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9


송영숙은 두달가까이 시험호동에 가보지 못하였다.

하반년 생산지휘가 바쁜데다가 짬시간마다 운수직장 구석켠에 자리잡은 실험실에서 먹성인자를 찾기 위한 실험을 해야 했던것이다.

청년직장의 생산문제와 방역사업때문에 자주 나가기는 하였지만 시험호동에는 들리지 못하고 바삐 돌아서군 하였다.

기술준비소장 유상훈박사에게 별다른 일이 생기면 알려달라고 당부했는데 다급한 전화가 없는것을 보면 그곳 일도 무난하고 순조롭게 흘러가는 모양이였다.

송영숙의 온 하루는 그야말로 시간쟁취로 이어졌다.

자본가에게는 돈으로, 또 누구에게는 창조의 어머니로, 누군가에게는 황금으로 표시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송영숙에게 시간은 그 돈이며 황금이며를 다 합친것이였다.

그에게는 점심시간과 퇴근후 저녁시간이 실험시간이였다.

실험실에 한번 들어가면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알지 못했다. 퇴근시간도 정해져있지 않았다. 실험에 열중하였다가 일어나는 시간이 퇴근시간이였다.

그의 생활에서 일어난 이 무질서를 누구보다 먼저 느낀 사람은 그의 어머니였다.

처음 문춘실은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역한 비린내를 풍기며 들어오는 딸에 대하여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리먹이에 어분가루대신 변질된 물고기를 섞어서 먹이느라 그런다고 나름으로 짐작했었다. 그러나 한두달이 지나도록 퇴근시간이 점점 늦어지면서 그 역한 냄새를 그냥 풍기는것을 보고 점차 이상한 생각을 하였다.

딸에게는 애당초 집과 젖먹이에 대한 생각은 없는것 같았다.

휴가받고 놀러왔던 맏딸이 아이의 건강을 위해 수유시간을 꼭 지키라고 말했을 때에는 며칠간 채심하는것 같더니 지금은 아이에 대한 아무런 의무감도 없는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이들이라치고 제일 보기가 딱한것은 사위였다.

(아이들은 이 할미에게 떠맡긴다치구 제 서방한텐 미안하지도 않는지… 하두 너그럽구 무던한 사람이니 제 맘 내키는대루 나다니지 맏사위같은 사람이라면야 어림두 없을텐데… 내 오늘은 아에미에게 한마디 해야겠어. 제 서방까지 싫은 소릴 하지 않으니 당초에 들소 한가지라니까.…)

문춘실은 오늘 저녁에는 어머니의 자격으로 한마디 따끔한 소리를 하리라 마음다지며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는 터밭에서 따온 오이와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었다.

탁아소와 유치원에서 돌아온 두 손녀는 아래목에 나란히 누워 꿈나라에 간지 오래였다.

얼마후 문밖에서 발자국소리가 났다. 사위의 발자국소리였다.

(또 이사람이 먼저 들어오누나.…)

문춘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그었다. 제 딸이 먼저 들어와 제사람을 반겨 맞아주면 얼마나 좋아하랴 생각하며 그는 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 돌아오나?》

《예, 오늘은 좀 늦었습니다.》

백상익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깍듯이 인사했다.

집에 들어선 그는 나란히 누워 잠자는 두 딸을 정찬 눈길로 들여다보았다. 그는 웃방에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다시 아래방으로 내려왔다.

백상익은 저녁상을 차리느라 그릇소리를 내는 가시어머니에게 동무의 생일에 초청되여 식사를 하고 왔다고 말한 다음 다시 두 딸앞에 다가앉았다. 이윽고 부엌에서 올라온 가시어머니에게 이렇게 물었다.

《어머니! 탁아소나 유치원에 가보면 우리 애들이 어떠나요? 건강상태라든가 지능상태가 말이예요.》

자기의 두 딸이 누구보다 곱고 똑똑하기를 바라는 사위의 그 마음을 재빨리 읽은 문춘실의 얼굴은 대번에 밝아졌다.

《에구! 말 맙세. 둘이 다 어찌 곱구 똑똑한지 모른다우. 선생들두 기차게 고와하구. 큰건 저들 피아노반에서 노상 일등이라오. 작은건 탁아소에서 손꼽히는 우량종이구. 동네애들두 우리 애들만 보문 너무고와 야단이라우.》

문춘실은 갑자기 다사해졌다.

제 살과 피처럼 귀한 손녀들을 침 마르도록 자랑하는 그의 말은 억양이 센 북관사투리와 어울려 그 어떤 노래처럼 들렸다. 사실 승벽심이 남다른 이 녀인에게는 무럭무럭 자라는 손녀애들이 제일 큰 자랑거리였고 기쁨이였다.

그는 남의 열 아들이 부럽지 않다고 말하려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가시어머니를 쳐다보며 백상익은 싱긋이 웃었다.

그는 두 딸의 앞날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비끼기를 축복하듯 크고 두툼한 손으로 아이들의 볼을 쓰다듬어주었다.

이윽고 그는 텔레비죤앞에 다가가 스위치를 눌렀다.

화면이 펼쳐지더니 래일의 날씨를 알리는 방송원의 친근한 목소리가 울렸다. 잠시후에는 우리 나라 압록강체육단 선수들과 기관차체육단 선수들간의 축구경기가 방영되였다.

백상익은 텔레비죤앞으로 쑥 다가앉으며 온 신경을 경기장면에 쏟아부었다. 축구라면 오금을 못쓰는 그였다. 지금도 군급 기관, 기업소들의 축구경기때마다 군인민위원회 축구주장으로 이름을 떨치군 하였다.

그는 텔레비죤화면에 펼쳐진 경기에 직접 참가한 사람처럼 긴장되기도 하고 아쉬워서 어쩔줄 몰라하기도 하다가는 통쾌한 득점장면에서는 무릎까지 치면서 싱글벙글하였다.

어느덧 경기가 압록강체육단의 승리로 끝났을 때에야 그는 텔레비죤을 끈 다음 편히 쉬라는 인사말을 하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문춘실은 여느날과 다름없이 빈방으로 올라가는 사위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제 색시가 곁에 있다면 텔레비죤도 함께 보고 밤이 새도록 아이들의 앞날을 꿈꾸며 이야기를 나누련만…

문춘실은 얼핏 벽시계를 올려다보았다.

벌써 밤 열시가 지난지 오래다.

또다시 딸에 대한 민망스러운 생각이 솟구쳐올랐다. 오늘은 밤이 깊더라도 지키고 앉아있다가 딸에게 말 몇마디 따끔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시간을 보낼 일감을 찾느라 방안을 둘러보았다. 마침 경아의 달린옷 단추가 가들가들 떨어질가 말가하고 치마기슭 혼솔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단추달고 터진 혼솔을 기웠지만 여전히 딸은 들어오지 않는다. 하는수없이 그는 작은 손녀옆에 쭈그리고 누웠다.

웃방문짬으로 불빛이 새여나오는걸 보니 사위도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것 같았다. 문춘실은 문소리가 나면 제꺽 일어나야지 하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그날도 송영숙은 밤 열두시를 알리는 탁상시계의 종소리를 듣고서야 합성반응기의 스위치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운차게 돌아가던 선풍기도 스위치를 끄자 암전해졌다.

송영숙은 한동안 마른 세면을 하고 기지개를 하듯 두팔을 힘껏 늘구었다.

뿌듯하던 몸이 조금 가벼워진감을 느낀 그는 다시 자리에 앉아 방금전까지 진행한 실험결과를 세심히 돌이켜보았다.

아직은 모든것이 륜곽뿐이다.

새것의 창조는 항상 그렇게 시작되는 법이다.

송영숙은 책상우에 놓인 실험일지에 하루동안 진행한 실험과정을 구체적으로 적어넣었다. 그리고 다음날 진행할 실험에 대하여 머리속에 새겨넣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리 바쁘고 복잡한 일들이 겹쌓여도 하루사업을 구체적으로 총화해보고 앞으로의 사업계획을 세우는것은 닭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일할 때부터 굳어진 습관이였다.

실험실을 나서니 어디선가 장마구름이 밀려오는지 하늘은 잔뜩 흐려있고 캄캄 어두웠다.

《들어갑니다. 근무를 잘 서세요.》

송영숙은 자전거를 끌고 운수직장 정문을 나서며 한마디 하였다.

접수실 경비원은 기사장의 고정된 인사말에 습관됐는지 무관심한 어조로 《예-》하며 말꼬리를 길게 늘구었다.

송영숙이 지친 걸음으로 집마당에 들어서니 여느때와 달리 아래웃방에 불이 환하였다.

살며시 문을 열고 부엌에 들어선 그는 곧장 세면장에 들어갔다.

그가 세면장에서 손발을 씻고 나오니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고있었다. 많지 않은 식구여도 매 사람 식사시간이 달라서 어머니의 수고가 이만저만 아니라고 생각한 송영숙은 자기 혼자 먹을테니 어서 들어가라고 말했다.

했으나 어머니는 그가 수저를 놓을 때까지 그냥 곁에 앉아있었다. 송영숙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궁싯거릴 때에야 못마땅한 눈길을 쳐들었다.

《요센 왜 이렇게 늦어지냐? 뭐가 그리 바빠서 맨날 한밤중에 들어오는지 모르겠구나.》

뜻밖의 지청구앞에서 송영숙은 다소 놀랐다. 지금껏 딸이 하는 일에 대하여 일체 간섭을 모르고 오로지 받들어주기만 하던 어머니가 아니던가. 그런데 오늘… 은근히 불쾌해지기도 하고 긴장해지기도 하였다.

《할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요. 그런데… 무슨 일이 있었나요?》

(애들이 앓는가? 아침에는 별일 없었는데…)

송영숙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그 대답을 찾으려고 유심히 지켜보았다.

《일이야 무슨… 내 보기엔 집살림이나 남편 생각을 다 던져버린것 같아서 그러지.》

《경아 아버지가 뭐라고 하던가요?》

《그 사람이야 어디 쓰다 달다 말이 있니? 하지만 난 그게 더 맘에 걸린다. 애들 큰에미도 그러지 않았니? 남편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구…》

어머니의 책망은 길지 않았다. 그러나 송영숙에게는 무척 자극적이였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두 남편에게 성의를 다해라. 가정생활과 부부생활에 충실한것두 훌륭한 녀성의 품성이란다.…》

문득 귀전에서 언니의 말이 울려왔다.

《…영숙아! 난 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사회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모두 행복해라. 그러자면 남편을 잘 받들어야 해. 그래야만 옹근 행복을 가질수 있으니까.》

떠나기 전날 밤 언니가 속삭이던 말을 되새겨보던 송영숙은 깊은 자책에 잠겼다.

(내가 정말 경아 아버지에게 무관심했어. 매일 이렇게 늦게 퇴근해오면서도 례사롭게 생각했으니까. 그러다가 정말 그이 마음이 내게서 멀어진다면 …)

생각만 해도 오한이 나듯 온몸이 오싹했다.

《내가 요즈음 바쁘다나니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그는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나 말꼬리를 여물구지 못했다. 실험이 끝날 때까지는 매일 늦어지지 않을수 없기때문이다.

(먹성인자, 먹이유인제를 찾을 때까지는…)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부르짖었다.

《어떻든 경아 아버지를 잘 리해시켜라. 매일 곁에서 보기가 딱해서 못 봐주겠더라.》

친정어머니도 그 이상 어쩔수 없는지 퉁명스럽게 한마디 하였다.

부엌에서 올라온 송영숙은 웃방에 불이 켜져있는것을 보고 남편이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조심히 웃방문을 열었다.

《난 물고기식당 책임자가 들어오는가 했구만.》

콤퓨터에 입력된 자료를 읽고있던 남편이 문소리에 눈길을 들었다.

송영숙은 억지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직 쉬지 않았군요. 늦게 들어와서 미안해요.》

그는 남편의 기색을 살피며 한마디 하였다. 남편의 기분은 여느날과 다름없었다. 그는 인츰 콤퓨터를 끄고 방바닥에 내려앉았다.

《일없소. 이젠 당신을 기다리는데 습관됐으니까. 그런데 몇달째 풍기는 이 비린내는 뭐요?》

남편은 미간을 찌프리며 물었다. 송영숙은 시무룩이 웃어보였다.

《시약냄새예요. 자주 만지니 이젠 냄새가 몸에 푹 배인가봐요. 아무리 옷을 갈아입구 목욕해두 없어지지 않는군요.》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하면서 남편에게 지금처럼 늦게 들어오게 되는 사연을 이야기하기가 수월해진다고 생각하였다. 이제는 더 이상 남편에게 숨길수도 없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는 남편의 옆에 다가앉으며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보! 난 지금 운수직장안에 실험실을 꾸려놓았어요. 그리구 거기서 첨가제에 필요한 먹성인자를 연구하고있어요.》

《먹성인자를?》

남편이 주의깊은 눈길로 되물었다. 안해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듯 지친듯 한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송영숙은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는 가금업에 대한 일반지식밖에 없는 남편에게 먹성인자가 무엇인가에 대해 통속적으로 하나하나 말해주었다. 그리고 두달전에 공장첨가제와 수입첨가제의 비교측정때 있은 일에 대해서와 자기가 먹성인자를 연구하려고 결심한데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난 공장사람 누구도 내가 먹성인자를 연구한다는걸 모르게 하자는거예요. 지금껏 내가 연구한 모든걸 남모르게 넘겨준것처럼 이번 연구도 그렇게 하려구 해요. 그래서 화학공장 페설물로…》

송영숙은 실험실을 꾸리던 일이며 설비들을 하나하나 마련하던 일까지 자세히 말해주었다. 하지만 비린내가 나는 실험용페설물이 인체에 몹시 해롭다는 말만은 숨기였다.

독성과 발암성이 센데다가 휘발성이 강해서 인체에 나쁜 영향을 주는 페설물과 씨름을 하는줄 안다면 아무리 너그럽고 관대한 남편이라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송영숙은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 그것만은 절대비밀에 붙이리라 다시금 마음다지였다.

《그러니 당신은 또 〈요정들이 사는 집〉을 꾸려놓았구만?》

백상익은 정어린 눈길로 안해를 건너다보았다.

그는 잊을수 없는 닭공장의 합숙방을 그려보며 싱긋이 웃었다. 그럴수록 큰 공장의 생산과 기술지도를 하면서 짬시간을 내여 첨가제연구를 도와나선 안해가 돋보이기까지 했다. 한편으로 건강이 념려스러웠다.

《그래 힘들지 않소?》

남편의 물음에 송영숙은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저었다. 사실 힘들었다. 너무도 피곤하고 힘에 겨워 다문 며칠만이라도 푹 쉬고싶었다. 그러나 남편에게 근심을 주고싶지 않았다.

《여보!》

그는 하많은 생각이 담겨진 눈길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난 이따금 보통가정주부들처럼 살고싶은 생각이 들군 해요. 당신과 아이들만을 위해 사는 그런 생활이 몹시 그리워져요.

출근길에 오르는 당신을 바래드리고 저녁이면 내 손으로 지은 저녁식사를 마주하고 앉아 당신과 아이들에게 권하기도 하고…

그런데 나한텐 그런 생활이 통 차례지지 않는군요.》

그의 얼굴에는 진정어린 사죄와 안타까움이 담겨져있었다.

《어머니도 언니도 모두 나에게 남편에게 무관심하다구 충고하는군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나도 성의없구 살뜰하지 못하다구요.》

송영숙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눈길을 떨구었다.

그는 남편의 얼굴에 장난기어린 웃음이 스쳐지나는것을 보지 못했다.

백상익은 인츰 시치미를 떼며 안해의 말꼬리를 이었다.

《사실 그뿐이 아니지. 무례하구, 매정하구, 거칠구 또 구박과 천대를 일삼고… 안그렇소?》

롱담기어린 남편의 말에 송영숙은 그만 호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안해가 웃음을 터뜨리자 백상익도 싱긋싱긋 웃었다.

이윽고 송영숙은 남편을 흘겨보았다.

《난 진정을 말하는데 당신은 그저 롱담이군요.》

이어 그는 간절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비판한걸 내 꼭 고칠테니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만 절 리해해주세요. 내 꼭…》

그는 지금껏 남편과 아이들에게 못다준 사랑과 정을 몇배로 꼭 갚으리라 마음다지며 따뜻이 말했다.

이번에는 남편쪽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시까스르듯 물었다.

《그러니 먹성인자를 찾을 때까지 려염집아낙네의 그 리상적인 생활을 미루겠다는거요? 그동안에는 지금처럼 계속 무례하구 매정하게 생활하겠다는거구만? 응?》

남편의 롱담에 송영숙은 또다시 호호 소리내여 웃었다.

백상익도 제가 한 말이 우스운지 싱글벙글 웃었다. 이윽고 웃음을 거두고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

《여보! 당신은 결코 한가정의 울타리안에서만 행복을 찾는 그런 녀성이 아니요.

당신은 뜨겁게 사랑하구 또 무섭게 증오할줄 아는 녀성이지.

크고 아름답구 숭고한것을 위해 사랑을 깡그리 다 바치는 녀성이거던. 안 그렇소?》

남편의 눈가에 담겨진 사랑과 신뢰의 정을 읽은 송영숙의 마음은 뭉클하였다. 그는 후더워지는 마음으로 조용히 불렀다.

《여보!》

다음말은 이어지지 않았다.

아래방에 누웠던 문춘실은 웃방에서 들려오는 딸과 사위의 말소리며 웃음소리를 듣고 씁쓸하게 입을 다셨다. 그냥 웃으며 소곤거리는 그들의 세계가 터무니없게 생각되였다.

그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었다.

(저들끼리 좋다는데 내가 무슨…)

그는 두 손녀들쪽으로 끙 돌아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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