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1 장


11


하루종일 벼단운반작업과 벼가을이 끝난 논배미들을 갈아엎느라 기운이 빠진 낮교대운전수들이 어두워올무렵 《천리마》호 뜨락또르들을 몰고 차고로 들어왔다.

확확 달아오른 기관에서 풍기는 기름내가 열기와 함께 마당에 퍼졌다. 차에서 내린 운전수들이 꽛꽛해진 다리들을 어기적거리며 정비에 달라붙었다.

이제 교대하여 밤작업을 계속해야 하겠는데 정비는 무슨 정비야 하고 힘이 빠진 창원이는 속으로 불만이였으나 최동익이 엄격했음으로 기름걸레로 기관부의 안팎을 닦았고 바께쯔로 물을 날라다 차체와 바퀴의 먼지와 흙, 감탕을 씻어내였다.

무엇보다도 배가 고파난 창원이는 비칠거리였다. 동익이가 그의 등을 툭쳤다.

《가서 세면을 하고 식사하라구. 내가 마저하지.》

그는 이 《천리마》호를 타고 밤교대작업을 해야 했다. 그는 단련이 부족한 창원에게 밤교대작업을 시키지 않았다.

《내가 마저 해요.》

《네 다리가 꼬이는데두?》

둘이 한바탕 웃었다.

《인계할 내용은 없나? 기관은 정상이야?》

《정상이예요.》

《알았다, 빨리 가서 식사해라.》

《그럼… 》

창원이는 미안해하며 세면장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작업복 웃도리를 벗어내치고 얼굴과 손을 비누로 깨끗이 씻느라 한동안 푸푸거렸다.

밤교대 운전수들이 이미 저녁식사를 하고난 밥상에 낮교대운전수들이 다가앉았다.

돼지고기를 썰어넣은 두부국을 창원이는 정신없이 퍼먹었다. 그 모양을 지켜보며 동익은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창원이의 말에 의하면 그가 뜨락또르운전수가 되여 농촌에서 일하게 된데는 아버지의 작용이 컸다고 한다.

어느 공장지배인인 아버지는 매우 엄격한 분인데 아들에게 《젊어서 고생은 금주고도 못산다고 했다. 사회진출의 첫 걸음으로 로동단련을 해라.》하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창원이는 로동단련을 할바에는 자기를 매혹시킨 《천리마》호 뜨락또르를 타겠다고 했다는것이다.

《너 몹시 배가 고팠던게로구나.》

채재식이 웃으며 말했다.

《이렇게 하루를 일하고 저녁을 맛나게 먹으면 그게 건강체래요. 먹은것이 100프로 흡수되고 피곤도 쭉 풀린대요.》

창원이의 대답에 재식은 한바탕 웃었다.

《허허, 그래 너도 뭘 좀 아는구나.》

《그게 뭐 나쁘나요?》

《아니지. 나는 고중을 졸업한 네가 부럽다.

나는 배우질 못해 아는것도 별로 없어. 그저 뜨락또르나 몰줄 알지.》

《그건 대단한거예요. 나는 재식동지의 운전솜씨가 부러워요.》

지내볼수록 정이 가는 창원이였다.

동익은 벌로 나가기 앞서 작업조의 합숙이기도 하고 사무실이기도 한 방안에 운전수들을 모두 불러들이였다.

먼저 낮교대작업을 한 운전수들로부터 작업정형을 알아보고 작업일지에 기록하였다.

《낮교대를 한 동무들이 피곤하겠고 밤교대로 나갈 동무들도 시간이 급한데 그래도 한가지 토론을 해보자고 합니다.

토지정리와 새땅을 개간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가지고 동익은 이미 채재식 등 몇사람과 의논하여 합의에 도달했다. 그것을 오늘 6명의 운전수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락착지으려는것이였다.

《가을갈이가 끝나면 즉시 뙈기논들의 두렁을 터뜨리고 포전을 넓히면서 고르롭게 흙을 밀어내는 작업과 여기 뒤등성이의 풀밭을 개간하여 밭을 일쿠는 작업에 착수하자고 합니다.

올가을부터 우선 이 암적에서부터 시작하자는것인데 의견이 있는 동무들은 말해보시오.》

한동안 잠잠했다.

《해야지요.》하고 채재식이 선코를 뗐다.

《이것은 당정책이고 특히 최동익조장동무가 수상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영예로운 과업입니다. 지금부터 작업대상을 선정합시다.》

창원이가 졸음이 실린 눈을 꺼벅거리며 의견을 냈다.

《불도젤없이 어떻게 새땅을 개간하고 토지정리를 해요?

암적마을의 뒤등성이에는 잡관목뿌리가 엉켜있지요. 꽤 될가요?》

누군가 《그렇기도 해.》하고 동감을 나타내였다.

동익이가 대답을 주었다.

《내가 다 연구해보았고 재식동무와도 의논해보았는데 〈천리마〉호에 불도젤날을 만들어 달고 쌍기화를 넣고 밀면 되오.》

한 운전수가 물었다. 《땅딸보》라는 별명을 가진 책임운전사였다. 키는 작고 어깨가 퍼진 그는 일을 제끼는 운전사였다.

《그런데 시간은 어디서 얻어내오? 가을에는 가을갈이, 겨울에는 땅이 얼고 봄에 땅이 녹으면 봄갈이를 해야 하지 않소?》

동익이가 이번에도 자신있게 대답했다.

《시간은 뚝 떼여내기가 바쁘오. 그래서 기본작업을 하는 여가에, 또 땅이 얼기전과 녹기 시작할 무렵에 하자는거요.

우리가 좀 힘들수 있소. 그래도 시간을 짜내여 해야 합니다.》

채재식이가 고개를 꺼떡꺼떡하며 졸고있는 창원이를 툭 쳤다.

《창원이, 알겠나?》

《아, 알았어요. 졸면서도 다 들었다니까요. 이제는 헤여집시다.》

운전수들은 방안이 들썩하게 웃어댔다.

이튿날 초저녁에 동익이와 재식이는 3작업반장에게 자기들이 결정한 내용을 알려주고 의견도 들어보자고 영준반장을 와달라고 했다.

영준반장은 어슬해지자 곧장 합숙으로 왔다. 모자밑으로 반고수머리카락이 삐죽이 나와있었다. 담배를 서너모금 빨고나서 그는 동익이와 재식이를 번갈아보며 말했다.

《뭔지 말하오. 배들이 고프겠지? 그러지 않아 돼지를 한마리 잡으려는 참이요.》

《돼지는 그만 두시오. 좀 의논할게 있습니다.》

채재식이가 말했다.

뜨락또르작업분조장인 최동익이가 우선 3작업반에서 토지정리를 시작한다고 알려주었다.

영준반장은 방바닥을 내려다보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담배연기만 뿜고있었다. 동익은 좀 의아해하며 구체적인 작업대상들을 말했다.

《어험.》

영준반장이 꾸물거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 그거야 좋은 일이지. 한데 뙈기논을 정리한다고 뜨락또르로 밀면 생땅이 나와서 수확이 떨어지오. 그리구 수로들이 메꾸어지면 물이 고인단 말이요.》

그의 이마에 피줄이 퍼렇게 돋았다. 고집을 부릴 때면 그렇게 피줄이 돋군 했다.

그에게는 있는 땅을 잘 다루어 수확고를 올리는것이 급선무였고 그것만 하재도 손발이 모자라는 때에 새 일판을 벌려놓는것이 마땅치 않았던것이다.

《앞으로 기계화를 하자면 포전을 규격화해야 합니다.》

최동익의 말도 그의 귀전에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근면한 농사군일뿐이였다.《실농군에게는 나쁜 땅이 따로 없다, 근면한 농군에게 땅은 언제나 아낌없는 결실을 마련해준다.》고 작업반원들앞에서 말하군 하는 그의 머리속에는 사회주의농촌의 체모를 갖춘 현대적이고 문명한 고향마을에 대한 표상보다 누구나 근면하게 땅을 가꾸면 생활이 윤택해질것이라는 관념이 보다 강했다.

채재식이가 논바닥 겉층을 벗겨서 따로 모아두었다가 토지를 다 정리한 다음 날라다 펴면 일없다고, 생땅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한동안 설명을 했으나 반장은 여전한 자세로 앉아있을뿐이였다.

주인이 싫어하면 난사다.

《반장동지, 잘 생각해보십시오.》

《생각해보겠소.》

그는 일어서면서 동익이에게 말했다.

《미순이한테서 편지가 왔는데 운전수들의 안부를 묻더군.

그게 동무들한테 정이 들었던 모양이야.》

그는 이발을 드러내며 히죽이 웃었다. 그는 딸에 대한 자랑을 감추지 못하고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영준반장을 동익이가 멈추어세웠다.

《반장동지, 미순이가 편지에서 우리 운전수들의 안부도 물었다는데 그 편지를 좀 볼수 없을가요?

남들에게 보여서는 안될 내용이 없다면 말입니다. 우리도 미순이한테 정이 들었지요.》

《보여주지. 아무런 비밀도 없소. 내 이제 집에 가서 가져다주지.》

시원시원한 영준반장이 쾌히 승인했다.

《내가 가지요.》

동익은 영준반장을 따라가 편지를 가지고 와서 호기심이 잔뜩 돋은 재식이와 함께 읽었다. 편지내용은 특별한것이 아니였다.

아버지, 어머니의 안부를 묻고 자기는 평양에 도착하여 이모한테 인사하고 학교기숙사에 들었다는것, 동무들도 사귀고 생활에서 아무런 애로도 없다는것, 농업상에게는 인사를 드릴 엄두도 못냈다는것 등을 쓰고 《암적마을은 여전하겠지요. 뜨락또르운전수동무들은 어때요? 모두 보구싶어요.》하고 마을사람들의 안부를 물었다.

이어 미순이는 평양이 얼마나 넓고 웅장화려한 도시인가, 모란봉과 대동강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등등 놀라움과 부러움, 자랑을 한바탕 엮었다. 창원이는 미순이를 부러워하며 한숨을 쉬기까지 했다.

그날 저녁 동익은 밤교대작업을 나오면서 영준반장이 왜 그렇게 나올가 하고 곰곰히 생각했다.

영준반장의 태도를 보아 토지정리를 하면 논밭갈이와 운반작업료에 토지정리를 해주는 작업료까지 작업반에서 물어야 하니까 그 부담과 함께 분배탈 돈이 푹 적어질 걱정 그리고 갑자기 땅이 불어나면 로력이 더 모자라기때문에 토지정리를 달가와하지 않는것 같았다. 이렇게 타산이 밝고 새것을 달가와하지 않는것은 바로 농민들의 보수성으로부터 오는것일것이다.

(수상님께서는 우리 뜨락또르운전수들이 농촌기술혁명의 기수가 되여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는데 우린 지금 맡겨진 일에만 전심할뿐이고 토지정리와 새땅개간은 이제 겨우 계획을 세웠을뿐이다. 그리고 농기계공장들에서 보내주는 영농기재들은 실정에 잘 맞지 않는데 우리 뜨락또르운전수들이 그것을 개조하거나 수확기, 탈곡기 같은것들도 만들기 위한 연구도 하지 못하고있다.

특히 오늘 영준반장에게서 본바와 같이 토지정리와 새땅찾기를 대하고있는 보수성, 소소유자적근성을 퇴치하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은 생각도 못하고있다.)

동익이가 이런 생각을 하며 뜨락또르에 올라 논갈이를 하게 된 논벌을 향해 큰길로 달리고있는데 웬 녀자가 갑자기 앞에 뛰여들어 손으로 전조등빛을 가리우며 소리쳤다.

《서라요!》

《제길 이건 뭐야?》

동익은 화를 내며 차를 급히 세웠다.

《누구요? 무슨 일이요?》

그는 불빛을 피해 어둠속으로 들어서는 녀자에게 소리쳤다.

《접니다. 김혜영이예요.》하며 혜영이가 다가왔다.

《혜영동무구만. 그런데 왜 그러오?》

《좀 타자요. 차안에 들어가 말할게요. 어서 손을 잡아줘요.》

혜영이가 손을 한껏 내밀었다. 혜영이의 성미를 잘 알고있는 동익은 처녀를 물릴칠수 없으며 그의 요구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손을 잡아 이끌었다.

처녀의 손은 크고 단단했다. 처녀는 동익의 손에 이끌려 나는듯이 차안으로 뛰여들어왔다. 그리고 열기 띤 크고 검은 눈으로 동익을 쳐다보며 해쭉 웃었다.

《빨리 용무를 말하고 내리오.》

동익은 처녀의 큰눈을 피하며 우정 무뚝뚝하게 독촉했다.

《숨이나 좀 돌리고 말하자요. 왜 내가 차에 오른게 싫어요?》

《운전사들이 제일 싫어하는게 뭔줄 아오? 야밤에 녀자가 차앞에 뛰여드는거요.》

혜영은 여전히 동익이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 말했다.

《사실은 어두워지기전에 와서 기다렸는데 무슨 회의가 있었나요? 난 도루 가버릴가 했댔어요. 그렇지만 아버지의 지시가 있기때문에 그냥 기다리다보니 야밤이 된거예요.》

동익이 역시 여전히 처녀의 눈길을 피하며 뚝해서 물었다.

《아버지의 지시라는건 뭐요?》

《동무가 나를 달가와하지 않고 뚝해있으니 말하기 어렵군요.

기계화반의 〈고문〉인 저의 아버지 지시는 다음과 같애요. 들어요?》

《듣소.》

《나를 좀 돌아보면 안되겠어요.》

동익은 할수 없이 웃고 말았다.

《혜영동무를 보고 〈더펄이〉 라고 하던데 과연 그렇구만.》

혜영은 호호 하고 큰소리로 웃었다.

《너무 요란하게 웃누만. 밤인데…》

《뜨락또르동음때문에 일없어요. 단지 지내 길바닥에 오래 서있는것 같은데 앞으로 전진하자요.》

동익은 뜨락또르를 전진시켰다.

(이 처녀가 정말 아버지가 보내서 왔을가?

요전처럼 나를 골탕먹게 하려고 온건 아닐가? 제길 된탕을 겪게 됐군.)

바로 가을걷이에 들어가기전 조합이 쉬는 날에 혜영이가 동익이를 찾아왔었다. 혜영은 동익을 합숙밖으로 불러내더니 눈을 내리깔고 신발코숭이로 땅을 허비며 갑자르다가 말했다.

《저녁에 순안에 영화구경가지 않겠어요?》

처녀로부터 뜻밖의 청을 받은 동익은 당황했다. 저녁에 무슨 특별한 일이 있는것은 아니였고 영화를 보는것도 싫지 않았지만 그는 당황해져서 얼른 대답을 못했다.

(이 처녀가 왜 같이 영화보러 가자는것일가?

여기에 무슨 심중한 의미가 있는것일가. 아니면 그저 단순하게 머리에 떠오른 무슨 착상때문일가?…

처녀쪽에서 이런 요청을 먼저하는것은 쉽지 않은데?)

《싫어요?》

큰눈으로 동익의 표정을 살피며 이번에도 단마디로 대답을 요구하였다. 동익은 대답해야 했다.

그래 얼결에 《갑시다.》하고 대답했다.

《암적다리에서 몇시에 만날가요?》

처녀는 숨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글쎄…》

《어두워지면 곧 나와요.》

그리고 혜영이는 돌아섰다.

처녀로부터 뜻밖의 청을 기습적으로 받고 얼떨떨해진 동익은 한참 후에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허구픈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 참, 농촌처녀들은 아주 수집어하든가 반대로 아주 대담하고 소란스럽다고 하던데…

어쨌든 재미있는 처녀군! 까짓거 여우귀신한테 홀리운 셈치고 한번 갔다와야지.)

동익은 일찌기 저녁밥을 먹고 순안으로 가자면 반드시 건너야 하는 암적강다리에 나가서 담배를 피워물었다.

날이 어슬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약속한 시간보다 약간 당겨왔었다.

그러므로 여유를 가지고 기다렸다.

그런데 혜영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리를 건너오고 건너가는 길손들이 그를 보면서 지나갔다.

《옳지, 이제야 오는군.》

어두워오는 다리 저쪽에서 녀자가 오고있었다.

《나를 불러놓고는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거요.》

이런 소리가 막 입에서 나가려는 찰나에 동익은 실망하고 말았다. 그 녀자는 혜영이가 아니였다.

날이 아주 어두워졌다.

순안읍에서는 불빛이 반짝이고 암적마을에서는 개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익은 이마살을 찌프렸다.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는가?)

그러다가 동익은 문득 이 처녀가 나를 골려주려고 영화소리를 하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잡쳤다.

(내가 속았구나. 그게 장난으로 나를 이 다리우에 불러낸것도 모르고…)

그는 잔뜩 독이 올라 혜영이가 살고있는 본촌으로 달려가려고 했다. 그러나 달려가서는 어쩐단 말인가. 깔깔거리며 좋아할 《더펄이》를 한대 쥐여박으려는가?…

그는 멈추어섰다.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생겼을수도 있는것이다.

어쨌든 불쾌했고 속에 치미는것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는 합숙으로 돌아왔다.

자면서 기분나쁜 꿈을 꾼 동익은 동틀무렵에 일어나 차고로 갔다. 뜨락또르에 기름을 주고 걸레로 닦으며 한동안 분주히 돌아가는데 혜영이가 나타났다.

처녀는 동익을 만나려고 본촌에서 일찌기 떠난것 같았다.

(옳지, 변명하려고 오는구나. 어떤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

처녀를 띄여보며 동익이가 벼르었다.

《동익운전수동무, 밤새 편안했어요?》

혜영이는 다가오며 곱지 않은 말로 인사를 했다.

《아, 혜영동무요? 덕분에 잘잤소.

동무도 나를 암적다리로 꼬여내구 깨고소해서 잘 잤겠지?》

동익이도 가시돋힌 소리로 내쏘았다.

《내가 동무를 꼬여냈다구요? 동무가 암적다리로 나오긴 나왔댔어요? 그럼 왜 나를 기다리다가 영화관으로 오지 않았댔어요?

나는 관리위원장의 심부름으로 읍에 갔다가 좀 늦어져서 다리에는 가지 못하고 영화관에서 기다렸단 말이예요. 그런데 나타나지 않았지요?》

동익은 앞바퀴우에서 흘쩍 뛰여내렸다.

《약속은 암적다리가 아니였소?》

《거기에 늦어서 못갔다지 않아요.

동무는 인정도 정열도 없어요. 남자가!》

(이게 이런 도깨비같은 처녀였구나.)

동익은 소리내여 웃었다.

《이건 참 희극이로군, 자 내가 잘못했소. 잘못했단 말이요.

동무가 영화관에서 기다린다는것을 알고 찾아갔어야 하는건데, 그래 난 정열이 없는 남자요.

그러니 나와는 더 상대하지 마오. 나같은 놈을 믿어준것만 해도 과남하오.》

뜻밖에 혜영이도 샐쭉 웃었다.

이 비정상적인 사건으로 하여 그들은 오히려 가까워졌다. 동익은 혜영이가 더펄거리긴 해도 사실 그 어떤 악의가 없는 순진한 처녀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지금 동익은 그때의 일을 돌이켜보며 이 처녀가 또 무슨 일거리를 만들가 하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헤영이가 정색해서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운전수들의 생활을 돌보아주던 미순이가 학교에 가고 없는 조건에서 날보고 미순이가 하던 일을 맡아하라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선뜻 응했답니다.》

동익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고맙소. 하지만 혜영동무, 우리는 동무의 보살핌을 받지 않아도 되오. 밤에까지 운전칸에 같이 앉아있어야 할 필요는 더욱 없지요.》

동익은 차를 세웠다.

《안됐소만 내려야 할것 같소. 녀자가 옆에 앉으면 일이 잘 안되오. 어서 내리오.》

혜영은 동익을 흘겨보았다.

《음- 뚝바우.》

《허… 아무렇게나 불러도 좋소.》

《동무가 싫다해도 나는 내리지 않겠어요.》

혜영의 큰눈이 번쩍번쩍했다.

《운전수들의 생활을 돌봐주는것이 싫다면 그건 그만두자요.

하지만 나는 뜨락또르운전수들한테서, 특히는 동익동무한테서 뜨락또르운전기술을 배우려고 해요.

듣자니 녀자뜨락또르운전수도 있다지요. 그러니 이거야 막지 못하겠지요.》

동익은 화가 치밀었지만 이 제기를 반대할수 없었다.

(된통에 들었어, 제길!)

그는 속으로 두덜대며 뜨락또르를 전진시켜 길에서 벗어나 논벌에 들어섰다. 논뚝을 넘을 때 차가 몹시 기울어지며 혜영이가 그에게로 쏠리였다.

처녀의 동실한 어깨와 팔굽이 와서 부딪치는 말큰한 충격에 동익은 얼굴이 벌개졌다.

《엄마!》 하며 혜영은 깔깔댔다.

동익은 화끈 달아올랐다. 당황해진 그는 결심을 달리했다.

(이 《더펄이》를 태우고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

오늘 밤뿐아니라 다른 날에도 운전기술을 이렇게 하고는 배워줄수 없고 일도 못한다. 일하면서는 안돼!)

그는 혜영이에게 무뚝뚝하게 명령했다.

《혜영동무, 내리오.》

혜영은 그를 새삼스레 쳐다보았다.

《아니 왜요?》

《내리라지 않소!》

《그럼 운전배우는건?》

《그건 짬시간이나 휴식시간에 하자구. 내 말을 알아들었소?》

《좋아요. 내리겠어요. 그리구 아버지한테 일러바치겠어요.》

《마음대루.》

혜영은 차에서 내리더니 동익이한테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동익은 웃음을 참으며 논갈이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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