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4 장


48


《김만금동무의 보고에 의하면 올해에 평안남도에서 농사가 아주 잘된것 같소. 8월말에 황해남도에 가서도 만족스러웠는데 평안남도 역시 농사를 잘했다니 요새 밥맛이 난단 말이요.》

김일성동지께서 기쁨을 금치 못해하시니 도당위원장 피창린은 좋은 평가를 받는것이 어쩐지 송구스러워 《아직은 예상수확고입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물론 탈곡을 해보아야 확신할수 있소.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에 의하면 예상수확고와 실수확고간에 차이가 별로 없었소.

풍년든 해에는 털수록 낟알이 나온다고 했는데 올해에 실수확고가 더 높을수 있소.》

수령님께서는 특히 벼농사가 잘되였다고 하시면서 정보당수확고가 도적으로 평균 500키로그람이상 증수했다고, 대단한 성과라고 치하하시였다.

《우리가 1960년 가을에 룡오협동농장에 갔을 때 정보당 3톤 냈는데 올해에는 5톤 500키로그람을 내다본다니 대단하오.》

《어떤 포전에서는 일곱톤까지 내다봅니다.》

피창린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들으시고 몇해전에 가셨던 룡오리를 잠시 그려보시였다. 많이 달라졌을것이다.

정보당 수확고가 그렇듯 몇해사이에 높아진데는 반드시 원인이 있을것이다.

《지금 룡오리관리위원장이 누구요?》

《수상동지께서 인민경제대학에 보내주시였던 변창복녀성입니다.》

《내가 어느해인가 몸매작은 상촌리 처녀관리위원장의 토론을 듣고 말했지만 녀성들이 이악하게 일을 잘하오.》

피창린은 룡오에서 농사가 잘된데는 녀성관리위원장의 노력이 컸다고 하면서 그 녀성은 벼모를 튼튼히 키워 논에 낼데 대하여 강조하신 수령님의 가르치심을 명심하고 벼모를 과학적리치에 맞게 튼튼히 키웠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런데 피창린동무, 왜 문덕군의 옆에 있는 숙천군은 정당평균 예상수확고가 떨어졌소? 열두삼천협동농장은 4톤에도 이르지 못했다지?》

《예, 원래의 구답에서는 4톤을 넘어섰지만 간석지논에서 수확이 떨어져서 평균 그렇게 되였습니다. 그 협동농장에서는 장마에 무너진 해안방조제를 쌓는데 농장청년들을 동원하다보니 김을 제대로 매지 못했고 간석지논이 짠물피해를 받았습니다.》

《음-》

수령님께서 안색을 흐리시였다.

《그 해안방조제가 매해 말썽이군. 동무네 도의 력량을 동원하면 안되겠소?》

《해안방조제에 장석을 입혀야 장마에도 끄떡하지 않겠는데 그건 국가의 전문기업소의 방조를 받아야 할수 있습니다. 또 지금 도안의 관개관리소를 비롯한 력량이 하천공사에 다 동원되여있습니다.》

《그러니까 벼가을이 끝난 가을에 하자는거요. 농민들을 큰 공사에 동원시키면 농사에 지장을 받지 않는가, 도당위원장동무의 의견이 옳소.

국가가 맡아서 해야 할것 같소. 이 문제는 열두삼천협동농장에 가서 결론을 지읍시다.》


×


열두삼천리벌에 펼치여져있는 문덕, 숙천, 평원군들은 평안남도뿐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이름있는 곡창지대이다.

9월말 숙천땅 지경에 들어서신 김일성동지께서는 칠리를 비롯한 몇개 협동농장들을 현지지도하시고 11시반경에 열두삼천협동농장에 도착하시였다. 이 농장의 모체는 연풍협동조합이다.

리단위로 조합들이 통합되면서 창동이라는 리이름을 달지 않고 열두삼천협동농장이라고 명명한것은 이 고장 사람들이 창동리가 이 넓고 기름진 벌의 중심에 위치해있는 닭알 노란자위와도 같은 부락이라고 자부하고있기때문일것이다.

파랗게 열린 가을하늘에 구름한점 없고 해볕이 쏟아져내려 익은 벼이삭들이 고개를 무겁게 숙이고 들바람에 설렁대는 무연한 논벌이 황금빛으로 빛나고있다. 어디를 둘러보나 설레이는 벼바다이다.

이 농장의 관리위원장 박기석은 이상하게 사람의 마음을 끄는 인상인데 군과 도에서 잘 알려진 일군이다.

수령님께서도 그를 알고계시였다.

승용차에서 내리신 김일성동지께서는 달려와 인사를 드리는 그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시였다.

《기석동무, 잘있었소?》

그이께서는 반갑고 기쁘시여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관리위원회쪽으로 수행원들과 함께 걸어가시면서 그이께서는 리소재지마을을 둘러보시며 《집을 많이 짓지 못했구만.》하고 말씀하시다가 살림집같지 않는 아담한 기와집을 가리키시였다.

《저 집은 무슨 집이요?》

《수상님께서 지난번에 오시여서 농학연구소분실을 내오라고 말씀하시고 보내주신 기술일군들이 꾸려놓은 영농과학보급실입니다.》

박기석이 대답을 드리였다.

《관리위원장동무, 올해에 알곡을 얼마나 낼것 같소?》

박기석은 좀 창피해하며 맥없는 대답을 드리였다.

《8천톤을 예견하고있습니다.》

《내가 1만톤농장을 만들라고 했는데 3년째 락제하누만?

두해전에 숙천에서 만났을 때 몸이 열쪼각나도 1만톤을 해내겠다고 했지?》

박기석은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그렇게 주먹치기로 결의하면 되는가. 그래 우리가 군협동농장경영위원회도 내오고 농촌에 로력도 적지 않게 보내고있는데 지난해에도 용을 쓰지 못했단 말이지?》

박기석은 머리를 들지 못했다.

《수상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덕은 큰데 저희들이 보답하지 못하고있습니다.》

도당위원장 피창린은 해안방조제가 터지군 하여 고생하면서 간석지논에서 수확을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박기석이에게 평시에는 조건타발이 많다고 추궁하였지만 지금 어깨가 처져가지고 서있는 그를 보느라니 동정이 가는것을 어쩌지 못했다.

김일성동지께서 말씀하시였다.

《해안방조제가 변변치 못해서 애를 먹는다지?》

군당위원장이 동뚝에 장석을 입히지 못해 밀물이 크게 밀려들면 터지군하며 갑문이 없어서 장마철에 간석지논에 고이는 물을 빼내지 못하여 농민들이 뚝을 막느라 물을 빼느라 애를 먹고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는사이에 관리위원회앞마당에 이르러 저 수양버드나무아래에 앉아 이야기하자고 수령님께서 말씀하시였다.

그이를 모시고 수원들과 농장일군들이 의자들을 내다 반달형으로 놓고 둘러앉았다. 뒤자리에 앉으려는 관리위원장을 수령님께서 제일 앞에 나와 앉으라고 말씀하시였다.

《방조제는 길이가 얼마나 되오?》

그이의 물으심에 박기석이 18키로메터나 된다고 말씀드리였다.

《18키로메터? 장석입힐 곳은 얼마나 되오?》

《4키로메터입니다.》

《그 긴 동뚝이 장마때면 여기저기 터지군 하니 농민들이 얼마나 힘들겠소!》

무엇보다도 농민들이 고생하는것이 마음에 걸리시였다.

《매해 터진 제방을 막는데 수천공수의 로력을 들이고있습니다.》

《그러니까 올해 김매기도 제대로 못했다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소출도 떨어지고…》

구답과 신답에서의 정당수확고를 알아보시였다. 구답에서는 4.1톤, 신답에서는 2.5톤 났다.

《방조제를 튼튼히 쌓아 장마와 밀물피해를 막고 염기를 제거하면 간석지논에서도 수확고가 올라가고 그러면 1만톤을 낼수 있을거요. 장석입히는 공사를 해제낍시다.》

그이께서 시원스럽게 말씀하시였다.

《농민들에게 더는 부담을 주지 말고 국가가 맡아해야 합니다.

농민들은 농사를 지어야 하오. 농장원들이 더는 해안방조제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농사에 집중하여 이 협동농장의 알곡생산량을 높이도록 해야지 그저 무턱대고 1만톤 농장이 되라고 하여서는 안될거요.》

박기석이는 송구스러워하며 《수상님, 고맙습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장석을 입히는데 무엇이 걸리오?》

《돌과 운반 그리고 로력이 걸립니다.》

《돌을 운반하는데 배가 몇척이나 요구되오?》

박기석이 《그것은 잘 모르겠습니다.》하고 솔직하게 말씀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김만금 농업위원회 위원장에게 말씀하시였다.

《기술자들을 파견해서 다 계산하게 하시오. 명년도에 제껴치우도록 합시다.》

《예.》

《기관선 몇척과 목선 만든것을 돌려서 돌을 실어나르도록 합시다. 군대에 주려던 배도 좀 돌리시오.》

수령님께서 시원스럽게 즉시에 풀어주시니 관리위원장은 더 말할것 없고 도당위원장 피창린도 가슴에 걸려 무죽하던것이 금시 내려가는것 같았다. 사실 이런 공사는 도의 힘으로는 힘들었다.

《로력문제인데, 돌쌓는것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이께서는 잠시 생각하시고 말씀을 이으시였다.

《청천강사업소와 군대를 동원시킵시다.》

《그러면 농민들이 농사일에만 관심하게 될것입니다.》

피창린이 좋아했다.

《농민들이야 농사를 지어야지. 창동리농민들이 해마다 고생했는데 국가의 힘으로 장석을 입힙시다. 또 무엇이 걸리오?》

관리위원장이 《갑문이 필요합니다. 갑문이 있어야 장마때에 고이는 물을 뽑을수 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몇개나 필요하오?》

《4개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도내 관개관리소에서 맡아할수 있지 않소?》

피창린을 바라보시였다.

《예,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기술자들을 보내서 장석을 입힐데 대한 기술보고서를 꾸밉시다. 채석장은 어디에다 하고 배는 몇척이 요구되고 자재는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가, 다 계산하게 하시오. 내가 한번 보겠습니다.》

이어 관리위원장에게 물으시였다.

《또 무엇이 걸리오?》

《없습니다.》

《왜 없겠소? 내가 문화주택을 지으라고 했는데 얼마 짓지 못하지 않았는가.》

《예, 사실…》

관리위원장이 말못하는 사정을 수령님께서 헤아려보시였다.

《농사를 지을래, 동뚝과 싸우기도 할래, 자재도 로력도 딸렸겠지.》

《…》

박기석이 머리를 들지 못했다.

《이 농장의 살림집건설도 국가의 자금으로 합시다.》

김일성동지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시였다. 박기석이 아파하는 문제가 또 하나 풀리게 되였다.

《수상님, 정말이지…》

박기석은 목이 메여 더 말을 못했다. 피창린이도 문화주택을 짓지 않는다고 이 농장의 일군들을 비판은 했지만 도와주지 못했다.

《농촌건설대를 보내주고 자재도 해결해줍시다.

설계를 잘해야 하오. 동무들, 보시오.

저 집들의 처마가 왜 저렇게 길게 내려덮혔는지 아오? 여기는 비바람이 세기때문이요. 그러니까 방안이 어둡단말이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주택을 많이 지어서 농민들이 문화적인 생활을 하게 해야 하오. 살림집을 어떤 형식으로 짓는것이 좋겠습니까?》

수행성원들과 농장일군들이 생각을 하고있는데 김만금이 말씀드리였다.

《현재 문화주택으로 짓고있는 단층집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말에 일리가 있었다. 수령님께서 원화마을에 다층문화주택을 지어주신 후 몇년 지나 가보시니 불편한 점이 느껴지시였다.

그래서 농민들에게는 2층집이 잘 맞지 않는다고, 앞으로는 단층집으로 지으라고 말씀하시였었다.

그런데 이 고장은 사정이 달랐다.

지대가 낮고 습기가 많고 비풍이 심했다.

《이러한 사정을 고려해야 하오. 여기는 사정이 다릅니다. 여기 얼마나 파면 물이 나오오?》

관리위원장이 대답을 드리였다.

《2메터 파면 물이 나옵니다.》

《여름에는 불을 때오?》

《불을 때지 않으면 습하고 방이 찹니다. 지난해에 정일룡부수상이 와서 터를 높이고 집을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비바람이 세고 습기가 많으니 사철 불을 때야 하는데 그러자면 석탄불을 피워야 하오. 석탄을 매 집에 운반하는것은 곤난하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민들의 생활에서 불편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하시며 여러모로 따져보시다가 말씀하시였다.

《이 지방에서 주택건설을 장차 예견성있게 해야 하오.

2~3년이 문제가 아니요. 몇십년 후가 문제입니다.

한집을 두칸으로 짓되 한방을 온돌방으로 하면 될것이요. 그리고 부엌은 물론 창고도 하나 큼직하게 지어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문화적인 생활을 할수 있지 않겠소?》하시며 피창린을 보시였다.

《그렇게 하면 우선 아주머니들이 좋아할것입니다.》

《주택건설에서 반드시 장래를 생각해야 하오. 창동리가 1 400세대니까 한부락에 한 500세대씩 세개 부락으로 지읍시다. 부락을 형성할 때 부락둘레에 물홈을 파고 그 흙으로 집터를 돋구어 닭알처럼 두드러지게 하면 집주변의 습기도 없앨수 있고 나무를 심으면 마을의 운치를 돋굴것이요. 마을 네귀에 다리를 놓고 포전으로 나가는 길을 직선으로 뽑아 일나갈 때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고가게 합시다.》

이렇게 세심하게 일러주시고 수령님께서는 문화주택을 단층으로 지을것인가 다층으로 지을것인가 하는데서 의견이 제기되였음으로 그것을 고려하시면서 김만금에게 말씀하시였다.

《농업위원회 위원장동무의 의견에 일리가 있습니다. 농민들은 다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는 좋아할수 있습니다.

여기에 문화주택을 짓는 문제를 연구해봅시다. 한 부락은 지금처럼 단층으로 짓고 한 부락은 다층으로 지어서 어느것이 더 편리한가를 봅시다. 도에서도 좀 생각해보시오.》

평남도당위원장, 농촌경리위원장이 연구해보겠다고 대답을 드리였다.

김일성동지께서는 농장의 기계화정형을 오랜 시간에 걸쳐 료해하시였다. 박기석은 올해에 기계로 모내기를 해보았지만 부족점이 많았다고 말씀드렸다.

그이께서는 아직 익숙되지 않아서 그럴수 있다고 하시면서 그러나 전망적으로는 모내기뿐아니라 가을걷이도 다 기계로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우리 농민들을 힘든 농사일에서 해방시킬수 있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올해 가을에 호당 분배는 얼마나 예견하오?》

《호당 4톤 500키로정도 예견합니다.》

이것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우리의 투쟁목표는 농호당 알곡 3톤, 현금 1000원의 분배를 받도록 하자는것인데 이 농장은 그 수준을 넘어섰다.

이 농장에 농산기사가 몇명 있는가 알아보시였다. 기사 한명에 기수 다섯명이였다.

농장이 크니 기사, 기수가 그쯤되는것이겠지만 기사가 적었다.

《농산기사가 여기에 참가했소?》

《농산기사와 기수 두명이 군에 기술강습갔고 여기에 두명 있는데 그들중에서 한명만이 참가했습니다.》

《누구요?》

새까만 작업복을 가뜬하게 입고 몸매가 탄력있고 균형잡힌 처녀가 일어섰다. 그 처녀에게서는 청춘의 활력이 넘치고있는듯 했다.

《제1작업반 3분조장 박미순이 수상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처녀의 챙챙한 목소리가 울려펴지였다.

《분조장을 하는구만! 어느 학교를 나왔소?》

《평양농업전문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하고 바로 이 농장으로 왔소?》

《평남도농촌경리위원회에서 일하다가 금년초에 진출했습니다.》

뺨이 능금처럼 익은 처녀의 씩씩하면서도 흥분에 떠는 대답을 들으시며 수령님께서는 대단히 만족해하시였다.

신천군에 가셨을 때 만나보시였던 녀성농산기사가 상기되시였다. 그 기사도 자원진출하여 나왔었다.

박미순이라고 하는 처녀가 기특했다. 지금 당의 호소를 받들고 각지에서 로동자, 사무원들이 광범하게 농촌에 진출하고있는데 그중에는 자원진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진출자로 지명되였어도 이핑게 저핑게를 대며 진출자대렬에서 빠지거나 빠지려하는 경향도 나타나고있어 그 사업이 일정하게 난관을 겪고있었다.

《농촌에 가라면 다들 좋아하지 않고 지어 끔찍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처녀동무는 참 기특하오.》

수령님께서는 볼수록 처녀가 대견하여 고향은 어딘가고 물으시였다.

《순안군 원화마을입니다.》

《아, 원화처녀구만!》

수령님께서 무척 반가와하시였다. 여기서 원화리의 처녀를 만나다니!

《내가 전후에 원화협동농장에 많이 다녔는데 그때는 학생이였겠지. 여기서 나와 인연이 깊은 농촌마을의 처녀를 만나니 반갑구만. 부모님들이 다 농민들이겠지?》

혹시 아시는 농장원일수도 있을것이라는 기대를 품으시고 물으시였다.

《예, 원화협동농장 암적에서 태여나 지금껏 그곳에서 농사를 짓고있습니다.》

《원화협동농장의 오랜 농사군가문이면 내가 아버지를 알수도 있겠는데?》

원화협동농장의 많은 농민들과 깊은 인연을 맺고계시는 수령님이시였다.

미순이의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눈이 유난히 반짝이였다.

《수상님, 저의 아버지는 3작업반장을 하는데 수상님을 여러번 만나뵙는 영광을 지닌 농민입니다.》

《그럼 동무아버지가 박영준반장이요?》

《예, 수상님! 금년 4월 수상님의 저택에 찾아가서 수상님께 생신날 인사를 드리고 언감자국수를 잘 대접받았다고 합니다.》

참가자들이 모두 즐겁게 웃어댔다.

수령님께서 미소를 지으시며 생일날에 원화마을 농민들을 만나보았다고, 내가 지금은 그곳에 다니지 않는데도 그들은 나를 여전히 명예농장원으로 등록하고 매해 나에게도 분배몫을 계산해서 저금통장에 올리고있다고, 고마운 농민들이라고 감회깊이 말씀하시였다.

《그런데 원화처녀가 어떻게 고향에 가지 않고 창동리에 와있소?》

그이께서 물으시였다.

미순이가 붉어진 얼굴을 숙이고 머뭇거리자 도당위원장 피창린이 그 사연을 말씀드리였다.

사실은 아버지가 딸에게 학교를 졸업하면 꼭 고향으로 돌아왔으면 했고 딸도 그렇게 할 결심이 확고했는데 고향에 대한 애착의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현시기 사회주의농촌건설의 본보기농장에 진출하는것이 옳겠다고 생각하고 아버지를 설복시켰으며 그래서 열두삼천협동조합에 오게 되였다고 말씀드리였다.

수령님께서 그의 설명을 대단히 흥미있게 들으시며 줄곧 미순이에게 눈길을 주고계시였다.

《똑똑한 동무요. 우리가 농업협동화를 하던 시기에는 원화협동조합에 자주 다녔지만 그후 사회주의농촌건설시기에 들어서서는 여기 숙천과 문덕에 자주 다니오.

숙천군은 농촌기계화의 모범단위요. 이 열두삼천협동농장에만도 수십대의 뜨락또르가 일하고있소.

그러니까 원화처녀가 원화벌을 떠나 창동리에 나타난것은 우리 농촌의 발전력사를 상징한다고 말할수 있소!》

수령님께서 하신 뜻깊은 말씀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곳 농장사람들, 중앙에서 내려온 농업부문일군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미순이는 더 말할것 없다. 자기가 숙천에 진출한것을 그토록 높이 평가해주시니 크나큰 감격이 가슴을 꽉 메우고 눈굽을 뜨겁게 했다.

《동무와 같이 공부한 기술자들이 농촌에 많아야 하오. 동무는 평양에서 농촌에 진출했으니 당의 뜻을 옳게 받들었소.

농업을 공부한 사람이야 농촌에 나와서 농사를 지어야지 도시에 앉아서 입으로 농사 지으면 되겠소?

당중앙은 동무같은 진출자들을 평가하오.》

참가자들이 열렬한 박수를 보내드리였다.

미순이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였다.

나도 신천군의 그 녀기사처럼 농촌에 진출하여 수상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지녔다는 긍지, 무한한 행복감으로 충만되여 심장이 세차게 맥박쳤다.

내 이 영광과 은덕을 어머니조국의 대지에 씨앗으로 뿌려 풍작의 보답으로 가꾸어가리라.

《관리위원장동무, 처녀동무가 분조장을 한다는데 내 생각에는 작업반장이나 작업반기술지도원을 시키는것이 좋을것 같소. 한개 분조는 너무 범위가 좁소.》 수령님께서 의견을 내시였다.

《저희들이 작업반기술지도원을 하라고 권고했었는데 미순동무는 우선 농민들과 같이 땅을 다루며 손부터 익히겠다고 했습니다.》

《호미를 쥐고 밭고랑을 타고 앉아야 땅을 다루는것인가.

공부한 사람은 기술적지도를 통해 땅을 다루어야지, 그렇지 않소? 응, 처녀농산기수동무!》

미순이는 해볕에 하얀 이를 눈부시게 빛내이며 밝게 웃었다.

《수상님 말씀대로 조국의 대지를 풍요한 옥토로 가꾸어가겠습니다.》

《아주 좋아, 원화처녀!》

사람들이 즐겁게 웃었다.

김일성동지께서는 화제를 바꾸시여 박기석이에게 해안방조제공사를 하면 정보당 평균수확고를 얼마나 높일수 있는가고 물으시였다. 5톤은 낼수 있다는 대답을 들으시고 《5톤이면 괜찮지, 해안방조제공사도 해, 문화주택도 지어줘, 끌끌한 로력을 보충해주어, 뜨락또르도 더 주어, 이러면 1만톤을 할수 있겠지?》하시며 미소을 지으시였다.

《수상님, 꼭 1만톤농장으로 되겠습니다.》

그이께서 고개를 끄덕이시고 말씀하시였다.

《이제 중국에서 숙천군에 견학옵니다. 우리의 군경영위원회가 어떤것이고 어떻게 생활력을 나타내고있는지 보게 됩니다.

여기 창동리에도 와볼수 있습니다. 현재 창동리는 호당 분배가 4. 5톤을 내다보는 발전하고 부유한 농장으로 되였습니다.

동무들은 긍지를 가지고 알곡생산을 더 늘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 다른 나라 손님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어느 나라 국가수반은 우리의 현실을 보고 조선은 새 농촌, 새 도시, 새 사람, 새 사상, 새 경제를 가진 새 국가라고 말하였습니다.

사회주의나라들과 새로 독립한 나라들에서 온 손님들은 우리 나라를 대단히 칭찬하고 갔습니다. 그들은 주로 우리 농촌을 보려 합니다. 우리 나라는 도시와 농촌 그 어디서나 창조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고있으며 천리마의 기상이 나래치고있습니다.

그렇다고 자만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농촌에서 할 일이 아직 많습니다. 창동리는 앞선 농장으로서 잘살지만 그렇지 못한 협동농장들이 있습니다. 있어도 많습니다.》

그렇다, 아직도 어렵게 사는 협동농장들이 적지 않다.

전기를 못 보는 마을, 덮을 이불도 없는 세대, 겨울외투를 입지 못한 어린이들, 작업복을 공급받지 못한 농장원들, 땅이 척박한 농장들…

무엇보다도 이처럼 뒤떨어진 협동농장들에 국가적방조와 지원의 손길이 가닿아야 할것이다.

우리가 알곡생산을 늘이고 농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 많은 대책을 취했다. 그러나 아직 우리 국가는 농촌사업의 획기적발전을 위해 더 많은것을 해야 한다. 공업이 농업을 적극 지원해야 하며 도시가 농촌을 도와주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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