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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2일

평양시간


(제 10 회)


제 1 장 푸른 호수


10


자기도 모르는 끌힘에 의하여 송영숙의 뒤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차수정은 집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지금 그의 마음은 그지없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총총걸음으로 직장과 직장을 오가며 도서보급을 하고 예약사업을 하려고 뛰여다니던 그답지 않게 머리를 수굿한채 기력이 다 빠진 늙은이처럼 맥없이 걸었다.

그의 눈앞에서 송영숙의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품위있고 우아하면서도 지성미가 어려있는 모습이였다. 그리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자기자신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이 도도히 굽이치는 자신만만하고 당당한 모습이였다. 행복한 생활이 낳은 기쁨과 만족이 어려있는 그의 얼굴은 또 얼마나 부드럽고 아름다왔던가.

삶의 광택이런듯 유난히 반짝거리던 아름다운 머리를 그려보던 수정은 긴 한숨을 내그었다. 생각할수록 자기자신의 처지가 가없고 처량해졌다.

(내가 언제부터 이 꼴이 되였을가.… 영숙이와 어깨를 겨루던 내가 언제부터 이 지경이 되였을가.…)

그의 가슴은 그 누군가의 거악한 손길에 사정없이 할퀴우고 뜯기운듯 쓰리고 아팠다. 소리내여 울고싶기도 하였다.

차수정은 오리공장과 가까운 호수가주변의 어느 채종농장 농장원의 넷째딸로 태여났다.

어릴 때부터 그는 남달리 령리하고 공부도 잘하였다. 코잔등에 주근깨가 다문다문하고 입모양이 꽃잎같은 단발머리소녀는 어느해 전국청소년학생들의 알아맞추기경연에서 영예로운 1등수상자가 되였었다. 그의 모습이 텔레비죤화면에 나타난 그날은 온 마을, 온 학교가 명절날이였다.

그가 개선장군마냥 고향마을에 돌아오자 농장관리위원장은 이름없는 자기네 농장을 온 나라가 알게 해준 어린 소녀를 등에 업고 관리위원회마당을 한바퀴 돌아 그의 집에까지 갔다.

그의 부모들도 내리내리 딸만 다섯을 낳은중에 그래도 옥돌이 하나 삐여졌다고 입을 다물줄 몰랐다.

차수정은 고향마을의 자랑으로 떠받들리였다. 그는 공부만이 아니라 무엇이든 다 잘했다. 종다리처럼 청고운 목소리로 노래도 잘 불렀고 탁구 또한 체육단선수 못지 않게 잘하였다.

남들이 놀랄 정도로 리해력이 빠르고 사고가 민첩한데다가 판단이 정확한 그는 누군가의 표현대로 한번 보면 사진기였고 한번 들으면 록음기였다.

중학교졸업을 앞두고 수정은 다재다능한 자기의 재능을 뽑내며 여기저기에 모두 희망을 걸어보았다.

녀성과학자, 녀성박사, 녀성영웅이 되고싶었다. 그러다가도 조명등 빛이 눈부신 화려한 무대가 눈앞에 떠오르며 녀가수를 꿈꾸기도 하였다. 이국의 하늘가에 람홍색공화국기발을 휘날리는 체육인들의 모습을 텔레비죤화면에서 보고는 탁구선수가 되여 세상에 이름을 날려볼가 생각했다.

수정이 수의축산대학을 지망한것은 우연이였다.

가금업의 새 력사가 펼쳐진 오리공장에서 녀성기술자로 한번 이름을 떨쳐 또다시 고향마을 호수가를 자랑하려는 즉흥적인 생각에서였다. 부모형제들도 그의 희망을 지지해주었다.

차수정은 대학 전과정을 송영숙이와 함께 보내였다.

공부도 함께 하였고 기숙사생활도 한호실에서 함께 하였다. 그들은 공부에서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고 은근히 경쟁하기도 하였다. 처음 그들의 실력은 어슷비슷하였다.

그러나 발열량으로 비교한다면 차수정은 벼짚불이였고 송영숙은 참나무숯불이였다. 송영숙은 하나의 목표를 향하여 폭넓게 공부하고 깊이있게 파고들군 하였다. 그의 변함없는 열정과 진지하고 꾸준한 노력앞에서 수정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그들은 누구보다 가깝고 친한 사이였다. 그들사이에는 네것내것이 따로 없었다. 그들은 사물함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사소한 간격도 없이 생활하였다.

막내딸을 찾아 대학에 자주 오군 하던 송영숙의 어머니는 수정이를 친딸처럼 여겼고 의학대학을 졸업한 그의 언니 송은숙도 수정을 친동생처럼 사랑해주었다.

방학때가 되면 수정은 호수가의 고향마을이 아니라 송영숙이네 집이 있는 군부대마을로 가군 하여 부모형제들을 섭섭하게 해주기도 하였다.

그들이 대학공부를 하던 그 시절은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매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의 어려운 나날이였다.

그때 딸자식 많은 차수정의 집형편은 그 누구의 집보다 어려웠다.

주위환경에 지나치게 예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군 하는 수정은 어려운 가정사에 위축되여 대학생활을 그만둘가 하는 생각을 가진적도 있었다. 그러나 송영숙과 그의 어머니 문춘실의 고무와 도움에서 힘을 얻고 대학을 떠나지 않았었다.

대학을 졸업한 그들은 3대혁명소조생활도 닭공장에서 함께 하였다. 수정의 표현대로 대학기숙사를 닭공장으로 옮겨놓은셈이였다.

3대혁명소조생활이 끝난 다음에야 그들은 헤여졌다.

송영숙은 희망대로 닭공장에 그냥 남았고 차수정은 오리공장기능공학교 교원으로 배치받았던것이다.

오리공장의 래일을 담당해갈 기술자, 기능공들을 더 많이, 더 흘륭하게 키워가리라는 포부를 안고 교단에 나선 그는 송영숙이와 헤여질 때의 약속대로 한달에 한번씩 꼭꼭 편지를 썼고 또 회답도 받았다.

공장에 배치된 그 이듬해에 그는 기능공학교에서 교원생활을 함께 하던 방인화의 남동생 방영진이라는 청년을 가슴속에 간직하게 되였다.

쉽게 흥분하고 쉽게 열중하고 쉽게 권태감을 느끼군 하는 그였지만 다정다감하고 박식하고 헌신적인 그 청년만은 그의 마음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들의 사랑은 곧 행복한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결혼후 3년만에 그의 남편은 호수가얼음구멍에 빠진 소학교의 나어린 학생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 너무나도 뜻밖의 불행을 당한 수정은 그때까지 이어오던 송영숙이와의 편지거래를 끊어버리고말았다. 송영숙이 학위를 받은데 이어 닭공장 지배인이 되였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고는 더더욱 편지를 주고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에 비하면 자기의 처지는 너무도 처참했던것이다.

부모와 형제들은 남편을 잃고 홀로 사는 그에게 고향으로 돌아와 함께 살자고 말했다. 수정은 그 권고를 뿌리쳤다. 불행해진 모습으로 고향에 들어서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는 외기러기가 된 모습으로 교단에 나서기도 싫은데다가 학교에 있으면 떠나간 남편생각이 더 자주 떠올라 교원생활을 그만두고 공장도서실관리원 및 출판물보급원이 되였다.

말없는 책을 벗삼아 살아가려는것이였다. 책이야말로 절대로 배반을 모르는 벗이였다.

공장의 일군들은 학생들을 구원하고 희생된 기능공학교 교원의 안해인 차수정을 위해 보급실 가까이에 새 집도 지어주고 그의 생활을 따뜻이 돌봐주었다. 그러나 떠나간 남편에 대한 생각과 외롭고 고독한 생활만은 그 누구도 가셔주지 못했다.

몇년동안 외롭고 쓸쓸한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날이였다.

그날 남편의 맏누이인 가공직장장 방인화가 수정을 찾아왔다.

인정많은 방인화는 수정의 처지를 깊이 동정하면서 자기의 옆집에서 사는 종금직장 수의사 리병우와 가정을 이루라고 진심으로 권고하는것이였다.

수정에게는 방인화가 무척 고마왔다. 방송화와는 달리 동생을 잃은 후에도 수정을 남같이 여기지 않고 따뜻이 대해주던 그였다.

하지만 차수정은 리병우와의 문제만은 랭담하게 거절하였다.

떠나간 남편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찬 가슴에 선듯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수 없었다. 더우기 젊고 미남자인데다가 리지적이면서도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하여 공장일군들과 학생들속에서 신망이 높았던 남편에 비해볼 때 리병우는 너무도 눈에 차지 않았던것이다.

나이차이도 많은데다가 첫눈에도 멀짝해보였으며 이모저모로 부족점이 많았다.

(혼자 살면 살았지 어떻게 저런 사람과…)

수정은 속으로 코바람을 불었다. 변변치 못한 사람을 대상자로 내세운 방인화를 은근히 민망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공장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기술자인데다가 학위를 받았고 지금은 오리털단백질먹이를 연구하고있다는 점이 점차 그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여주었다. 그와의 재혼으로 자기의 운명도 달라질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리상적인 과학자, 기술자부부가 될수 있지 않을가.…)

하지만 꿈과 현실을 일치시킨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였다.

리병우와의 가정생활은 수정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

리봄순이라는 고운 이름으로 불리우는 외동딸과 함께 살던 리병우는 겉모습그대로 물렁팥죽이였다. 우물쭈물하고 미적지근한것을 딱 질색하는 수정은 외동딸의 눈치만 흘끔흘끔 살피면서 주대없이 노는 리병우에게서 심한 경멸감을 느끼였다.

결국 두번째 결혼생활도 1년만에 막이 내려진셈이였다.

그는 이따금 끼닭모를 설음과 분노, 까닭모를 질투심으로 아픈 가슴을 달래며 한밤을 눈물속에 뜬눈으로 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자기의 괴로움을 남들앞에서 절대로 표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마흔살가까운 나이에 독수공방하는 그를 보고 덕이 없는 녀자라고 말했다. 그때마다 차수정은 코웃음쳤다.

(덕이 없구 불쌍하다구? 왜? 남편두 자식두 없어서?… 괜찮아!…)

그는 오연히 머리를 쳐들고다녔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비웃으며 도전해나서듯 랭소를 머금고 입귀를 실그러뜨렸다. 그때마다 생기를 머금은 한송이 꽃잎같던 입술은 떨어진 호박꽃처럼 돼버리였다.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의 칭찬에 떠받들려온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남들을 눈아래로 내려다보며 깔보았고 눈에 거슬리면 따벌처럼 톡톡 쏘아주는데 습관되였다.

습관과 천성은 쌍둥이형제이다. 자기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으로 하여 그는 더욱더 깔끔하고 야비한 성격을 가지게 되였다.

그러나 오늘 송영숙을 만나고보니 마음이 나약해지고 그지없이 쓸쓸하기만 하였다. 자기의 운명이 더할나위없이 가엾고 또 허무해보였다.

송영숙에 비하면 자기는 얼마나 불행한 녀자인가.

사람마다 행복에 대한 견해와 기준은 제나름대로이다. 누구는 단란한 가정생활에서 그리고 누구는 높은 직위와 영예를 지니는데서 또 누구는 성스러운 사업에 한생을 다 바치는데서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 행복이란 스스로 만족해하는 사람들의것이라고 하는것이다.

차수정은 가사에 파묻히지 않고 자기가 사랑하는 책을 벗삼아 사는것을 행복이라고 자부해왔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한갖 자기자신에 대한 위안이며 기만이라고 생각되였다.

(영숙인 정말 크게 발전했구나. 그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야. 거기에 비하면 나는…)

집에 들어선 그는 점심먹을 생각도 다 잊고 방 한가운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서글픈 생각외에 그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이윽고 그는 까닭모를 설음에 북받쳐 어깨를 떨며 오래오래 흐느껴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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