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2 장 량심의 선고


8


침울한 낯빛으로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난 강학선은 산원 앞마당에서 차를 기다리고있었다.

며칠전 의료사고를 총화하는 회의가 끝났을 때 그는 스스로 보건성 산하 의료기구공장에 내려가 사상의지적단련을 하고 기술도 련마하겠다고 제기했었다. 반대하는 사람도 없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요구를 참작하여 그렇게 하는것이 좋겠다고 동의했다.

그러나 강학선이 결코 자기의 과오를 인정한것은 아니였다. 지금도 그는 선우금숙에 대한 그 수술은 오직 환자를 위해서 수술칼을 든 의사의 량심이였다고 굳게 믿고있었다.

그날 강학선은 스스로 결심한 이상 하루빨리 의료기구공장에 내려가자고 서둘렀으나 과장사업도 인계하지 못한데다가 임선해원장이 며칠후 그쪽방향으로 가는 경리부차가 있다면서 굳이 잡아끄는 바람에 모든것을 깨끗이 인계한 오늘에야 이렇게 산원마당으로 나왔던것이다.

사람들과 함께 바래주러 나왔던 하경옥이 갈린 목소리로 그를 위로했다.

《과장선생님, 너무… 괴로워하지 마십시오.》

강학선은 어깨에 멘 배낭을 추스르며 말없이 한숨을 내쉬였다. 하경옥에게 볼 낯이 없었다. 자기를 스승처럼 따르고 존경하던 그를 실망케 했고 말을 냈던 권일학과의 혼사도 마무리하지 못했던것이다. 후에 꼭 이야기해주려 했던 정철이에 대하여서도 끝내 말을 못하고말았다. 어째서 처음부터 그 사실을 하경옥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사실 강학선은 두사람이 서로 생활을 통하여 진심으로 리해하게 될 때, 마음속으로 깊이 사랑하게 되였을 때 그에 대하여 알게 되는것이 더 좋을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권일학에게도 자기의 속생각을 터놓지 않았고 하경옥에게도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던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권일학에게 가끔 던지군 하던 하경옥의 눈빛에서 자기가 성사시키려고 애써온 그 모든 일이 물거품처럼 깨여져버리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미안하오, 하선생…》

《선생님, 무슨 말씀을… 전에도 얘기했지만 제가 그 환자를 선생님에게 부탁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하경옥이 말끝을 맺지 못했다. 자기의 과장이 이렇게 된것은 자기한테도 책임이 있지만 또 한사람 기술부원장 권일학에게도 있다는것을 말하고싶었을것이다.

강학선은 머리를 흔들며 마른침을 삼키였다.

《아니요. 모든게 내탓이요. 제노라하는 사람이 그만 분별을 잃고 서둘다가 …》

《선생님!…》

하경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뒤에 서있던 서범천이 꾹 다물고있던 입을 열었다.

《과장선생님… 앓지 말고 몸을 잘 돌보십시오.》

강학선은 그의 눈길을 피하며 머리를 수굿했다.

《고맙소.…》

이 자리에 서범천이 나온것이 진정으로 고마왔다. 지금껏 그에 대해 좋은 소리를 해오지 못한것이 자책되기도 했다.

강학선은 떠나기 전 당비서 림숙정에게 들려 조용히 인사하고 나왔었다. 떳떳치 못한 일로 가는 자기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싶지 않았던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서범천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바래주러 나왔다.

강학선은 눈물이 나도록 고맙기도 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한없이 괴롭고 무거웠다. 스스로 자진했지만 유능한 집도자로 떠받들리우던 자기, 림상에서는 제노라하던 박사가 이제는 사람들의 동정과 위로를 받으며 현장으로 떠나는것이다.

그가 마음속으로 괴로와하는것은 단지 의료사고를 내고 현장에 내려가게 된 자신의 처지때문만이 아니였다. 협의회질서를 어기고 사고를 낸데 대해서는 의사로서 변명할 말이 없었다. 고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의료사고는 집도를 한 의사가 책임을 져야 하는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울 때, 가장 괴로울 때 누구보다 리해해주어야 할 권일학이 모든 문제를 랭정하게 분석해버린것은 지금도 마음에 걸려 내려가지 않았다.

권일학은 염증소견만 아니였어도 그가 수술을 원만히 해냈으리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서는 더 론의하지 않고 이번 수술을 가장 위험한 모험으로, 가장 엄중한 과오로 규정한것이다. 과연 권일학이 그렇게도 차고 모진 사람이였던가?…

그때 하얀 소형짐차 한대가 쏜살같이 달려와 사람들앞에서 멎어섰다.

《실어야 할 물자가 어디 있습니까?》

차창을 열고 소리치는 사람은 소형짐차주인이 아니라 구급차운전사 주동국이였다.

경리부원장 박준영이 재빨리 달려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된거요? 운전사는?…》

《아, 그 친구야 오늘 결혼식날이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대신 끌고왔습니다.》

그제야 생각난듯 박준영이 손으로 이마를 가볍게 쳤다.

《아, 그렇지. 내 깜빡 잊었댔군. 자, 그럼 주동무가 수골 해주어야 겠구만.》

《걱정마십시오. 그래, 뭘 실어가야 합니까?》

박준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소곤거렸다.

《여기 이 과장선생이요.》

주동국이 어리둥절하여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 사람이야 산원에서 미세수술전문가로 소문난 강학선과장이 아닌가. 그는 왕진차림도 아니고 치료가방도 없었다. 한쪽어깨에 허름한 배낭을 걸치고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농촌동원에나 나가는듯 한 차림이였다.

주동국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경리부원장이 재촉했다.

《뭘하구있소? 얼뜬해서…》

《저, 이 경영용차야 물자만 싣게 되여있지 않습니까?》

《챠, 이 동무… 지금 과장선생은 새 의료기구를 제작하러 간단 말이요!》

경리부원장 박준영이 눈치없는 주동국을 나무라며 제 손으로 차문을 열어주었다. 그제야 말없는 사람들과 강학선의 표정에서 무엇인가를 짐작한 주동국이 운전칸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 시각 보건성에서 진행하는 부원장들의 모임에 참가했던 권일학은 연송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정신없이 산원정문으로 들어섰다. 저쪽끝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강학선이 작별인사를 하며 차에 오르는것이 보였다. 며칠새 볼이 푹 꺼진 강학선, 멀리서도 거멓게 죽은 그의 얼굴이 눈에 띄자 권일학은 가슴이 저릿해지는것을 느꼈다.

김빠진듯 후줄근해진 강학선이 갑자기 발판을 헛디디며 비칠거리자 옆에서 누군가 그를 부축해주는것이 보였다. 그 어떤 상념에 잠긴듯 한 강학선은 고맙다는 표시로 그에게 허리를 약간 굽혔다 폈다. 그 순간 권일학은 언제나 꼿꼿하던 그의 등허리가 꺼부정하게 휘여진것을 처음으로 알아보았다.

불현듯 그 어떤 련민이 가슴을 아프게 짓눌렀다. 시종 머리를 떨구고 사람들을 마주보지 못하고있던 강학선이 차에 올라서야 배웅나온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들었다. 차문이 닫기고 차가 부릉거렸다.

권일학은 숨가삐 소리쳤다.

《과장선생!-》

그러나 강학선을 태운 차는 천천히 움직이더니 권일학과 반대쪽인 후문으로 미끄러져갔다.

또다시 소리치며 차를 따라 몇걸음 달리던 그는 그만 한자리에 멈추어서며 멀리 사라져가는 흰 소형차를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갑자기 비칠거려졌다. 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버린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싶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비오듯 흐르는 땀을 천천히 문대며 그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후문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했다.

《과장선생, 용서하시오! 저를…》

조금만 빨리 왔어도 떠나는 그를 바래주었을것이다. 이제라도 달려가서 몸성히 갔다오라고 그의 두손을 잡아줄수만 있다면!…

다음순간 그 어떤 경멸의 빛이 어려있던 강학선의 두눈이 떠올랐다. 그는 결코 그것을 바라지 않을것이다. 지금 권일학은 바로 강학선 그에게 아픈 못을 박은 매정한 사람으로, 한점 의리도 없는 사람으로 되여버린것이다.

그토록 자기를 아껴주고 위해주었던 강학선이건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권일학이였다. 강학선이 아무리 의술이 높고 가까운 사이라 할지라도 사고를 낸것은 틀림없다. 생명을 다루는 의사에게 있어서 사고는 곧 생명을 죽이는것으로 이어진다. 더구나 림상에서 검증되지 않은 새 방법을 수술도중 환자에게 적용한것은 용서할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강학선의 수술을 의도적인 의료사고로 규정하였고 그것을 림상학적으로 론증했으며 도덕으로 타매한것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권일학은 강학선을 바래워준 사람들이 묵묵히 헤여져가는것을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섰다. 제각기 헤여져가는 사람들속에서 누군가 건물의 웃쪽을 올려다보고있었다. 아마도 권일학의 방을 올려다보고있는지도 모른다. 모자도 쓰지 않은 그는 서범천이였다. 한동안 올려다보던 그가 실망한듯 머리를 숙이자 옆에 서있던 원 녀의사가 다시 눈길을 돌려 그쪽을 올려다보았다. 그 처녀는… 하경옥이였다. 오래도록 창문에 눈길을 박고있는 그 처녀의 얼굴에 어떤 그림자가 끼여있는지 권일학은 알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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