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인생의 봄시절은 흘러갔어도


2


도목장관리국에서 소집한 회의는 어두워서야 끝났다.

회의에서는 150일전투기간 관리국산하 모든 공장, 기업소들의 계획수행정형이 총화되고 련이어 진행되는 100일전투에서도 승리를 이룩하자는것이 토의되였다.

회의참가자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회의실을 나서던 송영숙은 관리국장이 찾는다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곧장 국장방으로 갔다.

관리국장은 눈매가 서글서글하고 둥실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송영숙을 반겨맞아주었다.

《어머니는 건강하시오? 세대주는 여전하겠지?》

그는 친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송영숙은 빙긋이 웃으며 집식구들모두가 건강하다고 대답하였다.

관리국장은 기사장사업이 힘들지 않는가고 묻더니 제기되는 문제가 있거나 자기의 도움이 필요되면 어려워말고 제기하라고 말했다.

송영숙은 여전히 웃음담긴 얼굴로 없다고 대답하였다.

도목장관리국 국장은 오래동안 닭공장에서 지배인으로 사업하다가 송영숙에게 자기의 사업을 인계하고 관리국장으로 온 사람이였다.

그는 자기의 후임으로 지배인을 하는 송영숙을 언제나 힘자라는껏 도와주었고 지금도 그의 사업과 생활에 왼심을 쓰고있었다.

《오늘은 우리 집에서 쉬고 가오. 우리 집사람도 기뻐할텐데…》

그는 따뜻이 권고하였다.

송영숙은 그의 권고가 진심으로 고마왔다. 하지만…

《후에 찾아뵙겠습니다. 오늘은 기계공장에 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밤에 기계공장으로 간단 말이요?》

관리국장은 은근히 놀라는 얼굴이였다.

송영숙은 첨가제연구와 생산에 필요한 일부 설비들을 기계공장에 주문하였는데 지금 그곳에서 설비부기사장이 기다린다고 말했다.

관리국장은 머리를 끄덕이며 무리하지 말고 일하라고 당부하였다.

국장의 방을 나선 송영숙은 곧장 마당가 한켠에 세워둔 자동차곁으로 다가갔다.

운전칸에 앉아있던 운전사가 그를 보고 차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이제 또 기계공장에 가야겠지요?》

운전사가 별스레 시쁘둥한 목소리로 물었다.

기다리기에 어지간히 지친듯 했다.

운전칸에 오르려던 송영숙은 주춤하였다. 그도 지금 집으로 빨리 가고싶었다. 원인모르게 몸이 무겁고 피곤했던것이다. 며칠전에도 그랬는데 오늘 회의때에도 배가 몹시 아파서 겨우 참고있던 그였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눕고싶었다. 그러나 인츰 머리를 끄덕이였다.

《가야 해요. 설비부기사장동무가 기다리고있을텐데요.》

그는 어서 가자고 재촉하듯 운전칸에 올랐다.

공장을 떠날 때부터 계획했던 일이여서 운전사도 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자동차는 곧 도목장관리국 정문을 벗어나 기계공장쪽으로 달렸다.

불빛찬란한 도소재지의 야경이 차창밖으로 흘러갔다. 층높은 아빠트들과 덩지 큰 건물들의 창가마다에서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흘러나오고있었다.

송영숙은 차창밖을 내다보며 설비부기사장이 지금 자동차를 얼마나 애타게 기다릴가 하고 생각하였다. 풀절단기를 수초배에 설치하는 일로부터 시작해서 첨가제연구에 필요한 새 설비들을 설계하고 제작하기 위해 두달가까이 자기와 손발을 맞추어 뛰여다닌 그였다.

송영숙이 그동안 지내보니 설비부기사장 최금천은 무척 성실한 사람이였다. 공장의 동력부원으로 일하던 그는 지난해에 설비와 동력, 건설을 책임진 설비부기사장으로 되였다고 한다.

《우리 아버진 한생 수의사로 살았는데 난 집안에 없는 기계쟁이가 됐습니다.》

평양기계대학(당시) 졸업생인 그는 풀절단기를 완성하는 날 이렇게 말했다.

송영숙이 얼마전에 알았지만 설비부기사장 최금천과 생산부기사장 서정관 그리고 호수건너편 종금1직장장 임광일은 소꿉시절부터 막역한 친구들이였다.

그들의 아버지들은 전쟁로병들로서 전승광장을 나서는길로 여기 오리공장으로 달려와 호수가 진펄에 축사를 일떠세우고 포연내 슴배인 군복앞자락에 새끼오리를 품어안고 고기생산을 시작한 공장의 첫 세대였다.

어제날의 수의사, 지배인, 직장장이였던 아버지들의 뒤를 이어 최금천과 서정관, 임광일은 다같이 군사복무를 마치는길로 대학으로 갔고 다시 공장에 돌아왔다.

최금천이 성실하고 재간있는 사람이라면 서정관은 약삭바르고 사교적이면서도 가벼운 사람이였고 임광일은 대바르고 웅심깊었으며 묵직하였다.

성격도 취미도 생김새도 서로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공장의 기둥감들이였다.

《기계쟁이라도 오리공장 기계쟁이가 됐으니 근본은 잊지 않은셈이군요.》

그날 수초배에 풀절단기를 설치하며 송영숙은 이렇게 말했었다.

최금천은 성글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벙글 웃었다. 팥죽같은 땀을 뚝뚝 떨구며 세괃게 나사못을 조이던 그의 거쿨진 모습을 그려보는 송영숙의 마음속엔 최금천에 대한 믿음이 바위처럼 자리잡혔다.

어느덧 자동차는 기계공장 정문앞에 이르렀다.

송영숙이 운전칸에서 내려 불빛이 환한 정문앞으로 걸어가는데 누군가가 불쑥 그의 앞에 다가섰다.

《오긴 오누만요.》

목소리를 들으니 최금천이였다.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암만이구 기다려두 소식이 없길래 회의가 끝나는길루 그냥 돌아간 모양이라구 생각했습니다.》

《돌아가다니요?》

송영숙은 눈을 치떴다. 그는 아침에 약속한 일이여서 회의가 늦더라도 꼭 찾아오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밤에 소낙비가 온다기에 정문앞에 내놓았던 설비들을 모두 다시 들여갔습니다.》

최금천은 공장의 젊은이들을 동원하여 정문안쪽으로 옮겨놓고 꼼꼼히 방수포를 씌운 설비들을 가리켜보였다.

《미안해요, 회의가 끝난 다음에라도 전화를 걸어주었으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되였을텐데… 정말 미안해요.》

그의 말에 최금천은 제켠에서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미안하기야 뭘… 저… 내 그럼…》

최금천은 곧 돌아서더니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인츰 젊은이들을 서너명 뒤에 달고 다시 나타났다. 그는 곧 젊은이들과 함께 설비들을 자동차곁으로 옮겨왔다.

길옆에 쭈그리고앉아 담배를 피우던 운전사도 엉뎅이를 툭툭 털며 일어나 그들의 일을 도와나섰다. 당장 한소나기 퍼부으려는듯 가을날씨는 바람 한점 없이 무더웠다.

사람들과 함께 자동차곁으로 설비들을 옮겨놓던 송영숙은 그만 얼굴을 찡그렸다. 또다시 배가 비틀리운듯 아파났다. 그는 사람들의 눈에 띄우지 않게 길옆에 나앉았다.

(왜 이럴가? 무슨 병에 걸리지 않았을가?…)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근심에 잠겼다. 원래 건강하고 식성이 좋은 그였는데 며칠전부터 몸이 말째고 무거운데다가 배까지 아팠다. 요즘 식사시간을 잘 지키지 않아서 위병이 생긴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아니면 바쁘게 밥술을 뜨군 하여 체기를 만났을수도 있었다.

(래일은 꼭 병원에 가봐야겠어.…)

설비를 다 실은 자동차가 기계공장을 떠날 때는 자정이 훨씬 넘어서였다. 운전칸에 오른 최금천은 얼마쯤 지나자 드렁드렁 코고는 소리를 내였다. 기계공장에 설비를 주문하고 하루라도 빨리 기계를 만들기 위해 몇번씩이나 이곳을 찾아다닌 그였다. 일주일전부터는 아예 기계공장에 틀고앉아 설비를 완성했다.

송영숙은 그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빙긋이 웃었다. 설비들이 정상가동될 때까지는 지금처럼 바쁠것이였다. 첨가제연구를 위해 남모르는 땀을 바치고있는 그의 수고를 헤아려보던 송영숙의 눈앞에는 언젠가 시험호동에서 목격한 일이 떠올랐다.

송영숙은 청년직장에서 호동별로 오리몸무게검측결과를 료해한 다음 시험호동을 찾아갔다.

휴계실과 먹이조리실이며 수의방역소독실까지 문이 꼭꼭 닫겨져있는것을 보고 그는 관리공들이 놀이장에 나가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놀이장으로 들어갔다. 아닐세라 서정옥이와 리봄순은 시험오리들을 모두 놀이장에 내놓고 그앞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저 앉아있는것이 아니라 열심히 쇠절구질을 하고있었다.

《여기선 무슨 특식을 준비하는 모양이지요?》

송영숙은 웃음어린 얼굴로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옥이와 봄순은 절구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올려다보았다. 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움쭉거리는걸 본 송영숙은 제먼저 다가앉으며 절구안을 들여다보았다.

《이건 닦은 조가비이군요?》

《예, 가루를 내려고…》

정옥은 작업복 앞자락으로 긴 속눈섭우에까지 뽀얗게 오른 누런 가루먼지를 닦으며 대답하였다. 봄순이의 송골송골 땀이 내배인 코잔등이며 앞머리칼에도 누런 가루먼지가 뽀얗게 올라있었다. 절구질을 오래하였는지 그들은 무척 지쳐보였다.

《이걸 왜 여기서 가루내요? 폭쇄기로 분쇄한 다음 미분하면 될텐데…》

송영숙은 그들을 번갈아보며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

리봄순은 수집게 웃으며 폭쇄기가 고장나서 계속 절구질을 한다고 대답하였다. 하면서도 자기들이 하는 일이 무척 자랑스러운지 지금껏 봏아놓은 조가비가루를 손으로 차분차분 다져놓았다.

《그럼 계속 이렇게 절구질을 해야 해요?》

송영숙은 그들의 말을 확인하듯 다시 물었다.

정옥도 자기들이 하는 일이 응당한듯 시험호동에서 쓸건데 뭐라는가고 말하며 복스럽게 웃었다.

이때 조리실쪽에서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니 정의성이 방금 지고들어온 마대를 내려놓고 그안의것을 와락와락 쏟고있었다. 말린 집짐승뼈였다.

서정옥이 얼른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갔다.

《왜 그냥 가져왔어요?》

《지금은 바쁘다고 이틀후에 오라누만.》

정의성이 볼이 부은 목소리로 시들하게 대답하였다.

송영숙은 그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기술준비소에 있는 폭쇄기를 수리해서 쓰면 안되는가고 물었다.

《수리할 정도가 못됩니다.》

정의성은 여전히 시답지 않은 투로 대답했다.

서정옥은 시험호동에서 쓰는 조가비나 집짐승뼈는 모두 배합먹이직장에서 분쇄하군 하는데 지금처럼 바쁘거나 다른 사정이 많아서 그냥 돌아올 때가 드문하다고 하였다.

정옥의 말을 듣고있던 정의성은 앞머리카락을 홱홱 쓸어올렸다.

송영숙은 그의 손동작을 보고 성났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집짐승뼈와 절구질로 분쇄한 조가비가루를 생각깊은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첨가제연구와 시험오리에게 적용하는 먹이감을 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보장하겠는가 하는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비타민대용으로 쓰이는 솔잎이나 바다풀, 홍당무우 같은것은 별문제이지만 골분이나 패각처럼 굳은것을 계속 이렇게 절구질로 분쇄할수는 없는 일이였다. 관리공들이 힘든것은 둘째치고라도 연구의 과학성과 위생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도 잘된 일이 아니였다.

시험호동을 나선 송영숙은 그길로 기술준비소를 찾아갔다.

마침 유상훈박사를 정문앞에서 만났다. 새로 교잡한 오리의 비교측정을 위해 종금직장으로 나가던 박사였다. 생산성이 높은 새 품종의 오리종자를 만들기 위해 늘 종금직장에서 밤을 새우다싶이 하는 박사는 약간 수척해보이는 얼굴로 기사장을 반기였다.

송영숙이 고장난 폭쇄기를 고칠수 없겠는가고 묻자 유상훈박사는 머리를 저었다. 지금 기술준비소에 있는 설비는 몇년전까지 배합먹이직장에서 쓰던것을 가져다놓았는데 고칠 여지없이 고장이 나서 파고철로 수매하려 한다는것이였다.

《새 설비들을 갖추어주면 첨가제연구에 도움이 될텐데…》

송영숙은 닭공장에 있던 쌍스크류식폭쇄기며 비산식건조기, 원료혼합기를 비롯한 새 설비들을 그려보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도움이 되구말구요. 사실 정기사네 조건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첨가제연구조의 수고를 헤아리며 박사는 머리를 끄떡이였다.

얼마후 기술준비소를 나서는 송영숙의 마음속엔 새로운 결심이 자리잡히기 시작하였다.

(첨가제연구조에 닭공장의것과 꼭같은 설비들을 갖추어주자.…)

그는 마음속으로 설비들을 하나하나 그려보았다.

그는 곧 설비부기사장을 찾아갔다. 그리고 며칠동안 밤을 새우며 새 설비들에 대한 설계를 완성하였고 오늘은 이렇게 기계공장에서 실어오게 되였던것이다.…

새 설비들을 설치할 장소들이며 기대공을 두는 문제에 대해서까지 생각하던 송영숙은 자동차경적소리에 놀라며 앞을 내다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깜빡 조는 사이에 자동차는 어느새 공장구역에 들어서고있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그들이 기술준비소의 앞마당에 설비들을 모두 부리우고 자동차를 돌려보낼 때는 푸름푸름 날이 밝아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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