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4 장
47
어디선가 따뜻한 미소를 머금고 봄이 사뿐사뿐 다가온다. 향기롭고 상쾌하고 쌀쌀하고 선명하고 명랑하다. 버드나무, 뽀뿌라나무에 물이 올라 푸르르다. 봄빛이 완연하다. 며칠전에 봄비가 수줍은듯 조용히 그러나 오래 내렸다. 밤이 되자 구름이 걷히면서 검푸른 하늘에 별빛이 유난히 반짝인다. 아침이 되자 해빛이 차고넘친다. 푸른 잔디, 푸른 버드나무, 노란 매화꽃, 모든것이 밝고 선명하다. 살구나무꽃, 단벗나무꽃이 활짝 피였다.
동행하던 부관이 조심히 말씀드리였다.
《순안군 원화협동농장에서 온 농민들이 기다리고있다고 합니다.》
《원화마을 농민들이? 그걸 왜 이제야 말하오?》
《실은
《한심하오. 동무들은 내가 원화협동농장 명예농장원이라는것을 모르오? 무슨 부위원장이요, 부수상이요 하는 사람들보다 원화리농민들을 먼저 만나야 한단말이요. 얼른 가서 그들을 여기로 데려오시오.》
부관이 농민들을 데리고 왔다.
저택의 뒤뜰안에
책임부관이 앞에서 그들을 안내하였다.
…1957년 12월 27일이였다. 또다시 원화협동조합을 찾으신
《동무들의 올해 결실도 좋지만 새해 결의도 좋구만.》
이렇게 치하해주시며
리규성이 말씀드리였다.
《회의실을 림시작업장으로 꾸리고 가마니를 짜고있습니다.》
《들어가봅시다.》
《수고들 합니다.》
얼굴이 환한 탁순화를 첫눈에 알아보시였다.
《탁순화동무, 어서 앉아서 일하시오. 전창옥아주머니도 있구만.》
《하루에 가마니를 몇장씩 짭니까?》
《하루에 한조가 18매씩 짭니다.》
《종일 이렇게 앉아서 가마니를 짜는 일도 쉽지 않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가마니짜는 기계를 생산하고있는데 이 조합에도 차례지면 손로동을 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로동자들이 생산에서 혁신을 일으키고있습니다. 로동계급이 쌀을 생산하는 농민들을 위해 뜨락또르도 만들 결의를 다졌습니다.
우리 나라에서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자체로 만들게 되면 다른 나라에서 사오는 부담도 덜고 농기계들을 농촌에 많이 보내주게 됩니다.》
탁순화에게 말씀하시였다.
《순화동무, 공장에서 로동자들이 일하는것을 본적이 있소?》
《없습니다.》 순화가 얼굴을 붉히였다.
《그러니까 로동자들이 어떻게 수고하고있는지, 평양이 어떻게 일떠서고있는지 모르겠구만?》
《그래도 눈으로 직접 보지야 못했겠지?》
순화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
《평양구경시켜줄가?》
그러자 처녀들이《평양구경시켜주십시오.》하고 조르듯 말씀올렸다.
《여기 평양구경해본 민청원들이 있소?》
《없습니다.》
처녀들이 합창하듯 했다.
리규성이 《그러지 않아도 그런 제기를 받고있습니다.》하고 말씀드리였다.
《모두 농사일에 바빠 들에서 살다싶이하느라 언제 평양구경다닐새가 있었겠소.》
《올해 농사를 잘 지은 표창으로 평양구경시켜주겠습니다.》
《야!》처녀들이 환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그런데 구경을 가도 가마니짜던 일을 마무리짓고가야 거뿐할것입니다.》
리규성이 관리위원장답게 실무적인 타산을 했다.
《그래야지.》
《인차 다 짜겠습니다.》
순화가 재빨리 말했다.
《이제 몇매 더 짜면 되오?》
《900매 더 짜면 됩니다.》
관리위원장이 대답을 드리는데 민청원들이 힘차게 응대했다.
《밤낮 짜면 닷새동안에 다할수 있습니다.》
《민청원들이니까 갈아입을 저고리와 치마 한벌쯤이야 장만해두었겠지?》
《장만해두었습니다.》
《입을 기회가 없었습니다.》
젊은 처녀들이 들떠서 어쩔줄 몰라하는데 나이든 녀인들은 서운해하는 얼굴들이였다. 끝내 한 녀인이 참아내지 못했다.
《늙은이들이나 젊은이들이나 다 가셔야지요. 조합원들이 모두 몇명이요?》
《144명입니다.》
《다 갑시다.》
나이 든 녀인들의 얼굴에 웃음이 넘실거리였다.
《뻐스를 타면 돈이 많이 들겠지? 》
《이렇게 합시다. 내가 군대동무들과 토론해서 자동차를 다섯대쯤 보내주겠습니다. 견학하는데는 숱한 사람들이 평양가서 잠을 자기도 불편하거니와 돈이 많이 먹습니다. 그러니까 쌀이나 가지고가서 모란봉식당에 갖다주고 아침에 들어가 구경하고 점심엔 식당에서 먹고 다시 구경하다가 저녁에 차를 타고 집에 와서 편히 쉬고 이튿날 다시 가서 구경하면 구경도 잘하고 돈도 적게 들고 잠도 편히 잘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흘만 하시오.》
《평양에 가서는 천짜는 방직공장 그리고 제사공장을 구경하고 강냉이가 기계에 들어가서 가루가 되여나오고 물엿도 되여나오는 곡산공장을 가보고 력사박물관, 조국해방전쟁기념관, 공업 및 농업전람관도 보고 와서 일을 더 잘하면 후에 황해제철소도 구경하도록 합시다.》
농민들은 너무 좋아서 모두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들은 민주선전실 마당에까지 몰려나와
새해에 잡혀 1월 12일
민주선전실마당에 도착하시였을 때 회의실에서는 당원강습이 진행되고있었다. 승용차소리를 듣고 강습을 집행하던 초급당위원장 임정주와 관리위원장 리규성이 급히 문을 열고 나와 인사를 드리였다.
《토방에 신발을 가득 벗어놓은걸 보니 모임을 하는것 같구만.》
《나도 좀 참가해봅시다.》
임정주가 단 하나뿐인 걸상을 드리였다.
《계몽기에 글배워주던 유물같구만.》
농민들이 폭소를 터뜨리였다. 당원들앞에 군의 일군들과 같이 멍석우에 앉은 리규성이와 임정주는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지만 그들도 한바탕 웃었다.
《연탁은 고물이라 해도 여기서 당정책을 강의하고있으니 좋기만 해.》
《평양구경을 잘했습니까?》
《예!》
한결같은 대답이였다.
《내가 그새 황해도에 출장가있어서 동무들을 맞이하지 못했는데 동무들이 사과를 보내와서 대단히 고맙습니다.》
농민들이 박수를 쳤다.
《자 그럼 평양견학이야기를 들어봅시다. 누가 말해보시오.》
당원들이 눈길을 떨구었다. 평양견학인상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왜 가만들 있소?》
《어려워서 그럽니다. 우리들끼리는 모두 흥분해서 떠들썩했습니다.》
초급당위원장이 말씀드리였다.
《나와 처음 만나는것도 아닌데 어려울게 뭐 있습니까? 누구든지 좋으니 말해보시오.》
초급당위원장이 뒤를 돌아보며 그중 활달하고 언변이 좋은 탁순화를 짚었다.
《탁순화동무, 일어서오.》
그래도 탁순화가 우물거리자
드디여 순화가 용기를 내여 일어섰다. 몸매 늘씬한 탁순화는 시집간 후에 더 활짝 피고 싱싱해진것 같았다.
《음, 말해보시오.》
《저희들은
《거기서 천을 짜는것을 보고 느낌점을 다 말할수는 없습니다. 방직공장에서 뽀쁘링천을 짜고있었는데 척척 무늬가 찍혀 뒤로 꽝꽝 쏟아져나오고있었습니다. 그리구 뒤에는 또 천이 한메터씩 척척 개여져서 필로 되여나왔습니다.》
순화는 자기가 보고느낀 감상을 어떻게 생동하게 표현해야 할지 안타까운듯 손세를 써서 보충하였다.
《저는 이때까지 상점에 나오는 천을 사다 옷을 해입으면서도 몰랐습니다. 이번 견학을 하고서야 천이 어떻게 생산되며 우리 나라에도 큰 방직공장이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가보니까 정말 농촌에서 우리가 면화를 많이 생산하여 공장에 보내주어야 하겠구나, 그래야 더 많은 천을 짤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상입니다.》
《잘 이야기했습니다.》
《염색직장에 가보았소?》
순화가 다시 일어섰다.
《그곳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아, 염색하는 모습을 보았어야 순화동무가 더 감탄했을터인데!…》
즐거운 웃음이 터져올라 회의장이 흔들리는것 같았다. 탁순화는 얼굴을 활딱 붉히며 앉아서 김덕보할아버지의 며느리등뒤에 숨었다.
《결의가 좋소. 그럼 이번에는 누가 또 이야기하겠소?》
한 청년이 용감하게 일어섰다.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주 씩씩하구만. 좋소 이야기하오.》
청년은 주먹을 입에 대고 기침을 한번 하고나서 말을 뗐다.
《방직공장을 견학하고 느낀점은 탁순화동무와 같습니다.
저는 곡산공장에 갔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거기서는 강냉이를 기계에 넣으면 과자가 되여나오고 물엿이 되여나오고있었습니다. 저는 강냉이가 밭곡식의 왕이라는것을 말로만 알고있었습니다. 알았다면 강냉이로 과자나 빵을 만드는것으로 알았습니다. 공장에 들어가서 공업의 원료가 된다는것을 몰랐습니다.》
흥분한 청년은 오른쪽으로 머리를 활 쓸어넘기였다.
《그래서 강냉이 한포기에 퇴비를 한키로그람씩 넣어서 더 많이 생산하여 공장에 보내줄것을 결의합니다.》
흥분이 고조에 달한 청년은 앉을 궁리를 하지 않고 선채로 목소리를 더 높이였다.
《저는 평양에서 로동자동무들이 건설해놓은것을 보고 농민들이 일을 더 많이 하는줄로만 알았는데 로동자동무들이 농민들보다 몇배나 더 많이 일하고있다는것을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로동자들 못지 않게 농산물생산을 더 많이 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의 감상토론은 《더 많이》라는 표현을 반복한 결함을 내놓고는 흠잡을데가 없이 구성이 째이고 내용이 풍부했으며 결의가 좋았다.
《보시오.》
《견학을 시켜주었더니 공장들과 수도건설장들을 보고 자기들만 일을 많이 한다고 생각했던것이 잘못되였다고 이야기하고있지 않소. 견학과정에 많은것을 보고 느끼고 로동자들처럼 일하겠다고 결의를 다지고있습니다. 얼마나 좋은 결의요.》
《평양견학을 자주 조직하겠습니다.》
군당위원장이 말씀올리였다.
《오늘 감상발표모임을 한셈인데 아주 내용있게 잘되였습니다.》
《실속이 있었습니다. 원화협동조합에 똑똑한 당원들이 많습니다. 당조직이 사업을 잘했다는것을 말해줍니다. 나는 동무들의 결의가 반드시 실천에 옮겨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오늘 여기서 당원강습을 하고있는데 그것도 구경은 농사를 잘 짓자는데 귀착됩니다.
올해는 5개년계획의 두번째 해입니다. 우리는 첫해인 작년에 전해에 비해 근 1.5배의 장성을 이룩하였습니다. 인민경제발전 5개년계획의 지표가 지내 높다느니 어떻다느니 하고 시비하던자들이 다 쑥 들어갔고 우리한테 주기로 한 강재에서 2만톤을 잘라 훼방을 놀았던 큰 나라도 우리 로동계급이 궐기하여 부족되는 강재를 자체로 해결하고 계획을 넘쳐 수행한것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대국주의자들도 종파사대주의자들도 다 손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조금도 자만하지 말고 계속혁신, 계속전진하여야 한다. 농업부문에서는 농업협동화를 완성하고 알곡생산을 높은 수준에 올려세워야 한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다. 그 나날에 만나보시고 낯을 익히였던 농민들이
농민들은 새 옷들을 깨끗히 입고있었지만 그것에 대조되여 옹이 박히고 흙물이 밴 손들과 볕에 타고 들바람에 튼 얼굴들이 더 거칠고 컴컴해보이였다.
조국의 대지를 가꾸는 거칠고 투박한 농민들이 어려워하며 어쩔바를 몰라하는 그 소박한 모습이 눈물겹도록 사랑스러우시였다.
리규성관리위원장, 전쟁시기 전선에 나가 싸우며 미국놈들도 많이 소멸했고 그 과정에 심한 부상도 입었다.
전후 제대되여 오니 아버지는 모범농민이라고 적들이 학살했고 어머니는 미국놈비행기의 야만적인 폭격으로 석암저수지가 파괴되면서 물난리를 겪을 때 집과 함께 떠내려갔다.
그를 조합에서 따뜻히 보살펴주고 색시까지 얻어주었다. 그는 김덕준의 후임으로 관리위원장이 되였다.
김덕준아바이는 원화마을의 로세대, 실농군이며 토지개혁후 애국미를 많이 나라에 바친 애국농민이다.
전쟁시기 마을의 첫 세포위원장이 놈들에게 학살당한후 세포위원장사업을 이어받아 했으며 전후 원화협동조합의 첫 관리위원장으로 선거되였다. 지금도 년로한 몸이지만 집에 들어가 앉아있지 않고 리규성을 도와 일하고있다. 농사일에 밝고 근면하고 유순하며 덕이 있어 사람들이 따른다.
농산3작업반장 박영준이는 농사를 자기식으로 지으려 하는 고집이 세고 성실하고 책임적인 실농군이다.
농산1작업반장 전창옥이는 원화리의 첫 세포위원장의 안해이며 전시에 소겨리, 품앗이반을 조직하는데 앞장섰고 녀성보잡이로 위훈을 떨쳤다.
《영준반장동무, 군경영위원회가 나온 다음 어떻소? 달라진것이 있소?》
《그전에는 군인민위원회 지도원들이 내려와서는 저보고 날자를 지키지 않는다고 〈령감은 아직 개인농때 버릇을 못 뗐단 말이요.〉하고 꽥꽥 소리쳤는데 지금은 군경영위원회 지도원들이 제가 내놓은 주장을 긍정하는지 부정하는지 그저 싱글싱글 웃기만 합니다.》
《실농군의 창발성을 발휘하도록 하는것입니다.》
김덕준이 말씀드리였다.
부관이 원화협동농장 농민들이
《고맙소, 내 그 찹쌀로 떡을 치고 오이절임을 찬으로 해서 잘 먹겠소. 덕준아바이, 고맙습니다.》
《아니올시다.
《나는 별로 도와준게 없는데 무슨 분배몫이요?》
《아니올시다.
리규성이 벌써 저금통장을 꺼내들고있다가 드리였다.
《보아주십시오.》
《이 많은 돈이 내가 번것이요? 허!… 분배몫을 어떻게 계산했소?》
《우리 농장에서 그해에 제일 많이 분배받은 농장원수준에 맞추었습니다.》
리규성이 대답드리였다.
《앞으로도 계속 나한테 분배를 주겠으면 농장의 평균수준에서 하시오. 그리고 이 저축금으로는 뜨락또르와 자동차를 사서 농장에서 쓰도록 하시오.》
또다시
《그리고 가능하면 돈을 좀 남겼다가 부모들을 다 잃은 고아들에게 속옷과 신발을 사주오. 학생복은 다 타입었을테니까…》
남편을 원쑤놈들에게 잃고 세 자식을 힘들게 키워온 전창옥이 손수건으로 눈물을 씻었다.
《진수성찬은 없소.》
《이것은 언감자국수인데 내가 산에서 싸울 때 유격구의 어머니들이 눌러주었댔소. 그때 너무 맛나게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나는 이 언감자국수를 특식으로 먹소. 자, 듭시다.》
《천천히 많이 드시오.》
《예, 많이 들겠습니다. 국수맛이 별맛입니다.》
《한그릇씩 더 잡수시오.》
《예, 더 먹겠습니다.》
박영준이 서슴없이 대답드리는데 리규성이는 버릇없이 그런다고 좋지 않게 그를 흘끔 쏘아보았다.
《농장에서 축적은 얼마나 했소?》
리규성이에게 물으시였다. 그의 대답을 들으시고 공동축적금과 사회문화기금, 종자를 내놓고 국가에 농업현물세와 기타 사용료는 얼마나 냈는가고 다시 물으시였다.
리규성이 뜨락또르작업료, 관개사용료, 기본건설비(살림집, 탈곡장, 창고 등의 건설비), 비료값을 얼마씩 물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러니 농장들에서 쌀을 많이 생산하고 돈을 많이 벌어도 농장원들에게 돌아가는 분배몫이 적어질수밖에 있는가,
《지난해에 농장이 번 돈에서 분배를 얼마큼 했소?》
《절반정도 분배했습니다.》
《우리 국가가 아직 농촌에 지나친 부담을 주고있소.》
《개인들도 마찬가지요. 누구나 농촌에 갔다가 올 때면 쌀이든 콩이든 하여튼 무엇이든 들고오지 빈손으로 오지 않소. 이것이 다 농촌을 허술하게 보는 관점이요. 농민들을 업신여긴단 말이요.》
《이제부터는 도시사람들이 농촌에 갈 때 무엇이든 들고나가게 해야 하오. 우리 국가가 농촌을 지원하고 방조하는 사업을 정책화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