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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4일

평양시간


(제 8 회)


제 1 장 푸른 호수


8


송영숙은 거의 두달만에 집식구들과 한자리에 앉았다.

딸 경아는 엄마의 무릎에서 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송영숙은 새별처럼 반짝이는 딸애의 눈동자를 웃는 얼굴로 들여다보기도 하고 방울달린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였다.

오래간만에 가정적인 단란한 분위기에 몸을 잠근 그의 마음은 류달리 따뜻해지고 즐거워졌다. 느닷없이 이 소중한 세계를 떠나 합숙에서 몇달동안 어떻게 살았을가 하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김춘근당비서가 더없이 고마왔다.

그는 방금전에야 남편에게서 군사복무시절의 정치위원이였던 김춘근당비서에 대해서와 갑자기 이사해오게 된 사연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 되였다.

이사해오던 이야기를 하면서 문춘실은 떠나는 자기들을 멀리까지 따라나와 바래주던 닭공장마을사람들과 그들의 후더운 인정을 잊을수 없노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백상익도 그곳에서의 생활을 잊을수 없다면서 정깊은 눈길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송영숙의 마음도 뭉클 젖어들었다. 인생의 귀중한 한시절, 기쁘고 즐거웠던 날도 많았고 괴로움에 잠 못 들던 날들도 많았던 닭공장에서의 생활이 고속영화화면처럼 눈앞에서 흘러갔다.

점심식사를 마친 후 백상익은 가구들의 위치를 조금 변경시키였다.

가구들을 정돈하면서 송영숙은 남편과 얼마간 옥신각신하였다.

송영숙은 공장사람들이 들여놓고 정돈해준 지금의 위치가 좋다고 고집했고 남편은 가구를 리용하는 사람의 심정과 취미 그리고 생활에 편리하게 변경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안해가 고집을 부리려들자 백상익은 더 말하지 않고 제 손으로 가구들을 척척 옮겨놓았다. 축구선수답게 시원시원하고 너그러운 성격인 그였지만 생활에서는 누구보다 섬세하고 다감하였다. 그는 길고 실한 팔다리의 근육을 살리면서 가구들을 혼자서 힝힝 들어옮겼다.

송영숙은 하는수없이 남편을 도와 전실에 놓였던 긴의자를 아래방에 들여오고 랭동기는 부엌에 옮겨놓았다. 세탁기도 세면장물탕크옆에 옮겨놓고 꽃병과 화분들의 위치도 조금씩 변경시켰다.

모든것이 백상익의 주장대로 어머니가 리용하기 편리하게 배치되였다. 송영숙이 남편과 맞잡고 방안정돈에 여념이 없을 때 문춘실은 부엌과 집주변을 돌아보았다.

그에게는 불이 잘 드는 부엌도 마음에 들었지만 앞마당이 넓고 뒤뜰에 터밭이 있는것이 무엇보다 기뻤다.

(뒤터밭엔 경아 아범이 좋아하는 마늘과 풋고추를 심고… 저쪽 앞마당엔 돼지우리와 닭장을 짓구…)

그는 마당을 돌면서 이런저런 설계를 해보았다.

닭공장마을에서 살 때에도 그는 앞마당이 넘쳐나게 집짐승들을 많이 길러 집살림에 크게 보태였었다. 부지런한데다가 손이 걸어서인지 그의 집에 온 짐승들은 어느놈이나 다 투실투실했고 새끼낳이, 알낳이를 잘했다.

동네사람들은 그를 보고 축산반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백상익은 몸매작고 체소한 가시어머니를 《륙해항공사령관》이라고 불렀다. 한마당 가득 자라는 돼지며 토끼, 오리와 게사니, 닭들을 키우는 문춘실에게 군대식으로 지은 부름이였다.

문춘실도 그 부름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사령관》답게 더 많은 짐승들을 길렀고 또 번식시키는데서 더없는 기쁨을 찾았다.

사실 그는 일흔살이 가까운 나이에 집안살림을 도맡아안고있었지만 살림살이를 그야말로 기름지게 잘하였다.

함경남도의 어느 바다가마을에서 태여난 그는 북관녀인답게 승벽심과 생활력이 강하면서도 통이 크고 알뜰하였으며 료리솜씨 또한 기가막힐 정도였다.

그는 자기의 딸이 공장의 큰 일군이라는 자부심으로 은근히 어깨를 높이기도 하였지만 인정많고 경우가 밝아서 싫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집정돈을 다 끝낸 다음에야 집안에 들어온 그는 아래웃방을 둘러보며 집이 마음에 든다고 말하였다.

세면장에서 세면을 하고 나온 백상익이 가시어머니의 말을 제꺽 받았다.

《정말 마음에 들지요? 어머니?》

백상익은 길쑴한 얼굴에 웃음을 담고 청굵은 목소리로 물었다.

사위를 돌아보며 문춘실은 머리를 끄덕였다.

《어째 마음들지 않겠소. 영 좋슴메.》

그는 억양이 센 북관사투리로 대답하였다.

사위의 물음이 자기가 해놓은 일에 대하여 칭찬을 바라는 아이적 마음이 담겨져있음을 어렵지 않게 깨달은 그였다.

딸과 사위의 문제에서는 언제나 사위의 편에 서군 하였고 사위가 하는 일이라면 무작정 두손들어 찬성하는 문춘실이다.

송영숙은 어머니의 칭찬에 으쓱해진 남편을 부러 심술궂게 흘겨보았다. 남편은 깨고소한 웃음을 지어보이더니 장난스럽게 한쪽눈을 찡긋했다.

송영숙은 그만 웃음이 터져나와 호호 웃고말았다.

남편은 얼마후 휴식도 할겸 공장마을을 돌아보겠다면서 딸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송영숙이 전실과 복도를 청소하고 방안에 들어오니 문춘실은 옷장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옷가지들을 정돈하고있었다. 갑자기 이사하면서 서둘러 꿍져넣었던 옷가지들이였다.

송영숙도 어머니앞에 마주앉아 딸애의 옷보자기를 펼쳐놓았다.

딸애의 체온이 슴배인 꽃수건 같은 옷가지들을 차곡차곡 개여놓던 그는 어머니가 그린듯이 앉아있는것을 느끼고 눈길을 들었다.

다음순간 가슴이 쿵- 울렸다. 어머니가 마디진 두손으로 정히 쓰다듬고있는것은 전사한 아버지의 군복이였다.

송영숙은 마음속으로 《아버지!》하고 불렀다.

오래간만에 전사한 아버지의 대위령장이 달린 군복을 보는 그의 마음은 류달리 높뛰였다. 그는 앉은 몸을 밀며 군복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체취가 느껴지는 군복의 앞자락이며 팔소매를 정히 쓸어만졌다. 손바닥을 거쳐 따스한 체온이 느껴지는듯 했다.

송영숙은 지금도 아버지의 체취를 기억하고있었다.

그것은 소독약냄새가 섞인 땀냄새였다.

송영숙은 어머니가 그 군복을 보자기에 정히 싸서 옷장안에 넣은 다음에도 오래동안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의 아버지 송천하의 고향은 38도선을 눈앞에 둔 개성이였다.

분렬된 조국의 아픔을 그 누구보다 뼈아프게 체험한 아버지 송천하는 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희망대로 의학대학에 입학하였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조국통일의 성전에 한몸 다 바칠 열혈의 꿈을 안고 조선인민군대에 입대하였다.

군인이면서도 언제나 학구적이고 진취성과 향학열이 높았던 송천하는 강원도의 전연지구에 위치한 어느 인민군부대에서 군의로 복무하였다.

어느해 출장길에서 그는 몸매 갈람하고 웃음많은 한 처녀를 알게 되였다. 열정적인 성격에 노래 잘 부르고 손풍금을 잘 타는 그 유치원교양원처녀와 결혼한것은 이듬해 가을이였다.

그들사이에서 송은숙이라고 부르는 맏딸과 작은딸 영숙이가 태여났다.

송천하는 자기의 두 딸을 무척 사랑하였다. 그러나 사랑하는 두 딸과 안해가 기다리는 집보다 군인들의 병실에서 생활하는 날이 더 많았다.

아버지가 집에 오는 날은 명절이였다.

어머니도 그날이면 집안팎을 알뜰히 거두고 두 딸에게 고운 옷을 갈아입히였다. 그리고 경쾌한 칼도마장단을 울리며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남쪽지방사람인 아버지는 생채나 랭료리보다 더운 음식을 좋아했는데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미에 맞게 볶음을 잘 만들었다.

화끈 달아오른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볶음을 만들 때면 기분좋은 소리와 함께 맛있는 냄새가 온 집안에 풍기군 하였다. 그러면 어린 영숙은 아버지가 집에 오신다는것을 제꺽 알아차리군 하였다.

영숙은 나비처럼 춤추며 마당가로 달려나갔다. 그리고 마을앞에 키높이 자란 황철나무아래에 옹송그리고앉아 아버지를 기다렸다.

군부대병실쪽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엎어질듯 달려가군 하였는데 그러면 아버지는 억센 두팔로 막내딸을 닁큼 안아들군 했다.

군복에 슴배인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며 집으로 돌아오던 그날을 어찌 잊을수 있으랴.

아버지는 두 딸에게 어려서부터 책을 사랑하는 습관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재미나는 책들을 가져다주면서 열심히 읽도록 하였고 어떤 날에는 밤을 새워가며 우리 나라의 력사와 지리를 비롯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두 딸에게는 아버지의 팔베개를 베고 흥부와 놀부에 대한 이야기며 효녀 심청이와 춘향이 그리고 강감찬, 을지문덕, 리순신장군의 이야기를 비롯해서 력사에 이름을 남긴 녀성과학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가 제일 좋았다.

어느날 큐리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마리 큐리는 뽈스까가 낳은 딸이다.

우리 나라에도 큐리부인과 같이 조국을 지키구 빛내인 훌륭한 녀성들이 많단다. 그들은 모두 조선이 낳은 딸들이지.… 은숙이와 영숙이도 공부를 잘해서 이다음 우리 나라를 지키고 빛내이는 좋은 일을 많이 해야 한다.…》

새별눈을 반짝이며 아버지의 말을 듣는 영숙의 어린 가슴은 이름할수 없는 충동으로 콩콩 높뛰였다.

그는 아버지의 말을 입속으로 조용히 되뇌여보았다.

《조선의 딸… 조선이 낳은 딸…》

그후에도 그는 이 말을 자주 곱씹어보았다. 그러면 웬일인지 자기의 키가 한뽐씩 자라는것 같았고 지혜의 샘도 퐁퐁 솟아오르는것 같았다.

무엇인가 크고 성스러운 일에 자기를 깡그리 바치고싶은 충동으로 가슴을 울렁거리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이야기속에 나오는 남복차림에 말을 타고 달리는 설죽화가 자기처럼 생각되기도 하였고 인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닌 등불처녀 나이팅게일처럼 무엇인가를 위해 밤을 새며 새날을 맞이하고도싶었다.

참으로 아버지의 이야기는 영숙을 꿈많은 처녀로 성장시켜주었다.

어머니는 찬찬한 성미인 큰딸은 남편처럼 의사로 키우고 곱게 생긴 막내딸은 음악가나 예술가로 키우려고 생각하였다.

안해의 생각을 아버지는 적극 지지해주었다.

《난 반대없소. 우리 은숙이는 군의로 키우고 막내 영숙이는 인민군협주단 작곡가로 키우고…》

그러나 영숙은 음악가로 자라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꿈에는 아랑곳없이 늘쌍 집짐승들과만 놀았다. 어머니가 메워주는 손풍금은 아무리 봐도 집짐승들을 데리고 노는것보다 재미나지 않았다.

노래를 불러도 그는 닭장이나 토끼우리앞에서 노래를 불렀고 춤을 춰도 강아지나 오리를 데리고 놀면서 나비처럼 팔랑거렸다.


양지쪽창문가에 우리 집 토끼

잠만 깨면 호물호물 잘도 먹지요


어느날 그는 새끼토끼 두마리를 방안에 들여다놓고 언니와 같이 놀다가 그만 창문옆에 놓인 손풍금을 넘어뜨렸다. 빨간 눈을 깜박이며 큰 귀를 쫑긋하고 깡충깡충 뛰여다니는 새끼토끼가 손풍금뒤에 숨은것을 잡으려다가 그렇게 된것이였다.

손풍금덮개가 떨어진것을 보고 언니는 겁이 나서 왕 울음을 터뜨렸다.

뒤뜰에 심은 약초밭의 김을 매던 어머니가 놀라서 뛰여들어왔다.

공교롭게도 그 순간에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어머니는 무슨 장난질인가고 두 딸을 꾸짖었다. 동생이 안아들여온 토끼를 데리고 놀았던 언니는 그냥 울면서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영숙은 앵두입술을 옥물고 머리 한번 가로 젓지 않았다.

어머니는 방바닥을 두드리며 욕을 하였다.

《또 이런 장난질을 하겠니, 응?》

했으나 작은딸은 여전히 새침한 기색으로 버티기를 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상 재미나는 놀이가 없었고 토끼와 함께 뛰여노는 장난을 그만들것 같지 못했던것이다.

끝내 작은딸에게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어머니는 웃는 얼굴로 조용조용 타일렀다.

《짐승들을 깨끗한 집안에 들여오면 안된다. 알겠니?》

그제서야 영숙은 머루알같은 눈망울을 반짝거리며 머리를 까딱까딱 하였다.

언제인가 집에 오셨던 할머니는 장난 세차고 류달리 고집이 센 작은 손녀를 보며 혀를 찼다.

《우리 작은손넨 승질이 괄구 고집이 너무 세서…》

그래도 좋았다. 집짐승을 데리고 맘껏 놀수만 있다면…

부모가 바라는대로 어릴 때부터 동네아이들에게 솔잎침도 잘 놓아주고 모래약도 지어주던 맏딸 은숙이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의학대학 학생이 되였다.

그러나 영숙은 음악대학이 아니라 수의축산대학을 지망하여 어머니를 깜짝 놀래웠다. 어머니는 당장 음악대학으로 지망을 바꾸라고 강요하였다.

아버지만은 작은딸의 희망을 지지해주었다.

영숙이가 대학으로 떠나는 날 아버지는 군부대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역전에까지 나와서 그를 바래주었다.

그날 아버지는 막내딸의 크고 정기어린 눈동자를 기대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영숙아! 세상에서 제일 성스럽구 아름다운 일은 조국을 위해 자기를 다 바치는것이란다.

공부를 잘해라! 그래서 이다음 우리 나라 가금업의 기둥감이 되거라! 아버진 널 믿는다.…》

그러나 이것이 막내딸에게 한 마지막말이 될줄은 누구도 몰랐다.

언제나 병사들의 건강을 위해 험한 벼랑길도, 수십리 밤길도 마다하지 않던 아버지는 전연지구에 매설된 적들의 지뢰에 의하여 마흔일곱살의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전사하였던것이다.

한생토록 조국을 지키고 빛내이기 위해 불같이 살다가 불같이 희생된 아버지였다. 그 누구보다 나서자란 이 땅을 사랑하고 통일된 조국의 부강번영을 바라고 또 바라던 아버지였다.

영숙은 훌륭한 아버지의 모습을 언제나 잊지 못하였다.

대학으로 떠나는 날 자기를 바래주며 하시던 말씀도 항상 명심하였다.

대학 전과정을 최우등으로 마치고 학위를 받던 날에도,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던 날에도, 한개 공장의 지배인으로 임명된 날에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아버지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군 하였다.

오리공장 기사장으로 임명받은 날에도 이렇게 마음속으로 속삭였다.

《아버지! 오리공장은 우리 나라 가금업의 새 력사가 깃든 크나큰 공장이예요. 난 그 공장의 기사장이 되였어요. 아버지의 말씀을 명심하고 더 많은 일을 하겠어요.…》

어렵고 힘든 날이면 더욱더 크게 안겨오는 아버지의 모습이였다.

영숙은 지치고 힘들어 쓰러졌다가도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입술을 옥물고 일어나군 하였다.

한생토록 아버지의 당부대로 살기 위해 자기자신을 채찍질하였다.

지금도 송영숙은 길지 않은 한생을 조국수호의 길에 다 바친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며 나라의 가금업발전에 이바지하는 큰 일군이 되리라 굳게 다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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