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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8일

평양시간


(제 35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12


《보급원동지! 그게 정말이예요?》

서정옥은 수정에게 이렇게 물었다.

보급원에게서 기사장이 해산했다는 말을 듣고 정옥은 깜짝 놀랐다.

시험호동에 자주 나오는 기사장이지만 어떻게나 몸건사를 잘하였는지 임신중이라는걸 전혀 몰랐던 그였다. 겨울솜옷을 두툼하게 입고 다녀서인지 조금도 그런 눈치를 느끼지 못했었다.

(그 몸으로 생산지휘를 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가?…)

자기는 국가에서 배려하여준 산전산후휴가를 하루도 곯지 않게 계산하여 휴식을 하였는데 기사장은 해산하는 날까지 뛰여다녔다는 말을 들으니 얼마나 돋보이는지 몰랐다. 그는 같은 녀성의 심정으로 기사장의 수고를 헤아려보며 마음속으로나마 머리를 숙였다.

확실히 자기와는 비교가 안되는 녀성일군이다.

《저, 나도 기사장동지네 집에 병문안 갈수 있나요?》

서정옥은 이 기회에 남편을 많이 도와주고 시험호동사고때 자기들을 따뜻이 대해준 기사장에게 인사차림을 하고싶었다.

그의 말에 수정은 깔끔하게 흘겨보았다.

《병문안은 무슨 병문안? 축하방문이지. 안 그래?》

서정옥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눈과 귀에 거슬리면 상대방의 체면이나 감정따위를 생각지 않고 꺼리낌없이 콕콕 쏘아주는 차수정의 앞에 서면 얼굴이 따끈따끈할 때가 종종 있었다.

수정은 정옥에게 그러면 기사장이 좋아할거라면서 이제는 일주일이 지났으니 위생적으로도 지장이 없을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은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조막만 한 아기의 얼굴을 그려보며 빙긋이 웃었다.

《보급원동진 언제 갔댔어요?》

정옥이 다시 물었다. 무얼 가지고 갔더랬는가고 물으려다가 그 말만은 그만두었다.

《어제 갔다왔어. 애기옷을 사가지고…》

《그래요? 그럼 나도…》

정옥은 마음속으로 속궁냥을 해보았다. 이틀전에 받은 시험용새끼오리가 보름쯤 지나면 오금이 뜨겠는데 그때쯤 찾아가면 될것 같았다.

그의 말을 들은 수정도 그게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차수정이 돌아간 다음 정옥은 먹이처방표를 작성해가지고 들어온 남편에게 보급원이 주고간 《수의축산》잡지를 주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수정에게서 들은 소식을 남편에게 전했다.

잡지의 차례에 눈길을 보내던 정의성은 안해의 말을 듣고 머리를 쳐들었다. 정옥은 방그스름히 웃으며 기사장이 또 딸을 낳았다고 덧붙여 말했다. 제일처럼 기쁘게 말하는 안해를 보며 정의성은 씁쓸히 웃었다.

잡지를 펼쳐보던 그는 안해의 부름소리에 다시금 눈길을 들었다.

《여보! 지금 받은 오리를 판매에 넘긴 다음 난 기사장동지네 집에 갈가 해요. 애기옷이랑 사가지구요. 좋지요?…》

《…》

《기사장동지가 당신과 우릴 얼마나 도와주었나요? 난 기사장동지가 꼭 친언니같아요. 그래서 이번에 인사차림을 좀 하려구 해요.》

정옥은 복스러운 얼굴에 웃음을 담고 노래하듯 즐겁게 말했다.

《그리구… 당신의 첨가제연구가 끝나면 나두 아이를 낳겠어요. 고운 딸애를요. 형님도 나더러 오누이를 키우라지 않았나요? 그럼 우리 일철인 오빠가 될거예요.…》

제 기분에 들떠서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안해를 지켜보던 정의성은 저도 모르게 허허 웃었다. 녀학생처럼 순진하고 다정다감한 안해의 말은 이따금 그에게 즐거운 마음을 가져다주군 하였다. 그는 봄순이와 함께 놀이장으로 나가는 안해의 뒤모습을 바라보았다.

정의성의 눈앞에는 느닷없이 안해와의 첫 인연이 맺어지던 그때의 일이 떠올랐다. 소박하고 순진하면서도 일솜씨 알뜰한 처녀는 언제부터 그의 마음속에 깃들기 시작했던가.

《뭐라구? 오리공장으로 아예 내려가겠다구?… 장가는 안 가구?》

연구소를 떠나 오리공장으로 아예 내려가겠다는 셋째아들의 말에 년로한 어머니는 펄쩍 놀라며 큰소리로 물었다.

이런 처녀, 저런 처녀 내세워도 머리를 저으며 닭공장 지배인이라는 처녀에 대한 말만 종종 꺼내군 하던 아들이였다. 하도 민망스러워서 《옛날부터 죽은 딸은 다 곱구 놓친 물고긴 다 크다더라.…》하고 가볍게 퉁을 주군 하던 어머니였다.

맏누이는 맏누이대로 《그렇게 잊혀지지 않으면 이제라도 다시 찾아가보렴.》하고 시까슬렀다.

그런데 온 집안식구가 장가들라고 응원북을 울려도 들은척 하지 않던 그 애군이 이제는 오리공장으로 아예 내려가겠단다.

《늙은 총각이 별나게 바람났는데?…》

그의 결심을 들은 맏형은 씨물씨물 웃으며 이죽거렸다.

정의성의 눈빛에서 남다른 야심과 열망을 느낀 연구소에서만은 굳이 막아서지 않았다.

《개구리가 주저앉는건 높이 뛰기 위해서라구 했지. 난 믿네, 자네가 가금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리라는걸.…》

성공에 대한 야심과 명예욕에 불타는 그의 속마음을 환히 꿰뚫어본듯 연구소의 한 친구는 의미있게 머리를 끄덕여보였다.

드디여 오리공장으로 내려온 그는 기술준비소에 첫발을 들여놓았다. 야심만만한 그에게는 시험호동이 필요하였고 시험호동 관리공이 요구되였다.

《시험호동 관리공이야 응당 일 잘하고 책임성이 높아야지.》

유상훈박사의 말이였다.

그는 청년직장장과 관리공문제를 의논하겠다면서 연구를 잘하라고 고무해주었다.

정의성의 결심과 잡도리가 여느 사람과 다르다는것을 느낀 박사는 공장에 쉽지 않은 청년이 찾아온것을 누구보다 기뻐하였다.

《괜찮은 젊은이가 왔습니다. 그는 꼭 공장의 기둥감이 될겁니다. 두구보십시오.》

유상훈박사는 지배인과 당비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어느날 아침, 단아한 체격에 얼굴이 복스러운 처녀가 시험호동출입문앞에 얌전히 서있었다.

방역대에서 소독기구를 가지고오던 정의성은 고개를 다소곳하고 인사하는 낯모를 처녀에게 왜 왔는가고 물었다.

처녀는 직장장이 오늘부터 시험호동에서 일하라고 했다고 대답하였다. 순진한 웃음을 머금은 처녀의 얼굴과 청아한 목소리는 상대방의 마음까지 맑게 정화시켜주는듯 싶었다.

정의성은 처녀를 찬찬히 쳐다보았다.

《이름이 뭐요?》

《정옥입니다. 서정옥…》

《서정옥? 이름이 참 좋구만요.》

정의성의 진정이 담긴 말에 처녀는 쌔룩이 웃었다.

그날부터 처녀는 시험호동에서 일하기 시작하였다. 청년직장장이 추천해보낸 그 처녀는 정말로 착실하고 책임성이 높은 관리공이였다.

그는 늘 호동에서 살다싶이하면서 오리를 돌보았고 정의성의 요구라면 어길수 없는 법처럼 받아들였다.

그러나 배합먹이며 보충먹이를 다루는걸 보면 다소 무질서하고 정돈되지 않은 약점도 있었다. 사실 여느 사람에게는 그러한것이 조금도 눈에 거슬리지 않았을것이다. 지나친 정돈과 규칙적인 생활이며 질서를 바라는 정의성에게는 그것이 눈에 거슬리였다.

어느날 정의성은 처녀에게 말을 꺼냈다.

《정옥동무! 동문 녀자의 장점이 뭔지 아오?》

삭임돌에 섞여있던 티검불을 주어내던 처녀의 손이 멎었다.

그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뭔가 말할듯말듯 하다가 방긋 웃음지으며 머리를 젓는것이였다.

처녀의 웃음어린 얼굴을 바라보면서 정의성은 물건을 제자리에 놓을줄 아는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서 이 말은 어느 철학가의 말인데 시험호동 관리공은 이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하였다. 무질서가 초래하는 후과는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것이라는것도 강조하였다.

그때 정의성은 처녀의 귀뿌리며 목덜미까지 붉어지는것을 보았다.

다음날부터 시험호동안은 완전히 달라졌다.

휴계실과 소독실은 물론이거니와 먹이조리실의 소금밭이끼며 배합먹이들, 보충먹이들이 질서정연하게 쌓여지고 조리도구와 소독기구들은 언제봐도 정해진 제자리에 놓여있게 되였다. 눈치빠르고 령리한 처녀는 정의성의 눈빛이나 행동 그리고 말투까지 세심하게 가려보면서 그의 의도를 깨닫고 그것을 관철하기 위해 애써 노력하였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였다.

시험오리들을 관찰하려고 놀이장앞에 앉아있던 정의성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리였다. 어릴 때부터 속탈로 자주 고생하던 그여서 몸이 차지면 항상 배가 아팠던것이다. 그렇다고 따끈하게 불을 때는 휴계실에만 들어가있을수 없었다.

다음날도 그는 칸막이를 한 놀이장앞에 앉아서 다시금 오리들의 생육상태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런데 따뜻한 온돌방에 폭신한 담요를 깔고앉은듯 한 느낌이 들었다. 늘 앉군 하던 나무의자같았지만 일어나 보니 불에 달군 블로크우에 짚이 깔려있었다.

《?!》

저켠에 서서 방그스름히 웃고있는 처녀를 보고서야 그는 모든것을 깨달았다. 처녀는 겨울동안 내내 블로크를 달구어 정의성의 몸을 따뜻이 덥혀주었다. 그리고 매일 따끈하게 끓인물을 보온병에 넣어두고 그것을 마시도록 해주었다. 공장합숙에서 생활하는 그를 위해 찬거리도 마련해주고 색다른 음식이 생겨도 꼭꼭 가져다주군 하였다.

어느날 정의성은 처녀에게 자기는 이런 성의를 받을 자격이 없노라고 말했다.

처녀의 눈은 커졌다.

《왜 자격이 없나요? 고기생산을 많이 하려구 대학연구소에서 우리 공장으로 내려온 기사동지가 아니나요?》

어느모로 보나 처녀의 마음속엔 정의성에 대한 존경심과 헌신성으로 가득차있었다. 사심없는 그 헌신성에 정의성의 마음은 점점 끌리게 되였다. 귀전에는 연구소의 한 친구가 하던 말이 종종 울리군 했다.

《가정생활을 관찰해보니…》

그 친구는 연구사답게 《관찰》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가정생활에 대한 자기의 일가견을 터놓았다.

《안해에게 있어서 남편은 반드시 존경의 대상이 돼야 하오. 그래야 남편을 위해 자기를 깡그리 다 바칠수 있지.

반대로 남편에게 있어서 안해는 그저 사랑의 대상이면 그만이요.

속담에 있는것처럼 현명한 사람에게는 분별있는 안해면 충분하거던. 두고보라니까.…》

서른살을 넘기도록 사업에만 몰두해온 로총각에게는 서정옥이야말로 헌신적이고 분별있는 안해가 될수 있다고 생각되였다.

그러나 전 공장지배인의 막내딸로 태여나 온 가정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난 그 처녀가 결혼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짐작할수 없었다.

더우기 공장에서 제노라 뽐내는 서정옥의 오빠 서정관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할지 은근히 마음이 조여들었다.

며칠후 시험오리들을 모두 판매에 넘기고 퇴근길에 올랐던 정의성은 곁에서 걸음을 옮기는 처녀에게 이렇게 물었다.

《정옥동무! 내 동무에게 한가지 묻고싶은게 있는데 숨기지 말구 솔직히 대답해주겠소?》

그의 말에 처녀는 명랑하게 웃었다.

《아이참, 기사동지도… 내가 언제 솔직하지 않은적 있나요?》

정의성은 약간 무안해졌다. 그러나 용기를 잃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내 말하지. 난 사실 동무와 일생을 같이하고싶은 생각이요. 성실하구 알뜰한 동무와 말이요. 헌데… 동무의 생각은 어떤지…》

그는 주저없이 단숨에 자기의 생각을 터놓은 다음 직팡 처녀의 의향을 물었다. 그리고는 사색적이면서도 관찰하는듯 한 눈길로 처녀를 지켜보았다.

정의성의 물음과 눈빛은 너무도 례사로왔다.

인생의 중대사를 이렇게도 무심히 터놓는 자기자신이 이상하기도 하였다. 더우기 정옥에게서도 열띤 흥분이라든가 수집음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것이였다. 감정은 역시 호상성을 가지는것인가?

처녀는 다만 약간 놀랄뿐이였다.

《예에? 저하구 말이예요? 어쩌면… 제가 어떻게 기사동지와…》

서정옥은 말꼬리를 흐리였다. 자기를 항상 보잘것없는 처녀로 생각하고있던 그에게는 정의성의 말이 롱담처럼 들렸을것이다.

정의성에게는 바로 그 순진성과 소박성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날 생산과장으로 사업하던 서정관은 누이동생의 말을 듣고 그달음으로 유상훈박사를 찾아갔다.

박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크게 머리를 끄덕이였다고 한다.

《보기 드문 수재구 보배덩이요. 어느모로 보나 나무랄데 없는 사람이지. 난 찬성이요.》

그때로부터 두달후 정의성과 서정옥은 온 공장의 축복속에 결혼식을 하였다. 막내며느리를 맞이한 정의성의 어머니와 형제들도 그들의 결혼을 기꺼이 축하해주었다.

신혼생활을 시작한 어느날 정의성은 안해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그때 내가 마음에 들었소?》

남편의 물음에 정옥은 머리를 저었다.

《마음에 든게 아니라 그저 존경했으니까요.》

《그저 존경했기때문에 산다? 그것뿐이요?》

뭔가 부족한것을 느낀 정의성은 지꿎게 다시 물었다.

그러자 정옥은 할끔 눈을 흘겼다.

《아이참! 인간생활이 아니나요?》

지금도 정의성은 안해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안해의 말대로 인간생활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끝없이 변화무쌍한것이다. 그리고 인간생활에는 공식이 따로 없으며 사람마다 자기식으로 기쁨과 행복을 창조하고 또 향유하는것이다.

정의성은 저켠에 서서 봄순이와 함께 크레놀소독수를 타고있는 안해를 생각깊은 눈길로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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