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4 장 책임한계


11


산원의 복강경수술장에서 첫 림상수술을 시작한다는 보고를 받은 윤일국장은 한순간 입술을 꽉 깨물고있다가 가까스로 숨을 톺으며 남의 목소리같이 말했다.

《림상수술?…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소? 뭐 산원과학평의회?… 그래서?… 누가 주장했다구? 기술부원장이?》

그는 힘들게 저쪽의 대답을 끝까지 들었다. 권일학 그 사람이 끝내!… 강학선의 문제도 복잡하게 만들더니 또 무슨 일을 치자고 그러는가?…

《됐소. 내 곧 나가겠소.》

그는 차를 타고 산원으로 달려가는 동안 줄곧 불안하고 노여운 마음을 누를수가 없었다. 어째선지 임선해원장보다도 기술부원장 권일학의 말없는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무엇때문에 그가 이런 모험을 주장하고 내밀었는지 리해할수 없었다. 여기에 서범천이라는 그 젊은 청년이 학춤을 추었을것을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산원정문에서는 임선해원장이 기다리고있었다.

차에서 내린 윤일은 격해진 마음과는 달리 조용히 물었다.

《기술부원장은 어디 있소?》

《지금 복강경수술장에…》

《그럼 벌써 시작했단 말이요?》

《예.》

《이거 어떻게 된거요, 원장선생? 내 그만큼 말했는데 벌써 인체수술을 하다니?》

임선해원장은 여느때와 같이 평온한 얼굴이였다.

《국장동지, 인체수술이 아니라 복강경수술을 하고있습니다.》

《같고같은 소리지.》

그것은 거의나 맥빠진 소리였다. 그의 얼굴은 해쓱하니 질려있었다. 그 역시 나라의 의학기술을 최상의 경지에 올려세우려고 마음먹었고 가능한 모든것을 거기에 지향시켜온 사람이였다. 그래서 외국에 실습생들도 보내자고 했었다. 이런 그였기에 세상에서 사람을 제일 귀중한 존재로 여기는 우리 사회주의조국에서 절대적인 확신이 없이 인체에 손을 대는것만은 허용할수 없었다.

그러나 수술은 이미 시작되였다. 그걸 중지시킬수는 없다. 좋든 나쁘든 결과를 기다릴수밖에 없다.

《시작했단 말이지.…》

그는 갑자기 자기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것처럼 느껴졌다. 고질적인 부정맥이 오는것인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임선해원장에게 자기를 복강경수술장으로 안내하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그들은 천천히 홀을 지나 승강기쪽으로 걸어갔다. 서둘 필요가 없었다. 옴니암니 따지고 캐물을 필요도 없었다.

드디여 승강기는 9층에서 멎었다. 여전히 아무말없이 그들은 복강경수술장에 들어갔다. 마치 기다리고있었던듯 애어린 간호원이 멸균소독한 위생복을 재빨리 그들의 어깨에 씌워주었다.

진행되는 수술의 전모를 다 볼수 있도록 유리간막이를 사이에 둔 복강경수술장이였다. 그안에 꽉 들어찬 여러가지 전기설비들과 특수한 전자기구들이 갖가지 불빛신호를 깜박거리며 무엇인가를 자동적으로 알려주고있었다. 여기엔 수술조수도 보조간호원도 없다. 진풀색수술복을 입은 서범천이 단 한사람 기계수간호원과 함께 영상전송장치와 련결된 텔레비죤감시장치에 눈길을 박고 긴장하게 수술을 진행하고있었다.

서범천이 뭐라고 짤막하게 지시했다. 기계수간호원이 재빨리 그가 요구하는 수술기구를 섬겨주었다. 그뒤에서는 기술부원장 권일학이 서범천이와 마찬가지로 푸른 수술복이며 마스크까지 끼고 머리를 끄덕이고있었다.

윤일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간막이유리를 사이에 두고있는 눈부신 무영등의 불빛때문에 잘 알리진 않았지만 어쩐지 꽃같은 처녀로 느껴졌다. 저 처녀는 이것이 얼마나 위험한 수술인가를 알고있는지? 단 한번의 실수로 생명이 꺼질수도 있다는것을, 인체의 첫 림상도입은 극단한 경우까지 예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저 처녀가 알기나 하는지?…

다음순간 전신마취로 하여 죽은듯 누워있는 환자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던 윤일은 깜짝 놀라며 두눈을 흡떴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저게 누군가, 아니 저 애가?!…

수술대에 기척없이 누워있는 녀자는 자기의 조카딸 한송애였다. 그는 급히 안경을 벗고 유리간막이에 바싹 얼굴을 가져갔다. 분명 잠든듯 누워있는 처녀는 송애였다. 그 어느때든 웃음을 잃지 않는 쾌활한 처녀, 이 외삼촌앞에서까지 제멋대로 훈시질을 하고 지어 삿대질까지 해대는 활달하고 더펄거리는 처녀, 그 애가 지금 저 수술대에 누워있는것이다.

윤일은 저도 모르게 간막이문손잡이를 꽉 틀어쥐였다. 그리고는 신음소리를 삼키며 생각하였다. 지금 여기서는 위험한 림상수술을 하고있다. 사소한 소음도 집도자의 주의력을 흐려놓을수 있다. 미세하고 정교한 조작을 요하는 이 수술에서 가장 작은 손의 떨림도 몇십배로 증폭되여 실로 상상하기 어려운 엄중한 후과를 초래할수 있다. 그것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것이다.

임선해원장이 낮게 속삭이였다.

《국장동지, 어디 편치 않습니까?》

《아니, 아니요.》

가까스로 격한 감정을 누른 그는 애써 주의력을 집중하며 유리간막이 저쪽의 콤퓨터에 자동입력되고있는 화면을 살피기 시작했다. 서범천의 미세한 손놀림이 그 화면에 펼쳐지고있었다.

지금 하고있는 수술은 인체에서 그닥 중요치 않다고 보는 충수를 떼내는 적출술이였다. 그 어떤 소리없는 구령에 따라 가장 정확히 움직이는듯 한 손놀림… 어느덧 외투관을 통하여 들어간 내시경올가미가 충수근부를 홀쳐매고 조이자 미세가위가 조심히 충수를 절제한다. 이어 고주파쌍극응고기로 충수근부의 단단부를 응고소작한 다음 봉합실로 쌈지매몰봉합하고 종물주머니에 담겨진 충수를 복벽밖으로 꺼낸다. 윤일이 보기에도 모든것이 정확하게 진행되고있는듯 싶다. 지침기와 겸자의 사용, 그것도 나무랄데가 없다. 복강안을 깨끗이 세척하는것도 능숙하고 맵시나게 진행한다. 마지막으로 집도자는 복강안에 있는 탄산가스를 천천히 뽑고 투관침을 꽃았던 복벽부위를 반창고로 붙인다.

드디여 깨끗하고 솜씨있게 끝낸 복강경수술, 칼로 째지 않고 수술한 환자의 몸에는 거의나 눈에 잘 띄지 않는 두개의 작은 구멍만 있을뿐이다.

전자병력서에 환자의 초기상태와 실험결과 그리고 방금 끝낸 수술소견이 기록되고있다. 그렇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진행되였다.

윤일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너무 긴장했던탓으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지금껏 노엽게 여겼던것과는 달리 처음으로 하는 수술을 성과적으로 끝낸 서범천에 대한 고마운 마음으로 하여 가슴이 후더워졌다.

《재간은 있어, 저녀석이!…》

《예, 그렇습니다.》

긴장해있던 임선해원장도 안도의 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그때 수술장에서 대기하고있던 간호원이 밀차에 환자를 싣고 나왔다.

윤일은 밀차로 다가갔다. 마치 처음 보는듯 자기의 벌차고 사랑스러운 조카딸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마취에서 깨여나지 않은 처녀의 모습은 평온했다. 어떻게 이 애가 수술대에 올라갔는지 모를 일이다. 그가 이 애를 수술대에 눕혔다고 분노한것은 아니였다. 모험을, 무모하기 짝이 없는 모험을 반대했을뿐이다. 방금 지켜본것처럼 그것은 결코 무모한것은 아니지 않았던가. 그러면 나는 왜 그리도 불안해하고 격분했던것인가?…

그는 대기실을 지나 멀어지는 밀차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며 그뒤를 따라나온 권일학에게 물었다.

《수술이… 잘됐겠지?》

《예, 성공적으로 진행되였습니다.》

권일학은 몸을 돌리며 그에게 유리간막이 저쪽의 콤퓨터화면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저기에 다 나오지 않습니까.》

윤일은 물론 임선해원장도 방금 진행된 복강경수술장면이 다시 반복되고있는 콤퓨터화면에 눈길을 주었다. 지금까지 주의깊게 살펴보던 수술장면이였다.

오래 계속된 침묵, 갑자기 윤일국장이 머리를 뒤로 젖히며 크게 웃었다.

《복강경수술이라… 이것이 과연 그렇듯 위험한것이였던가?》

《국장동지.》

권일학이 의아해하며 입을 열었다.

《위험한거야 사실이 아닙니까. 그래서 국장동지도 생명을 두고는 그 누구도 모험할 권리가 없다고 강하게 요구했던것이 아닙니까.》

《그래, 그랬지. 그저 요구하는것이 아니라 절대 허용할수 없다고 막아나섰지. 하지만 여기선 그걸 해냈거던. 그럼 난 무엇을 못 보았던것일가?…》

이번에는 임선해원장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국장동지, 실은 저도 몹시 걱정했습니다. 어제밤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구요. 정말 사람이란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 자연히 소심해지는것인지.…》

윤일은 천천히 눈길을 옮겨 원장의 훤하고 둥그스름한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가 지금 자기를 위로하려 한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그였다.

생각에 잠겨 복강경수술장을 나선 윤일은 저도 모르게 송애가 있는 맞은편 입원실로 향했다.

그때였다. 복도에서 기다린듯 싶은 한 청년이 그들의 앞에 성큼 나서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모두가 놀란 눈빛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눈빛이 준수한 청년은 윤일국장과 임선해원장을 바라보고나서 권일학의 앞으로 다가왔다.

《기술부원장선생님이지요?》

권일학은 그 청년이 누군가를 기억해내려는듯 두눈을 가느스름하게 좁혔다.

《예. 그런데 누군지?…》

《전 선우금숙의 남편입니다.》

권일학은 불시에 한 녀인, 눈물에 젖어 영원히 아이를 낳을수 없다는 병원의 의학감정서를 요구하던 그 녀인이 떠올랐다.

한순간 구름이 낀듯 마음이 어두워졌다. 끝내 바라지 않던 일이 벌어지는것 같았다.

《그러니 동문…》 하고 그는 무거운 어조로 물었다. 《그 의학감정서때문에 나를 찾아왔습니까?》

뜻밖에도 청년은 자기를 지켜보고있는 윤일국장과 임선해원장을 바라보며 의미있는 웃음을 지었다.

《물론 그 문제때문에 기술부원장선생을 만나러온건 사실이지만 제가 여기서 기다린건 방금 복강경이라는 최첨단수준의 수술이 있었다는걸 알았기때문입니다.》

임선해원장이 청년에게 물었다.

《그래서요?》

《전 이 나라 녀성들을 위해서 위험한 수술대에 자기 애인을 눕힌 훌륭한 의사가 누군지 알고싶었습니다.》

의아한 눈길로 청년을 바라보던 윤일의 두눈이 굳어졌다. 뭐라구?!… 애인이라니? 그러면 우리 송애가 저 서범천이와?… 눈빛이 준수한 그 청년이 그들모두에게 다시 물었다.

《그 훌륭한 의사선생이 지금 어데 있습니까?》

마침 수술을 끝낸 서범천이 설비들의 정상상태를 확인한 다음 복도로 나오고있었다. 그는 자기앞에 서있는 윤일국장을 보고 놀라는듯 했다. 갑자기 나타난 그를 보고 미처 인사도 못하며 죄스러운듯 두손을 마주잡고있었다.

윤일이 미소를 지으며 청년에게 그를 눈짓했다.

《저 선생이요, 속이 엉큼하고 아주 어물한 사람이지.》

서범천이 두눈을 데룩거리며 이 사람, 저 사람 차례로 둘러보았다. 그처럼 엄하던 윤일국장의 얼굴에 왜 미소가 어렸는지, 어째서 낯모를 청년이 자기를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알수 없었다.

권일학이 어리둥절해있는 서범천에게 말했다.

《서선생, 이 동문 선우금숙환자의 남편이요. 서선생을 꼭 만나야겠다누만.》

《아니, 저를 뭣때문에?…》

임선해원장이 웃으며 청년에게 말했다.

《동무, 뭘하고있어요? 인살 하지 않구.》

《예.》

청년은 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서범천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그리고는 수술복차림 그대로인 서범천의 앞에서 뚝 멎어서더니 서글서글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의 진심으로 되는 인사를 받아주십시오.》

《?!…》

서범천은 뜻밖의 일이여서 입을 벌린채 굳어져있을뿐이였다. 도대체 무슨 일로 낯모를 청년이 이런 감사의 인사를 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던것이다.

청년이 뜨거운 입김을 쏟으며 계속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전 선생님이 자기 애인을 수술대우에 올려놓았다는 말을 듣고 정말 감동되였습니다.》

서범천이 약간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뭘요, 우리 시대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지요.》

《아닙니다.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저의 안해는 영원히 아이를 낳지 못하는 녀성입니다. 그래서 저도 마음 한구석이 괴로왔고 갈라지자는 안해의 제의에도 마음이 흔들렸었는데… 선생님! 제가 옹졸했습니다. 오늘 당장 그 의학감정서를 찾아 찢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의 평범한 녀성들을 위해서 모든것을 다하는 선생님의 그 마음을, 선생님의 큰 사랑을 저도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한생 안해를 끝까지 책임지고 사랑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주십시오!…》

비로소 사연을 깨달은 서범천이 두눈을 빛내이며 청년의 두손을 꼭 잡았다.

《고맙소, 동무… 정말 고맙소!》

청년은 뜨겁게 달아오른 눈빛으로 윤일과 임선해원장을, 다음은 그옆에 서있는 권일학을 쳐다보았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인젠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오늘 여기 평양산원의 의사선생님들에게서 진정 무엇이 사랑인가를 배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권일학은 자기도 모르게 목이 잠겨드는것을 느꼈다.

《고맙소, 동무!…》

청년은 여전히 잡고있던 서범천의 손을 힘주어 흔들며 말했다.

《선생님, 잊지 않겠습니다.》

서범천은 그저 말없이 입귀에 구름같은 미소를 짓고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년은 모든 사람들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시오, 동무.》

서범천에게서 물러난 청년은 몸을 홱 돌리더니 성큼성큼 복도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이윽고 고즈넉한 침묵이 깃들었다. 복도홀에서 해가림창살로 비쳐든 밝은 해빛이 정갈한 대리석바닥에 줄무늬를 그리고있었다. 누구도 말이 없었다. 그 무엇이라고 딱히 찍어 말할수는 없으나 가슴가득 차오르는 아름답고 진실하고 소중한것에 대한 느낌에 마음이 후더워지고있었다.

마침내 생각에 잠겼던 윤일국장이 서범천에게 물었다.

《동무이름이 서범천이지?… 이자 수술한 환자가 동무 애인이라는데 그 처녀 부모들하구 얘기가 있었소?》

《국장동지에게 미처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실 한송애동문 큰외삼촌인 국장동지에게만은 꼭 말씀드려야 한다고 했지만 어쩐지 반대할것만 같아서…》

윤일은 전류에라도 닿은듯 몸을 떨었다. 그러니 이 윤일은 젊은이들의 일에 사사건건 반대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불쑥 한밤중에 집으로 달려왔던 조카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송애는 서범천이 꼭 복강경수술을 성공하고야말것이라고 장담하며 의기양양해했었다. 그 애는 모든것을 믿고 랑만적으로 생각했던것이다. 그날에 벌써 저 수술대우에 자기 몸을 올려놓을것을 결심한것인지도 모른다, 생명을 내대야 하는 첫 림상수술에.…

윤일은 이윽토록 서범천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한때 그가 이런 젊은이들을 믿지 못하고 우려했던것은 무엇때문일가. 로숙과 원숙 그리고 분별이 결여되여있다고 생각해온 그것때문인가. 아니면 자기가 어느 영화에 나오는 부정적이고 보수적인 어떤 인간과 같기때문인가?

그는 자기 생각에 잠겨 희끗한 눈섭을 흠칫거렸다. 윤일은 지금껏 자기가 보건성 국장으로서 높은 의학적안목과 실력으로 아래단위들을 지도한다고 믿어왔었다. 당을 받들어 나라의 의학발전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친다고 믿어왔었다. 그런데 무엇인가 부족되는것이 있었다. 무엇인가 이 젊은이들과 다른것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때마침 간호원이 다가와 환자가 마취에서 깨여났다고 알려주었다. 윤일은 다시 입원실로 향했다. 임선해원장과 권일학, 서범천이 그의 뒤를 따랐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환자를 관찰하고있던 간호원이 그들에게 자리를 내여주었다. 방금 마취에서 깨여난 한송애는 웃고있었다.

《오셨어요, 외삼촌… 참 멋있었지요? 난 수술이라고 하면 칼로 째고 바늘로 꿰매고… 하여튼 무서운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한잠 자고나니 다 끝났거던요. 그리구 아무렇지도 않으니… 고마워요, 외삼촌. 외삼촌이랑 이렇게 첨단의술이 밀어주니까 우리 녀성들이 앞으로 얼마나 더 좋아지겠어요.》

《음, 그래…》

윤일은 눈시울을 슴벅이며 침대에서 흘러내리는 이불을 당겨 꼭 여며주었다. 그 어떤 따스한 정이 메마른 그의 가슴에 물결쳐 흘러드는것을 느꼈다. 참으로 훌륭한 청년들이다. 사랑을 위해, 진실을 위해 그리고 미래를 위해 위험한 수술에 자기 한몸을 내댄 이 애는 물론 이 더퍼리같은 처녀를 사랑하고 무한히 아껴주는 저 평범한 청년 서범천이도… 그윽한 감동의 물결이 그의 가슴을 적시고있었다.

흔히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기력이 진하고 그만큼 보수적인 인간으로 된다고 한다. 그래서 자리지킴을 하고 새것을 방해하는것인지.… 아니, 그것이 아니였다. 단지 자리지킴때문이 아니라 그는 자기가 이들 젊은이들처럼 강렬하게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못했다는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이와 더불어 맥이 빠지고 사랑도 연소된것이다. 그러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이 나이에 와서 그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하는것은 또 무엇때문인지.

그는 지금당장 그 물음에 대답할수 없었지만 온 나라의 녀성들과 소리쳐 우는것밖에 모르는 애기들, 바로 선군의 미래를 한품에 다 안고있는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사랑의 집인 여기 평양산원에서는 매일같이 뜨거운 인간사랑의 노래가 끝없이 울리고있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닫고있었다.

《국장동지.》

임선해원장이 가만히 불렀다. 그는 흠칫하고나서 원장과 그옆에 서있는 권일학을 둘러보았다.

《아, 내가 그만 저 혼자 생각만 했구만.》

이어 그는 서범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소리없이 웃었다.

《송애야, 보아라. 난 이 서범천선생이 마음에 든다. 하나도 반대가 없다.》

《외삼촌!》

《국장동지!》

두사람이 동시에 부르짖었다.

《고맙습니다.》

모든 사람들의 눈길이 행복에 울고웃는 두 젊은이에게 쏠리고있었다. 원장과 권일학이도 두눈을 슴벅거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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