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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29 회)


제 3 장 열매는 어떻게 무르익는가


6


송영숙은 점심시간이 지나서야 지친 걸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돼지물을 주려고 마당에 나왔던 문춘실은 딸을 보자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며칠전부터 정월대보름날준비를 해놓고도 딸에게 아침밥을 먹이지 못해 속이 알알했던 그였다.

그런데 밥상을 마주하고 앉았던 딸이 들었던 수저를 내려놓는 바람에 웬일인가싶어 눈을 흡떴다.

송영숙은 그러는 어머니를 건너다보며 자기 생각을 말했다.

《어머니! 이걸 모두 꾸려주세요.》

《?!》

《시험호동 관리공들과 함께 먹고싶어서 그래요. 그들은 지금 점심먹을 생각도 못하구있어요.》

딸이 이쯤하면 물러서지 않는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문춘실은 서운한 생각을 누르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얼마후 송영숙은 어머니가 꾸려주는 점심밥을 싸가지고 집을 나섰다.

그가 시험호동에 들어서니 정옥이와 봄순은 놀이장앞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이고 몇마리 남지 않은 오리들을 한데 모아놓은 호동안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점심식사도 추위도 다 잊고 앉아있던 그들은 송영숙을 보자 눈물이 글썽해져서 일어났다.

《점심식사를 했어요?… 못했지요?》

송영숙은 보통날처럼 부드러운 어조로 물었다.

관리공들은 둘이 다 말을 못하고 서있기만 하였다.

《내 그럴줄 알았어요. 자! 나하구 같이 들어가서 점심을 먹자요.》

송영숙은 주인인듯 앞서서 휴계실로 들어갔다.

그는 정옥이와 봄순의 앞에 보자기를 펴놓았다.

그리고 수저를 쥐여주며 친근하게 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알아요? 정월대보름날이예요.

자! 우리 집에서 지은 오곡밥을 맛보세요. 이 곰취와 병풍나물잎으로 복쌈도 싸구요. 자! 어서요!… 나도 배고프군요. 어서 많이 먹자요.》

송영숙은 무거운 분위기를 깨뜨리고 정옥이와 봄순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말을 많이 하였다. 그는 절임하였다가 기름에 튀긴 병풍잎으로 복쌈을 싸서 한개씩 쥐여주고 자기도 먹었다.

서정옥은 갑자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더니 흑흑 흐느끼기 시작했다.

비육호동에서 일할 때에도 병약한 오리나 칼시움부족으로 다리를 저는 오리를 보면 가슴이 아파 보약도 지어먹이고 다 키운 오리들을 판매에 넘길 때는 그동안 정들여 키운 오리들이 가공장으로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우울해지군 하던 정옥이였다.

남편의 성공을 간절히 바라던 그가 하루밤새 몇백마리나 되는 오리를 죽였으니 그 마음이 오죽하랴.

사고원인을 해명하려고 내려오는 사람마다 푸르딩딩한 얼굴로 죄인다루듯 몇마디씩 묻고는 사라져버리군 하였다.

누구보다 섭섭한 사람은 오빠였다.

《그만큼 그만두라고 했는데 말을 듣지 않더니 끝내… 봐라! 일이 어떻게 됐나? 내 이럴줄 알았다니까.…》

말 한마디 따뜻이 해줄 대신 그의 눈빛에는 이런 말이 씌여져있었다. 못마땅해하기도 하고 잘코사니 하는것 같은 눈빛이였다. 더우기 동생이 가까이 다가설가봐 꺼리는것 같기도 했다.

평시에는 자기에게 살점이라도 베여줄듯 하던 형님도 오늘은 나타나지 않는다. 그의 《안테나》엔 제일먼저 새 소식이 걸렸을텐데… 친오빠네까지 모두 외면하니 서정옥은 정말이지 괴로운 마음을 달랠길이 없었다. 남편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그런데 기사장만은 여느날과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더 따뜻이 대해주고 관심해주니 인정많고 눈물많은 정옥은 끝내 눈물의 뚝을 터뜨리고야말았다.

봄순의 마음도 다를바 없었다. 언제나 일을 잘하는것으로써 고마운 기사장에게 보답하려고 했건만…

송영숙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들을 따뜻이 달래였다.

그는 정옥이와 봄순이 점심식사를 다 한 다음 전날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시간별로 하나하나 물었다.

《아침먹이때는 오리들의 먹성이 좋았겠지요?》

《예.》

《아침먹이를 먹인 다음엔 어떻게 했어요?》

《오전엔 눈이 조금씩 내리기에 오리들을 놀이장에 내놓지 않았습니다.》

정옥은 곰곰히 기억을 되살려가며 대답하였다.

《그러니 다음먹이시간까지 그냥 호동안에 있었겠군요?》

송영숙은 정옥이와 봄순의 얼굴을 차례로 쳐다보며 또 물었다.

이때 정옥의 눈빛이 류다른 광채를 뿜으며 반짝했다.

《아! 있어요! 방역대에서 왔댔습니다.》

《방역대에서요?》

송영숙은 다우쳐 물었다.

《예. 방역대에서 주사를 놓았습니다. 혈청주사!》

봄순이도 웨치듯 대답하였다. 그들은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우리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가? 우린 정말 맹꽁이야, 맹꽁이!》

사실 그들은 많은 사람들앞에서 사고원인에 대한 질문을 받았지만 너무도 당황하고 무섬증이 앞서서 미처 그 생각을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기사장이 긴장감을 해소시키면서 차근차근 물으니 비로소 정상적인 사고를 할수 있었다.

그 순간 송영숙도 자기의 실수를 깨달았다.

어제 아침 방역대에서 면역혈청주사를 놓았다는걸 그도 알고있었던것이다.

사실 방역대에서는 이틀전부터 생산직장들을 순서로 주사를 놓아주었다. 그런데 그걸 잊다니…

잠시후 호동을 나선 송영숙은 청년직장 사무실에 들어가 전화로 방역대장을 찾았다. 집에서는 점심식사를 하자마자 곧 나갔다고 안해가 대답하였다.

다시 방역대장방을 찾았다. 한동안 신호음이 울려서야 송수화기를 드는 소리가 났다.

《기사장입니다. 대장동뭅니까? 내 곧 그리로 가겠어요.》

가공직장옆에 위치한 방역대에 찾아가니 키가 크고 여윈 방역대장이 혼자 있었다.

《요즘 방역대에서 혈청주사를 놓았지요? 어디어디 놓았는지 그 순서를 말해주세요.》

송영숙은 주사약제조실앞에 놓인 의자에 앉으며 그에게 물었다.

기사장의 물음에 대장은 긴 허리를 늘구며 일어서서 책장에 꽃혀있는 주사접종일지를 펼쳐들었다.

《가만! 내가 좀 보자요.》

송영숙은 대장에게서 주사접종일지를 넘겨받았다.

그는 온몸에 긴장을 느끼며 접종란에 눈길을 모았다.

모두 30일령의 오리들로서 다섯개 호동을 거쳐 마지막에 시험호동오리들에게 주사한것으로 기록되여있었다.

《마지막이 분명 시험호동이겠지요?》

송영숙은 확인하듯 물었다.

《이걸 보니 대장동무가 주사공과 함께 접종했군요. 그런데 주사약 제조는 누가 했습니까?》

《제약작업반에서 새로 온 제조공이 했습니다. 아! 마침 저기…》

범 제소리 하면 온다면서 방역대장은 긴팔로 창밖을 가리켰다.

주사약제조공은 20대의 젊은 청년이였다.

송영숙은 그에게 시험호동을 맨 마지막에 접종하였는데 주사약이 남지 않았는가고 물었다.

《조금 남은것 같은데… 여기 있습니다.》

제조공은 반쯤 남은 약병을 기사장에게 내밀었다.

주사약을 받아든 송영숙은 곧 전화를 걸어 생산부기사장과 유상훈소장을 불렀다.

두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방역대에 들어섰다.

그들은 기사장의 지시대로 주사약을 검사하려고 약병을 가지고 나갔다.

얼마후 주사약검사결과가 전해졌을 때 온 공장이 경악하였다.

그것은 방역대에서 제조한 면역혈청주사약때문에 오리의 무리죽음을 냈다는것이 밝혀졌던것이다.

《혈청주사때문에? 정말이요?》

지배인과 당비서는 꼭같이 곱씹어 물었다.

《정말입니다. 혈청에 포르말린을 잘못 넣어서 그렇게 되였습니다.》

송영숙은 놀라서 굳어진 그들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지배인과 당비서는 말없이 마주보기만 했다.

이윽고 그들은 서로가 무리페사를 낳은 무질서와 무책임성을 자기자신에게서 찾으며 심각한 얼굴로 묵묵히 생각에 잠기였다.

비루스성간염예방을 위한 면역혈청주사는 도살오리의 피를 받아서 공장자체로 만드는 주사약이다.

혈청을 분리하고 려과시킨 다음 포르말린이나 페니실린 또는 스트렙토미찐을 넣어서 만드는 이 주사는 오리나이에 따라 량을 조절하여 다리피하 근육주사하였다.

이 주사를 맞은 오리들은 병에도 잘 걸리지 않고 키우기률도 높았다. 혹시 주사량이 많으면 흡수가 늦어지면서 지속적인 스트레스작용으로 먹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런데 주사약검사결과는 혈청에 넣는 포르말린의 희석배수를 잘못 계산하여 주사약을 제조하였다는것이 밝혀졌던것이다.

온 공장은 주사약제조에 대한 이야기로 또다시 들썩하였다.

온몸이 귀가 되여 시험호동에만 신경이 가있던 진철은 또다시 리병우에게로 뛰여갔다.

《수의사동지!》

그는 문기척소리와 거의 동시에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어깨를 구부정하고 넋없이 배양탕크앞에 앉아있던 리병우는 이번에도 폭탄같은 소식이 날아온것 같아 겁기어린 눈을 겨우 돌리였다.

그러나 히쭉벌쭉 웃고있는 진철을 보고 그리 운수나쁜 소식은 아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시험호동에선 아무 잘못도 없답니다. 방역대에서 글쎄 주사약을 잘못 제조했기때문이래요.》

《정말인가?》

《예! 이자 방금 내가 방역부원한테서 직접 들었어요.》

사실은 방역부원이 직장장에게 하는 말을 귀동냥해 들었지만 수의사를 안심시키느라 약간 보태여 말했다.

리병우는 련속 후유후유 긴숨을 내그었다. 반나절사이에 턱수염이 꺼칠해지고 얼굴빛이 더욱더 누렇게 된 그였다.

《고 안타깨비가 이제야 숨이 나가겠는데?》

진철은 봄순을 눈앞에 세워놓고 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나 온 공장이 주사약제조에 대한 말로 술렁거릴 때 서정옥이와 리봄순이만은 아무것도 모르는채 그냥 죽지부러진 새처럼 처량하게 앉아있었다.

그들에게 주사약검사결과를 알려준것도 송영숙이였다.

끼니까지 번져가면서 새벽부터 온종일 초긴장상태에서 뛰여다닌 송영숙은 관리국에 사업정형과 사고원인을 보고한 다음에야 사무실을 나섰다.

저녁시간도 퍼그나 지났는지 밤하늘에는 보름달이 떠올라 온 누리를 밝게 비치며 곱게곱게 웃고있었다.

하지만 송영숙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온몸이 땅으로 잦아들것만 같았다. 빨리 집으로 가서 자리에 눕고만싶었다.

그는 자전거를 탈념도 못한채 휘친거리는 다리를 옮기며 집으로 향했다.

그러나 소로길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시험호동에서는 아직도 이 소식을 모르고있겠구나.…)

눈앞에는 억울하고 분한 생각으로 슬피 울던 서정옥이와 봄순이의 모습이 다가들었다.

그는 곧 자전거를 돌리였다.

송영숙이 호동에 들어서자 정옥이와 봄순은 여전히 애처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기사장에게서 주사약때문에 일어난 사고라는것을 알게 된 그들은 처음 깜짝 놀라 한동안 서로 마주보기만 하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얼마후에는 풀썩 주저앉아 흑흑 흐느끼는것이였다.

송영숙은 그들에게 사고원인이 밝혀졌으니 마음을 놓으라고 이른 다음 호동을 나서려다가 다시 돌아섰다.

《참! 오늘은 정월대보름날인데 우리 호동앞에 나가 달구경을 하자요. 품고있는 소원이 뭔지 맘속으로 말하면서 말이예요. 자! 어서 나가자요.》

그는 먼저 출입문을 열고 나왔다. 뒤따라 정옥이도 봄순이도 나왔다.

금쟁반같은 보름달은 시험호동지붕우에서 밝게밝게 웃고있었다.

송영숙은 호동옆 감나무에 기대여 보름달을 이윽토록 올려다보았다.

그에게는 어쩐지 두귀를 쫑긋한 달나라의 옥토끼가 정옥이와 봄순이의 마음을 담아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있는듯이 생각되였다.

송영숙은 밝고 아름다운 보름달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달아! 밝고밝은 보름달아! 우린 지금 첨가제의 성공만을 바란단다. 너의 밝고 아름다운 빛이 비치는 여기 우리 공장을 위해 그리고 우리 부모, 우리 형제, 우리의 정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 땅을 위해 첨가제의 성공을 간절히 바란단다.…)

송영숙은 지친 몸을 감나무에 기대인채 하염없이 보름달을 올려다보았다.

정옥이도 봄순이도 말없이 달을 쳐다보고있었다.

송영숙은 그들도 첨가제의 성공을 마음속으로 빌고있다고 믿었다.

그들모두의 마음을 읽은듯 보름달은 더 밝게, 더 곱게 웃고있었다.

잊을수 없는 정월대보름날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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