떨어졌다. 그는 신경질적인 손동작으로 마대아구리를 와락와락 풀어헤쳤다. 물씬 곰광이냄새가 풍겨왔다.

송영숙은 울컥 치미는 분기를 누르며 마대아구리를 활짝 헤쳐보았다. 습기와 열에 의하여 시퍼렇게 곰팡이가 낀 콩알들이 아프게 눈을 찔렀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송영숙은 홱 돌아서며 창고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그는 결기어린 손동작으로 마대 하나를 또 끌어내려 아구리를 헤쳤다. 모두 곰팡이가 낀 콩이 들어있었다.

거친숨을 톺으며 홱 돌아선 그는 담당부원을 쏘아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예요? 배합먹이가 이상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예? 도대체 이게 뭔가 말이예요?》

여느때없이 날카로와진 그의 눈에서는 금시라도 새파란 불꽃이 탁탁 튕길듯 하였다. 그 눈빛앞에서 부원은 기가 질려 떠듬거렸다.

《부기사장동지가 그저 실사만 하면 된다기에…》

이때 지배인이 당비서와 함께 창고에 들어섰다.

그들도 벌깃하고 긴장된 얼굴로 제각기 마대를 한개씩 헤쳐보다가 억이 막힌지 어깨를 떨구며 한숨을 내그었다.

이윽고 황소숨을 씩씩 내뿜고있던 지배인이 어지간히 큰 목소리로 생산부기사장을 찾았다. 누구도 그의 행처를 모르고있었다.

《직장장! 창고장!》

지배인은 문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두사람을 큰소리로 불렀다.

《동무넨 배합먹이가 이렇게 될 때까지 뭘했소, 엉? 과장동무! 동무한텐 책임이 없소?》

지배인의 목소리는 창고안을 드렁드렁 울리였다. 그의 구리빛얼굴은 보기에도 험상하였다.

창고를 한바퀴 돌고난 당비서의 얼굴도 컴컴했다. 그는 생산과장에게 변질된 콩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고 조용히 물었다.

《배합먹이로는 안되고… 발효먹이로나 할수 있는데 곰광이냄새때문에 오리가 잘 먹겠는지 모르겠습니다.》

생산과장의 대답에 당비서는 기가 막힌지 두투름한 아래입술을 삐주름히 내밀었다.

사람들이 한창 변질된 콩을 두고 안타까와하고있을 때 서정관은 방옥화의 방에 들어박혀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덫에 치인 쥐마냥 가련한 신세가 된 그는 량손으로 책상을 부등켜잡고 한숨만 푹푹 내그었다.

배합먹이보관정형을 알아보고 필요한 대책을 세울데 대한 과업을 받은 그는 담당부원과 함께 창고를 휘 둘러보고는 직장통계원인 방옥화에게서 수량만 확인하는것으로 그쳤던것이다.

해마다 배합먹이보관에서 별다른 일이 없었고 제진장치와 배풍장치를 새롭게 해놓았으니 이상없을거라고 생각한 그였다.

(지난해 가을 수분함량이 많은 배합먹이를 받았다는걸 기억했더라면…)

그는 꺼지게 한숨을 내불었다.

그날 저녁 지배인방에서는 서정관의 문제가 심각하게 비판되였다.

공장일군들은 서정관의 무책임하고 기회주의적이며 눈가림식일본새에 대하여 예리하게 분석하고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원칙이 강하고 사리정연한 계획과장은 변질된 배합먹이는 다름아닌 서정관이라는 인간을 평가하게 해준다고 말하였다. 그의 정신상태가 변질되였기때문에 귀중한 배합먹이를 부패시켰다고 비수같은 말마디로 비판하였다.

최금천도 소꿈친구의 결함에 대하여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면서 그의 무능한 일본새에 되게 매질을 하였다.

《…현장사람들이 동무보고 뭐라구 하는지 압니까? 초보적인 발효법도 모르는 무식쟁이라구 합니다.

사실이지 난 이런 평가를 받는 동무를 볼 때 정말 괴롭습니다.…》

이윽고 생산2직장장 윤흥식이 안경을 추슬러올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한동안 창문을 등지고앉은 서정관을 쳐다보며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것이였다.

《난… 부기사장동무를 볼 때마다 늘 공장의 전 지배인이였던 저 사람의 아버지 생각을 하군 합니다.

우리 공장의 첫 세대인 그분은 어느모로 보나 훌륭한 사람이였지요.

오래전에 나는 그분과 함께 어분배합먹이를 받으려구 동해지구로 출장을 간적 있었습니다. 그때보니 그분은 정말이지 공장만을 위해 사는 사람입디다.

오구가는 출장길에서두 항상 오리기르기상식을 읽으면서 다녔구 또 늘쌍 공장을 마음속에 안구살더군요.

난 지금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어느날 밤을 잊을수 없습니다. 그날 지배인동진 공장이 근심스러워서 온밤 잠들지 못하더군요. 밤이 깊어가자 끝내 자리를 차고 일어서는것이였습니다.

왜 그러는가고 물으니 체신소에 가봐야겠다는것이였습니다.

그때만 해두 체신소에 찾아가야만 전화를 할수 있었는데 그분은 제딸같은 어린 교환수처녀에게 사정사정하면서 온밤 전화로 공장의 생산실태를 료해합디다. 난 그때 그분이 전쟁때 입은 상처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하는지 다는 몰랐지요.

다음날 비오듯 땀을 좔좔 흘리구 헛소릴 치면서 되게 앓는걸 보구야 난 이 사람이야말로 공장을 위해 살구 또 죽을수도 있는 일군이구나 하구 생각했습니다.

예로부터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있는데 난 부기사장동무가 아버지의 절반만 한 사람이라도 되였으면 합니다.》

윤흥식은 일어설 때처럼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조용히 앉았다.

그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누구나 전쟁로병 영예군인인 전 공장지배인을 추억하면서 묵묵히 앉아있었다.

지금껏 뻣뻣한 자세로 앉아있던 서정관도 아버지의 말이 나오자 머리를 푹 수그리며 자책어린 한숨을 내불었다.

그날 회의에서는 상급당조직과 토의하여 서정관에게 당분간 생산부기사장사업을 중지하고 배합먹이직장 창고작업반에서 일할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회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서정관은 온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그의 귀전에서는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던 비판의 목소리들이 그냥 울리였다.

오십고개를 넘도록 한번도 받아본적이 없는 뼈아픈 비판이였다.

실력이나 실무는 어려도 지금껏 이쪽저쪽 잘 둘러맞추고 웃사람들의 기분과 감정을 제때에 포착하여 잘 받들어주는것으로 한몫 보아온 그였다.

언제부터인지 공장사람들속에서는 기회주의와 요령주의적으로 생활하고있는 서정관을 두고 《명관》이라고 불렀다. 그에 대해 말할 때마다 《정관은 확실히 명관이야.》라는 말로 매듭짓군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이 명관인줄 알고 부르기까지 했다.

안해를 통해 이 말을 전해들은 서정관은 대범한척 호걸스럽게 어깨를 들썩거리며 껄껄거렸다.

《거 뭐 듣기 싫지 않구만. 엉?》

사실 남다른 촉각으로 어렵고 책임이 중한 일에서는 묘하게 몸을 사리고 전망이 내다보이는 일에서는 몸을 내대면서 발벗고 나서군 하여 지금껏 크게 비판과 처벌을 모르고 살아왔었다.

하지만 그 모든것 뒤에 무시할수 없는 배경이 되여준것은 아버지였다.

공장을 위해 바친 아버지의 진하디진한 피와 땀은 아들을 말없이 보증했고 신임하게 하였으며 결함에 대해서는 쉽게 리해시켜주었다.

그러나 인생은 화려한 배경만으로 장식되고 가꾸어지는 무대가 아니였다. 애써 노력하지 않고서도 쉽게 그리고 큰 열매를 따는것은 한두번의 요행수일따름이다.

하지만 서정관은 그 요행수에 너무도 자주 인생을 의탁하였었다.

다음날 동생 방옥화에게서 남편의 처벌소식을 들은 방송화는 기절할듯 놀랐다.

《뭐라구? 배합먹이직장 창고반에서 일하게 되였다구? 로동자루?》

그는 손바닥으로 입을 딱 막으며 굳어졌다. 지금까지 생각 못했던 무자비하고도 엄청난 처벌이였다.

(그래서 어제밤 식사도 건느고 한숨만 내쉬였구나.…)

저녁에 랭수 한그릇으로 식사를 굼뗀 남편은 아침에도 밥을 몇술 뜨다말고 집을 나섰다.

《그러니 오늘부터 창고작업반에서 일한다는거지?》

방송화는 겁기어린 얼굴로 다시 물었다. 부기사장 체면에 배합먹이마대를 메여나르는 남편의 모습이 떠오르자 도리여 제 얼굴이 화끈거렸다.

동시에 그 누군가에 대한 원망과 괘씸한 생각이 출구를 찾으며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드디여 송영숙에게로 그 원망과 분노가 뿜어나왔다.

(제밀에서 일하는 부기사장 하나 책임져주지 못하다니… 언제봐야 설비부기사장만 끼구돌더니…)

기사장이 나서서 한마디만 해주어도 남편이 창고작업반으로 내려가지 않을거라는 생각에 등나무줄기처럼 속이 뒤틀렸다.

(때리든 욕하든 사무실안에서나 어쩔것이지 하필 남보기 부끄럽게 현장으로 내보낼건 뭐람.…)

방송화는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었다.

《큰언니한테 찾아가보는게 어때요?》

방옥화가 묻는 말이였다.

《?!》

《큰언니가 지배인동지랑 당비서동지랑 만나 아저씨문제를 무마시켜달라구 부탁하면…》

동생의 말에 방송화의 귀가 번쩍 열리였다.

공장에 하나밖에 없는 녀성직장장이고 지난해에는 도인민회의 대의원으로까지 된 언니가 일군들을 찾아가 잘 말하면 남보기 부끄럽게 배합먹이마대를 지고 나르는 일만은 얼마든지 그만두게 할것 같았다.

방송화는 당장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종주먹을 쥐고 가공직장을 향해 드달려가보니 방인화는 마침 마당에 있었다. 동생을 띄여본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어떻게?》하고 외마디로 물으며 다가왔다.

방송화는 짐짓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과장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저… 우리 승호 아버지가 배합먹이직장 창고반에서 일하게 된걸 아나요?》

《알지. 근데 왜?》

사교성이나 살뜰한데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수 없는 그 뚝한 물음에 방송화는 약간 당황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겉모습과는 달리 웅심깊은 언니의 마음에 한가닥 희망을 걸었다.

《언니! 언니가 우의 일군들을 만나서 세대주를 창고작업반이 아니구 어디 좀 조용한데서 일하게 해줄수 없나요?》

《…》

《사실 지난 겨울부터 세대준 몹시 앓으면서 지금까지도 약을 밥먹듯 해요. 그런데 그 몸에 어떻게 배합먹이마대를… 언니! 좀 도와줘요. 옥화도 언니를 찾아가면 도와줄거라구 하더군요.》

그는 동생의 이름까지 꺼들면서 애원했다.

방인화는 동생의 말이 당치않은듯 그만에야 눈을 뚝 부릅떴다.

《너구 옥화구 우리 공장사람이 맞아? 응?》

《?!》

꽁지 대가리 없는 물음에 방송화는 굳어졌다.

《그러지 않아 나두 오늘은 시간을 내서 일군들을 좀 만나자구 했다.

글쎄 배합먹이를 한두키로두 아니구 톤반씩이나 변질시킨거야 역적이구 반동이지 뭐야? 죽인대두 할소리 있어? 그런데 뭐 어데서 일을 시켜달라구? 너 지금 제정신이야? 응? 내가 지배인이구 당비서라문 법적제재를 받게 하던지 아니문 공장에서 아예 내쫓던지 했을게다.

그런데 뭐가 어쩌구 어째? 조용한데서 일하게 해달라구? 주제에 부끄러운건 아는 모양이지?》

원칙이 강하고 거대스러운 방인화는 터슬터슬 거칠고 커다란 방망이같은 말로 동생을 무자비하게 후려쳤다.

《너 이제라두 제정신 차리구 남편결함을 고쳐주기 위해 노력해라. 그렇게 노랑쥐처럼 살다간 이 공장에 못 배겨. 알겠니?》

《…》

《참! 너 아직두 미용실에 틀구앉아 남의 뒤소리만 한다지? 내가 모르는줄 알아?… 이제 한번 더 그런 말이 들려오면 그땐 정말 가만두지 않겠어.》

방인화는 그 드센 입심으로 말썽많은 동생이 찍소리 한번 못하게 그냥 조겨대였다. 이윽고 단단히 오금을 박듯 헛기침을 짖고나서 극동실쪽으로 씽씽 걸어갔다.

《음, 뚝쟁이같은거.》

메사해진 방송화는 제풀에 두덜거렸다. 살집좋은 그의 얼굴엔 심술과 불만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괜히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 떼러갔다가 하나 더 붙인 심정이였다.

언니의 말은 돌이켜 생각할수록 가슴을 후벼내는듯 아팠다.

목이 받고 오동통한 그는 짧은 다리로 맥없이 집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안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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