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2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9


간호원들이 대기실에 나온 강학선과 권일학에게서 수술복을 벗겨주었다. 강학선이 먼저 대기실의 장의자에 몸을 실으며 주저앉았다.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권일학이 역시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을 소매로 문지르며 그옆에 무너지듯 기대앉았다.

누가 먼저 그랬는지… 한동안 말없이 마주보던 두사람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소리없이 웃기 시작했다.

《기술부원장선생!》

《과장선생님!》

강학선은 두눈에 배여오르는 뜨거운것을 감추지 않았다. 진정 마음껏 울고싶은 심정이였다. 편협하고 속이 좁았던 옹고집쟁이, 자고자대와 교만으로 자기자신까지 기만하고 인간적인 도의마저 저버렸던 이 속된 강학선…

그도 지금껏 의사의 사랑에 대하여 자기나름의 고집을 세워왔었다.

그래서 신인의사들에게 이렇게 가르치기도 했다.

《환자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라. 의사의 정성과 인정은 환자의 생명을 구원한다!…》

그러나 여기에 무엇인가 부족되는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사랑이였다.

동정이나 위안만 주는 값싼 사랑이 아니라 자기를 바치는 사랑, 피와 살까지도 깡그리 바치는 그런 참된 사랑이 필요한것이다.

그가 모르는것이 또 있었다. 그것은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8시간, 때로는 12시간도 계속되는 피나는 수술로 바쳐지는 의사들의 진정한 사랑이나 서로의 우정과 의리를 지키는 동지적인 사랑, 청춘남녀의 살틀한 련정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크고 뜨거운 사랑의 밑바탕에는 모성의 진통처럼 사랑을 낳아 키우는 아픔이 동반된다는것을 모르고있은것이였다.

《과장선생님.》 뒤에서 누군가 갈린 소리로 찾고있었다. 《정말 잘했습니다!》

서범천이였다. 입귀에 구름같은 미소를 가득 피워올리며 오기화와 함께 그에게 다가왔다.

강학선이 놀란듯 오기화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어떻게 여길?…》

오기화가 눈굽을 찍으며 말했다.

《정철이 아버지가 알려주더군요.》

서범천이 여전히 구름같은 미소를 피워올리며 너스레를 떨었다.

《과장선생님, 경철이 어머니가 오늘 저녁 우리모두를 집에 청하는구만요. 수술이 성과적으로 되였다는걸 알고 너무 기뻐서 막 울더라니까요.》

강학선은 안해가 손에 들고있는 네모난 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고급제품이 들어있을상싶은 화려하고 정교한 곽이였다. 저건 또 무엇일가?

남편의 속마음을 읽은듯 오기화가 얼른 눈굽을 훔치며 그 곽을 내밀었다.

《여보, 이걸 받으세요. 정철이 아버지가 구해온거예요.》

《이건 뭔데?…》

그는 안해가 내미는 곽을 열어보았다. 그것은 미세수술에 필요한 쌍극란관고정겸자였다. 이것은 란관단단문합술을 할 때 란관을 고정시키고 지혈시킬 목적으로 쓰이는 미세수술기구의 하나이다. 이전에 쓰이던 피줄봉합용겸자들은 규격과 압력, 고정법 등에서 미세성형수술을 하는데는 불리한 점들이 많았다. 최근에 새롭게 개발된 이 쌍극란관고정겸자는 이런것들을 극복하고 만든 새로운 미세수술기구의 하나였다.

강학선은 아무 말도 못하고 손에 든것을 들여다보기만 했다. 울대뼈가 오르내리고 두눈이 슴벅거렸다. 뭐라고 말하고싶었으나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를 지켜보던 서범천이 멀찍이 떨어져 눈가에 손수건을 가져가는 하경옥을 띄여보고 화제를 돌렸다.

《하선생, 선생은 또 왜 그러시오? 이 기쁜날 과장선생을 축하할 생각은 않고… 과장선생님, 이 하선생에게 욕 좀 하십시오, 쩍하면 울기만 하는 사람을.》

오기화가 다가오며 하경옥의 손을 꼭 잡았다.

《하선생…》

《경철이 어머니…》

그때 림숙정당비서가 밝게 웃으며 다가왔다. 임선해원장도 뒤따랐다.

《수고했네, 강과장. 수술이 아주 잘됐다면서?》

림숙정은 강학선의 두손을 힘껏 잡아주었다.

《비서동지.》 강학선이 머리를 떨구었다. 《절… 이 미련한 놈을 욕해주십시오.》

《욕하라구?》 림숙정은 소리내여 웃었다. 《욕이나 하는걸루 성찰가? 생각같아서는 몽둥이로 후려치고싶단 말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왜 모르겠습니까. 온 산원이 저를 위해 애써주었다는걸.… 전 오늘 다시금 자신을 돌이켜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만 똑 제일이라고 하던 미욱한 사람, 교만과 소총명에 눈이 어두워 자기의 모험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던 옹고집쟁이… 정말 부끄럽습니다. 전 오늘 수술칼을 쥔 의사들에게 있어 교만과 소총명 그리고 자신에 대한 과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금물이라는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림숙정이 그의 잔등을 쾅 때렸다.

《괜찮아. 그래서 우리모두가 강과장을 아껴주는거지.》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었다. 과장들과 의사들, 조산원, 간호원들, 지어는 박월선이 휘동해가지고온 환자들까지 수술장복도를 꽉 채웠다.

언제나 남보다 목소리가 큰 박월선이 이번에도 떠들어댔다.

《에구, 나도 이렇게 떠받들리우며 세쌍둥이를 낳아봤으면!…》

누군가의 핀잔.

《아주머닌 욕심두 많구만요.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구서두 세쌍둥이를 부러워하니.…》

《아니야. 그래두 세쌍둥이는 못 낳았다우. 하지만 난 우리 박현희간호장이라면 그 욕심을 서슴없이 양보할 생각이예요. 다음번 세쌍둥이는 분명 현희간호장이 낳을거예요! 안 그래요?》

사람들이 떠들썩하게 웃는 속에 뒤늦게 달려온 구급차운전사 주동국이 그들을 비집고 들어섰다. 그동안 주동국은 건강이 회복되고있었다.

그가 자기와 함께 온 녀대학생을 당비서앞으로 잡아끌었다.

《비서동지, 저의 누이동생이 비서동지를 찾아왔습니다.》

《나를?…》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새로 나타난 녀대학생에게 쏠렸다. 맑은 살결에 키가 늘씬한 그 처녀가 허리를 굽히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비서동지. 미술대학에서 공부하고있는 주은경입니다.》

《누구라구?》

주동국이 빙긋 웃으며 종이로 포장한것을 안고있는 은경이의 등을 떠밀었다.

《저의 누이동생입니다.》

림숙정이 팔을 벌리며 처녀에게로 다가갔다.

《자네 누이동생이라구?… 옳구만! 목소릴 들으니 우리 동국의 녀동생이 맞아. 그때 나에게 전활 했지? 오빠가 언제 오는가구.…》

《예.》

《거 보라구. 믿구 기다리면 그렇게 다 돌아오는거야. 그런데… 나를 만나러 왔다구 했지?》

주은경은 들고있는 꾸레미를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오늘 산원에서 우리 오빠가 실어온 세쌍둥이가 태여난다고 하기에… 그들에게 무엇을 가지고갈가 하고 생각다가 이 그림을 가져오기로 했습니다. 저의 졸업작품입니다.》

그는 정성껏 포장하여 안고온 그림을 펼치였다. 림숙정은 물론 원장과 권일학, 강학선이도 바싹 다가서며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평양산원의 보석주단, 그 사랑의 보석주단으로 의사, 간호원들에게 안겨 나란히 퇴원하는 세쌍둥이들, 그 애들의 행복한 미래인듯 아낌없이 쏟아지는 밝은 해빛, 세쌍둥이들의 발밑에는 이 산원을 떠받들고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처럼 진귀한 보석들이 빛을 뿌리고있었다.…

말없이 그림을 보고있던 림숙정이 목멘 소리로 말했다.

《정말 잘 그렸어. 그림에서 막 노래가 나오는것 같구만.》

그랬다. 그것은 찬가였다. 말없이 보는 그림이 아니라 평양산원에 대한 사랑의 노래였고 이 집에서 태여난 수많은 미래들에 대한 소리높은 례찬이였다.

권일학이도 머리를 끄떡이였다.

《그렇습니다, 비서동지.》

림숙정이 다시 그림을 들여다보며 임선해원장에게 물었다.

《원장선생, 이 그림을 어디에 걸가?》

《…》

누구도 대답을 못했다. 평양산원, 이 큰 건물의 어느 곳에 그림을 걸어야 의의있겠는지 재빨리 생각을 굴리고있었다.

림숙정이 또 말했다.

《참, 좋은 그림이야. 이런 그림은 누구나 다 보게 해야 해. 오늘 태여난 우리 세쌍둥이들은 물론이구.…》

《옳습니다.》 임선해원장이 말했다. 《비서동지,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적인 사랑에 의해 태여났는지 알게 합시다.》

《그래, 그래야지.》

주은경이 목메여 말했다.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원장선생님.》

처녀의 두눈에 맑은것이 고여오르고있었다. 권일학과 강학선, 하경옥이와 서범천 그리고 여러 과장, 의사들과 간호원들, 환자들까지도 눈굽이 뜨거워지는것을 느끼며 은경이가 그린 세쌍둥이의 모습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사랑하시라 (제65회) 사랑하시라 (제64회) 사랑하시라 (제63회) 사랑하시라 (제62회) 사랑하시라 (제61회) 사랑하시라 (제60회) 사랑하시라 (제59회) 사랑하시라 (제58회) 사랑하시라 (제57회) 사랑하시라 (제56회) 사랑하시라 (제55회) 사랑하시라 (제54회) 사랑하시라 (제53회) 사랑하시라 (제52회) 사랑하시라 (제51회) 사랑하시라 (제50회) 사랑하시라 (제49회) 사랑하시라 (제48회) 사랑하시라 (제47회) 사랑하시라 (제46회) 사랑하시라 (제45회) 사랑하시라 (제44회) 사랑하시라 (제43회) 사랑하시라 (제42회) 사랑하시라 (제41회) 사랑하시라 (제40회) 사랑하시라 (제39회) 사랑하시라 (제38회) 사랑하시라 (제37회) 사랑하시라 (제36회) 사랑하시라 (제35회) 사랑하시라 (제34회) 사랑하시라 (제33회) 사랑하시라 (제32회) 사랑하시라 (제31회) 사랑하시라 (제30회) 사랑하시라 (제29회) 사랑하시라 (제28회) 사랑하시라 (제27회) 사랑하시라 (제26회) 사랑하시라 (제25회) 사랑하시라 (제24회) 사랑하시라 (제23회) 사랑하시라 (제22회) 사랑하시라 (제21회) 사랑하시라 (제20회) 사랑하시라 (제19회) 사랑하시라 (제18회) 사랑하시라 (제17회) 사랑하시라 (제16회) 사랑하시라 (제15회) 사랑하시라 (제14회) 사랑하시라 (제13회) 사랑하시라 (제12회) 사랑하시라 (제11회) 사랑하시라 (제10회) 사랑하시라 (제9회) 사랑하시라 (제8회) 사랑하시라 (제7회) 사랑하시라 (제6회) 사랑하시라 (제5회) 사랑하시라 (제4회) 사랑하시라 (제3회) 사랑하시라 (제2회) 사랑하시라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