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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40 회)


제 4 장 불타는 지향


5


ㅎ시 구역인민위원회 보건부장 송은숙은 남편과 함께 친정어머니를 찾아왔다. 일흔돐생일을 맞는 어머니를 축하해주기 위해 며칠간 휴가를 받은것이다.

아들이 없는 집안에서 맏딸, 맏사위는 응당 맏아들의 구실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동생에게 어머니를 부양시키고있는것이 언제나 마음에 걸린다면서 이번 어머니의 생일은 자기네가 전적으로 맡아서 축하연을 마련하겠다고 결심한 송은숙이다.

사실 친정어머니는 처음 그들이 모시고 살았었다. 그러나 막내딸이 지배인사업으로 늘쌍 나가살다싶이 한다고 걱정하던 어머니가 집이라도 봐주고 막내사위의 때식이라도 보장해주겠다고 이곳으로 온것이다.

젊은 시절 군인가족생활을 하면서 부업을 많이 해온 어머니여서 늘그막에도 땅냄새를 맡으면서 제 손으로 터밭도 가꾸고 집짐승도 기르고싶어서였다.

은숙은 이번걸음에 친정어머니는 물론 동생과 동생남편에게 단단히 인사차림하려고 마음먹었다.

도소재지의 어느 편직공장 기사로 일하는 그의 남편 조광문도 안해와 꼭같은 마음으로 처가집 걸음에 나섰다.

그들이 탄 차는 점심시간이 지날무렵 오리공장구역에 들어섰다.

거리에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들은 차를 세우고 봉사시설이 분명한 옆의 건물로 들어가 기사장네 집이 어딘가고 물으려고 다가갔다. 이때 마침 그곳에서 잡지묶음을 든 젊은이가 성큼성큼 걸어나왔다.

은숙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저, 미안하지만 오리공장 기사장네 집이 어딘지 좀 알려주실수 없습니까?》

현숙한 부인의 점잖은 물음에 그 사람은 눈길을 돌리였다.

다음순간 은숙은 상대방이 자기를 보고 놀라는것을 느끼였다. 그제야 그도 상대방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서 보았을가?… 분명 인상깊은 얼굴인데… 넓은 이마랑 사색적인 눈길이라든가…)

생각을 더듬는데 그 사람은 조금 서두르는 기색으로 문화회관뒤켠으로 돌아가면 기사장네 집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인사말에 건성 대답하고는 곧 돌아서서 걸어갔다.

그의 뒤모습을 지켜보던 은숙은 앞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걸어가는 그가 다름아닌 정의성임을 상기하였다. 순간 은숙은 다시금 놀랐다.

(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왔을가?…)

불안한 생각에 잠겼던 그는 남편의 부름소리를 듣고서야 돌아섰다.

《저기 문화회관뒤켠으로 가자요.》

그날 송영숙의 집은 명절분위기로 흥성거렸다.

맏딸, 맏사위를 맞이한 문춘실은 춤이라도 출듯 어깨바람이 나서 방안과 부엌을 오락가락하였다.

차짐칸에서 언니가 꺼내주는 지함이며 트렁크, 배낭들을 받아 집안으로 날라들이는 송영숙이도 아이들처럼 웃고 떠들었다.

그들은 모두 집안으로 들어갔다.

백상익은 오래간만에 찾아온 처형네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는 친형제라도 만난듯 조광문의 두손을 잡고 그냥 싱글벙글하였다.

키는 별로 크지 않지만 몸이 실하고 희여멀끔한 조광문은 백상익에게 자기대신 가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수고한다는 말을 몇번이고 곱씹었다.

처제인 송영숙을 보고는 《우리 기사장님》이라고 정을 담아 불렀다.

어느덧 떠들썩한 인사말과 함께 점심식사를 마치자 집안식구들은 아래웃방에 갈라앉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백상익과 조광문은 웃방에 마주앉아 최근 국내외정세며 사업상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주로 조광문이 말을 하고 백상익은 재미나게 들으며 이따금 한마디씩 소감을 끼워넣었다.

조광문은 10여년만에 2. 8비날론련합기업소에서 비날론을 생산하였는데 그 기쁨과 환희의 물결이 자기네 편직공장에도 흘러들어 기대마다 만가동되고 여러가지 편직물들이 많이 생산된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이젠 우리 공장제품이 상점들에서 판을 치게 됐디요.》

평안남도태생인 조광문은 ㅈ를 ㄷ로 발음하면서 신이 나서 말했다. 이따금 엄지손가락을 내들고 시틋한 표정을 지으며 오래지 않아 모든 지방산업공장들이 활성화될것이라고 뻐기듯이 말하였다.

남편들이 웃방에서 자기들이 관심하는 문제들을 화제에 올릴 때 아래방에서는 은숙이 지함이며 트렁크며를 헤쳐놓고 어머니와 동생에게 이것저것 나누어주면서 웃음꽃을 피웠다.

송영숙은 언니가 준 공작색의 세타와 두 딸애의 나리옷이며 남편의 양복천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문춘실은 맏딸이 품들여 마련했다는 커다란 함박꽃문양이 새겨진 두툼하고 폭신한 담요를 펼쳐보며 끌끌 혀를 찼다.

은숙은 연보라색바탕에 은실로 꽃수를 놓은 치마저고리를 어머니앞에 내놓으며 한번 입어보라고 말했다.

《생일날에나 입지 오늘이야 뭘…》

문춘실은 손사래를 치며 물러앉았다. 그러나 두 딸이 저저마다 치마와 저고리를 펼쳐들고 일어나 어머니를 단장시켰다.

은숙은 지함속에서 굽이 낮으면서도 고급해보이는 밤색구두까지 꺼내신겨준 다음 거울앞에 내세워주었다.

거울에 비쳐진 자기의 모습에 문춘실은 한동안 어리둥절하였다가 인츰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황황히 옷을 벗으려던 그는 딸들의 고집에 떠밀려 사위들앞에 나섰다.

백상익과 조광문은 박수라도 칠듯 기뻐하였다.

《이자 보니 우리 어머니 젊었을적엔 수태 고왔겠소. 지금두 새색시처럼 환하지 않소. 내 말이 틀리우?》

조광문의 말에 모두가 즐겁게 웃었다. 백상익도 치마저고리를 입은 가시어머니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싱글벙글하였다.

온 집안에 웃음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잠시후 송은숙과 송영숙 두 자매는 다정히 마주앉아 콩나물과 버섯을 손질하며 즐겁게 소곤거리였다.

한개 구역의 보건부장과 큰 공장의 기사장이라는 쉽지 않은 사회적직위를 가진 그들이지만 아래방에 마주앉으니 그지없이 평범하고 소박한 녀인들이였다.

생김새나 성격이 조용하고 목소리까지 찹차분한 은숙은 이따금 젖먹이 은아를 껴안고 들여다보았다.

《아무리 바빠두 6개월동안은 꼭 젖시간을 지켜라. 뭐니뭐니해두 엄마젖 이상 없단다. 엄마젖에는 영양성분만이 아니라 소아질병을 미리 막는 항체라는 성분이 있기때문에 그걸 먹어야 아이가 건강하단다.》

은숙은 오랜 의료일군이며 자기 산하에 탁아소를 두고 보육원들을 대상으로 사업하는 보건부장답게 어린이보육과 영양관리, 위생학에 대하여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그는 이따금 품에 안긴 아이를 내려다보며 정겨운 미소를 지었다. 이제 겨우 넉달 잡힌 아이는 순한데다가 잠도 잘 자고 방긋방긋 잘도 웃는것이 여간 이쁘지 않았다.

두 아들을 키워 맏이는 콤퓨터대학으로, 둘째는 인민군대에 내보낸 은숙은 어머니와 동생만 승인한다면 경아든 은아든 두 아이중에서 한애라도 데려다가 키우고싶었다.

한동안 가정생활이며 공장에서의 생활에 대하여 조용조용 이야기를 나누던 은숙은 얼마후 심중해진 눈길을 들었다.

《영숙아! 나 오늘 그 사람 봤어.》

별스레 긴장해진 눈빛으로 웃방쪽을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하는 언니를 보고 송영숙은 의아해졌다.

《그 사람이라니? 누구 말이예요?》

《그 사람 말이야, 정의성이라구… 헌데… 그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을가?…》

유순해보이는 그 얼굴에 불안까지 비낀것을 보고 송영숙은 빙긋 웃었다.

《그렇게 됐어요. 내가 공장에 오니 벌써 여기에 와있더군요. 지금은 기술준비소에서 일하구있어요.》

송영숙은 무척 례사롭게 말했다. 그럴수록 은숙의 눈은 더욱 커졌다.

《기술준비소?》

은숙은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히 물었다.

《경아 아버진 그 사람을 모를테지?》

그는 제발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목소리까지 죽여가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경아 아버진 그 사람을 이미전부터 알고있어요. 나에게 그의 일을 잘 도와주라고 고무해주는데요 뭐.》

동생의 대답에 은숙은 곧 아연해졌다.

그는 동생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이윽고 눈길을 떨구고 쌔근쌔근 잠이 든 아이의 얼굴을 이윽토록 들여다보았다. 그에게는 동생이 자기의 개인생활에 대하여 경솔하게 남편앞에 터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감정을 너무도 무시하는게 아닐가 하는 우려감도 들었다.

한동안 은숙은 말없이 버섯을 다듬었다. 마음속으로는 하많은 말들이 울리였다. 잠시후 다시 말꼭지를 떼였다.

《영숙아! 난 그 사람때문에 너의 부부간에 조금이라도 간격이 생길가봐 걱정이구나.… 어떻든 사소하게나마 남편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매사에 주의해라.》

그의 어조는 자못 간절하였다.

언니의 말에 송영숙은 여전히 천진한 웃음을 지었다.

《언니! 우리 경아 아버진 그렇게 옹졸하구 편협한 사람이 아니예요.》

그는 남편의 인간됨을 확신하는 어조로 말하였다.

하지만 은숙은 교훈적인 사랑철학을 또다시 강조하였다.

《장담하지 말아. 사랑과 질투는 쌍둥이형제라구 하지 않니?》

언니의 진지한 충고에 송영숙의 얼굴은 그제야 심중해졌다.

《걱정말아요, 언니! 내 맘속에서 그 사람은 허울만 남았어요.》

침착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눈가에서 예리한것이 번쩍했다.

은숙은 그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너두 보통 독하지 않은 녀자구나.… 내 그런걸 괜히…)

은숙은 동생의 진속도 모르면서 그의 오래적상처를 건드렸다는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날 저녁 수정이까지 찾아와 집안의 분위기는 더욱더 흥성거리였다.

수정은 집에 들어서기 바쁘게 은숙을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저녁부터는 아예 부엌을 독차지하고앉아 집안식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몸이 가볍고 손기빠른 그는 제법 대가정의 맏며느리처럼 열심히 생일음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다음날은 문춘실의 생일 일혼돐이였다.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간밤에 소나기로 말쑥하게 목욕을 한 대기는 여느때없이 맑고 청신하였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건강과 장수를 축복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였다.

점심시간에는 옆집에서 사는 할머니와 진료소의사인 리윤옥이 그리고 지배인의 안해와 뒤집에서 사는 전 공장탁아소 소장이 문춘실의 초청을 받고 그의 집에 와서 함께 식사를 하였다.

그런데 난처한 일은 주인격인 송영숙이 온다간다 소리없이 사라져버린것이였다.

《우리 기사장님이 하늘로 올랐나? 땅으로 잦았나?》

조광문이 진한 평안남도사투리로 롱담반, 진담반 섞어서 말하였다.

어머니의 생일을 기념하여 가족사진도 찍고 록화촬영도 하려고 보니 그가 없었던것이다.

초청을 받고 찾아온 사람들앞에 새옷을 입은 어머니를 내세우려는데 그 옷과 신발 또한 어디에 두었는지 몰라 아래웃방이 벌컥 뒤집히였다.

부엌에 앉았던 수정이까지 앞치마를 두른채로 여기저기 드달려다니며 송영숙을 찾아보았으나 누구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은숙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아침에 자재과장에게서 무슨 전화를 받고 나가면서 인차 들어오겠다고 했는데…》

《글쎄 말이예요.》

수정이도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런데 백상익의 말이 더 걸작이였다.

《우리 집사람은 그게 정상입니다. 나가면 출근이구 들어오면 퇴근이지요.》

악의없는 그의 말에 집안식구들은 그만 허구프게 웃고말았다.

백상익은 초조감을 누르며 앉아있는 사진사에게 집사람이 들어오면 전화로 알리겠으니 그때 다시 와줄수 없는가고 물었다. 사진사는 벌깃해진 얼굴에 웃음을 담고 전화를 받은 즉시로 오겠노라고 대답하였다.

사진사가 돌아가자 집안의 분위기는 다소 어수선해졌다.

(도대체 어디 갔을가? 집식구들에 대한 생각은 통 없다니까…)

(어머니생일날에도 이러니 여느날엔 더할테지?…)

집안식구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질 그무렵 송영숙은 운수직장의 실험실에 혼자 있었다. 화학공장 페설물을 실어왔다는 자재과장의 전화를 받고 급히 집을 나온 그였다.

운전사와 함께 페설물이 담긴 도람통 두개를 실험실에 들여놓아준 자재과장은 기와집지붕같은 웃입술을 우습강스럽게 오무리며 말했다.

《거기선 이걸 모두 땅속에 매몰시킵디다. 끌단지처럼 땅속에 파묻어야 보약이 되는 모양이지요?》

그는 기사장의 부탁을 실속있게 들어준것이 제켠에서도 기쁜지 노상 싱글거렸다. 기사장을 도와 페설물을 항아리같은 유리용기들에 담아주기도 했다.

《고마워요. 오늘 정말 수고많았어요.》

송영숙은 진정으로 감사를 표시했다.

《수고랄게 있습니까? 후에라도 필요한게 있으면 또 알려주십시오.》

얼마후 실험실엔 송영숙이 혼자 남았다.

그는 한동안 출입문쪽에 놓인 의자에 앉아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모든게 바라던대로 다 갖추어졌구나! 가성소다용액과 염산이 마련된데다가 페설물까지 실어왔으니 이제는 실험을 시작해야 한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그의 시선이 합성반응기며 교반기 그리고 키낮은 선풍기와 당반우에 가지런히 놓인 실험기구들에 닿는 순간 눈앞에는 문득 닭공장에서 생활하던 크지 않은 합숙방이 떠올랐다. 책상과 침대만 있으면 정말로 그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나는 결국 여기에도 《요정》들이 사는 집을 꾸려놓았구나!…)

송영숙의 생각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추억의 나래를 펴고 닭공장합숙으로 훨훨 날아갔다. 꿈도 많았고 웃음도 많았고 슬픔도 괴로움도 많았던 닭공장합숙의 3층 5호…

송영숙은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잊을수 없는 그 방에서 나는 대학생소조원으로부터 현장기사가 되였구 또 책임기사를 거쳐 지배인이 되였지.… 고려식물성성장촉진제연구로 학위를 받은 그날도, 공장지배인으로 임명받은 그날도 난 그 방에서 온밤 잠들지 못했지, 아버지와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정말이지 그때 지배인이라기보다 대학생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꾸준히 배우고 탐구하였어. 사랑의 아픈 상처도 로동과 독서와 실험으로 달래군 하면서… 웃음많고 노래많은 그 시절은 멀리로 사라져버렸구… 그땐 왜 그다지도 마음이 쓰리구 아팠을가?… 크지 않은 그 합숙방에 주규호당비서의 안내를 받으면서 남편이 찾아왔던 그날은 언제였던가?

그날 저녁 예고없이 불쑥 찾아온 당비서와 남편을 보고 나는 너무도 당황해서 문설주에 굳어진채 서있었지. 그이처럼 훌륭한 사람도 쉽지 않지만 난 그때 경아 아버지를 죽도록 미워했으니까. 그건 다만 나자신이 결혼을 원치 않았기때문이였어.

그날 내가 방에서 뛰쳐나가려 할 때 당비서동지는 엄하게 나를 꾸짖었지.

《난 지배인의 입당보증인으로서 두사람의 결혼을 지지하네. 그리구 이제부턴 날 친정아버지처럼 생각하라구.…》

그때 난 바보처럼 아무 말도 못하고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고말았지.

경아 아버진 그냥 웃기만 하고… 그이는 내가 사는 합숙방을 둘러보면서 《여긴 〈요정〉들이 사는 집이군요. 이런, 요술막대기도 있구요.》하고 말했었지.

지배인의 직무에 어울리는 덩실한 집에 화려한 창가림이나 번쩍거리는 가구는 찾아볼수 없고 각양각색의 크고작은 실험기구들만이 가득찼던 그 《요정》들이 사는 집!… 그래서 그 방이 더더욱 마음에 든다고 하던 말에 외롭던 처녀는 울었던가, 웃었던가.…

그날 그이는 자기의 뜨겁고도 억센 품에 나를 힘껏 껴안았지. 그때부터 경아 아버진 나에게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사람이 되였어. 영원한 나의 사랑은 이렇게 크지 않은 합숙방의 문을 두드리고 나를 향해 달려왔지. 한달후에 우린 온 공장, 온 마을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어.…

꿈같은 신혼생활도 그 방에서 흘러갔어. 우리를 위해 당비서동지가 팔걷고 나서서 지어준 새 집을 내가 제대군인 수리공총각에게 먼저 양보했기때문이였지.

우리에게 딸 경아가 태여나고 지배인사업으로 바쁜 나를 위해 친정어머니를 모셔온 그해 가을에야 우린 그 정든 합숙방을 나왔지.

난 지금도 결혼식날 밤 경아 아버지가 한 말을 잊을수 없어.

그날 그인 이렇게 말했어.

《영숙이! 우리 한생토록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하자. 불보다 뜨거운 그 사랑으로 우리의 생활을 가꾸고 사랑을 다 바쳐 나서자란 이 땅도 보란듯이 힘껏 가꾸어가자.…》

그때에도 난 바보처럼 그저 울기만 하였지.…)

멀리로 흘러간 그 나날들을 그려보던 송영숙의 눈가에는 저도 모르게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이윽고 송영숙은 눈굽을 닦으며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은 푸르끼레하고 걸죽한 액체가 담겨진 유리용기에서 멎었다. 그는 역한 비린내를 풍기는 그 페설물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심호흡을 하였다.

(내 저것과의 싸움에서 언제면 승리자가 될수 있을가?… 내가 과연 먹성인자를 찾아낼수 있을가?…)

그는 경기장에 나선 선수가 상대선수를 쳐다보듯이 페설물이 담겨진 유리용기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느닷없이 사랑하는 남편과 딸 경아와 은아 그리고 어머니의 주름많은 얼굴이 떠올랐다. 이윽고 그는 큰숨을 들이쉬며 입속말로 중얼거리였다.

《어디 너와 나, 겨루어보자! 나의 사랑하는 모든것을 위해, 보다 큰 사랑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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