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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18일

평양시간


(제 44 회)


제 4 장 책임한계


10


서범천은 복강경수술에 앞서 마취를 기다리고있는 한송애와 눈길을 마주하고있었다.

《무섭지 않소?》

《아니요.》

처녀는 조용히 웃으며 머리를 저었다.

맑고 진지한 두눈, 아무렇지도 않은듯 한 표정… 지금 서범천은 이 처녀에게서 무엇을 제일 아름다운것으로 보았는가고 누가 물으면 대답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는 이전에도 한송애에게서 무엇인가 기억에 남는 류다른 특징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웬일인지 모든것이 뒤범벅이 되군 하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이 드는 녀자는 모든것이 한덩어리로 아름답게 보이는것인지도 모른다. 남달리 눈이 호수처럼 깊고 검다거나 목소리가 살뜰하다거나 작은 입가에 아릿한 미소가 줄곧 사라지지 않는다거나 하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의 흰소리를 질색하는 그였다.

그는 믿고있었다. 가장 진실하고 뜨거운 사랑은 교태를 모른다고, 구태여 자기를 잘 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하기에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처녀가 누구냐고 물으면 서슴지 않고 한송애라고 대답할것이다. 그리고 그 처녀의 무엇이 아름다운가고 누군가 캐묻는다면 이렇게 말할것이다.

《무엇이?… 그걸 어떻게 단마디로 다 말할수 있겠소. 아름답게 보면 다 아름다운거지.》

이런 생각에 잠겨 느긋하게 웃고있던 서범천은 벌써 몇번이나 했는지 모를 말을 또 외웠다.

《송애, 고맙소!》

《원 참, 밤낮 같은 소리만!… 그밖에 다른 말은 정 할게 없는가요?》

《음… 그담 무슨 말을 또 한다는거요?》

한송애는 더이상 참을수 없는듯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어대였다.

《정말 할수 없다니까. 그럼 동무가 좋아하는 그 얘길 또 하자요. 그래 복강경수술이 어떻다구요? 위험하다구요?》

《그렇소. 자칫 잘못하면 생명을 잃을수도 있단 말이요.》

《어마나! 꽤나 무섭게 말하는군요.》

한송애는 다시금 깔깔 웃었다. 물론 처음 하는 그 일이 위험을 동반한다는것을 모르는 그가 아니였다. 그러나…

한송애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리고는 서범천의 손을 끄당겨 꼭 쥐였다.

《전 동무를 믿어요. 그리구… 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은 죽은 사람도 일으켜세운다고 했어요. 동무가 날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뭐가 두려워요?》

《고맙소!》

《또 같은 말!…》

《그래도 백번천번 하겠소. 송애, 정말 고맙소. 동무가 날 그렇게 믿어주는것이 고맙구 기쁘구 또 행복하구.》

그들은 서로의 두눈을 마주보았다. 그 이상 더 할말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말이 아무짝에도 쓸데 없다는것을 그들은 알고있었다. 사랑과 믿음, 그것이면 되였다.

수술시간이 되였다고 간호원이 알렸다. 한송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서범천을 바라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다시금 뜨겁게 부딪쳤다.

《!…》

《!…》

그들은 불현듯 자기들의 마음속에 후더운 물결이 흘러드는것을 느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서로에 대한 한없는 귀중함, 크나큰 믿음과 사랑, 한순간에 두 마음이 하나로 합쳐지는듯 한 뜨거운 충동…

그때였다. 손기척소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리더니 품에 무엇인가를 안은 간호원들이 밖에서 소리쳤다.

《선생님, 이것 보세요. 비둘기예요, 비둘기!》

《글쎄 우리 복도창문으로 이 비둘기가 날아들어왔거던요!》

서범천이 한송애의 손을 잡아끌며 복도로 뛰쳐나왔다.

《비둘기가 날아들었다구?!》

그는 무작정 간호원의 손에서 비둘기를 받아안으며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이거 아주 좋은 징조다. 그렇지?》

《예, 선생님의 첫 수술을 축하해주러 온게 아닐가요?》

《옳아, 우리 복강경수술의 성공을 위해서 하늘이 내려보내준거야.》

서범천은 구구거리는 비둘기의 보드라운 털을 쓸어만지다가 볼에 비벼대기까지 했다.

《요거, 막 고와죽겠는데! 이것 보오, 송애동무, 얼마나 귀엽소. 응?》

간호원처녀들이 웃어대고 한송애도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아이참, 이럴 땐 꼭 어린애같군요.》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있던 서범천은 노래의 한구절을 재빨리 뽑았다.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손풍금소리… 아니, 비둘기야 더 높이 날아라!》

또다시 터진 웃음소리, 그런데 새침데기 간호원이 느닷없이 크게 말했다.

《가만, 암만 봐야 이건 우리 운수과의 비둘기같애요. 운수과에는 이런 비둘기가 서른마리씩이나 있거던요. 내가 봤어요!》

《오, 맞아!》

《정말?!》

《구급차운전사들이 기르는 비둘기 말이지?》

《그럼 빨리 놔주자.》

《그래, 놔주자요, 서범천선생님.》

서범천은 두눈을 잔뜩 흡떴다.

《운수과의 비둘기? 그래서 놔준다구? 안될 소리! 이게 어디서 날아온 비둘기인지 누가 어떻게 증명한단 말이요. 자, 여기에 뭐 써놓은것이라도 있소? 이 비둘긴 오늘부터 우리 복강경수술장의 비둘기요. 알겠소? 간호원 김선희, 당장 식당에 가서 비둘기에게 먹일 콩이랑 좀 얻어오라구. 춘선동문 이 비둘기가 목이 마르지 않게 물을 떠오구.》

간호원처녀들을 밀어놓고 홀에 있는 베란다로 나간 서범천은 구석에서 실험용동물들을 넣어두군 하던 작은 나무통에 비둘기를 단단히 비끄러매놓았다.

《자, 이렇게 며칠 있으면 보금자리에 정이 들거요. 먹이두 주구, 청소두 해주구. 그런데…》

그는 간호원처녀들을 돌아보며 낮게 수군거렸다.

《이건 비밀이요. 여기에 비둘기가 있다는걸 절대 운수과가 몰라야 한단 말이요, 알겠소?》

한송애가 어처구니 없는듯 소리내여 웃었다.

《서범천선생, 남의 비둘기를 그렇게 훔치면 되겠어요? 당장 놔주세요.》

《아니, 훔쳐오다니, 제발로 날아들어온건데.… 이것 보란 말이요, 벌써 우리에게 정을 딱 붙이고 구구거리는걸.…》

목둘레에 푸르스름한 털장식을 두른 회색의 비둘기는 하늘을 날려고 자꾸만 푸득거렸다. 그러나 발에 매놓은 끈때문에 더 날지는 못하고 주저앉군 했다.

한송애가 그에게 눈을 흘기며 핀잔조로 말했다.

《동무 눈엔 보이지 않아요, 이 비둘기가 얼마나 외로워하는지? 저것 보세요, 날고싶어서 안타깝게 하늘을 쳐다보는걸.…》

《무슨 소릴 하는거요? 이 비둘긴 하늘에서 내려보내준건데.》

그야말로 생억지였다. 어린애같은 서범천의 고집에 처녀는 다시 미소를 지었다. 일단 마음을 붙이면 끝까지 붙들고 놓지 않는 청년, 정을 주기 좋아하고 또 떼지 못하는 사람, 아마도 그래서 그는 우리 녀성들의 몸에 보기 흉한 흠집을 전혀 내지 않는 어려운 복강경수술을 기어이 해내려고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한송애는 비둘기에게로 다가가 발목에 매놓은 끈을 풀어주었다.

서범천이 놀란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건!…》

한송애는 대답대신 두손에 감싸쥔 노끈마저 베란다너머로 던져버렸다. 그때 구구소리를 내며 창턱에서 아장바장 노닐던 비둘기가 갑자기 푸드득- 하늘로 날아올랐다.

간호원처녀들이 《야!-》하고 환성을 질렀다.

창공높이 날아오른 비둘기는 훨훨 나래를 치더니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운수과쪽으로 날아내렸다.

《저것 봐! 제 집으로 갔어. 우리 가볼가?》

간호원들이 손벽을 치며 깔깔거렸다.

그때 기술부원장 권일학이 그들에게로 다가왔다.

《아니, 여기선 왜 이렇게 떠드오?》

대번에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권일학이 서범천에게 나무라는 눈빛을 던졌다.

《서선생, 수술준비는 어떻게 됐소?》

《예, 다됐습니다.》

여전히 서범천은 웃고있었다. 입을 벌리고 소리없이, 두눈을 찌긋하며 아주 흐뭇해서 웃고있었다. 그를 의아한 눈빛으로 지켜보던 권일학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음, 웃는걸 보니 좋구만, 아주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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