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11


차수정의 머리를 손질하던 방송화는 얼핏 창문쪽으로 눈길을 돌리였다. 커다란 벽거울을 통하여 남편이 자전거를 타고 미용실마당에 들어서는것이 보였던것이다.

그는 쥐고있던 꼬리빗을 얼른 수정의 머리에 꽂아놓고 문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어찌된 영문인지 자전거를 타고 한손으로는 자전거를 끌면서 불편한 자세로 마당에 들어섰다.

《무슨 자전거를 두대씩이나 끌구 다녀요?》

방송화는 눈치있게 자전거를 세워주며 물었다.

《하나는 기사장거요.》

서정관은 오후에 내갈테니 기사장의 자전거를 미용실안에 들여놓으라고 일렀다. 방송화의 눈살은 대번에 꼿꼿해졌다. 그는 퇴매지게 물었다.

《당신은 뭐 기사장 하인이요?》

안해의 뒤틀린 목소리에 서정관은 눈을 지릅떴다.

《기사장이 방금전에 해산했기때문에 그러니 딴말말구 들여다놓소.》

그는 목소리를 낮추며 으름장을 놓았다.

남편의 말에 방송화의 작은 눈은 커졌다.

《예에? 기사장이 해산했다구요?》

팥알같은 그의 눈동자는 재미나서 춤추기 시작하였다.

그러거나말거나 서정관은 자전거에 올라 씽 가버렸다.

남편의 뒤모습을 지켜보던 방송화는 웃음집이 흔들거려 흐드득 하고 웃었다. 새로운 이야기거리가 생긴것이 못내 즐거웠다.

(기사장이 아일 낳았다구? 이런 참…)

방송화가 기사장에 대하여 곱지 않은 마음을 품고있는데는 그가 남달리 뒤소리를 좋아하고 남의 허물을 잘 들추어서만이 아니였다.

송영숙이 처음 기사장으로 왔을 때 방송화는 남편과 일심이 되여 그를 비웃고 미워하였다. 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와의 관계를 잘 가지려고했었다. 지금껏 공장일군들의 아주머니들에게 미용봉사를 해주면서 가깝게 지낸것처럼 새로 온 젊은 기사장도 자기의 단골손님으로 만들어서 그를 떡주무르듯 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런데 송영숙은 한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자기가 미용사라는걸 몰라서 그러는가 하여 만나는 기회때마다 잊지 않고 미용실에 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고맙다는 말만 할뿐 전혀 반응이 없었다.

방송화는 은근히 안달방아를 찧었다. 미용사의 눈으로 볼 때 기사장은 잘생긴데다가 머리숱이 많고 머리모양도 남달리 고와서 조금만 품들이면 눈에 띄게 아름다운 녀성이다.

기사장의 머리를 미용해준다는 그 한가지로써 많은 녀성들을 자기에게로 끌수 있고 또 기사장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오고가고하느라면 좋은 일이 많을것이라고 타산하였다. 그래서 더욱 욕심이 났다.

그런데 얼마후에 기사장이 한인민반에서 살고있는 리발사녀인에게서 미용을 한다는걸 알게 되였다. 그것도 저녁시간에 집에 초청한다는것이였다. 알아보니 그 리발사는 도소재지에서 미용사를 하다가 이곳으로 시집온 젊은 녀인이였다.

그때부터 방송화는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기사장을 더 비난하고 헐뜯기 시작하였다.

지금도 그는 자전거를 끌고 미용실에 들어서기 바쁘게 손과 혀바닥을 동시에 만가동시켰다.

《녀자가 매련두 없지.… 남보기 부끄럽지도 않을가?…》

그는 입을 비죽거리며 험담을 시작하였다.

자기 생각에 옴해서 그린듯이 앉아있던 차수정은 의아한 눈길을 들었다.

《누가 아일 낳았대요?》

호기심이 촉발된 관중의 눈길앞에서 더욱 신바람이 나는 방송화였다.

《누군 누구겠어? 기사장이지. 요즘 별로 둥둥해서 다닌다 했더니…》

《기사장이 정말 아일 낳았대요?》

수정은 한창 미용중이라는걸 깜박 잊고 홱 돌아앉으려다가 다시 거울을 마주하였다. 그는 거울속에 비친 방송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마 온 공장이 들썩할거야. 헌데 그 녀잔 남들이 손가락질하는걸 모르는 모양이지? 흥! 겉으로는 원칙입네- 하면서두 밑구멍으로는 호박씨만 까면서…》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다 꺼내여 험담을 늘어놓던 방송화는 차수정이 기사장과 보통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약간 주춤하였다.

수정이 다사스러운 녀자는 아니지만 그의 입타격만은 당할자가 없다는걸 알고있는터여서 은근히 두렵기까지 하였다.

아닐세라 잠자코있던 수정의 성격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였다.

《누이!》

수정은 본남편의 둘째누이인 방송화를 예전대로 불렀다.

《남편 있는 녀자가 아일 낳은게 무슨 흉이나요? 나같으면… 남들 혀바닥에서 보풀이 일더라도 아일 낳았으면 좋겠군요. 흥!》

그는 속시원히 코방귀를 뀌였다.

워낙 눈에 거슬리거나 어스크레한것을 까밝히고 찔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였다. 그는 방송화에게 자극을 줄 말이 더 없을가 하고 궁리하였다. 험담을 즐기는 그를 푹 찔러주고싶은데 적중한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아 속이 요글요글해났다.

사실 수정의 말은 진심이였다.

그는 아이를 낳은 송영숙이 얼마나 부러운지 몰랐다.

세상에 아이를 낳아 키우는것보다 더 큰 녀성의 의무가 무엇이랴. 세상에 만물의 령장인 인간을 창조하는 어머니보다 더 성스러운 사람이 누구랴.…

생각할수록 송영숙을 헐뜯는 방송화가 밉살스러웠다. 그의 손길 또한 역스러웠다. 수정은 자기의 머리가 별로 흉하지 않다고 생각하며 냉큼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왜 벌써?》

수정에게서 보기 좋게 한꼴 먹고 메사해졌던 방송화는 다시 앉으라고 손목을 까딱까딱했다. 아무리 괘씸한 녀자라 해도 자기를 찾아오는 손님에 대해서는 최대의 봉사성을 기울여 인기를 끌려고 애쓰는 그였다.

《잠간이면 멋있게 될텐데 조금만…》

그는 애교스럽게 웃었다.

수정은 한쪽입귀를 실그러뜨리며 가볍게 코웃음을 쳤다.

《멋있으면 어쩌나요? 별루 곱지 않아두 뒤소릴 듣군 하는데… 안그래요?》

그는 또 한번 퉁을 놓았다.

수정이 공장을 위해 책 한권이라도 더 받으려고 군출판물보급소에 자주 찾아가고 보급소장을 몇번 집에 초청한 일을 두고 바람이 나서 뭇사내들을 끌어들인다고 뒤소리를 했던 방송화였다.

칼로 입은 상처는 아물어도 혀바닥이 낸 상처는 아물지 않는 법이다.

그 말이 낸 상처때문에 오래동안 모대김을 하였던 수정은 오늘 이때라싶게 혀바닥침을 휘둘렀던것이다.

방송화는 또다시 말문이 막혀 붕어입이 되고말았다.

그는 무안해서 어쩔줄 몰라하는 방송화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 자전거는 내가 건사했다가 돌려주겠어요.》

자전거를 끌고 밖으로 나온 그는 이 길로 곧장 송영숙이를 찾아갈가 하다가 그만두었다. 해산하는 날까지 쉬지 못하고 생산지휘를 위해 뛰여다니던 그가 방금전에 해산을 하고 쓰러졌을텐데 이제 찾아가면 그를 위해서도 그렇고 위생학적으로도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더우기 빈손으로는 가고싶지 않았다.

(며칠 지나서 애기옷을 사가지고 가야지. 참, 산모의 간호때문에 어머니가 바쁠텐데 당분간 경아는 내가 데리구있어야지.…)

큰엄마, 큰엄마 하면서 찰찰 감겨도는 경아의 모습을 그려보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다음순간 아들일가, 딸일가 하는 호기심이 머리를 쳤다.

아들, 아들 하는 경아 할머니의 소원대로 떡돌같은 아들을 낳았으면 얼마나 경사랴. 눈앞에는 춤이라도 출듯 하는 문춘실의 모습이 보이는것 같았다.

하지만 무우와 아이는 뽑아보아야 안다는데… 그러나 아들이든 딸이든 아이를 낳은 송영숙이 그저그저 부럽기만 하였다.

나이 마흔살이 되도록 아이를 낳아보지 못한 그에게는 아이처럼 부러운것이 없었다.

언제인가 문춘실은 이렇게 말했다.

《수정아! 너두 수의사와 살림을 합치구 고운 애기도 낳아라. 그래야 사는 재미두 있구 보람두 있을게 아니냐? 네가 아일 낳으면 내가 다 시중들어주겠다.》

진정이 담겨진 그 말을 되새겨보던 수정의 눈앞에는 문득 리병우의 누르퉁한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지난가을 공장 부업밭에서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주었다.

그날 공장에서는 김장용배추와 무우를 가을하기 위한 긴급전투를 조직했었다. 저녁부터 기온이 내려가면서 날씨가 몹시 추워지겠다는 기상예보를 듣고 거의 모든 종업원들이 부업밭으로 나갔다.

오리배설물을 듬뿍듬뿍 주고 심은데다가 가을날씨가 좋아서 가을남새작황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였다.

수정은 공장경리과에 배속되여 배추를 날랐다.

젊은이들이 캐놓은 배추를 부지런히 나르던 그는 잠시 허리를 폈다. 속잎이 노랗고 먹음직스럽게 통이 진 배추는 세포기만 돼도 안기가 뻐근할만큼 크고 무거웠다.

허리쉼을 하던 그는 무우밭에서 울리는 웃음소리를 듣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전에 벌써 무우산을 쌓아놓은 생산직장에서는 빙- 둘러앉아 무우잎을 다듬고있었다. 누군가 칼로 무우껍질을 쭉쭉 벗긴 다음 옆사람들에게 한쪽씩 쪼개여 나누어주었다. 싯허연 무우를 통채로 깎아들고 와작와작 베여먹는 젊은이도 있었다. 그들은 무엇이 좋은지 또다시 와하하 웃음보를 터뜨렸다. 어디서나 로동의 벅찬 희열로써 풍요한 가을을 노래하고있었다.

드넓은 부업밭을 기쁜 마음으로 둘러보던 수정의 눈길은 남새계량조성원들의 뒤쪽에 서있는 리병우에게서 멎었다. 그제야 그는 종금직장 남새밭이 자기네 바로 옆이라는것을 깨달았다.

차수정은 물날은 밤색솜옷을 입고 엉거주춤 서있는 그를 한동안 지켜보았다. 아무때 봐도 입은 옷이 반듯해보이지 않는 리병우였다.

지금도 구부정한 잔등때문에 솜옷 뒤자락이 들썩했다. 거기에 팔소매며 목깃에 때가 짜들짜들했다. 시약과 어지러운 오리털때문인지 그는 언제나 불결해보였고 또 실지로 비위생적이였다.

그는 리병우의 그 시큼하면서도 쩌들은 냄새가 풍겨오는것 같아 눈살을 찌프리면서도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문득 저 사람네는 올해 김장을 어떻게 해넣을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추며 마늘이랑 그리고 젓갈을 비롯한 양념감준비는 다 되였는지 궁금하였다. 자기네 집에 있는 낙지젓갈이며 생강을 가져다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가 자기를 꾸짖었다.

(내가 별생각 다 하누나. 봄순이도 있고 옆집 가공직장장도 있는데 내가 괜히…)

수정은 다시 배추를 나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눈앞에서 리병우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밥이면 밥, 국수면 국수 뭐든지 군소리나 타발 한번 없이 식사하고는 돌아앉아 책만 읽던 사람이다. 그는 새로 맞아들인 안해앞에서도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눈건사도 제대로 못하던 사람이였다.

《맹물이라구? 그래두 맹물이 까다로운 사람보다는 나은줄 알아. 우리 령감이 보통 까다로운 사람인줄 알아? 내가 밖에 나와서는 직장장이랍시고 큰소리쳐두 우리 령감앞에선 고양이앞에 쥐라구. 뭐니뭐니 해두 살아나가는데서는 맹물이 맘편해 좋아.…》

언젠가 보급실에 찾아왔던 방인화가 그에게 한 말이였다.

한동안 그의 말을 되새겨보던 수정은 계량조성원들이 도착했다는 소리에 다시 허리를 폈다.

그날 공장종업원들에게 배추 150키로그람과 무우 100키로그람씩 공급되였다. 그리고 자동차와 뜨락또르를 동원하여 집집마다 남새를 실어다주었다.

수정은 배추와 무우가 담긴 자기의 마대마다 마지크로 《보급원》이라고 쓴 꼬리표를 달아서 자동차에 올렸다.

《우리 집을 알지요?… 마당에 부리워주세요.》

그는 경리과의 젊은이에게 이렇게 부탁하였다. 젊은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운전칸에 올랐다.

자동차는 곧 발동소리를 울리며 남새밭을 떠났다.

수정은 흐뭇한 기분으로 집을 향해 걸었다. 그는 올해에도 깍두기며 식혜를 맛있게 담그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경아네처럼 보쌈김치도 담글가?… 잣이랑 참밤이랑 넣으면 맛있을테지?…)

금시라도 맵고 쩡한 식혜며 보쌈김치를 먹은듯 입안에 군침이 스르르 돌았다. 불쑥 배가 고팠다. 수정은 걸음을 다우치며 경아 할머니처럼 겨울김치를 맛있게 담그리라 생각하였다.

다음순간 남편도 자식도 없이 저 혼자 먹을 김치에 품을 들여 무엇하랴 하는 허구픈 생각이 들었다. 곧 마음이 쓸쓸해졌다. 그러나 인츰 자기를 꾸짖었다.

(자기자신을 무시하고 학대하는건 생활에 대한 자포자기야.…)

그는 쓸쓸한 마음을 털어버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당 구석구석을 살펴보아도 남새마대들이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는 열번도 더 오갔을텐데 어떻게 된걸가?… 혹시 보급원이라는 꼬리표를 달았으니 보급실에 가져다놓은게 아닐가?…)

십분 그럴수 있었다. 그는 배고픈 생각도 다 잊고 선자리에서 돌아섰다. 하지만 보급실마당에도 복도에도 남새마대는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된 영문일가?…)

머리를 기웃거리며 보급실을 나서는데 마침 경리과 자동차가 저켠에서 달려오고있었다. 그는 큰길로 달려나가 손을 흔들었다.

자동차는 그앞에서 멎었다. 수정은 운전칸으로 다가서며 자기네 집 남새를 어떻게 했는가고 물었다.

그의 물음에 경리과의 젊은이는 되려 제켠에서 눈을 흡떴다.

《집에 없습디까?… 내가 직접 마당에 들여놨는데요?…》

《?!》

수정은 말없이 머리를 저었다.

머리를 기웃거리던 젊은이는 인츰 철썩 손벽을 쳤다.

《아! 수의사동지가 타온것과 섞여서 잘 몰랐겠군요. 내가 마대를 들여다놓고나올 때 수의사동지도 남새마대를 지고 들어왔으니까요.》

젊은이는 얼굴에 싱글싱글 웃음을 떠싣고 손세까지 써가며 말했다. 그만에야 수정은 재빨리 머리를 끄덕였다. 그는 얼른 자동차곁에서 물러섰다. 자동차는 다시 내달렸다.

수정은 길옆에 서서 멀어져가는 자동차를 민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결국 그 젊은이는 차수정과 리병우를 여전히 한집안식구로 알고 수의사네 집에 남새마대를 부리웠던것이다.

수정의 얼굴은 절로 달아올랐다. 남새를 되찾아올 생각을 하니 리병우와 맞설 일이 근심스러웠다. 그렇다고 찾아오지 않을수도 없었다. 그가 가지 않으면 꼭자인 리병우가 대신 남새마대를 메고지고 찾아올것이였다.

맥풀린 걸음으로 다시 집에 돌아왔던 그는 남들의 눈에 띄우지 않게 땅거미가 질무렵에야 손달구지를 끌고 리병우의 집으로 떠났다.

처녀시절 제노라고 뽐내던 자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다니는 처지가 되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구슬프기 그지없었다. 까닭없이 눈굽이 달아오르기도 하고 누구에게든 화풀이를 하고싶었다.

울컥울컥 솟구치는 울분을 씹어삼키며 그는 리병우의 집마당에 들어섰다. 창문에서 쏟아져나오는 불빛으로 마당은 환하였다. 부엌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는걸 보니 리병우가 저녁을 짓는 모양이였다.

수정은 그에게 남새를 가지러 왔다고 한마디 할가 하다가 자기의 처지가 비굴해보일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자기의 신세를 다시한번 가련하게 만든 그에게 례의를 차리며 곰상스럽게 대하랴 하는 뒤틀린 생각이 머리를 쳤다.

그는 리병우의 눈에 띄우지 않게 빨리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조용히 남새무지쪽으로 다가가 자기의 마대를 찾느라 한동안 끙끙거렸다.

이때 부엌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리였다.

마당에서 나는 인기척을 느꼈는지 리병우가 문을 열었던것이다. 불빛이 쏟아지는 마당에 서있는 수정을 알아본 리병우는 한동안 문가에서 주춤거렸다. 잠시후 그는 신발뒤축을 끌며 마당에 나왔다.

차수정은 하는수없이 남새마대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였다.

《경리과에서 잘못 가져다놓았더군요. 괜히 여기저기 찾아다니게 하면서…》

그는 구차스러운 변명처럼 들릴것 같아 부러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리병우는 잠자코 서있더니 《저녁밥이나 지어놓구 내가 가져다주자고 했는데…》하고 말끝을 얼버무렸다.

수정은 그 말을 못 들은척 하고 부지런히 손만 놀리였다. 리병우도 말없이 그의 일손을 도와나섰다.

손달구지에 남새마대들을 올려싣자 리병우는 다시 신발뒤축을 끌며 부엌에 들어가 바줄을 가지고나왔다.

그리고는 바줄로 꽁꽁 마대를 묶더니 달구지를 대문밖에까지 끌어내다주었다. 몇달전에 수정이 더는 못살겠다고 짐을 꾸려가지고 나오던 그날도 리병우는 지금처럼 제 손으로 이불짐을 꽁꽁 묶어주었다.

대문밖에 나온 수정은 은근히 밸이 꼴렸다.

(아유, 저맹물!… 남자라는게 녀자손을 잡아끌기도 하고 자기의 요구도 강박해야 남자지. 그래야 녀자쪽에서도 못 견디는척 할텐데.…)

그날 저녁 손달구지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정은 리병우를 눈앞에 세워놓고 마음내키는대로 비웃으며 저주를 퍼부었다.…

그때 일을 돌이켜보던 수정은 입귀를 실그러뜨리며 쓰겁게 웃었다.

(안돼! 수의사와는 절대 행복할수 없어! 주대없는 사람과 살림을 합치느니 차라리 혼자 사는게 나아.…)

다음순간 자기는 영원히 모성의 기쁨을 모르고 살아야 할 신세라는 생각에 가슴이 미여지듯 아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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