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9 회


제 11 장


4


수지운동신설비보장은 또다시 난관에 부딪쳤다. 한대의 앞골기마저 고장나버려 공장의 생산은 죽었고 강철민은 병원으로 갔다. 귀중한 설비를 고장내고 사람마저 상하게 한 사고의 책임문제가 제기되였다. 그동안 계획을 못한 문제도 심상치 않은 문제로 떠올랐다. 관리국에서 실태료해조가 다시금 공장에 내려왔다. 시당에서도 내려왔다. 김윤화는 결혼식을 하는 조인섭직장장의 아들에게 자기 승용차를 내주었던 그 부부장을 다시 만나게 되였다. 그 순간 김윤화는 《절반짜리 국산화》라고 하던 부부장의 말을 다시금 상기했다. 수리안을 선택한 자기의 결심이 오늘과 같은 결과를 빚어냈다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뼈저린 책임감과 후회가 가슴에 몰려들었다. 담화를 끝내고나서 부부장은 한동안 말없이 김윤화를 지켜보았다. 왜서인지 낯선 사람같이 느껴지는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윤화동무, 국산화는 진정한 애국의 길이요. 그 애국의 길은 자기힘을 믿고 자기 힘을 발동할 때만이 끝까지 가낼수 있는거요. 동무가 마지막 한걸음까지 자기의 힘에 의거할 생각을 했다면 오늘과 같은 일이 없었을거요. 물론 이건 동무를 잘 돕지 못한 나자신에게 하는 비판이기도 하오. 설비가 고장난것이 큰일이 아니라 자기 힘을 믿지 못한 그것때문에 귀중한 젊은 동무가 쓰러졌다는것이 가장 무섭구 아픈일이요.》

《부부장동지!》

통절한 아픔과 후회를 느끼며 김윤화는 짜내듯이 부르짖었다. 부부장은 대답이 없었다. 창밖을 내다보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더니 조용히 일어섰다.

《윤화동무, 자기 반성을 깊이 해보기 바랍니다.》

부부장은 떠나갔다. 사람들은 심상치 않은 예감을 안고 수군거렸다. 지배인이 해임될것 같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공장안에 퍼졌다. 그런데 오늘 관리국에서 김윤화에게 사업을 부지배인에게 인계하고 래일까지 관리국에 도착하라는 지시를 보냈다. 송명식이 얼굴이 컴컴해서 김윤화의 방을 찾아왔다.

《지배인동무, 국장동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일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이제라도 다시 고무바닥운동화를 시작합시다. 생고무도 있지 않습니까? 공장이 고무바닥운동화를 시작하면 능력도 있고 전망도 있다는걸 보여줍시다.》

김윤화는 송명식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그러니 고무바닥운동화를 다시 살려 공장의 생산에 활기를 불어넣고 관리국앞에도 면목을 세우자는 생각인것이다. 가깝게는 책임문제가 제기된 지배인의 영상을 개선하자는것이다. 불안과 위구에 차서 자기를 바라보고있는 송명식의 눈빛에는 진정이 흐르고있었다. 김윤화는 자기가 료양소에서 헤여진 후로는 처음으로 그의 그런 눈빛을 본것같이 여겨졌다.

《개조한 수지운동신흐름선에다 다시 고무바닥운동화를 태웁시다. 공장의 일군들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러구있는게 아니라는걸 보여줍시다. 생산을 시작하구나면 나도 관리국에 할말이 있습니다.》

결국은 어제날로 다시 되돌아가는셈이다. 뻐근한 아픔과 위구를 느끼며 김윤화는 조용히 머리를 가로저어보였다.

《날 생각해주는 그 마음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옛날루 다시 돌아가는건… 죄악이예요. 모든걸 내가 책임지고라도 공장은 앞으로 전진해야 해요.》

《지배인동무, 무엇때문에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수지운동신을 하겠다는거요?》

안타까와진 송명식은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었다.

《이번만은 내 말을 들어주시오.》

김윤화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는 못해요! 수지운동신은 공장의 힘이구 존엄이예요. 그런데 나 하나를 위해서 그걸 외면하구 수치스러운 후퇴를 한단 말이예요? 절대로 그럴수 없어요. 》

송명식은 어쩔수없다는것을 느낀듯 고개를 숙였다. 무겁게 한숨을 내쉬였다. 이윽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조용히 말했다.

《지배인동무, 나도 지배인동무의 마음을 압니다. 하지만 이 공장엔 지배인동무가 있어야 합니다. 나도 이젠 그걸 압니다. 아래일군들이 있으면서 지배인동무를 지켜내지 못하면 로동자들은 우릴 용서하지 않을겁니다. 이 고비만 넘긴 다음엔 지배인동무가 하고싶은대로 다 하시오. 하지만 지금은 내가 공장의 행정사업을 맡은 조건에서 내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어주십시오.》

《부지배인동무!》

그러나 송명식은 굳어진 얼굴로 천천히 방을 나가버렸다. 김윤화는 말없이 굳어져버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지 근심스러웠다. 하지만 지금 그는 사업을 인계한 상태였다. 온몸을 칭칭 묶어버리는듯한 속수무책의 무력감이 그를 사로잡았다. 래일은 관리국으로 가야 한다. 어떤 일이 기다리는지 알수 없는 길이다. 마음이 한없이 아프고 괴로왔다. 멍하니 앉아있었다. 문득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남편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 오늘 집에 들어오겠소? 나도 집에 들어가겠소.》

《약속전화》인것이다. 저도 모르게 시계를 보았다. 아직도 퇴근시간이 되려면 멀었다. 너무도 일찌기 걸려오는 《약속전화》인것이다. 저도 모르게 웃고말았다. 어쩌면 남편도 김윤화가 래일 관리국으로 가야 한다는것을 알고있을지도 모른다. 림봉숙이 이야기해주었을수 있다. 그래서 이렇게 일찌감치 《약속전화》를 걸어오는것일것이다.

《알겠어요. 들어가겠어요!》

전화를 놓기가 바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술과장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을 보니 또 축구화에서 무슨 일이 제기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성처럼 물었다.

《무슨 일이예요?》

기술과장도 역시 타성처럼 대답했다.

《또 룡이 오를 일이 생겼습니다. 이번엔 정말 마지막으로 오르게 될것 같은데…》

김윤화는 그제야 자기가 사업을 송명식에게 인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룡이 송명식부지배인동무한테 올라야 할것 같군요.》

그제야 기술과장도 현실을 깨달은듯 흠칫하더니 소리없이 웃어보였다. 입안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거 그래두 룡한테두 안면이라는게 있지 않을가요?》

《예?! 룡한테두 안면이 있어요?》

김윤화는 그만 웃고말았다.

《거 마지막으로 오른다구 생각하구 좀 도와주십시오.》

《무슨 일이예요?》

《이번에 만든 우리 축구화를 신겠다는 선수단이 없습니다.》

김윤화는 흠칫하여 굳어졌다. 지금 시내의 경기장들에서는 공화국선수권대회 축구1급련맹전이 성황리에 벌어지고있었다. 김윤화는 기술과장과 토론하고 이번에 만든 축구화들을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에게 직접 신길 생각을 했다. 그 어떤 훈련이나 훈련경기도 실지 승패를 다투는 경기만큼 축구화에 대한 실질적인 시험으로는 되지 못한다. 치렬한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의 격렬하고 다양한 운동을 겪고나야 축구화의 생명력과 우결함을 정확히 알수 있는것이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그래서 어느 선수단이든 통채로 공장축구화를 신겨보자고 한것이였다.

《선수단의 명예가 왔다갔다하는 경기에 어떻게 파악두 없는 축구화를 신구 나가겠는가고 하면서 축구감독들이 아예 말두 못 붙이게 합니다.》

김윤화는 말을 못하고 굳어졌다. 감독들의 심정이 리해되였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놓치면 언제 다시 기회가 생길지 알수가 없다.

《가자요!》

김윤화는 기술과장과 함께 방을 나섰다. 그러나 아무리 안타깝게 사정을 해도 축구감독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린 지금 공화국선수권대회 1급련맹전을 하고있단 말이요. 우린 단 한점의 미흡한 점도 없이 힘껏 경기를 해야 하고 관중들에게 훌륭한 경기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오. 이건 우리의 의무고 도덕이요. 그런데 어떻게 파악도 없고 담보도 없는 축구화를 신긴단 말이요. 안할 말로 경기중에 그 축구화가 꺾어지거나 발에 붙지 않고 놀기라도 한다면 그걸 누가 책임지겠소? 안되오! 어디 다른 경기장에 가보오.》

축구화지함을 안고 다른 경기장으로 왔다. 마침 경기가 끝나서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오고있기에 먼저 맞다든 선수단의 감독을 만났다. 축구화를 신어달라고 사정했다.

《축구화를 신어달라?! 류성신발?!》

성깔스럽게 생긴 축구감독이 류다르게 번뜩거리는 눈길로 그들을 여겨보다가 고개를 젖히고 이상스럽게 웃었다. 지쳐서 어깨를 처뜨린채 나오고있는 선수들을 향해 큰소리로 소리쳤다.

《동무들, 우리에게 손님이 왔소. 오늘 경기에서 3:0 으로 지고 그 어느 선수단보다 경기성적이 맨꼬리인 우리에게 시험용축구화를 좀 신어달라오.》

비꼬는듯 한 그 목소리가 주변을 이상스럽게 웅웅 울렸다. 선수들이 눈을 흡뜨고 굳어졌다.

《응당한 대접이요. 결국 우린 다른 선수단의 훈련상대팀으로나 어울리고 또 축구화시험단위로나 제격이요. 동무들, 우리 이 축구화를 신기요.》

선수들의 눈이 사납게 번쩍거렸다. 땀에 젖고 열기가 확확 풍기는 이지러진 얼굴들이 김윤화와 기술과장을 향해 다가들었다. 키가 훤칠한 한 축구선수가 대바람에 기술과장에게 대들었다.

《이 사람이 그런 말을 합니까?》

기술과장이 두팔을 휘저으며 비명을 질렀다.

《도… 동무들, 난… 사실…》

김윤화가 그 선수의 팔에 매여달렸다.

《동무, 그런게 아니예요. 우린 그저 축구화를 시험해보고싶은 생각때문에…》

《우릴 뭘루 보구…》

《우리가 이대로 주저앉을것 같아?》

《제 축구화만 귀하구 우리 선수단의 명예는 안 귀해? 어디서 이런 고약한 사람들이 나타났어?》

흥분한 선수들의 손과 손이 김윤화와 기술과장 그리고 축구화지함들을 우악스럽게 잡아서는 사정없이 한쪽구석으로 밀쳐냈다. 그 바람에 두사람은 바람에 휘말리운것처럼 손과 손에 밀리웠다. 축구화지함이 그들옆에 나떨어져 터져나갔다. 축구화가 바닥에 쏟아져나왔다.

《그만들 두지 못하겠어?!》

철판을 후려치는듯 한 감독의 웨침이 울렸다. 모두가 흠칫하여 굳어졌다. 이때였다. 누군가가 달려왔다. 김윤화를 잡아일으켜세웠다. 그것은 뜻밖에도 혜성이였다. 그도 경기를 치르고난듯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아니, 이모?!》

혜성이는 놀라서 불렀다. 터져나간 축구화지함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번쩍거리는 눈길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나직하게 부르짖었다.

《누가 이렇게 했어? 나서라!》

《여 10번, 왜 그래? 뭐 우리 팀에다 한꼴 넣었다구 우린 다 바지저고리같아보여? 제일이 아니면 가기나 해.》

리혜성은 번뜩거리는 눈길로 우뚝우뚝 서있는 선수들을 쏘아보며 숨이 찬듯 부르짖었다.

《이 체육인의 초보적인 도덕두 모르는것들! 이 녀성이 누군지 알아? 우리 축구선수들에게 세계적인 축구화를 안겨주겠다구 고생고생하는 류성신발공장 지배인동지란 말이야.》

모두가 흠칫하여 굳어졌다. 《지배인》, 《지배인》하는 수군거림이 퍼져갔다.

《우리 축구선수들을 누구보다 사랑하구 우리가 더 좋은 경기성적을 내라구 좋은 신발을 만들어가지구 비행장까지 따라왔던 지배인이란 말이야. 너희들두 그 소릴 듣구 한번 만나보고싶다고 했지? 봐라! 이 지배인이다.》

격해졌던 선수들이 잠잠해졌다. 리혜성이 다른 선수단쪽에 가서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 기색을 짓고 서있는것을 본 그의 선수단 선수들도 달려왔다. 웅성거리는 속에 김윤화는 몸을 일으키고 터져나간 지함에서 빠져나온 축구화들을 지함에 하나하나 다시 넣었다. 주변은 순식간에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그 고요속에 축구화를 다 넣고난 김윤화는 지함을 안고 일어섰다. 선수들을 둘러보았다.

《동무들, 미안해요! 내가 경기에서 진 선수들의 심정을 생각하지 못했댔어요.》

김윤화를 밀쳐버린 축구감독과 선수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우릴 리해해주세요. 동무들이 졌다는 수치감때문에 괴로워하듯이 우리도 세계적인 축구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는것때문에 괴로워요. 이 축구화를 위해 륙십을 넘긴 로력영웅인 우리 공장의 기사장동지가 자기 심장이 못 견딜 때까지 일을 했어요. 그분의 마지막숨결이 배인 축구화예요. 다시한번 봐주세요!》

김윤화는 눈물이 핑 어린 눈으로 목메여 부르짖었다.

《실지 이걸 신구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의 평가를 받아보구 시험을 해봐야겠는데 누구나 경기성적은 생각하지만… 축구화의 발전에 대해선 생각하지 못해요. 동무들!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지배인으로서가 아니라 누이로서, 공민으로서 호소해요. 우리의 축구화를 위해서 기여해주세요.》

주변은 숨소리 하나 없이 조용해졌다. 누군가가 슬그머니 김윤화가 들고있는 지함을 끌어당겼다. 김윤화는 그것이 리혜성의 선수단 감독이라는것을 알아보았다.

《지배인동지가 세계적수준의 축구화를 만들어내겠다고 약속하더니 이게 그 축구화구만요.》

김윤화는 목메여 고개만 끄덕여보였다. 감독은 축구화를 꺼내들어 손에 들었다.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동무들, 우리가 신기요!》

열띤 충동으로 축구선수들이 움씰했다.

《신읍시다! 이 지배인동지가 만든 축구화라면 우리 신읍시다.》

《동무들! 우리 이모가 만든 이 축구화는 분명 좋은 축구화일거요. 난 우리 이모를 잘 아오.》

《하긴 자네를 위해서 불속에 뛰여들었다고 했지?》

《설사 좋지 않다고 해도 우리의 축구화를 세계적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신자구.》

《하긴 뭔가 바치는게 있어야 후날에두 떳떳하지.》

김윤화는 고마움에 목이 확 메여 경황없이 중얼거렸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동무들!》

김윤화를 밀쳐버렸던 축구감독과 선수들이 우울해서 고개를 수긋한채 가버렸다. 이윽고 한 선수가 다시 오더니 김윤화에게 풀이 죽은 목소리로 《우리 감독동지가 우리 선수단두 신을만큼 컬레수가 되면 우리도 신겠다는걸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지배인동지!》라고 말하고 가버렸다. 김윤화는 축구화를 더 생산하여 그 선수단에도 신어줄것을 부탁하리라 마음먹었다. 리혜성의 선수단 선수들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축구화를 신기라도 한듯 기분들이 들떠서 축구화를 신었다.

《보기에두 일없구 발맛두 괜찮은데…》

《가볍구만!》

《그런데 난 이거 이번 경기가 선수생활의 마지막경기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 축구화때문에 꼴을 못 넣으면 어쩐다?》

《글쎄말이야. 지금까지 우린 성적이 제일 앞서나가고있는데…》

《일없어! 발전을 위해 뭔가 바치구 나서는게 있어야 한다면 우리가 나서자구. 자네에 대해선 우리 후배들에게 너희들이 신는 축구화가 우리의 14번선수가 미래를 위해 자기의 마지막경기마저 희생한 축구화라고 말해주지.》

《그렇다면 이 축구화를 기념으로 우리에게 아주 줄수 있습니까? 수표를 해서 후배들에게 넘겨주게.》

《주겠어요! 주겠어요!》

《반대로 이 축구화가 좋아서 경기에서 이기면 어쩐다?》

《그땐 우리가 몽땅 뻐스를 타고 지배인동지한테 가서 축구선수의 인사를 해야지.》

《축구선수의 인사가 뭐야?》

《꼴을 넣었을 때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하는 인사 있잖아.》

어떤 축구선수는 꼴을 넣고난 후의 인상적인 동작을 해보이기까지 했다. 선수들은 웃었다.

《그런데 우는걸루 인사하는치도 있잖아. 저치 말이야.》

《난 왜 건드려?》

《하하… 그럼 저치는 지배인앞에서 울라고 하지 뭐.》

《우는게 어쨌다는거야? 정말 이걸 신고 경기에서 이기면 난 우리 이모앞에서 울겠어.》

《여, 혜성이! 우는것두 뭐 울겠다구 준비해뒀다가 우나?》

《저친 아마 그럴거야. 그럼 꼴두 아예 준비해뒀다가 넣으라구 하자구.》

축구선수들은 흐하흐하 웃고 떠들었다. 김윤화는 목이 콱 메여와 그 모습들을 보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축구화를 신고 뻐스에 올라 떠나가는 선수들을 김윤화는 언젠가처럼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바래주었다. 한없는 기쁨과 감동을 안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날이 어둡고 뭇별들이 뜨기 시작했다.

《아, 드디여 마지막으로 룡이 올랐는가? 내 다시는 지배인동지를 안찾아가구두 세계적인 축구화를 만들어내겠습니다.》

기술과장이 기분이 좋아 하늘을 바라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김윤화도 웃었다. 저도 모르게 별이 돋기 시작하는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어쩌면 이게 마지막지배인사업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하지만 내가 없어도 세계적인 축구화는 나올거예요. 난 그걸 믿어요!》

룡청해기술과장은 급기야 하늘에서 땅에로 눈길을 떨구며 무엇인가를 꿀꺽 소리나게 삼켰다. 무엇인가를 웨치고싶은듯 눈빛이 유별해서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김윤화는 그앞에 소리없이 웃어보였다. 그리고 자기 사무실로 걸어갔다. 남편과의 《약속전화》를 가맣게 잊고 지배인사업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미진된 문건들을 정리했다.

문득 문두드리는 소리가 조심스럽게 울렸다. 김윤화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문이 조금 열렸다. 열려진 문짬으로 딸 정혜의 얼굴이 보였다. 그 애는 열려진 문짬으로 얼굴만 내밀고 어머니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웃고있었다. 순진하고 깨끗한 웃음이 비낀 그 얼굴을 보니 마음이 별안간 밝아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혜야, 너 어떻게 왔니?》

《어머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있나요? 집에선 아버지랑 할머니랑 기다리고있는데.》

《아이구, 이 정신봐라! 내가 그만 깜박 잊었구나.》

《〈약속전화〉를 잊다니?! 어머닌 참 한심해!》

《그래그래. 어서 가자!》

어머니와 딸은 방을 나섰다. 조용해진 공장구내를 천천히 걸어 합숙쪽으로 갔다. 정혜가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머니, 일이 잘 안되나요?》

김윤화는 쓸쓸하게 웃어보였다.

《어머니, 막 울고싶도록 안타깝구 힘들 땐 제일 믿는 사람을 실컷 욕하면 마음이 좀 풀려요. 날 콱 욕하라요.》

김윤화는 웃고말았다.

《내가 왜 널 욕하겠니? 잘못한것두 없는데.》

정혜는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듯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말했다.

《어머니, 내가 솔직하게 말해보라요?》

《?!》

《나 사실 이번에 동무들과 농촌마을에 나갔다가 차를 놓치고 걸어서 돌아올 때 또 승용차생각을 했어요.》

《뭐?!》

김윤화는 놀라 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힘드니까 야, 어머니 승용차를 불러서 타고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윤화는 순진한 기운이 어려있는 딸애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딸애는 소리없이 웃었다.

《그런데 어머니얼굴이 생각나더군요. 보나마나 욕할게 뻔한데… 하지만 정 힘드니까 어머니는 너무해, 어머니는 나빠 하구 막 욕을 하게 됐지요 뭐. 하지만 그러구나니 마음이 풀리구 힘든게 좀 나아지는것같았어요. 그리구나선 나도 웃었지요 뭐. 어머니, 날 한번 실컷 욕하라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정혜야!》

《어머니, 내 다시는 어머니를 속태우는 일을 안하겠어요.》

김윤화는 딸을 대견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찌르르한 행복감이 가슴속을 흘러갔다.

《아버지가 기다려요. 어서 가자요.》

《아버지가 벌써 들어오셨니?》

《예. 오늘은 아버지가… 에이, 말 안하겠어요. 말하면 재미가 없어져요.》

김윤화는 정혜의 손에 끌려 합숙으로 향했다. 집에 들어서던 순간 김윤화는 깜짝 놀랐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분주하게 오고가고 방에는 푸짐한 음식상이 차려져있는것이였다. 그동안 딸애가 붙여놓지 않던 그림들이 여기저기에 붙어있는것이 눈에 띄웠다. 이채로운 풍경이였다. 즐겁고 흥겨운 기운이 온 집안에 차넘치고있었다. 김윤화는 문가에서 어리둥절해진채 오늘이 무슨 날이던가 하고 바삐 생각해보았다. 자기가 공장생각에 옴해 누구의 생일이든가 어떤 기념일을 잊은것이 아닌가 하고 당황해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부엌에서 더운 김을 내며 끓고있는 남비를 들고 나오던 남편이 김윤화를 보더니 반기며 말했다.

《당신이 왔구만!》

시어머니의 얼굴도 부엌문가에 나타났다.

《그래, 늦게 오거나 못 올가봐 걱정했더니 일찍 들어오는구나.》

더더욱 당황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려는 남편의 팔을 잡았다. 은밀하게 물었다.

《여보, 오늘이 무슨 날이예요?》

남편은 싱긋 웃었다. 귀속말로 조용히 그리고 재빠르게 말했다.

《우리가 결혼한 날!》

《어마나!》

김윤화는 당황하고도 부끄러운 심정을 느꼈다. 지금껏 이날을 잊고 지냈다는것을 깨달았다. 불시에 이날을 생활속으로 끄집어낸 남편의 마음이 헤아려졌다. 고맙고도 행복한 마음을 느끼며 김윤화는 굳어진듯 서있었다. 음식상이 다 차려지고 온 식구가 마주앉으려는데 정혜가 눈치를 살피다가 아버지에게 귀속말로 말했다.

《아버지, 저… 결혼기념일이라면 그… 장편소설두 꺼내다 식탁에다 놓아야 하지 않나요?》

남편의 눈이 둥그래졌다.

《장편소설이라는건?》

《그 〈청춘송가〉말이예요.》

김윤화도 김승진도 다같이 놀랐다.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아니?》

《할머니가 다 말해줬는데요 뭐. 너두 크면 그 소설책에다가 가계표를 써서 총각에게 줘라 하구.》

《하하하.》

남편은 소리내여 웃었다. 김윤화도 웃고말았다.

《좋지 않아, 좋지 않구말구! 네가 아버지, 어머니의 비밀을 다 알고있었구나. 별수없지. 정 그렇다면 그 책두 여기다 꺼내다 놓자꾸나.》

딸애는 웃으며 웃방으로 뛰여들어갔다.

《에이구야, 그건 내가 건사해놔서 네가 못 찾는다.》

불시에 어린애처럼 흥이 난 시어머니가 덤비며 손녀의 뒤를 따라 방안으로 들어간다. 찌르르한 행복감을 느끼며 김윤화는 그 모든것을 지켜보았다. 남편이 안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얼굴색을 펴오. 당신은 지배인이라구 해두 내 안해구 설사 지배인이 아니라구 해두 저 애의 어머니요. 이 가정에서 당신이 어머니로서, 안해로서 행복하다면 더 바랄게 없는거요. 안 그렇소?》

《여보!》

김윤화는 크나큰 행복감을 안고 남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정혜가 즐겁게 소리를 치며 소설책을 들고 달려나왔다. 불밝은 집에 오래도록 웃음이 끓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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