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5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2


그 시각 강학선은 여전히 프레스앞에 서있었다. 그는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된 얼굴을 씻을념도 안하고 부지런히 뻘겋게 단 쇠를 프레스밑에 들이밀었다.

《이젠 들어가지 않겠나.》

돌아보니 여기 년장자이고 언제나 자기를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최아바이였다.

《벌써 교대나왔습니까?》

《그렇네. 자, 엎어진김에 쉬여간다구 여기 좀 나앉으라구.》

최아바이가 손에 들고온 꾸레미를 한쪽구석에 펴놓으며 그에게 손짓했다.

《그건 뭡니까?》

《글쎄 왜가리처럼 넘겨다보지만 말구 어서 오라니까.》

강학선은 여기저기 널려져있는 소재들을 주어다가 한곳에 모아놓고 아바이에게로 다가갔다.

최아바이가 먼저 그릇에 부은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목구멍의 먼지를 씻어내는데는 이 염소우유두 괜찮다네. 자, 어서 쭉 내게.》

강학선은 그가 내미는 그릇을 받아 입을 떼지 않고 천천히 기울였다. 향긋하고 비릿한 우유맛이 입안에 가득찼다.

아바이의 입귀가 흐뭇하게 벌어졌다.

《괜찮아!…》

단번에 깔깔하던 목구멍이 시원히 열리는것만 같았다. 빈그릇에 다시 염소우유를 부어놓은 아바이가 이번엔 커다란 남비에 담은것을 그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이건 순두부야, 산원에 갔던 딸이 돌아왔다구 로친이 앗은거네. 경사가 나서 동네방네 다 데려다 먹이고있지. 아, 글쎄 의사선생에게두 식기 전에 어서 가져다주라면서 생야단을 하지 않겠나. 원, 로친두… 그게 다 고마워서 그러는거지.》

그릇에 넘어날듯 무둑히 담겨있는 하들하들한 순두부, 그옆에 곁들인 파와 마늘을 다져넣은 양념장… 소박한 음식이지만 이 순두부는 여기 사람들이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만들어먹은 음식들중의 하나였다.

최아바이가 그에게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자, 식기 전에 어서 들게나.》

《고맙습니다, 아바이. 매번 이렇게…》

《원, 무슨 소릴! 어서 들기나 하게.》

양념장을 듬뿍 치고 하들하들한 순두부를 한입 떠넣은 강학선은 몸에 밴 의사의 직업적인 본능으로 물었다.

《그래, 산모는 지금 어떻습니까?》

최아바이의 주름진 눈가에 밝은 웃음이 피여났다.

《건강하네. 손자녀석도 썩 잘났구.》

《됐구만요. 산모와 갓난애기가 다 건강하니…》

《그게 다 평양산원의 덕분이지. 산원이 아니였더라면 우리 애가 어떻게 될번 했나?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야.》

산원으로 가기 전 최아바이의 딸은 태반조기박리로 상태가 매우 중했었다. 이런 임신부인 경우엔 대체로 해산할 때 이완성출혈을 동반하면서 산모와 태아의 생명이 다같이 잘못될수도 있었다.

강학선은 그때 자기에게 달려온 최아바이의 말을 듣고 임신부가 위급하다는것을 단번에 깨달았다. 정신없이 달려가 임신부를 진찰하고는 사람들에게 막 소리쳤다.

《빨리 평양산원에 전화하시오! 빨리 해야 돼.》

사람들이 어쩔바를 몰라하는것을 보고 또 정신없이 달려가 자기가 직접 평양산원구급과에 전화를 했다. 임신부의 상태로 보아 오직 평양산원에서만 대책할수 있다는것, 즉시 구급차를 보내야 한다고 막 고함지르듯 했다.

그쪽의 대답을 받고서야 이마의 땀을 손으로 씻었다. 자기를 바라보는 최아바이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평양산원의 유능한 박사들과 의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꼽아갔는데 그중에는 하경옥의 이름도 있었다.

그때일을 상기하며 최아바이가 축축히 젖어드는 눈굽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정말 고마운 일이지. 옛날부터 녀자들이 몸을 풀 때면 친정집으로 간다고 했네. 그 친정어머니가 기술이 있어 그랬겠나? 아닐세. 어머니들만이 자기 딸의 고통을 덜어주고 리해해주기때문이였지. 그런데 그 친정어머니를 평양산원이 대신해주고있으니… 정말 이 고마움을 어떻게 다 말할수 있겠나. 그 고마움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그래서 나두 그렇구 우리 로친두 그래 온 공장사람들이 그 평양산원 의사였던 자네를 이렇게 아껴주고 위해주고싶어하는거네.》

강학선은 숟가락을 든채 눈길을 떨구었다. 진실하고 때묻지 않은 사람들!… 내가 과연 깨끗한 이들의 그 진정을 받을만 한 사람이란 말인가?

문득 며칠전에 찾아왔던 안해의 얼굴이 떠올랐다. 작업복을 입고 남편이 서있는 단조직장까지 왔던 안해, 그는 여러가지 생활필수품들과 쑥을 넣어 만든 배띠, 심장에 좋다는 약도 내놓으며 말했었다.

《이건 모두 2산과 의사들과 간호원들 그리고 서범천선생이 보낸거예요. 그리구 이 약은 정철이 아버지가 보낸거구요.》

《권일학이?…》

강학선은 안해가 내미는 약을 들어 눈앞으로 가까이 가져갔다. 언젠가 권일학 그가 직접 구해가지고왔던 귀한 약이였다.

그는 약통을 들여다보며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약들이 계속 필요한가.…》

한동안 말이 없던 안해가 젖은 눈길을 들었다.

《산원에선 모두 당신의 일을 두고 가슴아파하고 걱정하고있어요. 정철이 아버진 내가 당신에게로 떠난다니까 그 바쁜 속에서도 뻐스정류소까지 따라나와 바래주며 신신당부하더군요. 당신이야말로 우리 산원의 유능한 의사라고, 미세수술에서 유명한 당신의 손은 보배손이라고, 그래서 앞으로 돌아와 그 손으로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며…》

그때 강학선은 말없이 미간을 모았었다. 선우금숙환자의 실패한 미세수술이 떠올랐던것이다. 또다시 우울해지는 마음… 강학선은 마음속깊은 곳에서 울리는 내심의 목소리에 또다시 몸을 떨었다. 과연 내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진정 나의 과오는 환자의 눈물겨운 호소때문인가? 과연 그뿐이였던가?…

그는 그날의 모험적인 수술에 자기자신을 내세우고싶은 공명심과 남들을 깔보는 소총명이 숨어있었다는것을 지금도 부정하지 못했다. 진정 그 수술은 참된 의사의 량심만을 안고 모험한것이라고 지금도 떳떳이 말할수가 없는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것을 랭정하게 들여다본 권일학이 두렵고 그와 마주서는것을 그처럼 괴로와하는것이다.…

최아바이가 그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무슨 생각을 하나? 어서 들게. 그냥 식히지 말구.》

《예.…》

공장지배인이 급하게 그를 찾은것은 바로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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