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제 11 장


3


송옥림은 이즈음에 와서 자기가 점점 이상해진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즈음 아침저녁으로 자기 집 꽃병에 꽂아놓은 비닐꽃을 자꾸만 들여다보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 꽃은 강철민이 고장이 나서 공장창고에 박혀있던 두대의 사방압착기를 살려내여 새로 개조한 수지운동신흐름선에 장비해놓은 날 지배인이 너무 기뻐서 강철민에게 준것이였다. 그날 동작하기 시작하는 사방압착기앞에서 사람들이 모두 환성을 지를 때 강철민만은 못난이모양으로 울었다. 지배인이 그에게 자기 사무실에 있던 희한하게 고운 수지꽃을 안겨주고는 사진을 찍어 공장정문 속보판에 붙였다. 그날 저녁 강철민은 남의 손을 통해 꽃을 전하던 때와는 달리 송옥림을 직접 불러내서는 무던히도 뜨거운 손으로 그 꽃을 그의 손에 꼭 쥐여주었다.

《옥림이! 이건 내가 받은 꽃다발이야. 여기엔 동무의 진정이 깃들어있어, 고마워! 받아줘!》

사달은 바로 그 꽃을 받으며 저도 모르게 자기도 강철민이처럼 울었다는 그것이였다. 기뻐서 울고 그를 두고 애를 태웠던 지난날이 생각나서 울었다. 하지만 왜서인지 점점 그를 이전처럼 허물없이 대할수 없는 자기가 느껴져 이상하고 당황해났다. 아무리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기가 그의 잔등에 업혔었다는 생각을 하면 얼굴이 화끈 다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것을 잊고 이전처럼 강철민을 못미덥고 질시스러운 존재로 생각하자고 애써보기도 했다.

어느날 저녁 그는 속보판에 멎어서서 거기에 붙은 강철민의 사진을 유심히 보기까지 했었다. 울다가 사진기앞에 나서서인지 인상이 잔뜩 찡그려진 사진을 보며 마음속으로 혀를 찼었다.

아유, 꽤나두 못났지. 좀 의젓하게 표정을 다스리고 찍지는 못한담. 역시 어려. 정돈되고 세련되자면 아직 멀었어.

알지 못할 자기 우월감마저 느끼며 시뚝해서 그 사진앞에 얼굴을 찡그려보이고 물러났지만 매일이다싶이 그앞에 서게 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어느날인가는 그앞에 서있다가 강철민이 퇴근을 하느라고 오토바이를 타고 오는것을 보고는 그만에야 꽁지가 빳빳해서 줄행랑을 놓았었다. 그렇게 도망을 치다싶이해서 안 보일만 한데까지 와서는 그만 저혼자 허리를 들까불며 웃고말았었다. 왜 웃었던지는 지금도 알수가 없다. 왜서인지 모든것이 즐거웠고 그저 웃고싶어졌다. 이즈음 그는 조금만 시간이 있으면 우스개소리를 잘해서 직장에 인기가 있는 처녀에게 자꾸만 졸랐다.

《우스운 얘기 또 해줘요.》

《이 애가 이거… 이상하다! 자꾸 웃구싶다는건 마음에 봄바람이 찼다는 소리야.》

《그렇게 말할내기면 우리 직장에 봄바람 안 찬 사람은 하나두 없어요. 모두들 다 웃고싶어하는데요 뭐.》

《그래! 하긴 나두 웃고싶다. 난 봄바람이 아니라 가을바람이기는 하지만…》

《왜 가을바람이나요?》

《넌 아직 몰라두 돼!》

처녀는 이러며 제가 먼저 웃었다. 그러면서 책에서 끄집어낸것인지 아니면 지어낸것인지 알수 없는 우스개소리를 시작하는것이였다.

《이건 서로 싸우구 무질서와 폭력으로 사람들이 고생하는 나라에서 있은 일이야.》

처녀는 버릇처럼 이렇게 전제를 달았다. 처녀는 언제나 자기 말에 전제를 다는것을 좋아했다. 밥곽에 싸온 쌀밥을 먹으면서도 《이건 재령나무리벌 쌀이야. 쌀을 일지 않고 밥을 해도 돌이 없다는…》라고 했고 물고기를 싸가지고 와서는 《이건 양어장에서 기른거야. 제일 깨끗하고 만문하지.》라고 하군 했으며 김치를 해가지고 와서도 《이건 온실배추야. 콤퓨터로 영양액을 주입해서 기른 아주 리상적인 남새지.》라고 하군 했다. 처녀의 그러한 전제를 공장처녀들은 좋아했다. 그의 전제는 언제나 처녀들을 즐겁게 해주기때문이였다. 처녀들은 벌써부터 호기심과 즐거움이 어린 눈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처녀를 바라보았다. 처녀는 스스로도 즐겁고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떤 처녀가 불량배의 추격을 받으며 도망치댔는데 글쎄 앞이 담벽으로 떡 막혀버렸다는구나. 뒤에서는 불량배의 발자국소리가 막 덮쳐드는데… 어쩔가 하고있다가 획 돌아서서 손가락들을 갈구리처럼 펴들구 무시무시한 목소리로 웃었다는구나.

〈아하하… 이제야 피맛을 보게 됐군.〉

그러면서 다가가니 하도 어수선한 세월인지라 이게 정말 식인종처녀인지 어떻게 안단 말이냐 하구 불량배가 슬금슬금 뒤걸음을 치다가 획 돌아서서 달아나고말았지. 그 처녀는 아주 우쭐해서 제 동무들에게 그 자랑을 했단다. 내가 불량배를 어떻게 쫓아보냈는지 아니 하구. 그런데 그 소리를 들은 어느 한 처녀가 글쎄 집에 가다가 그 처녀처럼 불량배의 추격을 받지 않았겠니? 먼저번 처녀와 꼭같이 그만 담벽이 막혀버린 골목길에 서게 됐단 말이야. 처녀는 너무 급해서 그 처녀가 불량배를 어떻게 쫓아보냈다고 했던가를 생각하려고 했지만 너무 당황해서인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손가락을 갈구리처럼 펴들구 무서운 웃음소리를 냈다는것까지밖에는… 그다음엔 뭐라고 말했다고 했던가 하고 생각하는데 붙량배의 발자국소리가 뒤덜미로 막 덮쳐들지뭐. 불쌍한 처녀는 돌아서서 손가락을 갈구리처럼 펴들구 무서운 웃음소리를 내면서 말했단다.

〈아하하… 이제야 남자맛을 보게 됐군.〉》

처녀들은 요절을 하리만큼 웃었다. 후에도 저 혼자 그 이야기를 생각하며 옥림은 자꾸만 웃었다.

《이 애가 분명 어디선가 봄바람이 불었어. 그게 어디서 오는 봄바람인지 말해.》

이야기를 해준 처녀는 파고드는듯 한 눈길로 옥림을 바라보았다. 옥림은 소리내여 웃고나서 대답했다.

《공장에서 불어오는 봄바람이예요.》

《그래, 공무직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구나.》

《아니예요. 모란봉구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예요.》

강철민의 집이 모란봉구역에 있다는것을 모르는 처녀는 눈이 둥그래서 서있고 옥림은 허리를 들까불며 웃었다. 그렇게 자꾸만 웃고싶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가랑잎만 굴러가는것을 보아도 웃고싶은것이 처녀시절이라고 하는것은 이때문일가? 아니, 그것보다는 이즈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다소 완화되여간다는 느낌이 처녀를 그렇게 명랑하게 만드는것인지 모른다. 료양소에 갔다온 후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식적으로 집안의 랭기를 가셔버리자고 마음먹은듯 했다. 아직은 서먹하고 차거운 느낌이 가셔지지 않아 조마조마하기는 하지만 혼연하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 받고 가정사를 토의하려고 애썼다. 어느날 옥림은 아버지가 부엌에서 쌀을 이는 법을 배우려고 혼자서 애쓰는것을 보았다. 놀랍고도 기쁜 심정으로 옥림은 그 자리를 살짝 피했었다.

송옥림은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가까이에 자기가 제일 존경하는 김윤화지배인이 서있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렇다. 김윤화지배인으로 하여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음산은 녹기 시작하는것이다. 그것이 처녀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것이였다. 오늘 저녁 일을 끝내고 퇴근하며 처녀는 저도 모르게 공상에 잠겼다. 강철민을 자기곁에 세워보았다.

《누구니?》

《우리 그 사람!》

《어마나, 잘났다 얘!》

《이번에 공장에서 새 기술혁신을 해서 무슨 증서를 탄다던지. 그래서 증명사진을 찍으러 가는 길이지 뭐.》

공상은 달콤하고 짜릿했다.

《옥림이!》

문득 옆에서 울리는 커다란 목소리에 처녀는 그만 깜짝 놀라 굳어졌다. 오토바이를 탄 강철민이 자기앞에 나타난것이였다. 어찌나 놀라고 당황했던지 처녀의 얼굴은 익은 감마냥 빨개졌다. 강철민은 의아해서 옥림을 바라보았다.

《왜 그래?》

《아이, 내가 뭐 어때요?》

강철민은 불쑥 수상쩍은 얼굴을 짓고 그를 조용한 구석쪽으로 이끌었다. 옥림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왜 이러는걸가? 무엇인가 심상치 않으면서도 가슴이 다는 류다른것이 예감되였다. 처녀는 멈칫해버렸다. 저도 모르게 두렵게 강철민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요! 안가겠어요!》

강철민은 얼떠름한 얼굴이였다.

《왜 그래?》

《할말이 있으면 여기서 해요.》

강철민은 의아해서 옥림을 여겨보다가 주위를 살피더니 은밀하게 수군거렸다.

《사실은 말이야, 딱 한가지만 해보면 알것 같은데… 그걸 못해보아서 옥림이 도움을 받자는거야.》

점점 두려워지고 당황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옥림은 눈이 올롱해서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저도 모르게 그에게서 한발자국 물러서기까지 했다.

《대체 뭘 못해보았다는거예요?》

강철민은 심중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사실 앞골기유압분배변과 피스톤을 좀더 연구해봐야겠는데 그러자면 지금 가동하고있는 고장나지 않은 앞골기를 한번 딱 뜯어봐야겠단말이야.》

옥림은 너무도 뜻밖의 말이 나오는 바람에 아연하고 놀라서 입을 벌리고 굳어졌다. 그러다가 그만 소리내여 웃고말았다. 공연히 긴장해지고 놀랐다는 생각이 들어 허리를 들까불며 웃었다. 강철민은 이상스럽게 노는 처녀를 놀라고 얼떠름해서 바라보았다.

《아니, 앞골기를 뜯겠으면 뜯지 그걸 뭘 큰일인것처럼 나한테…》

그렇게 말하다가 옥림은 입을 다물지 못한채 굳어졌다. 고장나지 않고 가동하고있는 앞골기를 뜯는다는 말이 심상치 않음을 그제야 느낀것이였다. 바람을 삼키고 굳어졌던 옥림은 그만 눈을 흡뜨며 겁난 소리를 질렀다.

《아니, 앞골길 뜯는단 말이예요?》

《그래, 뜯어봐야 정확히 알수 있을것 같애.》

옥림은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감을 느끼며 강철민에게서 한걸음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말을 왜 내게 해요?》

《그 제화직장장령감이 도무지 벌벌 떨면서 뜯어보게 해야 말이지. 지배인에게 제기했댔는데도 그냥 침묵이지… 그래서 오늘 밤에 아예 한번 뜯어보자는거야.》

옥림은 소스라쳤다. 또 에잇이로구나. 그는 다시금 한발자국 물러섰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무슨 일을 치자고 그러나요?》

《일은 무슨 일?! 일없어! 오늘 저녁 근무책임자가 동무 아버지인데 제화직장 열쇠가 경비실에 있어. 옥림이, 날 좀 도와달라구. 열쇠를 좀 가져다줘. 그저 딱 한번만 뜯어보구 도로 맞추어놓으면 돼.》

옥림은 질겁을 하여 다시 물러섰다. 강철민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모든것이 리해되였다. 결국 자기더러 열쇠를 도적질해달라는것이다. 겁이 나기 전에 괘씸해졌다. 날 어떻게 보구 그런 정당하지 못한 일에 끌어들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는 눈빛이 표표해서 강철민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그 시선앞에 얼떠름해진 강철민이 주밋거리며 어쩔줄을 몰라했다. 옥림은 야멸차게 내쏘았다.

《사방압착기를 고쳐냈다고 해서 너무 자만한게 아닌가요?》

《옥림이!》

《안돼요! 난 절대로 그럴수 없어요. 야, 도대체 무슨 일을 치자고 그래요?》

강철민은 실쭉해졌다.

《됐어! 싫으면 그만둬. 내 말 안한셈치지.》

강철민은 성이 나서 인사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윙 가버렸다. 처녀는 당황하고도 불안한 마음으로 박아세운듯 서있었다. 소스라칠만큼 겁이 났다. 도움이라도 청하고싶은 심정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무심하고도 바쁜 얼굴들이 처녀의 옆을 지나갈뿐이였다.

(야, 이걸 어쩌면 좋아?!)

처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제발, 제발 다시는 에잇해선 안돼요!)

강철민은 많은 생각을 하다가 오늘 밤 기어이 앞골기를 뜯어보리라 결심했다. 지배인조차도 현재 쓰고있는 앞골기를 분해해보겠다는 의견에는 선뜻 대답을 못한다. 정밀하고 고급한 방식의 기계였다. 수많은 기계장치와 전자장치로 이루어진 덩지 크고 값이 이만저만 비싸지 않은 첨단설비였다. 만약 잘못되는 날에는 게도 구럭도 다 놓치는 격이 될수 있었다. 더우기 고장난 앞골기는 동작이 잘 안된다고 수리공이 뜯어보았다가 아예 숨이 멎고말았기때문에 공장에서는 그것을 뜯어보는것을 여간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철민은 이 고급한 방식의 첨단설비를 정확히 파악하자면 꼭 한번은 뜯어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고장난 앞골기는 여러 사람들이 고치려고 손을 대다보니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참새 한마리를 잡자고 해도 쌀 한줌은 새겨야 하지 않는가?

조인섭직장장에게 슬그머니 이야기를 했더니 기분이 좋은듯 웃으며 《뜯어보는게 배우는데서야 첫걸음이지. 철민이가 속상해서 그런 생각까지 다 했구만. 리해가 돼!》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서 이제는 됐구나 했더니 《하지만 내가 직장장을 관둔담에 뜯어보겠으면 뜯어보라구. 난 그걸 뜯는다고 생각하면 이 몸이 다 으스스해. 아, 그러고보니 정말 몸이 오싹오싹하구나. 아무래도 감기기운이 있는걸. 환절기때문이겠지. 그 환절기라는게 사실 장난꾸러기거던.》하고는 요란스레 재채기마저 했다. 결국 쫓겨나오고말았다. 그다음은 암닭을 지키는 수닭마냥 직장장은 그 앞골기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자기가 직접 열쇠를 채우고 봉인을 했다. 그래서 뜯어보려고 옥림이의 도움을 청했더니 그는 무슨 일을 저지르려는가고 맵짜게 쏘아붙이는것이다.

《에잇!》

그는 손을 홱 내리그었다.

《나 혼자서라도 뜯어본다!》

밤새워 뜯어보고 조립해놓으면 될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저녁을 먹고 만단의 준비를 갖춘채 공장으로 나왔다. 경비를 책임적으로 서기로 유명한 송옥림의 아버지는 저쪽 합숙담장쪽에서 이상한 그림자가 담을 넘어왔다넘어갔다 하는것 같다고 한마디를 하여 아주 간단하게 보내버렸다. 그다음 경비실의 열쇠함을 보니 열쇠가 없었다. 아무리 꼼꼼히 살펴보고 뒤져보고 해야 열쇠는 없었다. 분명 조인섭직장장이 열쇠함에 걸어놓는것을 보고 들어갔는데 없었다.

혹시 송옥림의 아버지가 어디에 치운게 아닐가?

이상한 얼굴을 하고 돌아온 송명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으나 가뜩이나 자기를 곱지 않게 보는데다가 이상한 기미까지 느껴서인지 통 말을 하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 더 말을 붙이다가는 아예 억류하려들것만 같은 태세였다. 혹시 누가 거기에 들어간것이 아닐가 하여 슬그머니 경비실을 빠져나와 제화직장현장에로 올라가보았다. 현장은 불이 꺼져있었지만 문은 열려있었다.

철민은 열려진 문앞에서 잠시 망설였다.

좋은 징조일가, 나쁜 징조일가? 혹시 어느 구석에서 능구렝이같은 조인섭직장장이 유명한 반탐영화에서처럼 묘한 웃음을 지으며 슬그머니 나타날지 어떻게 알겠는가? 혹은 그 고지식한 령감이 그만 흥분해서 《손들엇!》하고 온 공장이 떠나가게 벽력같은 소리를 지를지도 모른다. 왜서인지 좋은 일이 기다릴것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대담하게 문을 열었다.

《에잇, 한번 욕먹기밖에 더하겠나! 내가 무슨 간첩이야?》

소리내여 문을 열고 발자국소리를 내며 들어갔다. 전기스위치 있는곳을 손더듬해 불을 켰다. 현장이 환해졌다. 앞골기가 있는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그만 깜짝 놀라 굳어지고말았다. 그 순간 그는 그야말로 자기가 유명한 반탐영화의 한 대목에 출연한것같은감을 느꼈다. 앞골기옆에 의자를 놓고 앉은 김윤화가 참말로 영화에서 나오는것과 같은 묘한 웃음을 짓고있었던것이였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지배인의 출현인지라 강철민은 그야말로 경악했다. 《어!》 하고 놀라는 소리를 지르며 어쩔바를 몰라 굳어졌다.

《진짜 오기는 오는구만, 우리 정찰병동무.》

김윤화는 웃으며 말했다. 강철민도 웃고말았다.

《정보가 빠… 빠르군요, 지배인동지!》

《정찰병의 수준이 낮지!》

지배인의 다소 즐거워진듯 한 얼굴을 보니 왜서인지 마음이 여유작작해졌다. 그는 능청을 떨었다.

《지배인동지, 하하… 이럴 때 영화에선 어떻게 하던가요? 네 운명이자 내 운명이다 하고 위협하든가 타협안을 제기하든가 혹은 민족적량심에 호소하던가.》

《영화줄거리에도 조예가 있구만. 그럼 어디 한번 그렇게 해보지.》

김윤화는 재미있다는듯 웃었다. 강철민은 심각한 얼굴을 지었다.

《지배인동지, 우린 서로가 리해관계가 같습니다. 죽으나 사나 앞골기를 고쳐내야 합니다. 고쳐내자면 살아있는 이 앞골기를 뜯어봐야 합니다. 방법은 없습니다. 절 믿어주십시오.》

말을 하는 과정에 그는 그만 흥분되여버렸다. 숨소리가 빨라지고 온몸이 들먹들먹했다.

《앞선 기술을 정복하자면 희생이 있어야 하구 두려움 없는 돌격정신이 있어야 한다구 생각합니다. 무얼 두려워합니까? 이걸 만들어낸 사람들도 인간이구 우리도 인간입니다. 하면 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린 첨단을 딛고 일어서게 될것이구 앞설겁니다. 우리의 지나간 력사가 그것을 말해주고있지 않습니까.》

김윤화는 말없이 철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처음이라도 보는듯이 바라보았다. 조용히 말했다.

《이쪽분야에선 동무가 썩 재간이 있구만. 동문 날 꼼짝 못하게 만들었어.》

《지배인동지!》

《하지만 철민이, 그것보다는 내가 어떻게 여기 와 앉아있는지 그것부터 분석해봐야 하지 않을가? 결국 동문 내가 적인지 동요분자인지 아니면 우연분자인지도 모르고 총을 쏜 격이 되지 않았나? 그래서 동무가 수준없는 정찰병이라는거야.》

강철민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정말로 이 지배인이 어떻게 여기 왔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지배인이 여기로 올수 있는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던것이다. 어정쩡해서 서있는 그를 보며 김윤화는 엄격한 얼굴을 해보였다.

《옥림이가 나한테 울면서 전화를 했어. 철없는 녀석! 처녀 하나 공감시키지 못하는 그런 리론으루 이 공장을 움직여보겠다구?! 그게 바루 극단한 소총명이구 자유주의야. 조직과 집단보다 자기의 견해를 우에 놓는 그런 인간들이 반역의 길두 그렇게 꺼리낌없이 간다는걸 그래 넌 아직두 모르겠니?》

《예?!》

강철민은 흠칫 놀라 굳어졌다. 얼굴이 질려 항변하고싶어 입을 벌렸으나 김윤화의 엄한 눈길과 부딪치고는 굳어지고말았다.

《만약 자유주의적으로 앞골기를 뜯어보다가 정말로 못쓰게 만든다면 그때에는 그 결과를 어떻게 책임지겠니? 운수가 나쁘다고 해두겠니? 이미전에 한대 더 못쓰게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거라고 하겠는가 말이야? 넌 지금 국가의 설비를 가지고 제 낯을 낼 생각을 하고있어. 그래서 모험두 혁신처럼 여겨진거야. 이게 소총명이 아니구 자유주의가 아니란 말이냐?》

김윤화는 엄하게 부르짖었다. 진정으로 가슴이 아픈듯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생각해봐라. 자본주의사회라면 네가 그런 마음을 먹을수 있었겠니? 상상이나 했겠는가 말이야? 만약 정말로 저 기계를 못쓰게 만든다면 손이 발이 되게 빌구 몇대를 종처럼 살면서 빚을 갚아두 일이 끝날상싶은가 말이야? 그 사회에서두 평범한 로동자인 네가 에잇, 에잇 하고 제밸대로 할수 있을것 같애? 하두 좋은 사회에서 일하니 못된 버릇부터 배웠구나.》

강철민은 몸을 떨며 아무 말도 못한채 서있었다.

《우리도 그동안 생각이 많았다. 집안의 자그마한 물건이라구 해두 허턱 없애버리기가 어려운게 사람의 마음이야. 하물며 이거야 나라에서 귀한 돈을 내여 보내준 설비가 아니냐? 생각이 많고 고민도 했어. 그래서 우린 토의끝에 당조직과 내가 책임지기로 하고 네가 저 앞골기를 분해해보도록 하기로 했다. 만약 정말로 못쓰게 된다고 해도 네가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그것이 저 기계값 몇대를 대신할거라구 생각했단 말이다. 이게 바로 우리의 조직이구 집단의 세계야. 그런데 이렇게 경거망동을 해? 이게 배은망덕이 아니구 뭐냐?》

김윤화는 격하여 소리를 쳤다.

《지배인동지!》

입술에 느껴지는 쩝쩔한 눈물을 느끼며 강철민은 경황없이 부르짖었다.

《아무리 철이 없어두 분수가 있지.》

《지배인동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김윤화는 말없이 강철민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거라! 가서 자기를 깊이 반성해보거라, 조직에 찾아가 비판도 하구. 넌 그것부터 배워야 해. 설사 지금은 네가 앞골기를 고칠수 있는 하늘같은 재간을 가지고있다고 해도 너한테 앞골기를 맡겨줄수 없어. 이제부터 앞골기에서 손을 떼거라.》

《예?!》

강철민은 애원하듯 김윤화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용서가 없을듯 한 엄한 눈길이 그를 마주보고있었다. 강철민은 고개를 푹 떨구었다.

《어서 돌아가거라. 이밤중으로 옥림이를 만나 용서를 빌어라.》 김윤화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서 나가버렸다. 강철민은 고개를 떨군채 서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돌아서서 걸어나갔다. 김윤화의 말대로 그는 옥림을 만났다. 풀이 죽어 용서를 빌었다.

《옥림이, 미안해!》

옥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시름겹고 격분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볼뿐이였다. 그 순간 강철민은 저도 모르게 자기가 대학시험을 치던 때를 생각했다. 자기를 두고 아프고 격분하여 소리를 치던 옥림을 생각했다.

《내 이젠 그 에잇 하는 버릇을 고치겠어.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

옥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철민은 한숨을 쉬며 돌아섰다.

《잘있어. 난 가겠어.》

강철민은 고개를 푹 숙인채 오토바이에 올랐다. 달려가는 그의 뒤모습을 옥림은 아프고도 안심한 시선으로 바래웠다.

김윤화는 강철민을 앞골기에서 손을 떼게 한 후 조직앞에서 엄격한 비판을 받게 했다. 옥림이도 눈물을 흘리며 비판을 했다. 강철민은 자기의 잘못을 비판하며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에야 김윤화는 앞골기를 뜯어보도록 했다. 여러명의 기술자들과 함께 뜯어보도록 했다. 그들은 하루종일 앞골기를 분해하여 연구하였다. 저물녘 앞골기를 다시 조립하였다. 이전처럼 정상적으로 동작하는가를 보려고 전기스위치를 넣었다. 그때였다. 앞골기본체안에서 전류가 합선되는듯 한 이상한 소리가 웅 하고 울렸다. 앞골기가 부르르 몸을 떨었다. 한순간 사람들이 섬찍하여 굳어졌다.

《스위치를 떼라!》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앞골기 옆쪽 전기개페기옆에 서있던 강철민은 거기에로 몸을 날렸다. 앞골기에도 스위치가 있건만 놀라고 당황해진 그는 그것을 생각하지 못한것이였다. 그저 전원을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벽에 붙어있는 고압전원을 투입하는 전기개페기에로 달려들었던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바닥에 깔린 기름을 밟고 비칠거렸다. 그러면서도 한손으로 개페기를 잡아챘다. 하지만 다음순간 몸균형을 잃고 그 반충으로 그의 한손이 그만 개페기의 전기선에 닿았다. 개페기에서 푸른 불이 일었다.

《앗!》

비명은 그가 아니라 사람들이 질렀다. 앞골기는 숨을 죽였고 강철민은 병원에 후송되였다. 고압전류가 통과한 그의 한팔을 잘라야 한다는 견해가 의사들속에 돌았다. 뼈가 손상되였다는것이였다. 김윤화는 무섭게 격노하여 소리쳤다.

《팔을 자른다는게 무슨 소리예요? 이렇게 새파랗게 젊은 사람을… 얼마나 귀중한 팔이라구… 얼마나 많은 일을 해야 할 팔이라구… 어떻게 그런 말을 할수 있어요? 안돼요! 이 동무의 팔을 자를바에는 내 팔을 잘라요.》

의사들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강철민의 문제가 당에 보고되였고 그는 치료경험이 많은 조선인민군대의 어느 한 병원으로 후송되게 되였다.

《지배인동지, 앞골기가… 앞골기가…》

후송되던 날 강철민은 울먹이며 말했다.

《일없어. 동무가 다 나아서 온 다음 고치면 돼. 난 동물 믿어. 우린 동물 기다리겠어.》

《꼭 믿어주십시오! 이번에 분해해보구 정말 많은걸 배웠습니다. 제가 꼭 앞골기를 고쳐내겠습니다.》

강철민은 떠나갔다. 김윤화는 멍하니 선채 강철민을 태우고 사라져가는 승용차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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