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3 장


31


어슴프레 잠이 들었던 김덕준아바이는 누군가 대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다가 왈랑절랑 마구 흔들어대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집을 지키는 검둥이가 짖어대다가 웬일인지 조용해지며 낑낑거리였다.

(밤중에 누가 찾아왔노? 개가 짖다가 반가워하는것을 보면 집식구 같은데?

응? 혜영이가? 세밑이니까 그애가 올수 있어. 양성소를 졸업했던가 설을 쇠러 올수 있지.)

덕준아바이는 급히 솜저고리를 우에 걸치였다. 다시 대문을 흔들어대고 개가 우는 소리를 낸다. 아바이는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누구요?》

예감했던대로 이러한 대답이 들려왔다.

《아버지, 나예요, 혜영이예요.》

《아무렴 혜영이겠지. 네가 온줄 알았다. 대문을 흔들어대는 꼴이 벌써 달라. 이제 나간다.》

그는 퇴마루에 발을 내밀고 신을 찾았다.

《빨리 나가지 않구 왜 그러구 서서 중얼거리고만 있소?

찬바람 들어와요.》

로친이 일어나 앉아서 하는 질책이다.

《신발을 찾는중이야.》

《신발이야 부엌에 들여다놓지 않았소?》

《참 그랬지.》

덕준아바이는 문을 닫고 부엌으로 내려가 신을 찾아신고 밖으로 나갔다. 먹물을 풀어놓은듯 밖은 캄캄한데 차거운 바람이 윙- 윙- 울었다. 마침 로친이 방안의 전등불을 켜서 그 불빛이 창문으로 쏟아져나오면서 마당이 환해졌다.

그는 매달리는 검둥이의 대가리를 쓰다듬어주며 대문으로 다가갔다.

《잠이 들었댔다. 오래 기다렸니?》

대문밖의 딸에게 묻는다.

《아니, 방금 왔어요.》

《됐다.》

그는 빗장을 벗기였다. 대문이 찌꿍 열리고 까만 솜옷에 흰양털목도리를 두르고 가방을 든 혜영이가 냉큼 들어왔다.

《아버지, 잘 있었나요?》

《잘 있었다. 검둥이가 좋아서 야단하는구나.》

그는 껑충껑충 뛰며 혜영의 어깨에 앞발을 올려놓는 검둥이를 보며 웃었다.

《반년만에 만났으니 무척 반갑겠지. 자, 이젠 그만해라. 그 가방을 내가 들지, 손가락들이 얼지 않았니?》

《괜찮아요. 자 들어가자요. 어머니는 주무시나요?》

《네가 대문 흔드는 소리에 우린 잠을 깼다.》

그들은 부엌을 통해 방안에 들어갔다. 덕준아바이는 어머니와 딸이 만나는 모양을 지켜보며 희한해하였다. 딸은 떠들며 해들거리고 어머니는 눈물을 씻는다.

(녀자들이란!…)

덕준아바이는 혜영이에게 말했다.

《그만하고 솜옷을 벗어라.》

《집안이 후끈하군요.》

《네가 올줄 알고 불을 많이 땠다.》

《호호…》

《집에 오니 좋은 모양이구나.》

그들이 이야기하는 사이에 로친은 혜영의 양털목도리와 솜옷을 받아걸고 그가 들고온 가방을 한구석으로 날라갔다.

《가방에 뭘 넣었기에 이렇게도 무겁니? 이걸 들고 네가 걸어왔구나? 정거장에서 오는 길이냐?》

어머니가 묻는다.

후끈한 방안공기에 즉시 얼굴이 발그레해진 혜영은 장갑을 벗어 가방우에 놓고 부모님들과 마주 앉았다.

《난 정거장에서 오지 않아요.》

크고 검은 눈을 번쩍이며 혜영이가 대답했다.

《아버지, 나는 양성소를 졸업하고 뜨락또르운전수자격증을 받았어요.》

덕준아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용쿠나! 장하다!》

《배치두 여기 순안농기계작업소에 받았어요.》

《잘됐구나. 네가 양성소에서 어떻게 지내는지는 동익운전수한테서 다 들었다. 뜨락또르를 단독으로 타고 시험운전을 하다가 만났더구나.》

《양성소앞길에서 만났댔어요. 나는 그 동무가 나를 찾아올줄 정말 몰랐댔어요.

나한테 운전기술을 배워주느라 수고를 했지만 이 더펄이 혜영이는 경솔하게 운전술을 뽐내려 하다가 그 동무의 차를 굴러먹었으니까 기분이 좋았겠어요? 그런데 찾아왔단말이예요! 어찌 반갑던지.

동익동무는 양성소소장이랑 거기 사람들을 다 잘 알더구만요. 운전기술을 습득하고 자체로 기관고장도 퇴치하는 우수한 양성소졸업생이라고 칭찬이 자자하더군요.》

덕준아바이는 흡족해서 딸의 이야기를 듣고있었다. 양성소에 갔다온 동익은 혜영이를 칭찬했고 오늘은 딸이 그를 칭찬한다. 일이 되여가는것 같다.

《그래 양성소에서 곧장 작업소로 갔댔니?》

《그럼요. 집에야 천천히 와두 되지요. 난 그저께 왔어요.

그러니까 아직 뜨락또르도 받지 못했구 어느 조합에 가게 되겠는지 그것두 미정이야요.》

덕준아바이가 펄쩍 뛴다.

《어느 조합에 가게 되겠는지 미정이라? 무슨 소리냐!

제 고향에 와야지.》

혜영이는 아무 응대도 하지 않았다. 혜영이라고 왜 고향에 뜨락또르를 가지고 와서 일할 생각이 없겠느냐만 군적인 균형을 보아야 하는것이다.

《설을 쇠라구 지배인이 보내던?》

어머니가 물었다.

《여기 순안농기계작업소 지배인은 참 인정이 있어요. 이틀 놀다가 오래요.》

《그런데 왜 하필 캄캄한 밤에 떠났어? 훤한 낮에 머리를 쳐들고 올게지.》

아버지의 말이다.

《부끄러워서요.》

《부끄럽긴, 뜨락또르운전수가 되여가지고 오는데?》

《내가 일을 치고 창피해서 양성소로 도망쳐가지 않았나요.》

《원 애두!… 결국은 잘 되지 않았니?

그건 도망친것이 아니라 기어이 뜨락또르운전수가 되고야말겠다는 결심에 따른 행동이였다.》

혜영이가 피곤하겠는데 그만 이야기들을 하고 자자고 어머니가 말했다.

《난 조금도 피곤하지 않아요. 아버지, 내가 가져온 술맛을 보실래요? 어머니한테는 알사탕봉지를 가져왔어요.》

아버지가 만류하자 혜영은 《설전날밤에 새날이 오기전에 자면 눈섭이 센대요.》하면서 기어이 가방에서 술병을 꺼냈다.

혜영이가 우기면 방법이 없다.

어머니는 사탕봉지와 과자통을 받았고 아버지는 《대평주》대접을 받았다. 술을 잔에 부어드리며 혜영은 아직은 자기가 왔다는 말을 동네에 퍼뜨리지 말라고 했다.

《뜨락또르를 타고 나타날래요. 모두 깜짝 놀라게요. 호호 …》

덕준아바이는 《그거 볼만하겠다. 생각 잘했다. 하지만 래일 관리위원장이 인사올걸?》하며 껄껄 웃었다.

《숨지요 뭐. 뜨락또르운전수들도 오나요?》

혜영은 동익동무도 오는가고 묻고싶었을것이다.

덕준아바이는 설날이면 운전수들이 더러 집에 가기때문에 며칠전에 아예 모여앉아서 새해맞이놀이를 했다고, 그러니 래일 운전수들은 누구도 오지 않을것이라고 했다.

누구도 만나보지 않겠다고 했지만 동익이가 설날에 집에 오지 않는다고 하자 혜영은 어쩐지 서운했다.

설날아침에 관리위원장과 리당위원장이 인사하려 왔다. 혜영은 웃방에 있으면서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런데 아버지가 기분 좋은 김에 딸자랑을 했다.

《혜영이가 녀자뜨락또르운전수가 돼서 순안에 배치받아왔네. 얘, 혜영아, 여기 내려오너라.》하며 그는 혜영의 《비밀》을 드러냈다.

혜영이는 황급히 아래방으로 내려와 조합일군들에게 사뿐하게 앉으며 인사를 했다.

관리위원장과 리당위원장은 기쁨을 금치 못하며 그간 숙성해졌다느니 더 고와졌다느니 원화리에 굴러든 복이라느니 하고 한동안 떠들었다. 혜영은 별스레 수집어했다.

《그런데말이요. 우리 조합에 꼭 오겠는지 그건 알수 없다누만.》

김덕준이 이렇게 말하자 리규성이 《아니 그건 왜요?》하고 의아해한다.

《군농기계작업소에서 하는 일이니까.》

《아니지요. 다른 조합에는 못 갑니다.》

리규성이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설을 쇤 다음 그는 군농기계작업소에 즉시 올라가 지배인의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혜영이를 다른 조합에 보내면 내 거기까지 찾아가서라도 기어이 데려오겠소.》하고 으름장을 놓았다.

지배인은 리규성이를 걸상에 눌러 앉히며 우선우선한 목소리로 말했다.

《걱정말고 내 말을 듣소. 도당위원장동지가 그러는데 혜영이가 운전기술을 배우다가 사고를 치고 운전수양성소까지 갔다는 사실이 수상님에게까지 알려졌는데 수상님께서는 처녀가 뜨락또르를 배우려고 이악하게 노력한다고 하시면서 치하하시였다오.

그러시면서 처녀가 양성소를 졸업하면 〈천리마〉호 뜨락또르를 주어 보내라고 하시였다오. 관리위원장, 이제 혜영이가 새 〈천리마〉호를 척 타고 고향땅에 나타나게 될거요.》

리규성은 환성을 올리며 지배인의 손을 잡고 막 흔들어댔다. 장복덕의 아들이 제대되여와서는 고향에 떨어지지 않고 향옥이까지 데리고 공장으로 간것때문에 조합에서 끌끌한 청년들이 빠져나간다고 몹시 서운해했던 리규성이였다.

그런데 혜영이가 수령님의 치하를 받았고 조합에 오게 되였으니 그 서운함이 좀 풀리였던것이다. 혜영이는 변함없는 원화마을사람인것이다.

며칠후에 진한 곤색모자에 같은 색의 아래우가 맞달린 운전수작업복을 입은 혜영이가 《천리마》호 뜨락또르를 몰고 암적다리를 건너왔다. 온 농장원들이 떨쳐나 자기의 고향땅에서 나온 첫 녀자뜨락또르운전수를 맞이한 기쁨으로 들끓었다. 이날은 명절이나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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