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11


《봄순이 잔치날을 참 잘 받았지요?》

봄순이 잔치날 아침 서정옥은 가을해빛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높고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녀학생처럼 기쁨에 넘쳐 말했다.

(류달리 맑고 따뜻한 이 날씨도 신랑신부의 행복을 축복해주는게 아닐가?…)

봄순의 친언니가 되여 첫날 이불도 꾸며주고 하늘나라 선녀들의 날개옷과 같은 분홍빛치마저고리를 밤을 새워가며 손질해준 서정옥이다.

정옥이만이 아니였다.

잔치를 주관하는 방인화의 지령에 따라 방송화와 방옥화도 두팔 걷고 나섰다. 걸싼 일솜씨로 소문난 방옥화는 부엌에 틀고앉아 이래라 저래라 훈시질을 하면서 료리솜씨를 자랑하였다.

방송화는 방송화대로 신부를 단장시키느라 있는 재간을 다 발휘하였다.

워낙 본판이 고운데다가 방송화의 손에 닥달된 봄순이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입을 딱 벌리게 했다.

《저 푸른 호수가 안아올린 절세의 미녀라니까.》

자칭 봄순의 큰아버지라고 하는 종금2직장장은 봄순이를 보고 엄지손가락을 내흔들었다.

녀인들은 봄순이를 보고 금강산팔선녀가 울고가겠다며 입을 모아 혀를 찼다.

공장사람들은 일 잘하고 마음씨 고운데다가 친어머니를 일찍 잃은 봄순이가 보급원인 새 어머니의 손에서 공장총각에게 시집을 간다는 여러가지 뜻깊은 사연들을 모두 합쳐서 그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집과 마당에는 신랑신부를 축하하려고 찾아온 사람들로 흥성거렸다. 집안과 마당가에 풍기는 잔치음식의 맛스러운 냄새며 푸짐한 식탁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더 들뜨게 했다.

누구나 얼굴이 벌깃해졌고 즐겁게 목소리를 높였다.

부엌에서는 동네녀인들의 웃음소리로 들썩했다. 온 동네가 잔치바람에 들떠서 색시구경하느라 분주히 오락가락하는것 같았다.

동네아이들도 모두 모여와 어른들의 짬새를 누비며 좋아라 깔깔거리였다. 무슨 큰 구경거리라도 생긴듯 잔치상에 놓인 큰 물고기를 가리키며 박제품이라느니 뭐니 하면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잔치상은 마당 한켠 대추나무아래에 갈노전을 깔고 그우에 차리였다.

잔치구경을 왔던 녀인들은 큰상을 보더니 닭대신 오리를 놓았다고 속살거렸다. 그들의 말을 엿들은 방인화는 《오리 키우는 사람이야 잔치상에두 제 기르는 오리를 놓아야지 아무렴 닭을 놓갔소?》하고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의 말에 녀인들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호수건너편에서 사는 신랑 진철이 배를 타고 종금1직장장 임광일과 그 직장에서 수리공으로 일하는 사촌형과 함께 신부네 집에 도착한것은 점심시간이 가까와올무렵이였다.

종금2직장장이 벌깃한 얼굴로 1직장장의 왕림을 축하한다면서 어떻게 둘러리자격을 땄는가고 롱조로 물었다.

《일 잘하는 관리공이 우리 마을로 시집온다기에 오늘부터 아예 우리 직장사람으로 만들자구 왔네. 무슨 의견 있나?》

임광일이 무슨 큰 횡재라도 한듯 뻐기면서 물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임광일은 신랑과 신부네 잔치상을 대비해보겠다면서 큰상앞에 다가가 뒤짐을 턱 짚고 섰다. 그는 살찐 오리를 올려놓은거랑 어쩌면 신랑네와 꼭 같은가고 하며 네모진 얼굴을 건듯 쳐들었다.

그의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즐겁게 웃었다.

이윽고 신랑 진철이 봄순이와 함께 큰상을 받았다.

백상익이 내놓은 옷감으로 양복을 해입은 리병우는 사람들에게 끌려 마당가로 나왔다.

진철은 봄순이와 나란히 서서 첫잔을 정히 부어 봄순의 아버지에게 드리였다. 딸과 사위의 잔을 받는 리병우의 손은 가늘게 떨리였다. 그는 저만이 알게 뭐라고 말하더니 떨리는 손으로 잔을 입에 가져갔다.

사람들은 그가 분명 《행복하거라. 부디…》하고 말했다고 생각하였다.

이때 봄순이가 흑- 하며 어깨를 떨었다.

잔치구경으로 들썩하던 사람들은 리병우와 봄순이를 보며 눈을 슴뻑거렸다. 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듯 저마다 눈굽을 찍었다.

방인화가 주위를 둘러보며 큰소리로 말했다.

《다들 왜 그러나? 응? 이 좋은 날에… 봄순아! 웃어라! 봄순이 아버지도 웃으라구요. 이 기쁜 날에 웃지 않으문 언제 웃갔소?》

그러나 방인화의 눈가에도 맑은것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그는 손등으로 량볼을 슥슥 문대며 말했다.

《봄순아! 이번엔 어머니에게 잔을 드려라. 어서!》

푸른빛바탕에 연분홍꽃무늬가 있는 치마저고리를 차려입은 차수정이 상기된 얼굴로 그들앞에 나섰다. 녀인들은 어머니와 딸이 자매같다고 속살거리다가 방인화가 눈을 흘기는통에 어깨를 움츠렸다.

봄순이와 진철이는 또다시 맑은 잔에 술을 부어 수정에게도 드리였다.

《어머니!…》

봄순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으나 끝내 뒤말은 잇지 못했다.

잔을 받은 수정이도 달아오른 얼굴로 머리를 끄덕끄덕하다가 그만에야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사람들의 뒤켠에 서서 그들을 바라보는 정의성은 목이 꺽꺽 막히는 감을 느끼였다. 옆에 선 안해도 손수건으로 눈굽을 찍었다.

인간들의 정이란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것인가. 사람들은 모두가 한마음으로 봄순이네 온 가정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복하였다.

잠시후 정의성은 사람들이 약간 술렁거리는것을 느끼였다. 웬일인가해서 둘러보는데 안해가 그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기사장동지가 오셨군요, 친정어머니와 함께… 저것 봐요.》

안해는 눈으로 대문쪽을 가리키였다.

돌아보니 송영숙이 어머니와 함께 유치원생인 딸애의 손목을 잡고 신랑신부에게로 다가가는것이 보였다.

정의성은 주의깊은 눈길로 그들의 일거일동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은 모두가 기사장네를 반기며 앞자리를 내주었다.

부모형제들과 친척, 친우들 그리고 가까운 이웃들에게 차례로 술을 붓던 신랑신부는 문춘실과 송영숙에게도 잔을 드렸다. 문춘실은 잔을 받으며 《검은 머리 파뿌리되도록 오래오래 잘살라구.》하고 말했다.

송영숙이도 잔을 받고 정어린 눈길로 신랑과 신부를 바라보았다.

《행복하세요. 그리구 앞으로도 공장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하자요.》

이때 곁에 서있던 임광일이 목을 약간 빼들었다.

《기사장동지! 저 신부가 잔치한 다음날부터 우리 직장에서 관리공으루 일하겠다구 나한테 정식 제기했습니다.》

그의 말에 마당가에는 웃음꽃이 피여났다.

송영숙은 밝게 웃었다.

《난 찬성이예요. 아마 우리 봄순이를 데려가는 직장엔 복이 덩굴채 쏟아질거예요.》

사람들은 모두가 머리를 끄덕이며 기뻐하였다.

이때 록화촬영을 하던 사진사가 가족사진을 찍자고 큰소리로 말했다. 방인화가 세운 잔치날 일정에 따라 봄순은 신랑과 함께 오후 첫시간에 배를 타고 호수 건너편에 있는 시집으로 가야 했다.

그러자면 오전시간에 신부를 데리러 오는 신랑에게 큰상을 받게 하고 가족사진을 찍은 다음엔 떠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처음 신랑, 신부가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찍겠습니다!》

임광일이 웃음극의 소개를 맡은것처럼 두손을 활짝 펼치며 목소리를 높이였다.

사람들은 리병우와 차수정이 신랑, 신부와 나란히 앉아 사진을 찍는 모습을 기쁘게 바라보았다.

수정의 요구대로 문춘실과 송영숙이도 딸 경아를 데리고 신랑신부와 사진을 찍었다.

방인화네 자매들도 아래웃방에서 끌려나와 사진기앞에 나섰다.

신랑켠 진철의 사촌형과 임광일도 사진을 찍고 동네녀인들과 직장사람들도 신랑과 신부곁에 자리를 잡고 사진을 찍었다.

《자! 이번에는 신부의 시험호동을 기념해서 또 한장!》

종금직장장의 목소리가 또다시 크게 울렸다.

서정옥은 기다렸던듯 밝게 웃으며 잔치상앞으로 다가갔다. 그는 봄순이옆에 나부시 자리잡고 앉았다.

잠시후 그는 남편도 응당 함께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데 보이지 않았다.

(방금전까지 옆에 서있었는데…)

이때 방인화가 송영숙의 손을 잡아이끌었다. 송영숙도 방인화의 손에 끌려 신랑 진철의 옆에 앉았다.

《정기사도 함께 찍어야 하겠는데 어디 갔나?》

사진사가 구도를 잡으며 사진을 찍으려는데 방인화가 또다시 사람들을 둘러보며 큰소리로 물었다.

사진사가 주춤거리자 방인화는 서정옥에게 남편이 어디 갔는가고 물었다.

정옥은 머리를 갸웃거릴뿐이였다.

《나도 지금 찾고있는데…》

사람들모두가 마당가 여기저기를 살폈으나 정의성은 그림자도 없었다.

이때 임광일이 잔치일정이 늦어진다면서 사진을 그만 찍자고 말했다.

(일철이 아버진 도대체 어디 갔을가?…)

사진을 못 찍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정옥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지금껏 즐거웠던 기분은 여운도 없이 가셔지고 남편에 대한 원망만이 가슴가득 차올랐다.

안해와 사람들이 집안팎을 돌면서 안타깝게 그를 찾고있을 때 정의성은 시험호동으로 가고있었다.

그는 머리를 짓수굿하고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송영숙과 그의 어머니 문춘실을 보는 순간부터 그는 거기에 더 있고싶지 않았다. 정의성은 그들을 피하듯 슬그머니 마당을 나섰던것이다.

시험호동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앞에는 방금전에 띄여본 문춘실과 몇달전 길가에서 우연히 만났던 송은숙의 얼굴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는 문춘실과 송은숙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떳떳이 만날수 없는 그였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던 송영숙의 모습도 안겨들었다. 품위있고 긍지와 자부심에 충만된 모습이였다.

(그런데 나는… 그런데 나는 왜서 그 집을 나왔는가? 왜서 쫓기운 사람처럼 서둘러 나왔는가?…)

정의성은 용렬하고 위축된 자기자신에게 벌컥벌컥 화를 내였다. 하면서도 그의 걸음은 그냥그냥 시험호동쪽으로만 향해졌다.

다음날 정의성은 오래간만에 맏형의 전화를 받았다.

《제수랑 모두 잘있나? 너의 연구도 잘되겠지?》

합성제약공장 기사인 맏형은 친근한 어조로 동생네 안부를 물었다.

머리도 쉬울겸 시간을 내여 제수와 함께 집에 놀러오라고 당부하던 그는 새 소식을 전해주었다.

다름이 아니라 구역인민병원 기술부원장인 안해와 함께 사람들의 건강증진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상비약품을 연구하고 얼마전에 론문으로 발표했다는것이다.

처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았다. 주부가 따로 없는 맏형의 생활을 목격하고 비정상적이라고 단정하면서 《나의것》에 기초한 앞날을 새롭게 설계하였고 그것을 정당화하였던 정의성이 아니던가!

눈앞에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오락가락하던 맏형의 모습이 눈에 선히 떠올랐다.

그때에는 얼마나 측은하게 보였던 맏형인가? 그런데… 그날 밤 정의성은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깊어가는 어둠과 함께 생각도 깊어가는 밤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사랑을 다 바쳐 (제51회) 사랑을 다 바쳐 (제50회) 사랑을 다 바쳐 (제49회) 사랑을 다 바쳐 (제48회) 사랑을 다 바쳐 (제47회) 사랑을 다 바쳐 (제46회) 사랑을 다 바쳐 (제45회) 사랑을 다 바쳐 (제44회) 사랑을 다 바쳐 (제43회) 사랑을 다 바쳐 (제42회) 사랑을 다 바쳐 (제41회) 사랑을 다 바쳐 (제40회) 사랑을 다 바쳐 (제39회) 사랑을 다 바쳐 (제38회) 사랑을 다 바쳐 (제37회) 사랑을 다 바쳐 (제36회) 사랑을 다 바쳐 (제35회) 사랑을 다 바쳐 (제34회) 사랑을 다 바쳐 (제33회) 사랑을 다 바쳐 (제32회) 사랑을 다 바쳐 (제31회) 사랑을 다 바쳐 (제30회) 사랑을 다 바쳐 (제29회) 사랑을 다 바쳐 (제28회) 사랑을 다 바쳐 (제27회) 사랑을 다 바쳐 (제26회) 사랑을 다 바쳐 (제25회) 사랑을 다 바쳐 (제24회) 사랑을 다 바쳐 (제23회) 사랑을 다 바쳐 (제22회) 사랑을 다 바쳐 (제21회) 사랑을 다 바쳐 (제20회) 사랑을 다 바쳐 (제19회) 사랑을 다 바쳐 (제18회) 사랑을 다 바쳐 (제17회) 사랑을 다 바쳐 (제16회) 사랑을 다 바쳐 (제15회) 사랑을 다 바쳐 (제14회) 사랑을 다 바쳐 (제13회) 사랑을 다 바쳐 (제12회) 사랑을 다 바쳐 (제11회) 사랑을 다 바쳐 (제10회) 사랑을 다 바쳐 (제9회) 사랑을 다 바쳐 (제8회) 사랑을 다 바쳐 (제7회) 사랑을 다 바쳐 (제6회) 사랑을 다 바쳐 (제5회) 사랑을 다 바쳐 (제4회) 사랑을 다 바쳐 (제3회) 사랑을 다 바쳐 (제2회) 사랑을 다 바쳐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