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5


요즈음 서정관의 마음속에서는 기사장에 대한 불만이 터질듯 팽팽히 차올랐다.

수입첨가제보다 더 좋은 첨가제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새 설비를 들여온다, 건설을 벌린다 하면서 못 견디게 분주탕을 피우는 기사장이였다.

(아무러면 수입첨가제가 수입첨가제지 그보다 더 좋은걸 어떻게 만들어낸다구 저 모양인지.…)

서정관은 매부인 정의성과 맞바람을 일구며 뛰여다니는 기사장을 아니꼽게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며칠전 공장 행정참모부회의에서는 기술준비소옆에 새로 미량첨가제생산실을 짓는 문제가 토의되였다.

앞으로 첨가제연구가 완성되여 본격적인 생산을 진행하자면 필요한 설비들을 갖춘 큰 작업장이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새 설비들도 가져왔구 또 필요한 설비들을 더 마련해주자고 해도 첨가제생산실을 크게 짓는건 응당한 일입니다. 앞으로 첨가제연구가 성공하면 하루에 수백키로씩 생산해야 할텐데 잘 짓자요.》

송영숙기사장은 그날 과학기술의 중요성에 대하여 말하면서 기술자들의 사업조건을 잘 보장해주자고 강조하였다.

회의에서는 생산부기사장 서정관이 첨가제생산실건설을 직접 맡아할데 대하여 토론되였다.

설비부기사장은 새 설비들도 더 마련해야 하고 알깨우기직장의 랭온풍기제작때문에 건설까지 맡아할 시간이 없다는것이다.

서정관은 분담된 사업에 대하여 헌헌히 접수하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기사장의 처사를 괘씸하게 생각했다.

(사업상한계를 따진다면 생산부기사장은 생산과 기술을 담당하고 설비나 동력문제 그리고 건설과 건물관리는 설비부기사장의 몫이다.

첨가제연구가 기술문제이고 생산과 관련된 사업이기는 해도 건설이야 어디까지나 건설이 아닌가.…)

그러나 울며 겨자먹기였다.

그는 되려 선진적인 태도로 의젓하게 말했다.

《모두 공장을 위한 일인데 새 세기에 맞게 훌륭히 지어줍시다.》

다음날 서정관은 차오르는 불만을 애써 누르며 기사장과 함께 기술준비소로 갔다.

첨가제생산실을 새로 크게 건설한다는 말을 듣고 고지식한 유상훈박사는 자책에 겨운 표정을 지었다.

《우리 기술준비소가 많은 일을 해야 할텐데… 하지만 우리도 그렇고 정기사동문 꼭 좋은 첨가제를 만들겁니다.》

소장의 말을 서정관이 약삭바르게 제꺽 받았다.

《사실 정기사야 은인을 만났지요. 호화주택같은 생산실에 새 설비까지 갖춰주면서 떠밀어주니 그 사람에게야 호랑이 날개달아준격이 아닙니까?》

기사장과 소장의 마음이 다같이 흡족해지도록 그는 아주 호걸스럽게 껄껄 소리내여 웃었다. 금빛의 송곳이가 오래간만에 바깔구경을 하며 반짝 빛났다. 그러나 무척 억지스러운 웃음이여서 인츰 사라져버렸다.

서정관은 은근히 두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지금껏 기사장의 말에 자못 황송한 표정을 짓고있던 유상훈박사도 그의 너스레는 들은척 않고 딴전을 부렸다. 기사장도 서정관의 로골적인 아첨이 불쾌한지 건설부지를 앞서서 돌아보면서 자재량을 타산하느라 입속말로 중얼거릴뿐이였다.

서정관은 메사했지만 내친김에 박사의 호감을 사보려고 한번 더 옆구리를 찔렀다.

《요즘 기술준비소에 좋은 일만 생기니 소장동진 더 젊어지는것 같습니다.》

《그런가?》

기사장의 뒤를 따르던 유상훈박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그럼요.》

서정관은 제꺽 머리를 끄떡이며 재빨리 뒤말을 이었다.

《젊어진다는게 얼마나 좋습니까. 앞으로도 건강해서 더 많은 학위학직소유자들과 기술자들을 키워내야지요.》

다음순간 서정관은 자기의 혀를 깨물었다.

(아뿔싸!)

그는 눈을 꼭 감았다. 어색하고 따분한 자리를 모면하기 위해 부러 소장을 춰올리며 화기로운 분위기를 마련한다는것이 도리여 제켠에서 지나간 일을 상기시키는것으로 된것이다.

아닐세라 유상훈소장은 쓰거운 표정으로 흠 흠 코바람을 내불었다. 마뜩지않거나 불편스러운 자리에서 내군 하는 코소리라는것을 서정관은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서정관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랐다.

그의 눈앞에는 문득 몇년전의 그 불쾌한 일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그때 서정관의 마음은 순편치 못했다. 오래동안 동력부원으로 일하던 소꿉친구인 최금천이 얼마전에 일약 설비부기사장으로 임명되였던것이다.

그의 뒤를 따라 호수건너편 종금1직장에서 작업반장을 하던 임광일이 또 아버지처럼 직장장사업을 하게 되였던것이다.

서정관의 마음은 초조해지기까지 하였다.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세친구들중에서 자기가 제일 높이 발전했다고 은근히 어깨를 높이던 그가 자기만이 제자리걸음을 하고있음을 깨달았던것이다.

(어느 철학가의 말대로 인간이란 자기 개선의 력사를 만드는 사람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눈을 재게 깜빡이며 발전과 개선의 출로를 모색하였다.

결과에 찾은 답은 행정일군으로 더 높이 발전하려면 그리고 자기의 지위를 공고히 하자면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자기자신을 따라세워야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 지금껏 그렇게 살아왔던것처럼 자기의 가정환경과 뒤배경을 리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갑작골을 쓰던 그는 송곳이가 다 드러나도록 하하하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자기를 적극 도와줄수 있는 둘도 없는 적임자를 찾아냈던것이다.

그는 다름아닌 유상훈박사였다.

가금학계의 권위있는 실력가인 유상훈박사야말로 자기의 꿈과 리상을 현실로 되도록 도와줄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였다.

사실 그의 지도를 받아서 공장은 물론 농업대학이나 가금전문학교 교원들과 학생들속에서 적지 않은 학위학직소유자들이 자라나지 않았던가. 더우기 박사를 남달리 신임하였던 전 지배인의 얼굴을 봐서라도 그의 아들인 자기를 모른다고 할수 없을것이였다.

박사가 지금 살고있는 집도 지배인의 사업보장을 위해서 공장에서 지어준것을 아버지가 완강히 주장하여 자기에게 넘겨주었다고 언제인가 유상훈자신이 말했었다.

(아버지와의 친분관계를 박사는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그러니…)

그는 온 입안에 금빛이 가득 차도록 또다시 크게 웃었다. 그의 마음은 점점 부풀어올랐다. 그는 당장 안해의 등을 떠밀었다.

생산직장에서 오래동안 현장기사로 일해온 가시아버지가 언제인가 무슨 론문인지 경험글인지 하는것을 썼다는 생각이 나서 당장 그것을 가져오라고 처가집으로 보냈다.

저녁무렵 안해는 누렇게 퇴색된 종이뭉테기를 안고 집으로 들어섰다.

《자요!》

서정관은 안해의 품에서 종이뭉테기를 나꿔채듯 받아들었다.

온방이 좁다하게 종이뭉테기를 펼쳐놓고 보니 그것은 새끼오리의 경골성장특징과 나이에 따르는 먹이처방에 대한 연구자료였다.

서정관은 벌쭉 웃으며 안해를 쳐다보았다. 그날따라 안해의 얼굴은 여느때없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였다. 안해야말로 자기의 마음속생각까지 앞질러가며 헤아려주고 방도를 튀워주며 힘껏 떠밀어주는 둘도 없는 길동무였으며 철저한 대변자였다.

그날 저녁부터 서정관은 웃방에 들어박혀 며칠밤을 새워가면서 그 자료들을 제 손으로 옮겨베꼈다. 직위욕과 명예심에 불타올라 끼니도 건느면서 한글자라도 놓칠세라 신경을 곤두세웠다.

가끔 최금천과 임광일의 얼굴이 눈앞에 다가들었다. 그 얼굴들은 묘한 효과를 발생시켰다. 졸음도 배고픔도 다 잊게 하는 기막힌 추동력이였다.

(정보산업시대의 일군이라면 응당 학위를 받아야 한다. 그러니 내 기어이…)

그는 자기의 생각이 기특하여 벌씬 웃으며 계속 써나갔다.

《장인이 못다한 연구를 사위가 완성하는건 응당한 일이지?》

서정관은 자기자신을 정당화하듯 안해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렇잖음요, 응당하다뿐이갔소?》

방송화는 크지 않은 눈을 할기죽거리며 남편을 응수했다.

그는 연구자료가 다 정리되자 《금강산》담배까지 꿍져주며 남편을 박사의 집으로 떠밀었다. 하지만 그 걸음이 코 떼여 주머니에 넣는 일이 될줄이야.…

처음 유상훈박사는 연구자료를 보아달라는 서정관을 무척 대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반겨맞아주었다. 애써 공부하고 탐구하려는 사람이라면 그가 누구든 친자식처럼 대해주고 또 힘자라는껏 도와주는 박사였다.

《퇴근길에 들리오. 그동안 내 봐줄테니…》

연구자료를 받아쥔 박사를 본 서정관은 기쁜 마음으로 그의 방을 나섰다. 그는 곧 안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식사를 잘해놓소. 소장아바이와 함께 들어갈테니까.》

그러기를 바라고있던 안해는 쾌히 접수하였다.

서정관의 마음은 구름우에라도 오른듯 붕 떴다. 모든것이 얼음판에 박 굴리듯 슬슬 잘되여갔다.

오십년동안의 인생길을 더듬어봐도 아버지의 이름과 배경의 덕으로 모든 일이 계획되고 생각했던대로 척척 잘되여왔었다. 그러니 이번일도 그렇게 멋지게 될것이다.

그는 나이많은데다가 병약한 기사장을 눈앞에 그려보며 그의 자리에 자기를 앉혀보았다. 꽃구름우에 두둥실 떠실려 앞날을 그려보던 그는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기술준비실로 갔다. 그런데…

《자네 세상에서 제일 큰 도적이 뭐라고 생각하나?》

흠흠 코바람을 내불며 유상훈박사는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

《글도적이네. 알겠나?》

《…》

서정관의 얼굴은 대바람 지지벌개지였다.

박사는 또다시 그루박으며 말했다.

《이건 자네 장인이 오래전에 나한테 보여주었던거네. 그러니 다신 남의 글을 도적질하지 말구 제 머리로 애써서 공부하게. 그러지 않다간 지금 그 자리도 지켜내지 못하네.》

박사는 긴말을 하지 않고 자료묶음우에 담배까지 덧놓아서 밀어놓았다. 그리고는 아예 상대하지 않을 심산인지 신문을 펼쳐들었다.

얼굴이 수수떡처럼 되여버린 서정관은 떨리는 손으로 담배며 자료묶음을 걷어쥐고 문밖을 나섰다. 너무도 메사해서 숨소리마저 고르롭지 못했다.

그다음부터 서정관은 기술준비소근처에 얼씬도 못하였다. 먼발치에서 박사의 그림자만 봐도 가던 길을 돌아섰다.

그런데 오늘은 첨가제생산실건설을 맡았으니 유상훈박사의 그 쓰거운 웃음과 불쾌한 코소리를 피할수 없게 된것이다.

(하필 내가 이 건설을 맡을건 뭐람? 이게 다 기사장때문이라니까. …)

자기의 처지가 따분해질수록 기사장에 대한 원망은 더욱 커졌다.

그는 기사장이 차수정과 자매처럼 가깝게 지내는것이 또한 아니꼬왔다.

서정관은 원래 외형부터 덕이 없게 여윈데다가 직사포처럼 톡톡 내쏘군 하는 차수정을 몹시 싫어했다. 처남이 수정이와의 결혼문제를 내놓았을 때부터 앞장에서 반대한 그였다.

(보잘것없는 농장원가정에서 자란 처녀라지? 가시집배경이 든든한 처녀와 결혼해야 앞으로 발전할수 있겠는데…)

그는 차수정을 깔보면서 처남을 꼬드겼다. 그러나…

《교원이 발전하면 어디로 발전하겠습니까? 발전한다구 해도 수정동무가 뭐 지장되겠나요?》

처남은 매부의 충고를 조금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처남이 사망한 후 수정을 대하는 그의 태도는 더욱더 랭담하였다.

공장의 일군들이 홀몸이 된 수정을 위해 새 집도 지어주고 남편 생각을 잊고 생활하도록 직업도 변경시켜주는것을 보면서도 강건너 불보듯 했다.

명절날이나 생일날 가족들의 모임에 차수정이 참가하는것마저도 달가와하지 않고 안해를 부추겨 그를 끝내 따돌림하였다.

눈치빠르고 예민한 차수정은 이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는 앞뒤가 다르고 기술실무가 낮은 서정관에 대하여 항상 코방귀를 뀌군 하였다.

(기사장한테 나에 대해 별소릴 다 했을테지.… 녀자들이란…)

꿰진 이불에 발가락 걸리듯 그는 요즈음에 와서 송영숙의 존재로 하여 이런저런 걸채임을 느꼈다.

발전은 고사하고 현상유지하기도 조련치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꺼질듯 한 한숨이 내불리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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