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0 회


제 11 장


5


김윤화는 관리국으로 떠나갔다. 그런데 다음날 관리국에서 시당으로 가더니 그다음에는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하루이틀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도 없었다. 누구도 지배인이 어디로 갔는지 몰랐다. 비판검토를 받는 중이라고도 하고 해임되여 사람들을 보기가 괴로와 어디엔가 가버렸다는 소리도 돌았다. 공장은 지배인이야기로 뒤숭숭해졌다. 그동안 송명식은 온 공장을 다시 고무바닥운동화생산에로 떠밀어갔다. 온 공장에 그의 급한 발자국소리와 높은 목소리가 떠돌았다. 그리하여 공장은 이틀만에 다시금 옛날의 고무바닥운동화생산체계와 능력을 되살렸다. 공장안에 다시금 고무냄새가 떠돌고 고무바닥운동화의 첫 공정인 준비직장에서는 생고무와 약재를 이기는 로루기들이 요란스럽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개조한 수지운동신흐름선에 옛날처럼 다시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워야 하는것이였다. 그 모든것을 지켜보는 한경철의 마음은 괴롭고 불안했다.

그는 얼마전 료양생활을 마치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다른 공장으로 갈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자기의 일을 하게 되였다. 하지만 그의 방 콤퓨터앞에는 일과표가 붙여져있었고 그것을 당비서가 직접 집행시켰다. 당비서와 지배인이 함께 짠 일과표라고 했다.

한경철은 그 일과표가 유표하게 붙어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와앉았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로동자들이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별수없지 뭐. 우리 공장 힘만으로야 되나 뭐.》

《흰샤쯔에 넥타이를 매고 일하는가부다 했더니 역시 팔자에 없는 호사인 모양이야.》

《신사멋쟁이한테 짚신을 신기는것 같은게 흐름선을 보기 괴롭구만. 그럴바에야 힘들게 시작은 왜 했나?》

로동자들의 목소리가 두런두런 멀어져간다. 자기자신에 대한 허무감과 노력에 대한 포기. 우리가 이렇게 주저앉아버렸다가 다시 일어설수 있을가? 가슴을 움켜잡는듯 한 불안과 괴로움을 안고 그는 까딱없이 앉아있었다. 문득 출입문이 소리없이 열렸다. 누군가가 들어섰다. 하지만 한경철은 굳어진듯 앉은채 움직이지 못했다.

《이 사람, 경철이!》

은근하게 찾는 목소리가 들린다. 한경철은 고개를 돌렸다. 조인섭직장장이 웃으며 서있었다. 한경철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래간만에 고무냄새를 맡은 사람의 얼굴이 왜 그 모양인가?》

조인섭이 그의 맞은켠에 앉더니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맞으려던 곤장두 안 맞으면 섭섭하다구 몸에 익은 고무바닥운동화로 다시 돌아가는데도 마음이 언짢은게지?》

《좀 힘들어서…》

한경철은 중언부언 변명했다. 조인섭은 사람좋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저녁엔 우리 집에 가자구. 이래저래 사연많은 날인데 자네가 좋아하는 순두부를 해놓으라구 했어. 뜨끈하게 한대포하구 얼벌벌한 양념장에 순두부를 한그릇 하구나면야 언짢던 마음이 다 풀리구 만사가 다 편안해지지. 그래놓구보면 거 순두부라는게 참 편안하구 착한 음식일세.》

한경철은 이런 판에 순두부소리를 늘어놓는 조인섭을 다소 아연해진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조인섭은 신이 나서 손세까지 써가며 이야기장단을 펼쳐놓았다.

《이건 국으로 먹을수도 있구 밥처럼 끼니로 먹을수도 있구 싸면 모두부요, 난대로 두면 그저 국이라… 꽁꽁 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부로 먹으면 될거요, 나나 자네처럼 국을 좋아하는 사람은 순두부로 먹으면 될거요, 소화 안될 걱정이 있기를 하나…》

한경철은 진정으로 불쾌해져 고개를 돌려버렸다. 이런 순간의 그의 말장단이 거북하고 격에 어울리지 않는듯이 느껴졌다. 조인섭은 빙그레 웃었다.

《너무 신경을 쓰지 말게. 손바닥만 한 이삭 하나 맺는 강냉이도 사계절을 밭에서 비, 바람, 번개, 우뢰 다 맞구야 열매를 맺지 않나. 하물며 이거야 어디 강냉이 한이삭에 댈 일인가? 수지운동신이라는게 한다하게 발전된 신발인데 비두 번개두 좀 맞을수 있는거지. 내 이자 오면서 무슨 생각을 한줄 아나?》

한경철은 조인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가 결혼식을 하던 때의 일을 생각했네.》

《결혼식 말입니까?》

한경철은 얼떨떨해서 되뇌였다. 조인섭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왜 그런지 그때 일이 자꾸 생각나데. 그땐 모두 일밖에 모를 때였지. 나두 일을 하느라구 결혼식전날까지 언제 집에 들어가볼새가 없었어. 량친이 전쟁때 다 돌아갔으니 결혼식도 그저 나하구 동무들이 모다붙어 준비해야 했어. 그런데 글쎄 오늘 당장 결혼식을 하자고보니 양복점에 맡겼던 내 결혼식옷이 웃저고리만 되구 바지는 안된게 아니겠나? 양복점에서는 한창 바지를 만드는중인데 신부를 데리러 갈 차는 문밖에서 경적을 울리는거야. 이건 그야말루 말타구 버선깁는 격이였어.》

조인섭은 시름없이 웃어보였다.

《토론하다가 다된 웃저고리만 입구 바지는 그것과 색갈이 비슷한 동무의 바지를 빌려입기루 했지. 자동차를 타고가서 그저 큰상에 앉으면 누가 바지를 새새보랴 하구. 내가 처가집에서 식을 끝내구 색시를 데리구 집에 도착하면 그때에 양복점에서 다된 바지를 가지구 와서 기다리다가 새 바지를 갈아입자구 했어. 어떤가, 우습지 않나? 보라구, 자네두 웃누만.》

한경철은 저도 모르게 조인섭의 말장단에 끌려들어가는 자기를 느끼며 웃고말았다.

《어쨌든 마저 들어보게. 그렇게 짝짝이양복을 입구 색시네 집에 가서 천연스레 큰상을 받았지. 그다음 색시를 데리구 집에 도착하니 양복점에서 다된 바지를 들고 와있더군. 그런데 사람들이 많은 속이라 언제 바지를 벗구입구 할새가 없어서 입었던 바지우에 덧껴입구 말았지. 그런데 한창 상을 받고앉아있는데 바지를 빌려준 친구가 발바닥에 불이 닿은것처럼 안달복달을 하는걸세. 이제 당장 밤일을 나가야겠는데 중요한 기술문건을 넣은 철궤의 열쇠를 내게 빌려준 바지주머니에 넣어둔채 벗어줬거던. 그 친구가 계속 열쇠, 열쇠해서 내가 그걸 알았지. 나두 다급해났어. 그런데 열쇠는 덧껴입은 바지때문에 꺼낼수가 없게 되였으니 이런 난사가 어디 있나? 얼굴이 뻘개서 어쩔줄을 모르고있는데 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색시가 고와서 어쩔줄을 모른다느니, 남이 안 볼 때처럼 안해곁에 바싹 다가앉으라느니 하며 듣기 거북한 육담까지 해대는 판이야. 친구가 얼굴이 까매서 쩔쩔매구있는데 이거야 어디 참을수가 있더라구. 사사일두 아니구 공장일인데. 별수없이 앉아있다가 벌떡 일어나서 혁띠를 풀었지. 걸쭉한 육담을 퍼붓던 사람들마저 아연해지구 색시는 얼굴이 빨개서 내 손을 꽉 잡누만. 이런 다급할데라구야.

〈이 손을 놓소!〉

〈안돼요!〉

〈놓으라는데!〉

〈이런 때 벗으면 난 어떻게 해요.〉

한참후에야 알구 폭소가 터졌지.》

한경철도 그만 웃고말았다. 하지만 조인섭은 웃지 않았다. 추연해진 눈빛으로 한경철을 바라보았다.

《정말 고망년적의 이야기야. 그런데 왜 그런지 오늘은 그 일이 자꾸만 떠오르지 않겠나. 지금 우리가 꼭 그 격이 된것 같아서 말이야. 웃저고리는 되구 바지는 채 되지 않은… 그래서 남의 옷을 빌려입구 큰상을 받았던 그때의 나처럼 말이야.》

한경철은 시름겨운 빛이 흘러가는듯 한 조인섭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의 본심이라는것을 알았다. 서글퍼진듯 한 그의 얼굴이 퍽 늙어보인다는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이자 부지배인이 와서 사람들을 새로 만든 수지운동신흐름선에다 앉혔어. 이제 거기다가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운다는거지.》

한경철은 흠칫 놀랐다. 번연한 일이지만 정작 그 말을 듣고보니 왜서인지 가슴이 떨려왔다. 건조구간이나 급랭구간이 필요없고 수지운동신을 완성하는데 필요한 앞골기나 사방압착기, 실태우기같은 설비들이 없어도 될뿐이지 거기에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워도 신발을 완성할수 있는것이다. 저도 모르게 급해지는 호흡을 안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조인섭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작 수지운동신흐름선에다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우자니 가슴이 떨려서 나왔는데 자넨 아무 말을 못하는구만. 꿀먹은 벙어리처럼 그러고있지 말구 무슨 말이든 좀 하라구.》

하지만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그를 말없이 지켜보던 조인섭이 한숨을 내쉬였다. 방을 나가는 그의 잔등에서 맥이 빠진듯 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고무바닥운동화를 다 만들구는 저녁에 우리 집으로 가자구. 순두부를 먹어야지.》

한경철은 굳어진듯 서있었다. 생고무를 이기는 로루기소리가 그냥 들려온다. 무엇인가를 호소하는 목소리처럼 그냥 들려온다. 그는 어금이를 꽉 앙다물었다. 수지운동신을 위해 그렇게도 모지름쓰던 김윤화지배인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렸다. 이 순간 한경철은 김윤화지배인의 호소와 부탁을 듣고있는듯이 느껴졌다.

《이렇게 몰러설순 없어!》

그는 천천히 일어섰다. 현장으로 걸어갔다. 거기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와 서있었다. 개조한 수지운동신흐름선시운전에 모여와 기뻐하고 고무해주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나 오늘의 분위기는 그때와는 정반대이다. 모두가 당황해지고 실망해진 얼굴들이였다. 흐름선종합조종반앞에 서있는 최현민은 어쨌으면 좋을지 몰라하는 얼굴이였다. 이번에도 그에게 종합조종반의 단추를 누르라고 했는지 그는 조종반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겁먹은 눈길로 모든것을 둘러보고있었다. 저쯤에 부지배인 송명식의 얼굴도 보였다. 성이 난듯 한 그 얼굴이 알길없는 위압감을 풍기고있었다. 완성공들은 이미 흐름선옆에 모두 앉아있었다. 신발형타들이 서로 부딪치는 금속성음향이 쟁쟁하게 들려왔다. 알싸한 고무풀냄새가 현장을 떠돈다. 모든 준비를 갖추고 이제 금방 작업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였다. 부지배인이 최현민이쪽을 바라보았다. 그 눈길을 받자 최현민은 어쩔바를 몰라하며 구원을 청하듯이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설비부원, 뭘해? 빨리 시동단추를 누르라구!》

이 며칠새에 별스럽게 사나와진듯 한 부지배인의 목소리가 크게 울린다. 최현민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단추를 누르려고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한경철은 어쩔수 없는 충동으로 한걸음 나서며 큰소리로 웨쳤다.

《안됩니다!》

그의 목소리가 현장안을 저르릉 울렸다. 사람들은 흠칫하며 굳어졌다. 송명식이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한경철은 무거운 발걸음을 느끼며 천천히 그의 앞으로 나섰다.

《부지배인동지!》

자기의 목소리가 차겁고 굳다는것을 그는 똑똑히 느꼈다. 송명식이 벌겋게 달아오른것 같은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다.

《경철동무, 이건 뭐야? 왜 동무가 일을 가로막고 나서면서 이래?》

《이래선 안됩니다!》

한경철은 다시금 부르짖었다.

《이건 지배인동지의 뜻과두 어긋납니다.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많은 앞에서 이게 무슨 추태요? 동무가 그래,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른단 말이요? 》

한경철은 송명식을 바라보았다. 확 잠긴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이래선 안됩니다. 이 흐름선은 우리가, 우리가 바로 이 손으로 만들어놓은겁니다!》

손을 들어보이는 순간 한경철은 눈물이 불쑥 솟구칠것만 같았다. 넘어서 온 모든 심리적고충이 그리고 겪어온 모든 고생이 한꺼번에 가슴속에 달려드는듯싶었다. 왜서인지 눈앞에 김해옥의 얼굴이 얼른거렸다. 김윤화지배인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걸… 이걸 어떻게 그렇게 쉽게 허물어서 어제날로 되돌려세울수 있단 말입니까? 지배인동지가 아무리 귀하구 부지배인동지의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무리 귀중해두 이것만은… 이것만은 안됩니다. 이건 우리의 진심과 량심의 창조물입니다. 우리가 선택한 힘이구 발전입니다. 부지배인동지! 어서 사람들앞에 사죄하구 물러서십시오.》

부지배인은 흠칫해서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 이윽고 다소 풀이 죽은듯 한 목소리로 수군거렸다.

《당분간이라구 하지 않는가? 지금은 한컬레라도 신을 만드는게 급선무야. 모든걸 생각해두 그게 현명한 처사구 인간다운 처사야. 경철동문 아직 다 몰라서 그래.》

《부지배인동지!》

《내가 모든걸 다 책임져. 설비부원, 뭘해? 빨리 스위치를 넣소.》

그의 커다란 목소리가 현장안을 쩡 울렸다. 최현민이 어름어름하며 스위치에 손을 가져갔다. 바로 그 순간이였다. 불현듯 엄청난 부르짖음이 현장을 쩌릉 울렸다.

《설비부원!》

최현민이 그야말로 기겁을 하여 굳어졌다. 사람들이, 현장에 모여선 공장사람들이 한순간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합쳐 그를 불러세웠던것이였다. 우연한 일치였다. 웅 하는 메아리가 울려갔다. 그 완강하고도 열렬한 부르짖음에 최현민과 부지배인은 물론 그렇게 하나같이 소리친 사람들도 놀랐다. 그 우연한 일치성에 놀라고 당황해졌다. 송명식은 입을 벌린채 굳어졌고 최현민은 스위치곁에서 한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거부감과 반발심의 엄청난 중압감이 현장을 소리없이 배회하는듯싶었다.

그 중압감에 눌리운듯 누구도 먼저 말을 떼지 못했다. 더는 양보할수도 물러설수도 없는 엄연한 현실을 인식시키며 귀안이 윙 우는듯 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시시하구 초라한 사람들입니까? 저 수지운동신흐름선에다가 그래 고무바닥운동화를 꼭 태워야 한단 말입니까?》

《살림집두 번쩍하니 일떠세웠을라니 그놈의 수지운동신이 뭐라구.》

《해두 지배인동지가 온 다음에 합시다!》

송명식은 아무 말도 못한채 사람들을 둘러보고있었다. 그때였다. 문가에 낯익은 모습이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이 숨을 들이키며 굳어졌다. 문가에는 김윤화지배인이 서있었다. 그리고 림봉숙국장도 서있었다. 김윤화는 흥분한듯 한 사람들의 모습에 놀라서 굳어져있었다.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순간 묻고 확인하는듯 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모든것을 깨달은듯 김윤화가 송명식을 향해 다가갔다.

《부지배인동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예요?》

송명식은 대답을 못하고 침을 삼켰다. 귀안이 웅 하고 우는듯 한 침묵이 그냥 흘렀다. 어찌나 무겁고 조마조마한 침묵이였는지 누구도 선뜻 그것을 깨려고 하지 못했다. 김윤화지배인은 자기를 바라보고있는 수많은 눈길을 마주보았다.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묻고있는듯 한, 걱정하며 믿고있는듯 한 눈길들을 휘둘러보았다. 별안간 목이 확 멘듯 한 어조로 조용히 불렀다.

《동무들!》

격한 심정때문인지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알아듣기 힘들만큼 작아졌다. 그러자 현장은 순식간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만큼 그렇게 고요해졌다. 사람들이 숨마저 멈추고 한껏 귀를 기울였던것이였다.

《동무들!》

김윤화는 다시금 부르짖었다.

《당에서는… 당에서는… 눈뜬 소경같은 잘못을 저지른 저에게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었습니다. 우리의 힘에 대한 믿음이 적었던 저를 처벌할 대신 오히려… 오히려 나라의 현대적인 기계공장들을 돌아보며 지식과 견문을 넓히도록 해주었습니다. 저는 지금 그 기계공장들을 돌아보고 오는 길입니다.》

사람들은 환성을 올리며 술렁거렸다.

《당의 그 깊은 믿음과 사랑을 좀더 일찌기 깨달았더라면, 당의 사랑과 믿음이 우리의 힘이구 기적의 원천이라는것을 일찌기 알았더라면… 동무들! 당에서는 우리의 현대적인 기계공장들의 로동자, 기술자들과 합심하여 공장의 수지운동신설비들을 모두 해결하도록 크나큰 배려를 돌려주었습니다. 벌써 그 기술자들이 설계를 하기 위하여 우리 공장을 향해 떠났답니다.》

한순간 사람들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멍하니 서있었다. 믿어지지 않는듯 김윤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윤화의 두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보고서야 모든것을 깨달으며 환성을 올렸다.

《설비가 해결됐대요.》

《됐구나! 됐어!》

《만세!-》

누군가가 목메여 웨쳤다. 사람들이 만세를 웨쳤다. 서로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다가 두팔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다. 지배인에게로 왁 몰려들었다. 모여들어 한덩어리가 되였다. 조인섭이 울고싶어 어린애마냥 얼굴을 비죽비죽하면서 한경철에게 다가왔다. 울지도, 만세를 웨치지도 못한채 가슴만 비틀고 서있는 한경철의 어깨를 주먹으로 쳤다.

《이 사람, 경철이! 들었나? 들었는가 말이야? 자네 왜 이러구있어?》

한경철은 흐득흐득 몸을 떨었다. 피가 진것 같은 눈으로 조인섭을 바라보았다. 꺽 막혀버린 목을 열자고 모지름을 쓰다가 울음을 터뜨리듯이 웨쳤다.

《들었습니다! 직장장동지, 들었습니다!》

드디여 동이 터진것처럼 그의 두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조인섭도 두볼이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이 사람, 경철이!》

《직장장동지!》

두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소리내여 울었다. 그러다가 만세를 웨쳤다. 눈물에 젖은 만세소리는 공장안에 오래도록 울려퍼졌다.

저물녘 송명식은 공장길을 거닐고있었다. 마가을이라 마지막잎새들이 설렁거리거나 바늘잎들에 검스레한 기운이 짙어지는 나무들을 바라보며 깨끗하게 포장된 공장구내길로 천천히 걸었다. 나무들에 걸어놓은 하얀 명찰표들이 저녁어스름속에 유표하게 희끗거린다. 그는 저도모르게 자기가 딸애의 이름으로 심은 나무앞에 섰다. 심어놓고는 잊어버렸던 나무였다. 하지만 자기가 잊어버렸던 나무에도 분명 물을 준 자리가 남아있고 정성스럽게 쓴 명찰표가 한들거린다. 불현듯 이 공장이 너무도 달라졌다는 새삼스러운 인식이 가슴속에 흘러든다. 송명식은 저도 모르게 공장을 휘둘러보았다.

과연 평범한 녀인이 무슨 힘으로 이 엄청난 현실을 이룩했단 말인가? 문득 수지운동신흐름선에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우려 했을 때 현장에 울려퍼지던 공장사람들의 웨침소리가 생각히웠다. 그것은 자기의 힘과 의무를 자각한 대중의 분발이였고 호소였다. 지배인은 바로 온 공장을 그렇게 만들었던것이다. 자기의 사랑으로 공장을 하나의 숨결로, 숨쉬는 집단으로 만들었다. 그는 분명 거창한 힘을 가진 인생의 강자였다.

저도 모르게 자기의 손에 쥐여져있는 꽃송이를 들여다보았다. 강철민이 제손으로 만들어서 딸애에게 보낸 종이꽃이다. 당비서 정명남은 방금전 그를 불러놓고 지배인을 더 잘 도와주어야 한다고 아픈 말을 해준 끝에 그에게 종이꽃을 내밀었다.

《이건 강철민동무가 병원에서 자기의 팔이 나아간다는것을 보여주려구 제손으로 만든 종이꽃이요. 한송이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한송이는 지배인동지에게, 한송이는 옥림동무에게 보냈소.》

송명식은 얼없이 당비서의 손에서 흔들리는 그 타는듯 한 색조의 종이꽃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난 지배인동무와 이 꽃들을 가지고 강철민동무의 집에 가보자고 했소. 아들을 걱정하고있을 그 집 부모들에게 소식을 전해줘야지. 보나마나 이 꽃을 보면 기뻐할거요. 얼마나 좋은 일이요?》

정명남의 목소리는 기쁨에 넘쳐 울렸다.

《내 생각엔 강철민동무가 옥림이에게 보내는 이 꽃은 말이요, 부지배인동무가 가지고 갔으면 좋겠구만. 자, 받소!》

정명남은 한송이의 꽃을 송명식에게 내밀었다. 송명식은 잠시 망설이다가 힘들게 그 꽃을 받아들었다.

《부지배인동무, 가정에서도 공장에서도 절대로 혼자가 되지 마시오. 자기라는 존재를 잊고 사회와 집단을 위해 사시오. 그것이 바로 행복하게 사는 길이요.》

송명식은 얼굴이 타는듯 한감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었다. 당비서가 준 그 종이꽃을 새삼스럽게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아직 채 낫지 않은 팔로 이 꽃을 만들었을 그 마음이 헤아려진다. 자기는 일생동안 누구를 위해 이런 꽃을 만들거나 꽃을 주어본적이 없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럴수록 김윤화지배인에 대한 생각이 더더욱 갈마든다.

공장의 한사람, 한사람을 뜻과 사랑으로 이끌고 내세워 한모습으로 만들어준 녀인. 지어는 자기 가슴에 아픈 못을 박았던 고철삼마저 끝내 일으켜세워 대중의 곁에 세워주었다. 불화의 써늘한 기운에 얼어들던 집안에도 지배인은 화해의 따뜻한 기운을 안아다주었다. 안해는 김윤화지배인에 대하여 자주 이야기하군 했다. 어느날 안해는 말했었다.

《내가 만약 이 세상에 다시 태여난다면 난 꼭 김윤화지배인과 같은 녀자로 태여나겠어요.》

그는 당비서가 준 이 꽃을 먼저 안해에게 보여주고 옥림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옥림이에게 마음속 부담을 주었던 일이 미안했고 안해앞에도 미안했다. 그는 종이꽃을 들고 천천히 공장을 나섰다. 공장을 벗어나는 순간 자기처럼 공장구내를 걷고있는 최현민의 모습이 눈에 띄웠다. 시름에 잠긴듯 한 몸가짐이다. 그는 오늘 기사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괴로운 마음으로 공장을 거닐고있는것이다.

사실 새 기사장임명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최현민을 두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가 경솔하게 림봉숙국장에게 김해옥에 대한 좋지 못한 소리를 한것으로 하여 젊은이들의 사랑이 곡절을 겪고있다는것은 이제는 온 공장에 비밀이 아니였다. 김윤화가 최현민을 불러다 놓고 눈물을 흘리면서 혹독한 질책을 했기때문이였다. 최현민은 한동안 머리를 쳐들지 못하고 다녔다. 새 기사장을 선택하는 자리에서도 그를 타매하는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러나 김윤화는 말했다.

《김세천기사장동지가 자기 후임으로 지목했던 동무는 최현민동무입니다.》

모두가 깜짝 놀라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난 김세천기사장동지의 눈을 믿고싶습니다. 물론 그 동무에게는 결함도 있어요. 하지만 김세천기사장동지는 그의 장점을 알아보고 귀중히 여겼는데 우리가 그 장점을 보지 않고 결함만을 두고 혐오스럽게 생각한다면 그건 분명 잘하는 일이 아니예요.》

사람들은 아무 말도 못한채 굳어져버렸다.

《바다에는 샘물만 흘러들지 않지 않나요. 맑은물도 흘러들고 흙탕물도 흘러들고… 그 모든걸 다 안고 뒤채겨서 맑고 푸르게 하는게 바다지요. 난 그런 마음가짐으로 인간들을 선택하고 도와주어야 한다고 봐요.》

김윤화는 우리모두가 최현민이 일을 하면서 결함을 고치도록 도와주자고 호소했다. 결국 최현민은 기사장이 되였다. 하지만 그는 마음이 괴로와 공장길을 거닐고있는것이였다. 량심의 가책을 받지 않으면 인간에게는 매일이 명절이라고 했다. 송명식은 그를 지켜보다가 공장정문을 벗어났다. 처음으로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가고싶은 마음을 느꼈다. 그는 점점 발걸음을 빨리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