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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23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10


휴식날 저녁 송영숙은 차수정의 집에 전화를 걸었다.

수정은 반가와서 어쩔줄 몰라하더니 곧 빈정거렸다.

《기사장동지가 오늘은 웬일이시나요? 무슨 일루 전화까지…》

송영숙은 이죽거리는 수정의 얼굴이 떠올라 빙긋 웃었다.

《오늘이 휴식날인걸 잊었니? 그래 너의 집에 놀러 가려구 해, 우리 경아를 데리구.》

그는 감질이 나서 머루눈을 반짝이며 엉뎅이를 달싹거리는 딸애의 머리를 한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오겠니? 정말?》

수정은 곱씹어묻더니 그만에야 빨리 오라고 숨가쁘게 독촉했다. 항상 인정이 그리워 몸살을 앓는 수정이였다.

송수화기를 통해 차수정의 목소리를 들은 백상익은 빙긋빙긋 웃었다.

그러나 문춘실은 혀를 찼다.

《에그! 가엾어라! 얼매 적적하구 외로울가, 젊은 나이에…》

수정이네 집에 가져갈 남새빵을 해놓은 그는 무엇인가 더 보낼것이 없나 해서 부엌을 오락가락했다.

혼자 있으면 입맛이 더 없다면서 풋마늘을 넣고 담근 멸치식혜와 깨잎 절인것을 그릇에 담으며 문춘실은 또다시 혀를 찼다.

송영숙은 어머니가 꾸려주는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에게 수정이네 집에서 하루밤 자겠다고 말한 다음 딸애와 함께 집을 나섰다.

큰길에 나서자 경아는 머리에 꽃은 딸기방울을 흔들며 깡충깡충 뛰였다. 이따금 탁아소에 찾아와 안아주기도 하고 간식이랑 놀이감이랑 사다주는 수정을 큰엄마라고 부르며 따르는 그 애는 너무 좋아 춤이라도 출듯 했다.

송영숙은 딸애의 걸음에 보조를 맞추며 천천히 걸었다.

문득 수정이 하던 말이 생각났다.

《임신했다지? 부럽구나.… 참! 이번에 아이를 낳으면 경아는 내가 데려다 키우겠어, 내 자식처럼… 반대없지?》

(오죽이나 자식이 그리웠으면…)

생각할수록 차수정이 측은하기 그지없었다.

송영숙은 동창생으로서가 아니라 녀성으로서 오늘의 수정이를 누구보다 깊이 리해하였다. 그자신이 처녀시절 실련의 쓰라림을 묵새기며 모질게 마음을 도사려먹고 일생 처녀로 살리라 다짐하지 않았던가.

그때 송영숙에게는 웃음도 노래도 없었다. 그는 녀성이기 전에 말하는 기계처럼 사업과 연구에만 몰두했었다.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룬 다음에야 키워주고 내세워준 어머니조국에 대한 보답의 마음과 우리의 모든것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되찾고 열심히 일하고 더 열심히 연구를 하였었다.

송영숙은 차수정의 이지러진 마음도 이 땅에 대한 불타는 사랑과 정으로 가득채워 그가 사회와 가정을 위해 녀성으로서, 공민으로서 자기의 의무를 다하도록 이끌어주리라 마음다졌다.

그들이 마당에 들어서자 수정은 춤추듯이 달려나와 경아를 얼싸안았다.

《아유! 우리 경아 왔구나! 요걸 그저…》

수정은 경아를 껴안고 그냥 볼을 부볐다.

송영숙은 그에게 들고온 꾸레미를 안겨주었다.

《오늘은 대학시절을 추억하면서 너와 함께 자려구 왔어. 자! 이건 네가 좋아하는 남새빵! 이거면 아마 우리 셋은 배가 터질지두 몰라.》

송영숙의 말에 수정은 까르르- 웃었다.

아직도 따끈따끈한 남새빵과 반찬감들을 보고서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들은 한순간에 꿈많고 웃음많고 노래도 많았던 녀학생시절로 되돌아갔다.

잠시후 그들은 밥상에 마주앉았다.

문득 수정이 깔끔해진 눈길을 쳐들었다.

《솔직히 말해봐! 너두 당비서동지와 방인화부인님께서 파견한 가정문제해결의 특사는 아닐테지? 응?!》

그는 비웃으며 빈정거렸다. 그의 입귀는 보기싫게 실그러졌다.

송영숙은 그만 기가 차서 흘겨보았다.

《이 독설쟁이! 만약 그렇다면 어쩔셈이야?》

그는 눈살이 꼿꼿해서 대들었다.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물었다.

(너 어쩌면 이다지도 이지러졌니? 어제날의 그 모습은 어디 가고… 입가의 고운 꽃잎은 또 어떡하구…)

표정이 풍부한 그의 크고 그윽한 눈가에 씌여진 마음속 글줄을 읽은 차수정은 그제야 빙긋 웃었다. 예전대로 입가에 꽃잎이 곱게 피여났다.

그들은 다시 처녀시절로 돌아갔다.

뭉게뭉게 피여오르는 구름우에 오른듯 기분이 들뜬 그들은 즐거웠던 대학시절과 소조생활의 나날들을 추억하였다.

눈앞에는 지식의 바다를 종횡무진하면서 향학열로 가슴불태우던 그시절이 어제런듯 떠올랐다. 마음은 하냥 즐거워졌다.

대학도서실의 쌍둥이열성독자로 나란히 사진찍던 일, 시험공부를 위해 깊은 밤 기숙사복도에 나와 공식과 단어들을 암송하던 일, 줄거웠던 답사와 견학의 나날들…

어느해인가 묘향산답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남새빵을 사려고 몰래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가 뻐스를 놓칠번 했던 일을 끄집어낸 수정이가 먼저 웃음보따리를 터쳤다.

둘이 함께 어디 갔다가 늦었는가고 묻는 제대군인소대장의 물음에 차마 식당이라고 말할수 없어서 상점에 들렸다온다고 혀아래소리를 했던 그들이였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상점에서 남새빵을 팔던가고 묻는 바람에 그들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항상 꺼리낌없이 신랄하게 대꾸하던 수정이조차 꿀먹은 벙어리가 되였던 그때 일을 돌이켜보며 두 녀인은 배를 그러안고 대굴대굴 굴었다.

《그때가 어제같은데 우리도 이젠 중년나이가 되였구나.…》

수정이 문득 쓸쓸한 어조로 말하면서 시무룩이 웃었다.

송영숙은 말없이 잠자는 딸애의 베개를 고쳐 베여주었다. 자기에게 관심을 돌리지 않고 저희들끼리만 얘기한다고 킁킁거리던 아이는 한켠에 누워 꿈나라로 간지 오래였다.

차수정은 창가림을 드리운 창문쪽을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넌 후회 없겠지? 나에 비하면야 넌 얼마나 높이 발전했니?》

《발전?》 송영숙이 조용히 되물었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에도 수정은 지금처럼 발전에 대하여 말했었다.

송영숙은 따뜻한 우정이 담겨진 목소리로 말했다.

《수정아! 넌 처음 나를 만났을 때도 발전했다구 말했지?… 난 발전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해. 그건 직위의 높이에 있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부강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달려있다구 말이야. 이게 바로 우리 시대 인간들의 진정한 발전이 아닐가?》

《?…》

수정은 얼핏 눈길을 들었다. 그러나 인츰 다시 떨구었다.

그는 송영숙의 말을 곱씹어 새겨보았다.

(직위의 높이에 있는것이 아니라 나라의 부강발전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에 달려있다.…)

되새겨볼수록 큰 의미가 담겨진 말이였다. 그리고 무엇인가 큰 사명감을 안겨주는 말이기도 하였다.

수정의 마음은 점차 돌덩이를 안은듯 무거워졌다. 자기가 지금껏 해놓은 일이 너무도 없다는 자책감이 들어서였다.

출판물보급원은 과학자, 기술자들의 친근한 방조자라는 생각으로 지금껏 자신을 위안하고 정당화해왔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머리를 쳤다.

문득 리병우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기가 그토록 멸시하면서 주대없는 인간이라고 비웃어준 사람…

하지만 그도 자기의 지혜와 열정을 바쳐가며 기술자의 본분을 다하려고 애쓰고있다. 그것이 비록 크건작건 공장의 발전과 나라의 가금업발전을 위해 인간적인 불행을 이겨내고있는것이다. 그런데 나는…

수정의 얼굴에 씌여진 마음속 생각을 읽은듯 송영숙은 눈가에 웃음을 담으며 말하였다.

《수정아! 난 너두 발전하기 바란다. 너야 어릴 때부터 뛰여난 수재가 아니였니? 그리구 좋은 안해가 되구 또 살뜰한 엄마가 되였으면 해.》

그의 목소리엔 한없는 진정이 담겨져있었다.

하지만 수정은 또다시 발끈하여 도전적인 눈길을 쳐들었다.

《그래 넌 내가 어쨌으면 좋겠니? 아마 그 잘나구 멋있는 사람과 다시 살았으면 할테지?》

그는 입귀를 실그러뜨리며 랭소를 지었다. 방금전까지 정답고 허심하던 그가 순간에 거만해지고 야비해졌다. 또다시 이지러진 성격이 되살아난것이다.

송영숙은 심리적안정마저 잃어가는 수정의 얼굴을 아픈 마음으로 쳐다보았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크게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인간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두 그렇구 또 녀성으로서 행복을 찾기 위해서두 그 수의사와 다시 가정을 합쳐야 한다구 생각해.》

그 말에 수정은 가볍게 코웃음을 치며 밉살스런 표정을 그렸다.

그러거나말거나 송영숙은 수정의 마음속 금선을 살뜰히 튕겨보았다.

《그래두 너 수의사와 1년동안 함께 산 정이야 있겠지? 응?》

《정? 무슨 정?》

차수정이 차겁게 되물었다. 하더니 다시 코방귀를 뀌였다.

《잘난 제 딸 눈치보느라 색시한테 헛손질 한번 못하는 위인인데두?》

수정은 려염집아낙네처럼 상스럽게 되물었다.

자기의 처지가 이 지경으로 굴러떨어진것이 분하고 화가 난 모양이였다. 이윽고 수정은 즐겁지 못했던 부부생활의 세부적인것까지 시시콜콜 털어놓기 시작하였다.

송영숙은 그만 아연하여 입을 딱 벌렸다.

지나치리만큼 솔직한데다가 꺼리낌없이 말하군하는 그에게서 미적지근한 리병우와의 부부생활에 대한 말을 듣는 그의 얼굴은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도리여 제켠에서 면구스럽고 민망스러워 차마 눈길을 들지 못했다. 그가 리병우에 대한 험담을 제발 그만두기 바라며 괜히 잠자는 딸애의 머리만 쓰다듬었다.

그러나 수정은 내친김에 첫 남편과 대비하면서 리병우에 대한 불만을 터놓았다.

송영숙은 더이상 그의 말을 듣고있을수 없었다.

《수정아!》

그는 수정의 말허리를 뚝 꺾었다. 그리고 자기의 생각을 터놓았다.

《나도 너의 그 남편이 훌륭한 사람이였다는걸 잘 알아.

얼음구멍에 빠진 아이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는 그 한가지 사실만 보아도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니? 그런 사람을 오늘까지 잊지 못해 추억하는 너도 그 사람 못지 않다구 봐.

하지만 난… 수의사 역시 훌륭한 사람이라구 생각해. 겉보기엔 수수하고 다정한 말 한마디 할줄 모르지만 그 사람에겐 우리의것을 사랑하구 공장을 위해 자기자신을 깡그리 다 바치려는 보석같이 아름답구 또 귀중한 마음이 간직되여있더구나. 그러니…》

《그러니… 너라면 용서하겠다는거지?》

차수정이 깔끔한 눈빛으로 말꼬리를 홱 나꾸어챘다.

송영숙은 진정을 담아 머리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넌 정의성동무도 용서했니?》

수정은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내쏘았다.

순간 송영숙은 급소를 찔리운듯 상체를 흠칫 떨었다. 수정은 역시 상대방의 약점과 요진통을 면바로 겨냥할줄 아는 명사수였다.

송영숙의 얼굴은 삽시에 화끈 달아올랐다. 그러나 인츰 자기를 가다듬고 수정에게 말했다.

《난 그를… 용서하지 않았어. 다만 공장의 종업원으로만 생각할뿐이야.》

그러나 수정은 송영숙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를 환히 꿰뚫고있었다.

그의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하지만 넌 자주 그를 찾아가 힘자라는껏 도와주더구나!…》

수정의 깔끔한 눈빛에서 그 속대사를 읽은 송영숙은 호- 한숨을 내쉬였다. 어떻게 내 마음을 헤쳐보일가?… 이윽고 그는 지금껏 남편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터놓지 않았던 자기의 생각을 그앞에 헤쳐보이리라 결심했다.

《수정아! 너두 정동무가 첨가제연구를 하고있는줄 알지?》

송영숙은 조용히 물었다.

그리고 자기가 닭공장에서부터 시작한 소금밭이끼에 의한 국산화된 새로운 첨가제연구가 우연한 일치로 정의성의것과 거의 같다는것을 말했다. 얼마전부터는 자기의것을 완전히 포기하고 지금껏 연구했던 자료들을 모두 정의성에게 넘겨주었다는것을 숨기지 않고 터놓았다.

《첨가제의 항생물질이나 일부 미량성분들은 의논하거나 튕겨주는 방법으로 넘겨주었단다.…》

송영숙의 말에 차수정은 처음 불판에라도 올라선듯 화들짝 놀랐다.

다음에는 잘 믿어지지 않는지 머리를 기웃거렸다.

송영숙은 소금밭이끼라는 우연한 일치는 고려식물성성장촉진제를 연구하는 과정에 그것의 리용가치에 대하여 알게 된것이고 정의성은 문헌자료를 통하여 그 연구를 시작했다고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그러니 의성동문… 네가 자기의것을 완전히 포기하구 자료들을 몽땅 넘겨주었다는걸 정말 모르구있니?》

어지간히 흥분된 수정은 가쁜숨을 몰아쉬며 다우쳐물었다.

송영숙이 머리를 끄덕이자 수정은 곧 랑패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경아 아버진 이런걸 아예 모르겠지?》

그는 자못 심중하게 물었다.

호기심이 불꽃튕기는 그 눈길앞에서 송영숙은 빙긋이 웃었다.

《다 알아, 정동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두… 그리구 기사장으로서 그를 힘껏 도와주라고 하지 않겠니?

조국의 부강발전속에 개인의 발전도 있다면서 말이야.》

(조국의 부강발전속에 개인의 발전도 있다.…)

수정은 마음속으로 그 말을 곱씹었다.

그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였다. 수정에게는 바로 그 말속에 송영숙이라는 인간총체가 있고 그것으로 그의 삶이 추동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송영숙과 그의 남편이 한없이 크고 아득히 높아보였다. 반면에 자기는 티끌처럼 보잘것 없고 부끄러울만큼 초췌하지 않은가.

《너 남편을 사랑하니?》

이윽고 수정은 조용히 물었다.

송영숙의 얼굴에 행복의 미소가 꽃처럼 곱게 피여났다.

그는 머리를 끄덕였다.

《난 그이 없인 하루도 못살것 같애.》

이어 송영숙은 친근한 우정을 안고 그를 건너다보았다.

《수정아! 난 네 마음도 이 땅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길 바란다. 지금 우리 나라는 얼마나 강해졌니? 그러나 아직 생활은 어렵구 또 모든것이 부족해. 우리를 고립시키구 압살하려는 놈들의 책동은 더 심해지구… 이런 때 우리 지식인들이 과학기술의 힘으로 이 난관을 앞장에서 뚫고나가야 하지 않겠니? 그 길에서 값높은 사랑도 행복도 찾으면서 말이야.》

수정의 심장에 호소하는 송영숙의 목소리는 따뜻하면서도 절절했다.

그러나 수정의 이지러진 성격이 또다시 머리를 쳐들었다.

상대방을 주눅들게 하는 비웃음이 그의 입귀에서 흘러나왔다.

《기사장동지! 당신은 나에게 그 무슨 정치강연을 하시려나요?》

송영숙은 그만 아연실색해지고말았다. 오! 지독한 악습이여!…

하지만 자기의 태도를 흐트리지 않았다.

《아니! 난 기사장이 아니라 공민적인 량심으로 말하는거야!》

송영숙의 근엄한 태도앞에서 수정은 인츰 부끄러움을 느끼였다. 그리고 본심과는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군 하는 자기자신에게 화를 내였다.

(내가 왜 자꾸만 이럴가.… 내가 이제는 따뜻한 진정도 느끼지 못하고 순결한 마음들을 우롱할만큼 야비해졌는가?…)

눈길을 떨군 그의 얼굴은 자책으로 붉어졌다. 눈에서는 금시라도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질것 같았다. 그는 소리내여 울고싶었다.

실컷 울기라도 하면 자기의 이름처럼 몸도 마음도 수정같이 맑아지고 또 꽃비단처럼 아름답고 부드러워질것 같았다.

누구보다 아름다와지기를 바랐고 누구보다 따뜻한 인정을 바랐건만 독신녀성의 자존심으로 지금껏 남모르는 괴로움을 비웃음과 오연한 태도속에 가리우고 살아온 그가 아니였던가.

수정의 마음을 속속들이 다 알고있는 송영숙은 정을 담아 그의 손을 따뜻이 감싸쥐였다.

《수정아! 우리 함께 개인적인 모든걸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해 다 바치자. 응? 그 길에서 녀성의 사랑도 행복도 찾으면서 말이야. 난 네가 내 마음을 다 리해하리라고 믿어.》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변함없이 뜨겁고 절절하였다. 그리고 거역할수 없는 사랑의 힘이 넘치도록 흐르고있었다.

수정은 말이 없었다. 대답대신 송영숙의 손만 꼭 쥐였다.

얼마후 수정은 눈길을 들었다.

《영숙아! 내 언제부터 너에게 사죄하고싶었는데… 난 사실 너와 의성동무에게 죄를 지었어.》

《죄를? 그게 뭔데?》

깊은 자책과 속죄가 담겨진 수정의 목소리와 눈빛앞에서 송영숙은 의아해졌다.

《물론 넌 가정생활에서 더 바랄것없이 행복할거야.

하지만 난 이따금 너와 의성동무를 볼 때마다 죄의식을 느끼군 한단다. 두사람이 결합되지 못한것이 나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에… 왜냐면 내가 그때 의성동무에게 거짓말을 했기때문이야.》

《?!》

송영숙의 눈가에서 의혹과 호기심이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수정은 그의 눈길을 외면하면서 자초지종을 말했다.

《네가 닭공장 지배인으로 금방 임명되였을 때였어. 그때 난 출판물관리국에 출장갔다가 길가에서 우연히 의성동물 만났단다.

그 동문 오래간만이라면서 무척 반가워하더구나.

하지만 난 그 동무가 너를 배반했다는걸 알구 너대신 복수하려구 생각했단다.

그래서 네가 처녀로 있다는걸 뻔히 알면서두 멋쟁이미남자와 결혼을 했다구 거짓말을 했구나. 결혼을 한 다음엔 남편이 어느 중앙기관으로 소환될거라구 하늘만큼 과장해서 말이야. 그때 내가 거짓말을 안했더라면 …》

수정은 깊은 리해와 용서를 바라는 마음으로 말꼬리를 흐렸다.

그를 보며 송영숙은 빙그레 웃었다.

《수정아! 그런 생각 말아. 네가 그러지 않았어도 그 동문 나와 운명을 같이할 사람이 아니였어.…

사실 그때엔 나두 괴로움에 잠 못 들면서 그를 무섭게 저주했단다.

이 공장에 와서 의성동물 다시 만났을 때에도 증오심이 되살아나더구나.

하지만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어. 물론 우리 경아 아버지의 충고도 있었지만 그날의 괴로움이 나를 더욱더 분발하게 했구…》

한동안 그들은 자기 생각에 잠겨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밤은 소리없이 깊어가고있었다.

어느덧 그들은 대학시절처럼 한이불속에 나란히 누워 조용조용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추억은 그 무엇을 가져다주는가

즐거운 봄날인가 비오는 가을인가

기쁨과 슬픔이 엇갈려있어도

추억은 아름다운 내 생의 메아리


그들의 눈앞에는 불밝은 배움의 창가에서 지식의 탑을 쌓아가던 학창시절과 생산실습의 나날들이 어제런듯 흘러갔다.

인생의 봄언덕에서 끝없는 희망을 읆조리던 못 잊을 그 나날들이 떠올라 송영숙의 눈앞은 뿌옇게 흐려왔다.

차수정은 흰눈같이 순결하고 아름다왔던 그 시절과 때묻어 얼룩지고 이지러진 오늘의 못난 자기의 모습을 통분하고 아픈 마음으로 그려보았다.

그의 노래는 이따금 끊어지기도 하였지만 흐느끼면서도 그냥그냥 노래를 불렀다.


노래는 또다시 지을수 있어도

추억은 다시 못 짓는 내 심장의 메아리

오늘은 어제를 즐겁게 추억하고

래일은 오늘을 기쁘게 추억하리

흘러간 나날은 다시 오지 않거니

오늘의 한걸음을 값있게 새겨가리


꿈많고 웃음많던 그 시절과 흘러가고흘러갈 래일을 그려보며 그들은 오래도록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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